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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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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의학의 기독교적 조망

서민호 /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대 로마 시대 때의 인류의 평균 수명은 22세였고, 조선 시대 말 고종 황제 때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28세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평균 수명이 70세가 넘게 된 데는 의학의 발전이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21세기를 눈앞에 내다보고 있는 최근의 의학은, 그동안 급속히 발전한 분자생물학을 토대로, 생명활동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가진 유전자(DNA)들을 인위적으로 조작시켜, 그 유전자의 기능을 분석하고, 질병의 조기진단법을 개발하고, 새로운 치료를 위한 유전자 생산물(인슐린, 인터페론, 성장 호르몬, 예방 백신, 기타)을 얻어내거나, 유전자 자체를 개조하여 불치의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고자 하는 분자의학(Molecular Medicine)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의해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분자의학은 유전병, 종양(암), 대사성 질환, 노화, 바이러스 질환 등의 수많은 난치병의 진단과 치료 및 예방에 새로운 희망을 주게 되었다.

과거 중세 시대에 페스트 등의 감염병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이 희생된 때를 생각하면 분자의학이 의학 발전에 미친 크나큰 업적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마치 최첨단 핵물리학이 이루어 낸 작품이 원자폭탄이라는 인류 파멸의 물건이듯이, 첨단 의학의 놀라운 잠재력을 깊은 통찰 없이 그릇되게 사용하게 된다면, 인류에겐 또 다른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각종 분자의학적 연구를 위하여 유전자 조작을 가하다가 강력한 독소를 만드는 DNA가 형성되어 이 독소에 의하여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 또는 임상적으로 유효하게 쓰고 있는 항생제에 강력한 저항성을 나타내는 내성 인자가 형성되어 감염병의 치료가 무력하게 되는 경우, 혹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가 세균이나 다른 DNA로 삽입되어 암이 대량으로 전파된 경우, 또는 예측 불허의 새로운 균종이 생성되어 생태계의 파괴가 초래될 경우 등, 많은 문제점을 예견할 수 있다. 실제적인 예로서 수년전 소련에서 세균전 무기로 추정되는 강력한 독성 세균을 개발하던 중 폭발하여 수천 명의 인명 손실을 낸 사실이 보도된 바 있다.

기술이라는 것 그 자체는 아무런 선도 악도 아니다. 다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관점에 따라 유익도, 비극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과학 탐구에 있어서의 자유는 당연히 인정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과학 실험도 다 자유롭게 허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사람도 남에게, 그것도 아무 말도 없이 해를 끼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과학 연구에 있어서 그 안전성이 의심된다면 과학자는 반드시 심각하게 안전성을 고려하여야 하며,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대중에게 알려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분자의학 기술을 이용한 첨단 의학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조기에 환자에게 별 고통 없이 찾아내어 정확한 진단과 예후 판정을 실시하고, 나아가 고장난 유전자를 분자 수준에서 수술을 가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이른바 유전자치료(혹은 유전자수술)이며 이를 위해서 무해한 미생물을 약간 변조시켜 유용한 유전자 산물을 얻어내는 연구인데, 이를 통하여 유전병이나 종양, 대사성 질환, 전염병 등의 많은 난치병을 회복시킬 수 있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분야의 연구를 적극 지지한다. 왜냐하면 질병과 고난이란 것이 결국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며,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과 싸우기 위해 선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자의학의 또 다른 연구 분야로서는 개조된 인간 혹은 새로운 생명체의 창조이다. 물론 무(ex nihilo)에서부터의 생명 창조는 아니고, 이미 창조주 하나님이 놀라우신 솜씨로 설계하여 창조하신 생명체의 신비를 어느 정도 규명한 후 유전 정보를 가공하고 섞어서, 새로운 생명체를 제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지금의 생명과학 수준으로는 아직도 요원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한 예로 최소한의 세포생물(가장 간단한 세균)이 되기 위해서는 약 148,800 염기의 DNA 유전자가 있어야 하며, 사람과 같은 포유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약 60억 개의 염기를 가지는 DNA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첨단 DNA 합성기로써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전자는 겨우 70 - 80 염기에 지나지 않으며, 첨단 PCR(polymerize chain reaction; DNA 증폭 기술)법으로도 겨우 3000염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덮어둔 채, 생명과학 수준을 침소봉대하여 공룡 피를 빨아먹고 화석이 된 모기에서 다시 공룡의 유전자를 재생시켜 공룡을 재창조한다는 내용의 영화 {쥐라기 공원}은 그저 재미로나 보는, 오직 영화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분자의학의 발전 속도가 지금과 같이 눈부시게 지속된다면 한 50년 - 100년 후에는 이러한 사실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어떠한 문제들이 초래될까? 먼저 하나님이 아니라도 생명 창조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것은 분명히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이 무에서 만들어 내는 유전자는 실제의 생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와는 엄청난 양적 차이가 있으며, 양적 차이를 극복하려면 이미 하나님이 창조해 두신 놀라운 장치인 세포를 이용해야만 하므로, 결국 인간이 창조한 것이 분명히 아닌 것이다. 또 생물의 가장 핵심인 유전 정보에 있어서는, 인간이 유전 정보를 창조한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이 창조해 두신 생물 속의 놀라운 설계를 겨우 발견하여 그대로 모방했을 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의 극히 일부를 발견하여 생물에 적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예상되는 또 다른 문제로서는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도 보여주듯이, 고의든 실수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과학자가 예측하지 못했던 큰 사건이 벌어진다거나, 원래 생각했던 현상과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날 때 벌어지는 생태계의 파괴와 대재앙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생물 제조 연구는 윤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특히 그 연구가 인간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생명과학 연구는 식물, 동물, 세균, 인간 등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들을 대규모로 섞고 있으며 심지어는 원숭이와 사람과의 잡종을 만드는 실험도 있는데 이러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의 근본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유전학과 세포생물학의 발달로 인해, 생식에 관계되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다. 남자들은 정자를 정자은행을 통해 팔고 있고, 여자들은 그들의 자궁을 대리모로서 대여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인간 생산은 필수 불가결하고 윤리적 차원에서 타당한, 특별히 선별된 경우에만 신중히 시행되어야 한다.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명체는 수억년 동안에 걸쳐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잘 갖추어진 자신들의 실험실에서, 자연이 이루어 내는 업적보다 훨씬 더 나은 생명 제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첨단 생명과학의 기술이 이들의 생각을 크게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즉, 생명과학에 관여하는 최첨단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분야에서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그들의 연구가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신학적 차원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마도 잘 모르고 있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제한된 존재이며, 죄악과 타락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며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며 신이 창조한 자연과 환경을 잘 지켜 나가야 할 존재이지 어떠한 사건이 생길지도 모를 전혀 새로운 자연을 창조하여 자연계의 질서를 뒤바꿀 권리는 없는 것이다. 또 그러한 일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과학 연구의 자유라는 것은 자연계를 새로 창조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미 인간의 제한된 지식으로 환경을 조작하는 일에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환경 보호 운동의 주된 내용은 무지한 인간의 지식으로 환경을 조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의 조작이라는 사건도 큰 문제지만 첨단 의학을 통한 생명 조작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문제는 훨씬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 연구에 있어서 그 잠재 위험이란 것은 존재 기간이 짧고 국지적이다. 핵무기를 제외한 어떠한 위험도 아주 긴 기간 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없다. DDT나 PCB, 그리고 HCB들 마저도 결국 자연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빨리 소멸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분자의학적으로 새로이 제조된 생명체는 생물이므로, 자연소멸되지 아니하고 항상 환경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라는 것은 어느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지 아니하고 주변으로 자꾸 퍼져서 전 지구적으로 번질 것이다. 즉 어느 한 지역이나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인 문제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오스트레일리아에 토끼를 들여 넣음으로써, 하와이에 쥐를, 그리고 미국 대륙에 짚시나방을 들여 넣음으로써 생긴 막대한 피해를 통해 볼 때,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기술자가 자기의 기계를 수리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수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제한된 지식과 죄성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생명과학 연구와 같은 중요한 분야에 있어서 바람직한 규제책을 수립해 둠으로써 장차 생명체를 마구 변조시키므로 인해 비극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원자-핵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고 많은 대책과 규제를 수립하고 있다. 그런데, 조용히 진행되고 있지만 그 잠재 위험은 핵 문제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는 생명과학 연구에 대해서는 거의 대책이 서 있지 않은 실정이다. 첨단 의학에 관한 문제점들은 가능한 한 모든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고 심도 깊은 토론과 평가를 거쳐, 대중들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결정되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 있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종교계 등 사회 각계 각층을 포함하는 상태에서의 신중한 평가를 거치도록 해야 하며, 국가 차원에서 구성하는 합리적 심의 기구를 구성하도록 하여야 한다.

인간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의학 연구에 있어 윤리적 차원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는 자격 있는 (면허 있는) 사람에 의해서만 수행되어야 한다. 둘째, 인체 실험은 충분한 실험 실적 및 동물실험 연구 과정을 거친 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실시하도록 한다. 셋째, 가능한 위험도 보다 예상되는 이득이 훨씬 많을 경우에만 인체 실험을 실시한다. 넷째, 실험 대상으로부터 완전한 동의를 얻은 후 실험해야 한다. 다섯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한 안전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특히 뜻하지 않은 심리적 손상을 철저히 방지해야 한다. 여섯째, 인체 실험을 할 때는 반드시 윤리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일곱째, 인체 실험을 할 때는, 실험 목적이 잘 달성될 것이라는 충분한 가망이 있어야 한다. 여덟째, 실험 대상 선정시에는 사회적 기반이 약한 사람, 빈민, 약자, 재소자, 혹은 제도적 강압에 의해 선정되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부담이 돌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마태복음 5:13-16과 같이, 만일 기독교인들이 문명에 있어서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한다면, 첨단 의학의 영역 안에서도 기독교인의 책임감이 연마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술이란, 그 자체는 아무런 선도 악도 아니며 다만 그 배후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나 사회집단의 생각에 좌우되게 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세계관, 사회관, 인간관 형성 및 계몽이야말로 기술이 악용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방책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은 생명과학의 영역을 잘 파악하고 기독교적인 바탕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일에 기꺼이 나서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첨단 의학의 미래에 있어서의 적용을 조절하고 올바로 인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과학 정책에 있어서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해서는 안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생명과학의 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 우리의 성경적 전통과 판단을 통해 시정해 주어야 한다. 만일 기독교인이 이런 문제를 못 본 체하고 비신앙인들에게 과학 정책을 맡겨 버린다면 재앙은 급박히 닥칠 것이다. 큰 유익을 끼칠 수도 있고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는 첨단 생명과학의 시대에 접어든 우리는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야 한다. 특히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기독교인들은 다른 기독교인들보다 더 큰 사명감을 갖고, 진실된 신앙생활과 아울러 급속히 발전하는 생명과학의 내용을 열심히 습득하여, 의학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감시자로서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과학과 기술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에 대한 문화명령의 하나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므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지식만 발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경우나, 과거 중세시대 때처럼 편견된 신앙만 고집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과학적 지혜를 소홀히 하여 무지한 상태가 된 경우나, 다같이 인류에게는 재앙만 초래할 것이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는 예수님의 균형된 성장 모습과 같이, 신앙과 지성, 이 두 가지는 균형 있게 커 나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피조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의 목적을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분명히 정립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 피조 세계의 연구를 통해 이를 만드신 창조주의 신성과 능력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창조주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것이며, 둘째, 피조 세계의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은 연구자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이웃의 복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즉 학문의 목적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는 말씀과 같이,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종배, "신비한 인체 창조 섭리", 국민일보사, 1993.

2. 양승훈, "기독교 세계관의 이해와 적용", 기독교 대학 설립 동역회 출판부, 1990.

3. Anderson, J. K., "Genetic engineering, Zondervan," 1982.

4. Frame, J. M., "Medical ethics,"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Co., 1988.

5. Jones, D. G., "Manufacturing Humans," IVP, 1987.

6. Polkinghome, "One world," SPCK,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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