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산의 여명작전
성암산은 저희 집 뒤에 있는 산 이름이고, 이 제목은 아덴만의 여명작전 패러디입니다. 마치 아덴만의 여명작전을 방불케 하는 밤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이렇습니다. 아들이 미국의 두 대학에 서류를 신청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립대학이고 하나는 주립대학입니다. 두 대학에서 다른 5개 대학으로 모종의 증명서를 보내주는 일입니다. 1월 중순경에 동시에 두 대학에 신청을 했는데, 사립대학의 경우는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국제전화를 거니까, 그 사람이 담당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곧바로 처리되었습니다. 주립대학의 경우는 전화를 거니까 자기 담당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에게 인계를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찾아서 물어보니까 자기 담당도 아니라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인계했다 합니다. 그러기를 수 차례, 거의 한바퀴를 다 돌고 나니까 본인을 증명하는 친필 사인을 포함한 서류를 추가로 작성해 달라는 것입니다. 부랴부랴 서류를 만들어서 이메일 첨부로 보내고 어렵게 확인을 해보니까, 요청한 5개 대학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2개 대학으로만 보냈고, 나머지 3개 대학에 대해서는 전해들은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이 5개 대학 서류 마감인 2월 1일 화요일에 임박한 1월 28일 금요일 오후 5시가 막 지난 시점에서의 일입니다.
이제부터 특별한 작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동안 수십통의 국제전화를 하면서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당장 쫓아가서 욕을 해 주고 싶은 마음도 들고, 다윗이 쫓겨다닐 때 시므이가 조롱한 것을 참았듯이 하나님의 뜻이려니 하고 참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든 서류를 받아내는 것이 목표니까 지금 시점에서의 최선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이미 보냈다는 두 대학도 금요일날 보냈는데 다음 주 화요일까지 도착할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나머지 세 대학도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일찍 보낸다 해도 보통우편으로는 그 다음날까지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 대학에 남아있는 친구를 찾아서 대기시키고, 주말 동안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놓고, 월요일날 전화를 걸어서 서류를 작성해 주면 친구가 찾아서 특급우편으로 세 대학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우리 생각대로 척척 진행이 되어야 미션이 성공하는 그런 작전입니다.
주말동안 총력을 집중하고 대기하여 드디어 미국 시간으로 월요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곳 시간으로 오전 9시 출근 시간을 조금 넘겨서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지난번 서류를 3개를 더 만들어 주면 친구가 찾아서 특급우편으로 일을 처리하겠다는 간곡한 부탁에 답은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전화로도 바쁘다는 말을 하고, 이메일로도 답이 왔는데 장문의 답이었습니다. 자기들 밀린 업무가 많아서 그 일을 처리하려면 최소한 5일 정도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밀려있는 다른 사람의 일도 바쁜 일이니까 순서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마감 시간이 임박한 것은 당신 사정이고 자기 잘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대학에 서류를 신청하려면 공식 양식이 있으니까 그 양식을 작성해서 보내라고 합니다.
이미 자기들이 두 대학에 보내주었던 서류를 추가로 3장 더 만들어 달라는 것인데, 기다리라는 이메일을 작성할 시간이면 싸인을 세 번 해서 바로 건네주면 되는 일을 미루고 있고, 이전에는 바로 작성해 주던 것을 추가 신청서류를 또 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그 사람의 태도가 너무나 모순이 있습니다. 어떻든 참고 그 서류를 작성해서 보냈는데 이번에는 그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또 인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 인계받은 사람에게 또 상황 설명을 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스타일이었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친구는 자기가 맡은 TA로서의 강의를 모두 취소하고 대기하고 있는데 시간은 이미 월요일 점심시간으로 들어섭니다. 점심 시간 동안 노심초사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를 거니까, 이제는 더 이상 전화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메일도 보내지 말고 자기들이 일을 처리하는 대로 기다리라고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마감 시간이 임박하여 속이 타는데 자기들은 느긋합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그쪽에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서류가 가야할 대학에 이메일로 사정을 하는 수밖에. 본인으로서는 최선을 다 했는데 주립대학 쪽에서 서류를 해 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으니 몇일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해 놓고 기다립니다. 한국 같으면 대학마다 민원고발 게시판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는 그런 게시판이 없어서 한인 학생회 게시판에 상황을 알리는 글을 하나 올렸더니 재미있는 댓글이 붙었습니다. 미국 공무원은 철밥통이다. 아쉬운 것은 우리니까 얼르고 달래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느냐. 행운을 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주립대학 담당자의 싸늘한 답을 받은 것이 우리 시간으로 새벽 4시이고(그곳 시간으로 오후 1시) 마감 시간 안에 서류를 보내는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오전 10시에 서류가 가야할 대학에서 답메일이 왔습니다. 서류를 잘 받았다고. 서류가 마감 시간 전에 도착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벽 4시까지도 안보낸 서류가 오전 10시에 도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건을 재구성해보니까 지난 금요일에 이미 보낸 것입니다. 처음에 요청할 때 5개 대학으로 발송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2개 대학은 요청하는 양식이 있었고, 3개 대학은 특정한 양식이 없었는데, 자기들은 양식이 있는 두 대학만 보내고 있다가, 3개 대학이 누락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고 부랴부랴 나머지 3개 대학에도 서류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래놓고 애타게 부탁하는 사람을 놓고 능청스럽게 장난을 친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따져서 캐묻고 싶지만, 다음에도 서류를 신청할 일이 있기도 하고, 어떤 일이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서 이 정도로 그치기로 했습니다. 마음 고생은 했지만 서류는 마감 시간 전에 다 갔으니까 성암산 여명작전은 성공한 셈입니다.
이 작전을 하면서 몇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속이 상해서 하소연하는 말을 한 번 내뱉기는 했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참았다는 것과, 철밥통의 교훈입니다. 미국 주립대학의 직원은 일시적인 철밥통의 직장을 붙들고 있지만, 한번 구원받은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는 영생의 철밥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철밥통은 누구도 언제고 뺏을 수 없는 절대보장의 것입니다.(2011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