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에 나타난 “의롭게 됨”의 차이
성경이 기록된 첫째 목적은 “교리”를 위해서이다(딤후 3:16). 많은 교리 중에서도 구원의 교리는 참으로 중요하다. 구원의 교리에 오류가 있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으로 완성된 속죄를 무효로 만들 수 있으며,무엇보다도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신 혼들이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구원의 교리에 있어서 신구약의 차이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죄의 용서는 물론 의롭게 됨이라는 핵심 교리도 바르게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산구약에 나타난 “의롭게 됨”의 차이를 중심으로 바른 구원의 교리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구약의 믿음에서 신약의 믿음으로
구약과 신약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것들 가운데 핵심적인 것은 구원받는 방법의 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받지만(고전 15:1,2), 구약은 다르다. (구약의 구원 방법은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말씀은 로마서에 풍성하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복음(gospel of Christ)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이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복음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다. 죄인이 복음을 믿으면 그의 죄는 제거되고, 대신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주어진 의를 보시고 그를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17절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앞의 믿음은 “구약의 믿음”이고, 뒤의 믿음은 “신약의 믿음”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는 구약의 믿음에서 신약의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다”는 뜻이다. 구약에도 믿음이 있으나 그 믿음은 신약의 믿음과 차이가 있다. 신악에서 믿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반면 구약에서 믿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다.
신약의 로마서 1:17 말씀은 구약의 하박국 2:4을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두 구절에는 악간 차이가 있다. 하박국 2:4 말씀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by his faith)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아니라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이다.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의(자기)”라는 말을 옮겨 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구약의 믿음과 신약의 믿음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어떻게 다른가?
신약의 구원에 필요한 “믿음”은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약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약에서는 구원의 요건 중 어느 것 하나 인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없다. 이것은 구원에 관한 한 그 누구도 자기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엡 2:8,9).
그러나 구약의 구원에 필요한 것은 단지 믿음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이다. (구약에 행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믿음을 행위로 입증하고, 행위에 믿음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자기 믿음”이요, 행위 역시 “자기의” 믿음이 반영된 행위이므로 “자기 행위”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7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은 구약의 믿음에서 신약의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알려 주는 것이다.
2. 죄의 용서에 대한 신구약의 차이
우리가 고찰해 보려고 하는 “의롭게 됨”(justification), 즉 칭의(稱義 - 의롭다고 칭함)는 “용서”와 같은 뜻이 아니다. 그러나 먼저 용서의 의미를 깨닫고 구약의 죄의 용서와 신약의 죄의 용서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일게 되면, “의롭게 됨”의 의미와 “의롭게 됨”에 대한 신구약의 차이 또한 깨달을 수 있다.
성경에서 “용서”(forgiveness)는 “죄사함”(remission)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죄사함”은 빚진 것을 사해 주거나 없애 주는 것 또는 탕감해 주는 것으로, “죄사함”을 “용서”라는 말과 대체해서 쓸 수도 있다.
구악에서의 “용서”는 “덮는다”는 뜻으로, “잘못된 행동과 죄과를 덮어 준다”는 의미이다. 여전히 죄는 있으나 그 죄를 덮어서 죄과를 묻지 않는 것이다. 또한 “용서”는 “들어 올려 딴 곳으로 옮긴다, 나쁜 것을 멀리 던져 버려 다시는 괴롭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뜻도 있는데, 이것은 신약에서의 용서에 적용되는 뜻이다. 구약과는 다르게 신약에서의 “용서”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로부터 분리된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죄를 제거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신구약의 용서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용서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값으로 사망의 상징인 “피”를 요구하신다. 그런데 죄값으로 드려진 구약의 피와 신약의 피는 서로 다르다. 구약에서는 죄를 용서하는 피가 “동물의 피”였다(히 10:4). 창세기 3:21의 피는 죽음을 의미했고, 창세기 4장의 아벨의 제사는 피를 포함했는데, 모두 동물의 피였다. 레위기 17:11은 혼을 속죄케 하는 것은 피라고 말씀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the blood {that} maketh an atonement for the soul).” 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말씀 하는데, 구약에서는 동물의 피가 죄를 용서받는 근거가 되었다. 반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용서의 근거이다(엡 1:7, 골 1:14) -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그의 보혈을 통하여), {even} the forgiveness of sins:”
이와 같은 구약과 신약의 용서의 차이는 “죄사함”(remission)과 “구속”(redemption)이라는 용어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구약의 죄의 용서를 의미하는 “죄사함”이란 출애굽기 34:7에 나타난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that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결코 범법자가 깨끗게 되지는 아니하리니)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죄가 용서는 되지만 결코 깨끗하게 되지 않는 죄의 용서이다. 히브리서 10:1에서는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한다. 이렇게 죄인들을 용서는 하는데 결코 온전케 할 수 없는 이유를 히브리서 10:4,11에서 설명하고 있다 -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죄값으로 드려진 “동물의 피”로는 죄를 “덮는다”는 의미에서 용서는 되지만 죄를 깨끗하게 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죄의 용서를 “죄사함”(remission)이라고 한다 -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remission)이 없느니라”(히 9:22).
한편 신약의 죄의 용서를 의미하는 “구속”이라는 용어는 “죄사함”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요한복음 1:29은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말씀하는데, “죄를 제거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또 히브리서 10:12,14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는데, 죄인을 거룩하게 하고 영원히 온전하게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죄사함”과 다르게 죄가 제거되고, 죄인을 깨끗하게 하고(거룩하게 하고) 온전하게 한다. 이런 죄의 용서를 “구속”(redemption)이라고 한다 -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redemption)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골 1:14).
3. 신약의 의롭게 됨 - “믿음으로”
신구약의 죄의 용서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곧 신구약의 의롭게 됨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의 용서와 의롭게 됨은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지은 죄를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정당화시켜 주지 않으시며 죄인을 무조건 의롭게 하지 않으신다. 공의로운 심판주이신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고 죄악을 깨끗하게 하며, 죄인을 정당화하고 의롭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롬 3:3,4).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는 데 있어서 타협하지 않으시고, 결코 죄를 가볍게 다루지 않으신다. 인간의 법정에서도 의로운 사람은 의롭게 여기고 사악한 자는 유죄 판결을 받도록 되어 있다(신 25:1). 출애굽기 23:7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자를 의롭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어떤 보상을 바라고 죄인들을 무죄로 판결한 인간 재판관들에 대해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사 5:22,2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에는 반드시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계신다.
죄에 대한 대가는 죽음이다(겔 18:4, 롬 6:23). 율법과 공의는 모든 죄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요구한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롬 3:23) 어떤 사람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으며,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의 해결 방법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어 죄인을 구속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주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죄인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신다. “의롭게 됨”이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이며, 또 의롭다고 선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롭게 됨”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轉嫁, imputation)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전가”란 “누군가에게 무엇을 넘겨주는 것”이다. “전가”라는 용어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의를 넘겨받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죄를 넘겨받게 된다는 뜻이다. 즉 의로운 분이 불의한 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와 지옥에서의 형벌을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넘기신 것이다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이런 의미에서 “의롭게 됨”이란 죄인이 자신에게 “전가”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률적 행위”틀 말한다.
의롭게 됨의 근거는 첫째, 예수그리스도의 “구속”(redemption)이며(롬 3: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redemption)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둘째, 구속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롬 5:9) -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신약의 의롭게 됨이 신약의 죄의 용서인 “구속”과 그 근거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의롭게 됨은 “행함이 없이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로마서 3:21-28은 신약의 의롭게 됨이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며, 어떤 행위(율법)도 필요하지 않다는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준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라디아서 2:16도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와 같은 신약의 의롭게 됨과는 다르게 구약의 의롭게 됨에는 율법의 행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신약의 의롭게 됨을 통해 죄인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선언된다. 그의 죄들을 용서받고 죄의 형벌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된다. 결코 다시 죄인의 상태로 되돌아가서 죄의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죄수에게 사형이 아니라 무죄가 선고된 것과 같다. 의롭게 됨을 통해 죄인은 하나님과 화평을 갖게 된다(롬 5:1).
4. 구약의 의롭게 됨 - “믿음과 행위로”
신약의 의롭게 됨이 행함 없이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과는 다르게 구약의 의롭게 됨은 행위로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구원이 믿음과 행위라는 두 요소가 충족되어야 함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 진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약의 복음을 가장 잘 기록하고 있는 로마서에서 발견된다.
1) 로마서 2:6-16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진리를 설명하는데, 모세의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모두 행위에 따라 의롭게 되는 구약의 구원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 2:6). 이 말씀은 오직 믿음이 아니라 “행위 구원”이 있음을 알려 준다. 노아의 때로부터 그리스도의 때까지 주님께서는 이방인 민족들의 “행위”를 주의 깊게 관찰 하셨으며, 이 기간 동안에는 주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행한 행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응으로 갚아주셨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 2:7).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 2:10).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던 당시만 해도 십자가 이전의 이방인들이 선한 행위를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방인은 양심에 따라 선을 행하고 유대인은 율법에 따라 선을 행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 구절들은 “행위 구원”이 있음을 설명한다.
한편 선행이 아닌 악한 행위들에 대한 보응은 무엇인가?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롬 2:8,9). 진리에 복종하지 않고 불의에 복종하는 이방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분개와 진노, 환란과 곤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들을 개별적으로 일일이 다 알고 계신다. 유대인은 율법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에 처해질 것이요, 이방인은 양심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환란과 곤고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로마서 2:12,13은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분명히 행위로 의롭게 됨을 기록하고 있다. 신약의 의롭게 됨과 다른 것이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이방인들이며,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유대인들이다. 이들 모두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받고 멸망하게 된다. 13절 말씀처럼 율법은 행하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받았다고 율법을 듣는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그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면 결코 의롭게 되지 못한다.
그러면 모세의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어떻게 되는가? 로마서 2:14,15에 해답이 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이성)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방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도 없고 십계명도 없으며, 구약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있는 것과 같은 일들을 “본성으로” 행한다. 또 “양심”과 “이성”이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데, 이것을 “마음에 새긴 율법”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곧 그들에게는 율법이며, 이것을 따라 행할 때 의롭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에게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율법을 주셨으며, 그것대로 행하라고 하셨다. 따라서 율법을 행하는 자는 의롭게 되고, 행하지 않은 자는 율법이 진리라고 믿는 것만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 이것이 구약에서 요구되는 행위에 의한 의롭게 됨이다.
2) 에스겔 33:12-20에서도 행위에 따라 의인과 악인이 구분되며 행위에 따라 죽고 사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말씀을 확인할 수 있다. “1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 18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면 그가 그 가운데에서 죽을 것이고 19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구약의 이스라엘은 행위에 따라 심판받았으며, 의인과 악인의 판별 역시 각자의 행위에 따라 결정되었다. 구약에서는 한 번 의인이 영원한 의인이 아니며, 한 번 악인이 영원한 악인이 아니다. 각자의 행위에 따라 의인과 악인이 나뉘며, 각자의 행위에 따라 자신의 의롭게 됨이 결정되는 것이다.
3) 야고보서 2:21-26에도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1).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한편 로마서 4:3에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고 말씀한다.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로마서 4:3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이 의로 여겨졌다고 말씀하는데 관련 구절은 창세기 15:6이다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반면 야고보서 2:21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그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는데 관련 구절은 창세기 22:12이다 -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15장의 상황에서 아브람(아브라함이 되기 전)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을 보시고 그의 의를 인정해 주신 것인데, 아직 그의 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으셨다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림으로써 그의 믿음을 행위로 입증한 창세기 22장에서 그의 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신 것이다. 따라서 아고보서 2:23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성경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한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그의 믿음이 그의 “의로 여겨졌고” 창세기 22장에서 비로소 “외롭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여겨졌던” 창세기 15장과 그가 “의롭게 되었던” 22장 사이에는 무려 1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죄인이 구원받을 때, 즉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고, 또 즉각적으로 의롭게 된다. 믿음이 의로 여겨지는 일과 의롭게 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신약에서는 누군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 아브라함처럼 17년 동안이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아브라함의 의롭게 됨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은 야고보서 2:24이다 -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 구절은 구약의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그의 믿음을 입증했고,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아브라함 이외에 창녀 라합도 아브라함과 같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었다(약 2:25) -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창녀 라합도 구약 시대 사람으로 당연히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약 교리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5. 대환란 때의 의롭게 됨
앞에서 구약의 구원, 구약의 의롭게 됨에는 개인의 믿음과 행위가 필요한 것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언약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바라보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영생이 보장되었다. 이것은 “오직 행위”만 요구된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물론“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했는데, 이것은 “믿음과 행위”였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민을 뿐만 아니라 “독자 이삭읍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했을 때 의롭게 되었다. 역시 “믿음과 행위”가 필요했다. 대환란 때에도 구원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거나 경배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 역시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다. 천년왕국에서는 통치하시는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왕국의 법령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이것은 “오직 행위”만 요구되는 것이다. 반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시대는 현재 교회 시대뿐이다. 교회 시대에는 의롭게 됨에 관해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큰 오류이다.
환란 성도들의 구원받는 방법에 대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중요한 말씀이 몇 구절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계 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Blessed {are}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4,15). 이 구절들의 핵심적인 내용은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나 믿음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약교회 시대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들과 연관하여 요한계시록 14:5에는 “흠이 없는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환란 성도들이며, “동정들”(virgins)로 불린다. 이는 그들이 순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환란 때에 이교도의 예배에(부도덕한 행위를 포함한) 참여하지 않는 것과 관련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믿고 그들 앞에서 미혹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를 거부해야 한다. 대환란 때는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거나 그의 표를 받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환란의 끝까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음으로 사탄을 이기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마 24장, 계 11,12,14,22장), 바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 받는다는 말씀은(마 24:13) 대환란 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환란 때의 구원은 믿음과 행위의 결합이며, 끝까지 자기의 행위로 믿음을 입증했을 때 의롭게 되는 것이다.
결론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단지 신약의 복음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구약과 대환란의 구원을 올바로 아는 것에서 완성된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도 야고보서 1,2장, 히브리서 6,10장, 마태복음 24,25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17장,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이 모두 대환란 때에 적용되는 말씀이며, 구약의 믿음과 행위로 의롭게 되는 교리가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구악과 신약 그리고 대환란의 의롭게 됨의 차이를 깨달아야 심각한 오류를 범하지 않게 된다.
또한 현재 교회 시대에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극심한 대환란에 참여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해 들어야 할 사람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