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복제
"배아줄기 세포를 생명으로 보아야 하느냐?" "착상한지 2주일까지는 생명으로 볼 수 없다!" 등등의 의견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니들이 생명을 알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환상이라고까지 말할지 모르지만, 생명의 탄생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데, 착상된 수정란의 생존 가능성을 놓고 확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생물학적, 또는 의학적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어차피 진화론적 개념을 가진 사람들과는 가치관이 달라서 그 견해의 차이가 좁혀질 수 없다. (물론 그들과 과학적인 토론을 한다면 종교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충분히 과학적인 의견으로 맞설 수 있다. 거기에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포함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 과학자는 불신 과학자들보다 더 과학적인 연구를 잘 해서, 그들이 신봉하는 과학으로도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이 인간을 농락한 이후에 하나님께 패하고 나서부터 사탄의 작전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에 대한 방해이다. 사탄은 인간의 죄값을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실 예수님의 희생으로 대신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끊임없이 그것을 방해해 왔다.
그 형태는 여러가지 우상 숭배로 나타났는데, 핵심에는 장자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있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예수님의 탄생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절대로 방해받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끊임없이 예수님의 탄생을 방해하려고 노력한다. (사탄의 끈기는 알아주어야 한다.)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했다. 결국에는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배척받게 하는데 성공했지만, 그것이 전 인류의 구원의 발판이 될 줄은 몰랐을 거다.
사실 사탄은 똑똑하다. 그래서 자기의 최후를 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의 시대에는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떨어뜨리려고 노력한다. 한번 받은 구원은 절대로 뺏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능력 없이 살기를 희망한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의 계략에 밀려 넘어진다.
그 예는 너무나 많다. 믿음의 형제끼리 시기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오해하고 ...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들조차 그 배후를 알고 보면 사탄의 장난일 때가 많다. 베드로도 넘어지는 마당에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랴.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엄청난 믿음의 고백이 있는 몇 절 뒤에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다.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원하는 일을 베드로가 편들었던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줄기세포의 복제! 그 주제는 너무나 인간에게 아름답게 들린다. 그 연구를 통하여서 많은 불치병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그것을 영적으로 반박해 보자.
첫째.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먼저이다. 그리고 나서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아예 제쳐져 있다.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이 무엇이 죄냐고? 똑 같은 현상이 노아의 시대에도 있었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했었다. 그것이 무슨 죄냐고?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었던 것이 죄다. 그것도, 천하의 모든 생명을 쓸어버리실 정도의 죄다.
지금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죄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 구체적으로, 그들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영적인 안목으로 보면 결과가 뻔히 보인다. 줄기세포의 연구로 일부 사람들의 불치병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 쉬운 예로, 그 불치병 자체는 나을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하여 그 사람의 신체에 다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그 줄기세포의 생명은 맘대로 죽여도 된다는 말인가? 자기의 온전한 생명으로 자라날 줄기세포에게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을 수 있다. 줄기세포를 생명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은 마치 가나안 땅에서 행해졌던 아스다롯이나 몰렉을 섬기던 일과 유사하다.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의 불치병을 인간의 노력으로 개선하겠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 물론 의학의 연구를 통해 건강한 육체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육신의 질병을 가진 자들을 불쌍히 보시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즉시로 완전히 고쳐주셨다. (오늘날의 일부 사이비 신유은사를 말하는 사람들하고는 전적으로 다르다.)
문제는 한 사람의 질병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생명이 피어보지도 못한 채로 전적으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참히 짓밟힌다는 것이다. 또 다시 논쟁의 원점으로 돌아왔나? 그 줄기세포를 생명으로 보지 않겠다고?
기독교인이 불치병에 걸렸다면(내가 그렇다면 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정해진 질서 내에서 최대한 치료를 할 것이다. 그래도 현재의 의학으로 안되면, 내게 닥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아니 죽음에 이르기까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괴롭지만, 잠시 후에 있을 낙원에서의 삶으로 인해 나는 기뻐할 것이다.
지금도 "마라나타"를 외치고 있는데, 주님 앞에 한시라도 빨리 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기독교인의 죽음은 인간의 정으로 인한 잠시의 슬픔일 뿐이지, 통곡할 일은 아니다.
결론은 이렇게 내리고 싶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일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죄악이다.(200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