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아파요
그 이전부터 무언가 잘 안보이기는 했는데, 결정적으로 작년 12월 24일 오후에는 앞이 잘 안보여서 도저히 더 이상 버티기 힘들기에 집 앞 작은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 안과로 가라고 해서, 경산 오거리의 안과에 갔더니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합니다. 두 가지를 의심하는데 하나는 중심성망막염이고, 다른 하나는 황반변성입니다. 만약 황반변성이라면 시력이 점점 없어지는데 치료를 하면 그 시기를 늦출 뿐이라는 것을 알고 무의식중에 근심이 많이 되었습니다. 26일 아침에 대학병원에 가기 전까지 만 가지 상념이 교차했었습니다. 아내가 시력을 잃으면 내가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니까 너무나 할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26일날 대학병원에 가서 오전 내내 걸리도록 CT를 찍고 몇 가지 검사를 한 결과 중심성망막염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혈류를 돕는 약을 먹고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낫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낫지 않으면 그때 가서 레이저 시술을 하자고 합니다. 그동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황반변성이 아니어서 시력을 잃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낫는 병이라니까 안심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심하게 안보이기 시작한지 2주 정도 지났는데, 눈앞에 보이는 보름달이 까만색에서 갈색으로 약간 옅어졌을 뿐 시야를 가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오른쪽 눈으로는 형체만 보이고, 왼쪽 눈은 원래 난시여서 교정시력이 0,3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 일상생활이 불편합니다. 차 운전은 아예 엄두를 못내니까 자동차 보험에서도 이름을 뺐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내의 아픈 상태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가정은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에 충성하니까 하나님이 낫게 해 주실거야.” 어떻게 보면 적절한 위로의 말 같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아프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믿음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질병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찾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픈 것과 믿음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많은 일을 맡기신 경우에 그 일을 감당하라고 건강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은총에 따라 겨울에 찬데 오래 있으면 감기가 걸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몸이 아프다거나 하는 것으로 인하여 실족할 수도 없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몸이 아픈 부분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하면 됩니다. 우리는 다만 그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 그 질병으로 인한 우리의 영적 이득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거나, 왜 나에게 이런 질병을 주시는가 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 가정에 질병이 있다 하더라도 불행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소유지향적이지 않고 존재의 이유를 자각하고 있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애정결핍증으로 신음하고 있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높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외로움을 자주 느끼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걱정 근심이 많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고 불안해하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한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자기생각에 갇혀 있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원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불공평한 게임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출신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삶의 목적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남들과 늘 비교하고 경쟁하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언어를 구사하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빚이 많지 않으므로 불행하지 않습니다.
불행하지 않은 이유가 이렇게 많은데, 아내의 질병이 우리의 불행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아내의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잠시 겪는 불편일 뿐 불행이 아닙니다.(201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