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청년의 진로 결정
인생을 살다보면 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경우가 참으로 많다. 거의 모든 생활이 판단의 연속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오늘 외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점심은 어떤 메뉴를 택할 것인가?' 등과 같이 가벼운 문제도 있고, '어느 대학에 진학을 할 것인가?', '어떤 직장을 택할 것인가?' 등과 같이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들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귀중한 선택은 물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인데,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제외하면 우리의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배우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직업의 선택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은 생계의 수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일도 안하고 먹는 방법은 없다.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노동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 청년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진로를 선택할 것인가? 진로에 대해서는 예를 들면 토목공학이라는 하나의 전공에 대해서도 공무원, 공사, 시공회사, 설계회사 등 진로가 다양한데, 전공에 구애 없이 구체적인 진로에 대해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범주의 진로를 놓고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직업인을 크게 나누면 자기가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세워놓은 기업체에 취직을 하는 사람이 있다. 먼저 기업체를 운영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거기에는 자본이 필요하다. 그 자본은 자기가(또는 가족이) 마련하는 경우(부모의 회사를 물려받는 경우 포함)와 남에게(또는 은행으로부터) 빌리는 경우가 있다. 취업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때 직종을 선택하는 기준은 {하나님은 내가 이런 일 하는 것을 기뻐하실까?}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경제활동을 해서 돈을 벌려는 목적이 '나의 안위와 편안한 삶을 위해서'가 되면 안된다. 그 일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생각하고, 직종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기독교인이 '해서는 안될 직종'이 있다. 예를 들면 인신매매업, 고리대금업 등. 그렇지만, 해서는 안될 직종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는 경우 우리가 판단자가 될 수가 있다. 우리가 판단자가 되어서 남의 직업을 함부로 비판할 만큼 윤리에 있어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나는 그 다음 부류의 직종을 '바람직하지 않은 직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다.
처음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직종을 선택할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직종을 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최선이 아닌 차선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부득이할 경우는 차라리 내가 경영자가 되지 말고 다른 사람 밑에 들어가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예가 주조회사가 아닐까? 기독교인이 주조회사를 창업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직종'이라고 말할 수 있고, 주조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직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판단도 일반적인 것이며, 개인에 따라 특수한 사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되, 다른 사람의 직업에 대해서는 함부로 비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그 경우는 주인이 국민인 경우(공무원)와 개인이 주인인 경우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개인이 주인인 회사를 선택하는 경우, 직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언급이 된 것 같다. 그 외에 주인의 성향도 참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경우는 주인이 기독교인인 경우가 있고 다른 종교인일 수도 있고, 소위 말하는 기독교 이단을 믿는 사람일 수도 있다. 종교문제를 놓고 말한다면 주인이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배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쉬운 예로 우리가 쌀을 사먹는데 쌀집 주인이 불교도라고 해서 그 쌀을 사먹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기독교인이 한명 밖에 없는 나라에 산다면 그 사람은 굶어 죽게 된다. 이 문제도 단순하지만은 않지만 흑백논리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경우는 사장이 예를 들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이지만 그 회사에 취직을 해도 괜찮은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취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론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인데, 모든 상황에 대해 한가지 판단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너무나 널리 적용되는 표현 같지만, 그런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말씀과 기도이다. 또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판단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
공무원을 택하는 경우는 어느 정도는 자기 희생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아니 그것은 자기가 희생한다기 보다, 우리나라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이며, 그것은 또한 아가페의 정신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낸 세금 중에서 월급을 받으므로 국민이 주인인 회사에 취직을 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본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60년대만 해도 공무원 세계에서는 윗사람에게 뇌물을 잘 바쳐야 승진을 할 수 있는 부서가 많았다. 그런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태도와 맞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을 아주 많이 보아 왔다.
지금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어떤 부서에 있는 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자기 회사가 망한다거나, 직장의 경우는 승진을 못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직장에서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관행이라는 것을 따르게 되면 결국 비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 누가 먼저 손해를 볼 것인가? 그런데 그 손해란 것이 조그만 손톱자국 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에서 폐인이 되느냐 아니면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느냐 하는 매우 큰 차이일 경우는 과감히 정의의 편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는 대학 신입생의 경우에서도 만나게 된다. 신입생 환영회의 자리에 갔는데 모두가 술잔을 들고 "위하여!"를 외칠 때 혼자만 술을 안마신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아직도 있다. 그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 상황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은 마치 순교자의 정신을 갖는 것과 같다. 사회는 결코 기독교인답게 사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개인적인 희생이 따르더라도 정의를 지킬 것인가? 일부의 사람은 부도덕한 현실 사회와 적절히 타협하면서 그것을 '뱀같은 지혜'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주제에 돌아와서, 내가 어느 길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때때로 거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만 하겠다는 생각은 좋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점쟁이를 찾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므로 우리가 어떤 길을 걸으며 어떻게 살아갈지를 다 아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이미 어떤 길을 살아가야 한다고 정해놓은 우리의 길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길을 로봇처럼 따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A 회사에 가는 것과 B 회사에 가는 것 사이에 하나님이 미리 정해 놓으신 길은 없다. 다만 회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갖는 판단 기준이 중요하다. 왜 그 회사를 들어가겠다는 것인지의 이유 중에 하나님의 일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미국에 사는 어떤 부부의 삶을 소개하고 싶다. 그 부부는 대학 때에 기독교 동아리에서 만났다. 남편이 의사인데 개업을 해 놓고 병원에 나가서 일을 보는 것은 자기가 사용하는 시간의 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교회와 관련된 일을 한다고 한다. 의사가 된 이유도 아프리카에 의료선교를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 그 부부의 삶은 오로지 하나님과 연관된 일 뿐이다. 문자 그대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이다. 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인가?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전형적인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이다. 우리 모두가 그 부부와 같아야 한다. 왜 회사를 경영하느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왜 그 회사에 취직을 했느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왜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느냐? 그 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하여." 그것은 기독교에 빠진 어느 광신자의 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답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지금 이렇게 '청년의 진로 결정'에 대해 말할 때, 나그네의 삶을 50년간 살아온 결과 세월을 값으로 주고 얻은 해답을 자신 있게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외우더라도 꼭 이것을 기억하라고 강요하고 싶다. {나는 어떤 직장을 택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그것이 기독교인의 직장관에 대한 해답이다.(200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