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영향력
그분은 외할머니 때부터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분이 1925년생이니까 그분의 외할머니가 예수님을 믿은 것은 아마 우리나라 기독교 도입의 초창기인 것 같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1919년에 33인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분으로, 33인의 명단에는 들지 못했는데, 그 사람들의 옥바라지를 하느라 가지고 있던 광산을 다 팔아야 했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일제 시대 때 아들을 일본인들에게 교육시키지 않겠다고 학교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배운 것이라고는 광산에서 금을 분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에는 아들을 일본으로 유학 보낸 사람도 있습니다.)
1951년에 625때 고향 군산을 떠나 홀로 부산에 왔습니다. 1954년에 고향에 가서 결혼한 후 다시 아내를 데리고 부산으로 왔습니다. 그분의 아내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온 집안에서 여동생과 둘이만 교회를 다녔습니다. 625때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벽보를 밤에 몰래 벽에 붙이고 다녔다고 합니다. 집안에서는 번듯한 남자와 결혼을 시키려고 강요했지만, 다른 조건은 다 필요 없고 오직 믿는 사람에게 시집간다고 버티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그분을 만났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남편을 따라 외지인 부산으로 와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분은 그 당시 손으로 구두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생활태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너무나 남을 배려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년 5월에(80세의 나이에) 담관암이라는 판정을 받고(본인에게는 알리지 않았음) 통증 때문에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몇 번 하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 엘리베이터에 탈 때마저도 다른 사람을 먼저 타라고 자리를 비켜 주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환갑이 넘은 그분의 처남이 젊었을 때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생업을 중단하고 처남과 같이 기도원에 가서 몇 달 동안 처남을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사위의 동생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결과 그 사람이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인생 동안에 다른 사람을 내 몸과 같이 도와 준 예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분의 아내는 위가 약해서 젊었을 때 위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힘을 못쓰는 아내를 위해 평생 이부자리를 봐 주었고(가족의 이불을 다 갰습니다) 연탄불 가는 것은 물론, 새학기가 되면 자녀들의 책표지를 싸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아이들 학교에 마중 나가는 것도 아내를 대신하여 그분이 했습니다. 제가 그분의 딸과 결혼을 할 때 그분은 금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그분에 대해 받은 느낌은, 무언가의 일을 하는 직업인이라기보다는 모든 일의 중심이 교회에 있는 교회의 일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 그분이 장로 장립을 받는데, 장립식 일주일 전에는 생업을 멈추고 기도로 시간을 보내겠다고 작정하고 일하러 나갔는데, 다음 일주일분의 수입을 그 날 하루에 다 올렸다고 합니다.
그분 가까이에 있으면서 거룩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특별히 지식이 많은 것은 아닌데, 성경말씀 그대로 실천하며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니까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의 삶을 놓고 볼 때 평생에 누린 복이 많았다고 평가하겠습니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2남 3녀의 자식이 모두 배우자와 함께 하나님을 잘 섬기며 그 후손들이 모두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아들은 5대째 믿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분이 지난 6일에 돌아가셔서 장례를 8일날 치렀습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절차 또한 하나님이 개입하신 흔적이 뚜렷합니다. 그분은 평생을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노년에 귀가 약간 안들리는 것말고는 별다른 질병이 없이 항상 건강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80세 때 어지러움증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담관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도 남들과는 달리 통증이 늦게 찾아왔습니다. 최근 들어 통증이 심해지면서 진통제를 사용하는 회수가 늘고, 마지막에 심한 고통은 약 10시간 정도 겪었습니다. 통증클리닉을 담당하는 마취과 의사의 말로, 하나님이 그분을 너무나 사랑하시나보다고 합니다. 더 이상 치료를 위해 인간의 힘을 발휘할 수 없을 때 고통의 시간을 길게 끌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그분은 가족이 단출해서 남매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직계 가족이라고는 여동생 하나밖에 없는데, 문상객이 굉장히 많이 왔습니다. 그 중에는 '이제 와서 말인데 평소에 그분을 존경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삶을 통해서 남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 것은 순전히 예수님 때문입니다. 나보다 먼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을 배우지만, 현실에서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일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다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이생에서의 그분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어도 거룩한 영향력은 오래 남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2005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