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당 20kg
미국에 여행을 갈 때는 짐 가방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일인당 32kg의 가방을 두 개씩 들고 갈 수 있으니까, 여행 계획이 세워지고 나면 가방을 한쪽에 세워놓고 생각나는 대로 짐을 넣었다가 들고 떠나면 됩니다.
그런데 필리핀은 일인당 20kg짜리 가방 하나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1년간 외국에서 살다 오려면 챙겨야 할 짐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선 밥 먹는 것부터 밥솥이라는 특별한 연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반찬도 다른 나라에서는 잘 구할 수 없는 고추장, 된장 같은 것을 먹는 등 음식문화가 특별합니다. 옷가지며 침구류, 영양제 등의 약 종류, 하다 못해 손톱 깎기, 귀후비개까지 챙겨야 하니까 자질구레한 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신경 써서 생각하다보면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집을 통째로 가지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일단 비행기에 일인당 20kg 밖에 가지고 탈 수 없으니까, 우선순위를 따져서 목록에서 빼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짐을 줄여야 하는 시점에서, 출애굽 할 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옷 한 벌과 신발 한 켤레로 40년을 돌아다녀도 해지지 않는 특별한 은혜가 부럽습니다. 더군다나 그때는 먹을 것을 장만하기 위한 도구나 재료를 지참하지 않고 다녔으니까 얼마나 편했을까요? 이 생에서의 삶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데, 이 생에서 많은 것을 움켜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 그런 사람들 틈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도 그런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육신에 양분을 공급하며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이 땅에서의 육신의 몸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배설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척 해도 인간의 몸에서는 배설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몸으로 깨끗한 것이 들어가서 더러운 것이 나옵니다. 이런 제한된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제한된 몸을 지닌 불편한
존재라는 것과, 또 한편으로는 그런 기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같이 갖습니다.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갖도록 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필리핀으로 떠날 짐을 챙기면서, 그리고 비록 총각 한 사람이 들어와 살기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오래 동안 비워둘 집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나그네 삶을 기억합니다. 이 세상은 내가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니며, 하나님이 오라고 부르시면 언제든지 손을 놓고 그곳으로 떠나야 하는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맘으로 이곳에 많은 것들을 남겨 두고 빈 손 같은 기분으로 필리핀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필요한 것들은 그곳에서 채워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200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