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가 풍기는 사람들 틈에서>
- 냄새나는 예수님 -
흔히 판자촌을 비롯한 빈민 지역의 사람들은 잘 씻지 못하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몸에서 악취가 많이 납니다. 그러니 노숙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곳 아프리카의 시골 사람들도 가난한 이유로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고 빈민촌 사람들과 노숙자들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노숙자들과 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들을 만나기 위해 숲 속 여기저기 나무 밑과 돌 틈의 그들의 숙소를 둘러봅니다. 아침 인사를 하며 악수도 하고 껴안기도 하고 짧게 얘기도 하면서 예배에 초청합니다.
당연히 땀냄새, 입냄새, 술냄새, 여러가지 냄새들이 신경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하니 표를 내지 않으며 스킨쉽을 시도합니다. 미소를 짓는 가운데 마음 속으로는 계속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요.
한번은 예배 시간에 어떤 분이 앞에 나와 간증을 하게 되었는데, 그 악취가 얼마나 심한지 정말 난생 처음 사람의 악취로 인해 구토가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사람 냄새가 구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어찌나 그 냄새가 심하던지 배가 움틀거리며 우웩~ 하려는 찰나 꾹 입과 코를 조절하여 견뎌 낼 수 있었습니다. 만일 구토하면 그분께 큰 상처를 줄 것이 분명하니 더욱 참아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경험은 저로 하여금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 한번도, 또한 그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예수님의 새로운 측면이었습니다.
다름아닌 "냄새나는 예수님" 더 심하게는 "악취나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저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분의 생애 동안 당시의 소외받던 세리들과 죄인들, 그리고 길거리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 길거리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몸에서 심한 냄새가 났을 것이니 예수님이 함께 어울리신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저는 주일 예배를 위해 잠시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지만, 예수님은 늘 그들과 친구가 되어 어울리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늘 먼지 투성이의 신발을 신고 온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역하셨습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어느 정도 확신과 더불어 깨달음이 왔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에게서도 자주 냄새가 나고 악취가 났을 것이다....'
우리는 늘 예수님을 고결하고 청아하고 산뜻한 향기나는 분으로 그립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난생 처음 해보았습니다. 선교지에 나와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사역을 하다보니 비로소 우리 예수님의 다른 측면들이 보이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부자들의 친구이기도 하셨지만, 더욱 가난한 자들의 친구셨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셨던 그 분은 날 때부터 마굿간의 구유라는 초라한 자리에 임하셨고, 생애 동안 낮고 비천한 사람들과 어울림으로써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얻으셨던 겁니다.
오늘날 어떤 사이비 교주들이 최고급 스타일의 화려한 옷을 입고 긴 리무진이나 스포츠 카를 타고 다니며 스스로를 메시야라 하는 것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지요.
그러하니 목사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과 죽음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겠지요.
예수님의 죽음 또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수반된 가장 비참한 죽음이었고, 무덤 조차 얻을 수 없어 남의 무덤에 안치되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빈무덤"이 그 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자칭 재림주요 메시야를 자처한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죽었습니다. 그의 장례식과 그의 시신이 영구 안치된 관을 보았습니다. 극도로 화려한 장례식에 그의 시신을 담은 관과 그 주변은 그야말로 최고의 보화와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말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 그대로..
예수님은 화려한 장례식도 없이 초라하게 아무런 장식없이 남의 무덤에 안치되었으니 그 무덤을 빈무덤으로 만들며 누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나, 또한 그 분의 삶 자체는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됩니다.
가난한 자들의 틈에서 어쩌면 냄새가 나고 악취가 풍기셨을 예수님...
나는 얼마나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한 자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고, 나의 것을 얼마나 그들과 나누고 있는 것일까요.
지구상의 인구 50%는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90%는 늘 빈곤과 질병의 위협 속에 살고 있습니다.
외식 한번만 줄이시고, 몇번의 여행 중 단 한 차례만 줄여 보시고, 사고 싶었던 물건 가끔 포기하고, 대신 그 소중한 돈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심으로써 여러분도 가끔은 그들의 친구가 되어 보시지 않겠어요?
구제와 자선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의 빵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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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신 후, "그래 맞다!"고 맞장구만 치지 마시고, 또 감동만 받고 있지 마시고 당장에 실천해주세요.
평소 돕겠다고 생각하셨던 가까운 선교사님이나 구호 단체에 지금 즉시 기부하시고 후원해 주십시오.
"냄새나는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야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출처: http://www.facebook.com/#!/apelle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