사냥과 살생에 대한 다윈의 열정
(Darwin's Passion for Hunting and Killing)
IMPACT by Jerry Bergman (17) No. 383, 2005
길소희역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간사, 지질학, ssoya89@hanmail.net)
대중 과학 문헌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다윈의 한 면은 강한 사디스트적인 취향이었다. 이것을 반영했던 그의 열정 중의 하나는 사격, 사냥, 그리고 총에 대한 그의 애정이었다. 사격과 사냥에 대한 다윈의 관심이 19세기 영국에서는 별난 것은 아니었으나, 그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도 식량이나 스포츠를 위해 사냥을 하는데, 단지 사냥만을 위한 악의적인 살생은 정당화될 수 없다. 다윈의 경우, 적어도 사디즘에 달한 강박적 행동이었다.
이런 어두운 면에 대한 어릴 적 암시에 포함되는 것으로, 흥분을 자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주목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훔친 다윈의 성향을 들 수 있다. 다윈 자신의 말로 하자면, “꼬마였을 적에 나는 필사적으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기질이 많았는데, 그것은 항상 흥분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1958, p. 23). 다윈은 또한 재미로 훔쳤다는 것을 인정했다(p. 24). 거의 사디스트적인 감정에 대한 명백한 예는 다윈이 소년이었을 적에 “단지 힘에 대한 감각을 즐기기 위해... 강아지를 때렸을” 때였다. 그는 심지어 나중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고 인정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나빴다는 것을 그가 알았음을 보여준다(p. 27). 이 당시, 그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그의 죄책감을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p. 25).
다윈의 사디스트적인 감정 Darwin's Sadistic Impulses
다윈이 약 15살이 되기 전에 총을 다루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었지만, 처음으로 동물을 죽이고 나서야 명백하게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사격에 대한 열정은...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리고 졸업한 후에도 남아있었을 것이다’(Gale, 1982, p. 9). 다윈은 살생을 너무나 많이 좋아해서 그가 처음으로 새를 죽였을 때, 그는 말 그대로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그의 자서전에 기록된 대로 그 자신의 말로 동물을 죽이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학교생활 후반부에, 나는 열정적으로 사격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새를 쏘기 위해서 가졌던 가장 거룩한 명분에 대한 열정을 어떠한 사람도 나보다 더 많이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으로 도요새(snipe)를 죽였을 때를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흥분은 너무나 커서 손이 떨려 총을 다시 장전하는데 무척 어려웠다. 이러한 취향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나는 매우 뛰어난 사격수가 되었다(1958, p. 44, 강조부분 추가).
그는 또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사격을 얼마나 즐겼던가!”(p. 55), 그리고 “만약 지구상에 더없는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격이다”(Browne에서 인용, p. 109). 그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표명하기도 했다. “나의 열정은 너무나 커서 나는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부츠를 신는데 일초도 허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 침대 옆에 사격 부츠를 벌려둔 채 놔두곤 했다”(p. 54).
1828년 무렵, 동물 사냥에 대한 그의 야망은 그의 장비를 통해 나타났다. 그는 좀 더 강력한 총(double-barrelled gun)을 원했고, 그래서 새로운 총을 사기 위해서 그의 부친과 여자형제들에게 돈을 부탁했다. 만약 그가 옛날 총을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그가 주장하기를 당장이라도 “전술된 찰스 다윈의 다리, 팔, 몸과 머리를 파괴할” 수도 있을 끔찍한 결과로 그들을 위협했다(Browne, p. 110). 그는 곧 새 총을 샀고, 나중에 캠브리지의 학생이 되었을 때 그것을 가지고 연습하곤 했다. 그가 밖에 있을 수 없었을 땐, 자신의 방에서 총 쏘는 것을 연습했을 것이다! 캠브리지에 있는 동안, ‘스포츠 동아리’에 가입해서 ‘음주, 사냥, 승마를 엄청 했다’(Gale, p. 13).
브라운(Browne)은, 1826년 이후에 다윈은 젊은 시절의 매년 여름과 가을에 새와 다른 동물들을 죽이는데 전념했었다고 주장했다. 사격을 하지 않는 달에는 다른 동물을 죽이는 데 필요한 “총에 대한 안내서를 공부하거나 탄환의 직경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적으면서” 보냈다(Browne, p. 110). 다윈은 이미 동물을 죽이는데 있어서 상당한 자신의 실력을 향상하는데 도움을 줄 조언을 위해 노련한 사냥꾼에 의한 젊은 사냥꾼을 위한 설명서(Instructions for Young Sportsmen by an Old Sportsman)와 같은 무수한 책들을 모았다(Gale, p. 144).
사냥에 대한 다윈의 열정은 너무나 커서 수렵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서, 사냥감에 몰래 접근했다. 그래서 그는 ‘금렵기에 사냥감을 죽이는 것에 대한 금전적 벌금’을 졌다. 그리고 그는 심지어 ‘어떠한 일반인이나 사냥터 관리인도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기 전에 당신의 증명서를 요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법을 무시할 것을 고려하기조차 했다(Browne, p. 110). 그는 또한 자신이 사격과 동물 사냥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반의식적으로 나의 열정에 대해 수치스러워했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나는 사격은 거의 지적인 활동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p. 55).
비록 삶의 후반부에 과학에 대한 그의 애정도 또한 매우 중요하게 되었지만, 사격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잘 알려져 있었고, 청년이었을 적에 다른 어떤 활동에 대한 것보다 더 컸다.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당시 다윈의 애정에서 현미경에 대등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물건은 총이었다. 그리고 그는 총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딱정벌레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사격은 그러한 생각을 전적으로 지배했다(p. 109).
다윈은 사격이 오랫동안 과학보다 훨씬 더 중요했었다고 인정했다. “나는 캠브리지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몇몇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바머쓰(Barmouth)를 방문했고, 거기서 쉬루즈베리(Shrewsbury)와 매르(Maer)로 사격을 하러 되돌아왔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지질학이나 다른 어떤 과학 때문에 엽조 사격의 중요한 날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을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p. 71). 다윈은 심지어 그의 수많은 사냥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정교한 분류법으로 집계했다. 그의 목록은 ‘수렵기동안 내내 그가 죽인 모든 것’의 현재 총계를 기록하기 위해서 엽조, 산토끼, 그리고 꿩으로 세분하였다(Browne, p. 110). 동물 사냥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도 또한 다음 경험담에서 나타난다.
전 수렵기간 동안 내내 내가 쏜 모든 새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했다. 하루는 사격을 할 때... 나는 내 자신이 수치스럽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발사한 후 내가 새를 죽였다고 생각할 때마다 둘 중의 하나가 마치 그의 총을 장전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소리쳤다. “넌 저 새를 헤아리지 않아야만 해. 왜냐면 내가 동시에 발사했으니깐,” 그리고 그 농담을 이해한 사냥터 관리인은 그들을 지지했다. 몇 시간 후에 그들이 내게 그 농담을 말했으나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으나 수많은 새를 쐈기 때문에 내게는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목록에 그것들을 추가할 수 없었다.... 나의 못된 친구들이 이것을 알아챘었다(Darwin, p. 54).
브라운은, 그의 사냥 도구는 정서적으로 그에게 사격 그 자체만큼 중요했었는데, 그것은 매번 살인을 한 후에 자신의 총에 새김눈을 넣는 살인자와 유사한 강박증을 나타낸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윈의 부친은 그의 강박증을 문제점으로 보았다. 그는 한번은 찰스가 ‘사격, 개, 그리고 쥐잡기에만’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자신과 그의 전 가족에게 ‘수치가 될 것이다’(Darwin, p. 28). 심지어 다윈 자신도 젊었을 적에 사격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서 후회했으나 그는 결코 그의 사디스트적인 행동, 즉 그것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강박증에 대해서는 어떠한 후회감도 표현하지 않았다. 보울러(Bowler)에 따르면(p. 39), 다윈은 “결국엔 쓸모없는 학살자로서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의 대학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 사격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물론, 단지 쓸모없는 학살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나빴다. 혹자는 이러한 사냥과 죽음에 대한 ‘열정’이 그의 무자비한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선택의 필사적 이론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역할을 했었을 수도 있는 지 궁금히 여긴다.
찰스의 태도는 그의 여러 가족 구성원과는 무척 대조를 이룬다. 그의 여자형제는 수집을 위해 곤충을 죽이는 것조차 적절하지 않으며 ‘죽은 곤충을 수집해야만 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Desmond & Moore, p. 16). 다윈은 그녀의 생각에 동의를 하면서 “수집을 위해서 곤충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Darwin, p. 45). 그러나 나중에 그는 이러한 생각을 무시한 채 거리낌 없이 수집했다(p. 62). 수집을 위한 사냥에 대한 다윈의 태도는 어떤 유명한 생물학자들의 태도와도 또한 대조를 이룬다. 아우구스트 포렐(August Forel) 교수는 자신은 아이였을 적에 단지 죽은 곤충만 수집하도록 허락되었다고 말했다. 1859년 그 때, 그는 또한 곤충 학자였던 그의 삼촌이 그에게 생물체를 고통 없이 죽이는 법을 보여준 후에 살아있는 표본을 수집하도록 허락되었다(1937, p. 33).
다윈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비록 그는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수술에 대한 생각은 그를 거의 병나게 해서 그는 피 흘린 사람을 보는 것을 거의 참을 수 없었다”(1958, p. 30). 다윈이 두 번의 ‘조악한 수술’ 때 참석했었는데, 한번은 아이였을 적이나, ‘이것은 클로로폼이 사용되기 오래 전에 있었기 때문에’ 수술이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떴다는 것은 흥미롭다(p. 48). 그는 박제사(taxidermist)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배웠던 영역인 ‘새를 박제하는 것’에 대해서 그러한 불안감은 전혀 가지지 않았다(p. 51).
다윈의 행동은 하나님은 사디스트적이라는 그의 불평의 관점에서 반어적이다. 1856년 7월 13일자가 찍힌 그의 친구, 후커(Hooker) 교수에게 쓴 편지에서, 다윈은 “자연은 우리에게 너무나 서툴고 비경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꽃가루에 대하여 “악마의 사제가 서툴고, 비경제적이고, 어쭙잖게 저속하고 게다가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자연의 작품에 대해 쓸지도 모를 책이여!”라고 말했다(Darwin, p. 1990, p. 178).
1860년, 5월 22일에 아사 그레이(Asa Gray)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 다윈은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비참함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다고 썼다. 그가 쓴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자비롭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애벌레의 살아있는 체내에서 그것들을 먹이시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맵시벌과(Ichneumonidae)[기생곤충]를 창조했었을 것이라는 것이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해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없네(Darwin, 1993, p. 224).
어떤 사람들은 다윈이 젊었을 적에 자신이 즐겼던 것과 똑같은 것을 하나님이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독교적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쟁했다는 것을 아이러니의 극치로 볼 수도 있다.
결론 Conclusions
다윈은 명백히 그의 대부분의 생애동안, 특히 그의 삶의 황금기에 청년이었을 때 동물을 죽이고자 하는 과도한 욕구로 고통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의 행동에 대해서 거의 정확하지 않은 평가로) 단지 다윈이 사냥을 좋아했었다고만 이야기하면서 다윈의 이러한 특성에 대해 암시하기를 피해왔었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주제를 피한 이유는 다윈이 지금 많은 과학자들(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우상화되어 있으나 무자비한 동물 사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기존의 모든 과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는 아닐지라도 종종 19세기의 위대한 과학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리스트에 올라있는 다윈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서의 다윈과 그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거의 병적인 살생 충동을 판단하고 그것이 자연선택에 대한 그의 결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 것인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 참고자료(References)는 ICR 홈페이지 및 창조과학회 본부 홈페이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