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대구에서 영천 가는 국도 28호선에는 새벽에 안개가 많습니다. 특히 대구시의 경계를 지나 하양 못 미쳐서 금호강변을 지날 때는 시야가 더 좁아집니다. 차선을 건너 마주 오는 차들을 보면 안개등을 모두 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벽에 안개가 자욱한 그 길을 지날 때면, 그 길을 처음 지날 때가 생각납니다. 1988년 당시에 대전에 살 때, 대구에 사는 어떤 분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어서 그분의 초청으로 대구에 놀러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길에 안개가 심하게 끼었었는데, 그곳은 항상 안개가 많은 지역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저의 앞길에도 안개가 많았습니다. 잘 다니던 삼성을 그만 두고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지 7년째인데 아직 앞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몇 미터 전방에 안개가 가로막힌 듯 그 앞은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오늘 아침 안개가 자욱한 그 길을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길을 처음 운전하는 사람은 몇 미터 앞이 안보이니까 안개 속의 길은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곳만을 바라보며 천천히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길을 십년 이상 다녔기에 안개 속의 길이 어떻게 전개된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안개가 짙더라도 아무 불편 없이 평상시대로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정도의 앞만 바라보며 안개가 가로막힌 그 뒤에는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분명히 그 안개 뒤에는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텐데 부러 잊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자위하며, 육체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만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안개 뒤의 세계를 망각했기에 그냥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막연한 두려움에 걱정을 하면서도 자세히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내게 들려오는 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은 저절로 있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로막힌 죽음이라는 안개 뒤에는 분명히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갈래길에서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도 알기에 오늘도 나의 삶은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합니다. 그 안개 뒤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마음놓고 달려갑니다.(200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