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목욕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전신을 목욕시켜 드렸습니다. 중풍으로 쓰러지신 지 7, 8년 되는데 이제야 내 손으로 목욕을 시켜드렸다는 것이 아들로서 늦은 감은 있지만, 그 이전에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아니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 아니라, 딸들과 며느리들을 앞세웠었습니다. 이제 작은 아들 준영이의 수학능력시험도 끝나고 하여 당분간 저희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대소변도 못가리셨는데, 이제는 목욕만 시켜드리면 된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합니다.
제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 저는 석사과정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녁마다 아내와 함께 갓난 아들의 목욕을 시켜주었었습니다. 많은 날들을 아버지로서 아들 목욕을 시켰었는데, 오늘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목욕을 시켜드렸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아들인 나를 목욕시켜주었던 적이 있는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들로서, 이제는 몸에 힘이 없어 목욕마저도 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아버지를 돌봅니다.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씻기고, 몸 구석구석 비누칠을 하여 헹구고...
오늘 저녁에는 계명대학 채플에서 "공룡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왔습니다. 거기서 사회를 보시는 목사님이 기도할 때 특히 아멘이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젊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생에 젊음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지 못했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면서, 지나간 젊은 시절이 얼마나 귀중했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젊음의 시기를 훨씬 지나 병이 든 몸을 아들에게 맡긴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리며,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먹고 자는 것이 성장을 위한 것이지만, 늙어서는 먹고 자는 것이 죽음을 향해 갑니다. 그렇더라도 노년은 덤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졸업은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라는 말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게, 육체의 죽음은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노년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젊음의 때에 인간적인 힘이 넘쳐서, 나 스스로도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는 시절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지혜는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오직 그리스도가 살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 때, 진정한 하나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대구에서 지내시는 이 힘없는 기간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200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