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 공백(gap)이 있는가?
Russell Grigg 글, 이종헌 역, Creation ex nihilo Vol. 19 No. 2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년의 ''공백/gap''이 존재하는가? 그래서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거기에 기독교인들이 긴 시대를 편리하게 삽입할 수 있는가?[1,2]
실제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모세는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
창세기 1장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직접적인 해석은, 그것이 초지혜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어떤 신비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혹은 그의 선조들)에게 계시하신 것들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가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설명한 것이며, 이는 다른 확실한 반증이 없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1절과 2절 사이에 수십억년의 공백이 있어서 그 기간 동안에 사탄, 죄, 심판, 형벌, 재창조(부록의 ''공백 이론''을 보라) 등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시키려 했다면, 그에 관련된 사항 중의 최소한의 일부라도 그분이 저자에게 알려주셨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3]
사실상, 정통파 유대인들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항상 창세기 1장을 문자적인 역사로 읽어왔다. 유신론적 진화론 지질학자인 데이비스 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창세기 1장을 엄격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18세기까지 기독교계에서 거의 대부분의 보편적인 견해는 지구의 나이가 수 천년 밖에 안된다는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구에 대한 현대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이런 관점이 교회 내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4]
성경의 다른 부분은 공백 이론에 대한 죽음의 종소리들이다.
* 창세기 1:31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만약 나중에 사탄이 되는 존재가 이미 반역을 해버렸다면, 위의 언급은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만약 아담 이전의 모든 종족이 멸망하고 동물 세계 전체가 사멸하는 것과 관련하여 질병, 폭력, 죽음 및 부패의 표징이 되는 수십억의 ''루시퍼-홍수'' 화석들이 있어서, 아담과 하와가 땅 속에 묻힌 화석들 위를 걷고 있는 것을 볼 때,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하실 수 있었을까?[5]
* 창세기 6-9장은 전세계적인 홍수를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노아의 방주에 들어 있지 않았던, 코로 호흡하는 모든 육상동물이 죽었다고 되어 있다. 공백 이론가들은 화석이 ''루시퍼의 홍수''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아의 홍수는 실질적으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거나 아니면 단지 국부적인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분명히 화석의 원천에 대한 보다 나은 설명은, 성경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 가상적인 홍수보다,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홍수에 있다!
* 출애굽기 20:11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 이것은 창세기 이외의 곳에서 창조의 시간틀에 대해 언급하는 결정적인 구절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6일 안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단언적으로 말한다. 공백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6]
* 로마서 5:12은 이렇게 말한다. ''… 이러므로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 아담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는데, 고전적인 공백이론은 첫째날 이전의 공백 동안에 죽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아담의 죄 때문에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평범하게 말한다. 이 구절을 인간의 죽음만으로 제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히려, 로마서 8:20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담이 죄를 저지르기 이전에는 (증거 없이 주장된 ''루시퍼의 홍수''에서 죽은 화석과 같이) 세상에 죽음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공백이론가들은 로마서 5:12과 창세기 3:3이 영적인 죽음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렇지 않다. 아담은 육체적으로 죽어가기 시작했고(히브리어: ''장차 죽는 죽음'', 즉,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창세기 3:19은 창세기 5:5에서 완성되었다.), 또한 영적으로 죽었다.[7]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을 모두 겪으셨다(마태복음 27:46). 또한 고린도전서 15:21-22을 보라.
공백이론에서 근거 없이 주장하는 성경적 증거들
공백이론가들의 주장은 몇가지 히브리 단어들의 대안적인 해석에 심하게 의존한다.
1. 히브리 단어 빠라/bara(''무로부터 창조하다'')와 아싸/assa(''만들다'').
창세기 1:1은 빠라를 사용하고 출애굽기 20:11은 아싸를 사용한다. 공백이론가들은, 빠라와 아싸를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출애굽기 20:11은 멸망한 세상의 재창조와 재형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답: 창세기 1장에서 히브리 단어 빠라가 세 번 사용되었는데, 그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실체 -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창조를 나타낸다.
창세기 1:1에서 빠라는 하늘과 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창세기 1:21에서 빠라는 최초의 정신을 가진 동물(또는 네페쉬) 생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창세기 1:27에서 빠라는 최초의 사람,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간 생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창세기 1:26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아싸]'', 반면에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빠라]''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빠라와 아싸를 둘 다 사용하여 같은 사건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그 동사들은 분명히 상호교환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더군다나, 창세기 2:4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아싸] 때에 천지의 창조된[빠라]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기서 빠라와 아싸가 동의어를 의미하는 병행구로 함께 사용되었다. 이것은 또다시 모세가 그 단어들을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2. ''"와우/waw"는 히브리어 문자의 이름인데 접속사로 사용된다. 그것은, "그리고/and," "그러나/but," "이제/now," "그리고 나서/then" 등의 의미로 사용되며, 와우가 포함된 형태와 문맥에 따라 기타 몇가지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다.''[8] 이것은 창세기 1:2의 시작부에 나타나는데, KJV에서는 ''그리고/and(와우) 땅은 형체가 없고 비어있었다''로 번역되었다. 공백이론가들은 이 번역을 공백 이론을 지지하는 데 이용한다. 그러나, 원전을 가장 직설적으로 읽으면, 창세기 1장 1절은 주어 + 동사의 주절로 되어 있고, 2절은 3개의 종속절로 되어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문법학자 Gesenius가 "와우 설명/waw explicativum" 혹은 설명적인 와우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서, 영어의 "즉/to wit"에 비견된다.''[9] 따라서 2절을 보다 낫게 번역하면, ''그런데 땅은/Now the earth …''이 될 것이며, 의역을 하면, ''그런데 땅에 대해서 말하자면…''으로 할 수 있다.[10]
그것은 창세기의 저자가 (하나님의 지시하에) 그러한 결합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두 구절 사이에 중단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창세기 1:2의 ''was''[히, "하야"]를 공백이론가들은 ''became''으로 번역하여, 다음과 같이 쓴다. ''그리고 땅은 형체가 없고 비게 되었다(became [or had become]),'' 공백이론가 A. C. Custance는 그의 책 ''형체가 없고 빈/Without Form and Void''에서 거의 5분의 4를 13개의 부록을 포함하여 이 번역, 특히 과거완료 시제 ''되었다/had become''를 옹호하는 데 할애했다.
그러나 저명한 문법학자들과, 사전편찬자 및 언어학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되었다/became''와 ''되었다/had become''로 번역하는 것을 거부한다.[11]
4. 창세기 1:2에서 히브리어 단어 토후와 보후는 ''형체가 없고''와 ''비어 있는''으로 번역되었는데, 공백이론가들은 이것이 지어져 가는 과정 중에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심판에 의한 멸망을 나타낸다고 말한다.[12] 그러나 토후는 성경에서 여러번 나타나는데, 그것은 도덕적으로 중립의 상태에 대해 사용하며, 무언가 덜 끝나서 혼란스러운 것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반드시 악은 아니다![13] 수세기 동안 히브리어 학자들과 교회에서는 창세기 1:2이 천사의 타락에 의해 야기된 악의 상태나 심판의 장면이 아니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원형의 우주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취해왔다. 모세가 말한 평범하고도 단순한 의미는 첫째날에 물로 덮인 큰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 상태는 마른 땅이 없었으며(토후 = ''아직 형성되지 않은'') 아직 거주자가 없었다(보후 = ''아직 채워지지 않은'')는 것이다.
5. 창세기 1:28의 KJV 번역인 영어 단어 ''replenish''(''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replenish, 땅을 정복하라'' )는 공백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공백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언어학자인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박사는 말한다. ''1611년판에 번역되어 있는 ["replenish"]는 "채우다/fill"와 동의어이며, 접두사 "re-"는 "다시"가 아니라 "완전히"를 의미한다.''[14] 동일한 히브리 단어 마레[ ]가 창세기 1:22에서 사용되었는데, 거기서는 ''[바다를] 채우라/fill''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을 28절에서는 다르게 번역할 필요가 없다.
6. 흑암. ''하나님은 빛''이시며(요한일서 1:5), 성경에서 ''흑암''은 때때로 사악한 자에 대한 심판(출애굽기 10:21, 이사야 13:10, 요엘 2:31, 마태복음 27:45, 등등)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전부는 아님) 공백이론가들은 창세기 1:2이 악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논리상의 실수이다. ''상징은 상징화된 것에 의해 혼동되었으며, 급기야는 바로 그 상징 자체가 지금은 악으로 간주된다!''[15]
아직 빛이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땅은 흑암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하신 창세기 1:3은 사실상 그 자체로도 공백이론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심지어 새로운 공백 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태초에''(창세기 1:1) 태양과 달과 별들이 모두 창조되었다면, 1절과 2절 사이에 근거 없이 주장하는 공백 이후에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실(3절) 필요가 왜 있겠는가?
기타 문제들
1. 매우 많은 동물 화석들이 오늘날 살아있는 동물들의 형상과 사실상 동일하다. 전통적인 공백이론가들은 이들의 계보가 직접 이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밖에 없는가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2. 공백이론가들은 마가복음 10:6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간과했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주님 자신은 분명히 창세기 1:1과 아담과 하와의 창조 사이에 어떤 의미 있는 공백을 염두에 두지 않으셨다.
3. 어떤 경우이든 젊은 지구에 부합하는 충분히 탁월한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16]
4. 공백이 필요한 총체적인 개념은 ''거꾸로의'' 사고를 보여준다. 그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인본주의적인 진화론 과학의 견해를 이용하려는 시도의 산물이다. (과학자들의 틀린 견해에 성경 해석을 맞추려는 시도이다.)
결론
비록 공백 이론이 그 선전자들에 의해 잘 정립되어 있기는 하지만, 언어학적, 성경적, 이론적, 또는 실질적인 어떤 자료들에 근거하여 인증된 바 없다.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에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죽음이 들어왔다는 성경의 진술에 위배되는데, 바로 그 아담의 죄 때문에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것과 그분의 부활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REFERENCES AND FOOTNOTES
1. Proposed by Thomas Chalmers (1780-1847), founder of the Free Church of Scotland, the idea of a gap was ''canonized'' for some Christians when C. I. Scofield included it in the footnotes of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in 1909.
2. The most academic presentation of the gap theory is to be found in Without Form and Void by Arthur C. Custance, Doorway Publications, Brookfield, Canada, 1970.
3. The two Bible passages that are usually invoked about the ''fall'' of Satan are Isaiah 14:12-15 and Ezekiel 28:13-17. Both of these passages are in the context of prophecies about earthly kings (of Babylon and Tyre), and no explicit reference is made to Satan. However, even if these verses are so taken, there is no indication that any of the events described took place before Genesis 1:2.
4. Davis A. Young, Christianity and the Age of the Earth, Zondervan, Michigan, p. 25, 1982.
5. In other words, if Isaiah 14:12-15 and Ezekiel 28:13-17 do refer to the ''fall'' of Satan (which certainly is not proven), this more consistently fits after Day Six of Creation Week, and not between verses 1 and 2 of Genesis 1. For further discussion, see my article, ''Who was the serpent? Creation 13(4):36-38.
6. For further discussion see Weston W. Fields, Unformed and Unfilled, Burgener Enterprises, Collinsville, Illinois, p. 58, 1976.
7. In the Bible, spiritual death has the meaning of separation from God rather than of annihilation.
8. F. 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Oxford, pp. 251-255, 1968, cited from Ref. 6, p. 81.
9. Kautzsch and Cowley, Gesenius Hebrew Grammar, p. 484, section 154a, footnote 1, cited from Ref. 6, p. 82.
10.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Ref. 6, pp. 81-86.
11. For a more detailed explanation see Ref. 6, pp. 87-112.
12. Ref. 2, p. 168.
13. Ref. 6, p. 129, which summarizes Fields'' arguments on pp. 113-130. Gappists sometimes claim that the two words are only used together (tohu wa bohu) in other parts of the Bible where judgment is in view; however, there is nothing in the context of Genesis, (which there is in these other references) which would independently suggest judgment.
14. Charles Taylor, The First 100 Words, The Good Book Co., Gosford, New South Wales, Australia, p. 74, 1996.
15. Ref. 6, p. 132.
16. See John D. Morris, The Young Earth, Master Books, Colorado Springs, 1994; as well as Russell Humphreys'' summary, ''Evidence for a young earth'', Creation13(3):28-31, also available as a reprint from the UK, USA, NZ and Australian addresses on p. 2 of this issue.
부록 1 : 공백이론이란 무엇인가?
공백 이론은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이 창세기를, 우주가 대단히 오래 되었다는 통속적인 신념과 맞추려고 하는 시도이다. 공백이론가들은 문자적인 창세기를 믿지만, 지구에 대해 (막연히) 대단히 긴 시대를 수용한다. 이런 견해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지질학적 시대를 끼워 넣는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론을 반대한다.
결정적인 반-공백/anti-gap 책인 "형성되지 않고 채워지지 않은/Unformed and Unfilled"의 저자 Weston W. Fields에 따르면,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공백 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시기를 알 수 없는 아주 먼 과거에 하나님은 완전한 하늘과 완전한 땅을 창조하셨다. 사탄은 혼이 없는 인종이 살고 있는 땅의 통치자였다. 광물질로 이루어진 에덴 동산에 살고 있던 사탄은(에스겔 28장) 마침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여(이사야 14장) 반란을 일으켰다. 사탄의 타락으로 인하여 우주에 죄가 들어왔으며, 지구에는 홍수의 형태로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고(1:2의 물이 그것을 나타낸다), 그로 인하여 태양으로부터 빛과 열이 차단됨으로써 전지구적인 빙하시대가 왔다. 오늘날 지구에서 보는 식물과 동물과 사람의 모든 화석들은 이 "루시퍼의 홍수"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식물, 동물, 사람들과 어떠한 유전적인 관계도 지니고 있지 않다 …'' (참고문헌 6, p. 7). 오늘날의 생명체는 6일 창조의 결과이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멸망이나 복구가 없다는 새로운 형태의 공백 이론이 등장했음을 주목하라. 이 이론의 제안자들은 오래된 별들, 오래된 지구 혹은 둘 다를 갖는, 단지 긴 시간의 공백만을 가정한다.
부록 2 : 천사를 어디에 끼워 넣는가?
출애굽기 20:11은 하나님이 천지의 모든 만물을 6일 동안에 만드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천사들과, 원래는 선하게 혹은 거룩하게 창조된 모든 존재들이 포함되어야만 한다(골로새서 1:16, 유다서 6절).
욥기 38:4, 7에서는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즉 창조의 첫째 날(창세기 1:1)에 땅을 창조하셨고 아직 그분이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천사들(''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다고 제시한다.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처럼 망막이 있는 눈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아마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존재들이 언제 반역하여 사탄과 그의 악마 추종자들이 떠났는가의 문제가 등장한다(베드로후서 2:4, 유다서 6절). 이것은 창조의 6일 거의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시기 이전에는 분명히 불가능하다(창세기 1:31). 어떤 공백이론가들은 창조의 6일 이후와 창세기 3장의 사건 이전에는 이런 반역이 일어날 만한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가?
우리는 창조의 6일(혹은 제 7일?)이후에 하와의 유혹이 일어나기까지(창세기 3장)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인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그의 부모가 타락한 이후에 그를 임신했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하와가 임신하게 되기(창세기 4:1) 이전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창조의 6일과 (인간의) 타락 사이에 일주일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충분한 시간인가? 다음을 생각하자:
1. 천사들은 영적인 영역/차원에 산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자신의 공간/물질/시간의 연속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모른다. 아인슈타인 이후로, 우리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며 예를 들면 중력 같은 것에 영향을 받으므로, 영적인 차원에서 시간은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아는 차원에서의 시간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2. 위의 사항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한 주일은 충분할 시간일 것이다. ''그것은 충분할 수 없다''고 말하며, 그래서 창세기 1:2 이전에 공백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인간적인 수준의 사고를 적용한다. 그렇더라도, (전지하지는 않지만) 초인간적인 지능을 가진 천사들은 분명히 사람들과 유사한 한계에 의해 제한 받지 않는 것이 아닐까?
3. 심지어 우리가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하더라도, 어떤 상황에 접근하여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하루 혹은 한 시간으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반역에 참가하게 하는데 왜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평범한 시민들이 주먹질하는 폭도로 변하는 것은 수 시간 혹은 하루나 이틀의 선동만으로 충분하다. 참고로, 예수님의 재판에서 예루살렘의 군중들을 보라. 뒤이어서,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죄를 지은 천사들을 쫓아내는 것도 그 이후의 매우 짧은 시간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몇 분 이내에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들이 반역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공백''이 있어야 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러한 관념은 창조의 6일 마지막에 하나님이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신 모든 것과 상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