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 (11) 포스터모더니즘 세대를 위한 창조과학
이재만 (LA 창조과학 선교사, 지질학, 구약학, ark@hisark.com)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더니즘(모더니즘의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하는 하나의 사상)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20 세기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절대적 진리라고 여겨졌던 과학이론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절대적이라고 여겨왔던 유클리드의 기하학, 뉴턴의 고전물리학 등이 단지 어떠한 시스템 안에서만 적용 가능할 뿐 모든 것에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양자역학의 분야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모든 자연현상을 알 수 없음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자연과학에서의 '상대성'과 '불확실성'은 바로 사회과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영향은 절대적인 것을 추구했던 사고에서 벗어난 탈 현대주의를 추구하게 하였다. 한 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하는 상대주의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과학은 곧바로 교육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인 오늘날 학교에서는 어떠한 절대 진리를 제시하는 교육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여기에는 과학을 포함하여 종교, 문화, 윤리에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은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자신의 마음에 두는 것이 편안하지 않다.
교회 속에서도 나이에 따라서 두 부류를 만나게 된다. 어른들과 그 2세들 그러니까 대학생들을 포함하여 그 보다 어린 나이의 부류이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어른들에게 성경적 진리를 제시하면, 그 제시가 당사자에게 타당하면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한다. 반면에 2세들의 경우는 그 진리가 받아들일 만 할지라도 그 심중의 자세는 사뭇 다르다. 그들에게는 어떤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느낌이 들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2세들에게는 '이것이 진리이다'라는 말이 편안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포스트모더니즘 교육을 통해서 마음속에 어떤 기준(standard)을 두는 것이 연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는 않을지라도 1세들은 더 분명한 기준이 있을 때면 그 더 분명한 것에 기준을 삼으려 한다. 오히려 1세들에게는 어떠한 표출된 기준이 있는 것을 편안해 한다는 표현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2세들은 그것이 타당하게 느껴질 지라도 그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고, 남들보다 시시한 존재가 되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이들은 '맞다' '틀리다' 식보다는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식의 자신의 감정에 근거한 대답을 선호한다.
창조과학강연을 통하여 진화론이 틀렸다는 것을 피력하기도 하지만, 2세들을 대할 때면 그들에 어떤 식의 교육을 받았는지 깨닫게 하는 것이 강연의 효과를 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몇 가지 예를 통하여 학교에서 자신이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배워왔으며, 실제로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한 후에, 성경이 왜 절대적인 진리이고 사실인가 하는 면을 보여줄 때 효과가 있다. 물론 어떤 경우는 순서를 바꾸어 성경이 사실이라는 예를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에 자신들이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강연 도중에 반드시 자신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큰 효과를 본다.
창조과학은 그런 면에서 2세들에게 자신이 어떤 시대에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진화론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여주며,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동물 중 하나가 아닌 그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형상임을 깨우쳐 주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화론적 교육만 받아온 자신들에게는 엄청난 가치관의 변화이며, 불확실한 포스트모더니즘 세대에게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여 준다.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기준, standard)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사 49:22).' (Thus saith the Lord God, Behold, I will lift up mine hand to the Gentiles, and set up my standard to the people: and they shall bring thy sons in {their} arms, and thy daughters shall be carried upon {their} shoulders. - Isaiah 49:22) 하나님께서 민족들에게 자신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때에 민족들이 아들들과 딸들을 어깨에 메고 그 기호로 나온다고 하셨다. 그리고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49:23하)'고 하셨다. (and thou shalt know that I {am} the Lord: for they shall not be ashamed that wait for me. - Isaiah 49:23b)
오늘날 우리들은 기준(standard)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과연 포스트모더니즘 세대에게 어떻게 기준을 기준이라고 심어 줄 수 있을까? 정말 바로 그 때에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을 어깨에 메고, 그 기준으로 나올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만이 온전한 기준으로서 역할을 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 바로 모든 사람이 그가 여호와인줄을 알 때, 우리의 자녀들이 수치를 당하는 쪽에 서있으면 어찌하랴? 1세들은 늦기 전에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우리의 기준으로 삼고 자녀들에게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출처: http://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62¶m=type=C|authorname=이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