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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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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심장에서의 로맨스

Russell Grigg 글, 이종헌 역, Creation ex nihilo Vol. 15 No. 3

 

신약에 있어서, 예수님은 다섯 가지의 영광스럽고도 근본적인 역할을 실현하시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 임무들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 말씀의 일관성을 명백히 해줄 뿐 아니라, 창조의 첫날 이전부터 마지막 심판의 위대한 날 이후까지의 인간 역사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 각각의 역할은 바로 앞의 역할에 관련되며, 모든 역할은 첫 번째 것에 관계된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었고, 우주를 만드시고 지구상에 생명이 시작되게 하신 이가 바로 그분이었다고 신약은 명료하게 말한다.

예수님에 관하여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계속하여 요한은, "그(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요 1:4)라고 말한다. 이는 태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셔서 그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으며, 우연하게 알맞은 환경에 있던 원자와 에너지의 어떤 우연한 진화적 조합이 아니라는 것을 확언해 주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모두가 창조의 사역에 관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히 1:2, 창 1:2), 여기서 사도 요한이 창조주의 역할을 성자 하나님에게로 돌린다는 사실은 무엇이 그렇게 중요할까? 앞으로 보게 되듯이, 예수님의 창조주로서의 역할은 그분의 다른 역할에 대한 근본이며, 그것들의 실행에 있어서 그분의 특권을 입증하는 것이다.

 

2. 구세주

 

인류에게는 왜 구세주가 필요한가?

그 대답은, 아담과 하와 창조 후의 에덴동산에서의 사건으로 돌아간다.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죽음의 판결을 선고하셨으며, 결과적으로 그것은 전체 인류에게 해당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분은 우리 대신에 이런 벌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전적으로 만족시킨 것이며, 그분은 우리의 범죄(guilt)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악(sin)을 사하셨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가라앉히셨으며, 그분은 우리와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셨다.

구세주에 대한 인류의 이러한 필요는, 하나님에게 불시에 떠오른 어떤 것 - 그의 창조 목적이 빗나갔을 때 세운 일종의 차선책 - 이 아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속죄 받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나신바 되었으니"(벧전 1:19-20). 즉,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 속에는 창조, 타락 및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사건들이 미리 알려졌을 뿐 아니라, 그 미리 아심 가운데 그 사건들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초에 예수님이 명령하여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그분은 결국 자신이 십자가에 보내어져 세상의 구세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 사건들을 진행시키셨다.

물론, 무신론자의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속죄할 죄도 없고, 받아야 할 벌도 없으며, 누그러뜨려야 할 거룩한 진노도, 화해해야 할 대상인 신(神)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기 위해, 그의 조상들이 수억 년 동안 죽는 어떤 진화적인 과정을 사용하셨다면,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죽음은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첫 번째 사람이 저지른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벌이 아니라, 진화과정의 일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명백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예수 그리스도 및 십자가상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분의 죽음(고전 3:11)에 있는 한편, 인류를 위한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은 아담의 특별한 창조 및 뒤이어 발생한 그의 타락에 있다.

 

3. 추수의 주(主)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히 9:12), 지금은 으로서 왕국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말한다(히 2:9, 8:1, 벧전 3:22, 엡 1:22). 그분은 또한 큰 대제사장의 직분으로 하늘에 들어가셨으며(히 4:14, 9:24), 그분이 성령을 통하여 권능을 부여해 주신 그분의 제자들의 목격, 증거, 설교 및 저술을 통하여 그분의 선지자적 직분을 계속 수행하고 계시며(요 16:7,13,14, 엡 4:11),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고전 1:21).

땅위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무를 계속 수행하신다는 그러한 관점이 추수의 주라는 칭호에 포함된다(마 9:37, 눅 10:2).

추수의 주로서 예수님의 이러한 역할이 창조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간단히 말해서 이렇다: 우리 모두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역시 예수님도 그러해야 하며, 예수님이 단지 진화된 원인(原人)이었다면 십자가상에서의 그분의 죽음은 앞으로 향한 역사의 냉혹한 흐름 속에서 하나의 비참한 딸꾹질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진화가 사실이라면 현대인은 진화적인 역사의 정점 및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려고 나아갈 것이므로, 현대인에게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석기 시대'' 사람들도 몇 세대를 기다리기만 하면 따라잡을 것이며, 혹시 그들이 20세기를 살아남기에 적합하지 않다면 사라질 것인데, 진화적인 자연 선택에 의해 그것 역시 모두 옳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4. 심판자

 

신약은 찬미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온 땅의 심판자임을 선언한다 -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이러한 심판자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은 연대기적과 종말론적으로 앞의 역할에 관계된다(즉, 말세의 사건의 순서와 관계가 있다). 추수의 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일련의 심판 사건들을 촉진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어나는 때는, 특별히 전도의 사명과 추수로 불러모으는 일이 완료되는 등 어떤 일들이 성취되는 데에 달려 있다(마 24:14).

예수님의 심판자로서의 역할이 그분의 창조주로서의 역할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창조가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거룩한 삶에 대한 그분의 법칙을 제정하실 권리를 가질 뿐 아니라, 심판의 날에 모든 사람을 그분 앞에 나오도록 부르실 권능과 권위를 가진다. 역으로, 우리 모두가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라면, 아무도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할 것이며, 창조자가 없으므로 사실상 심판자가 있을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유신론적'' 진화론의 산물이라면, 참혹한 투쟁과 실수와 불완전을 무한히 겪고서야 ''창조하는'' 그러한 서투른 신(神)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분의 방법은 완전하여서 죄를 간과할 수 없다는 거룩한 하나님이 될 수 없다. 또한 ''유신론적'' 진화가 옳다면 성경의 처음 몇 절이 오류가 되며, 그렇다면 심판을 취급하는 마지막 몇 절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그러나, 거룩하시고 경이적인 사역의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며, 우리에게 신뢰할만한 계시를 주셨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언하신 그분의 심판은 그분이 성경에서 공포하신 미래의 모든 심판들을 적절한 때를 따라 분명히 수행하실 것이라는 보증이다.

 

5. 하늘의 신랑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정한 아내와 남편의 관계로 묘사되어 있다(사 54:5, 렘 31:31,32, 호 1,2장). 신약에 있어서 교회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순결한 처녀 신부와 하늘의 신랑 관계로 묘사된다(고후 11:2, 엡 5:22-33).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와의 최후의 결합은 마지막 심판이 지나서 모든 죄가 없어진 이후에 일어난다(계 20:10-21:2).

하늘의 신랑으로서 예수님의 이러한 역할은 창조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영원부터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아들을 위해 영원한 짝을 주셔서, 그의 영원한 왕국에서 그와 함께 통치하도록 하는 것임이 이제 명백해졌다. 이 영원한 짝은 모든 세대 중에서, 구원받고, 회개하며,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지금은 교회라고 말하는 이 그룹을 형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하여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이 드러난다. 역사는 반복되는 순환이라고 생각했던 고대 그리이스 사람들로부터, 인간에게서 아무런 희망도 보지 못했던 장 폴 싸르뜨르와 같은 현대의 염세적 실존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비기독교인 역사가나 철학자들에게는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에게 나타낸 그리스도의 연속되는 임무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창세 전부터 최후의 심판의 날 이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분과 함께 즐거이 왕좌에 오르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목적이 넓게 휩쓸며 만족된다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우주의 중심에 로맨스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구경꾼이 아니라 혼례잔치를 치르도록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신약의 마지막 몇 절에, 구원받은 신자의 수많은 무리의 일부가 되라는 초청이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그러나 혼인초청에는 보통 RSVP(역주: Reply, if you please = 회신을 바람)가 필요하며,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그 결혼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의 왕국을 공유하며, 앞으로 다가올 위대한 백보좌의 심판을 피하고자 하는 자는 현세에서 회개와 믿음으로 응답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 6:37,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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