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매주 금요일에는 대전에 갑니다. 지도교수가 계시는 KAIST에 세미나 참석차 갑니다. 거의 대부분 기차를 이용하는데, 거기서 우리나라 공중도덕의 수준을 접합니다. 아무리 밤차가 아니고 낮 기차라 하더라도, 휴대폰을 진동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날은 제가 누군가의 사무실에 온 듯한 느낌입니다. 애인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목소리는 보통입니다. 사업차 물건의 주문과 배송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조금 크게 나옵니다. 제일 목소리가 큰 것은 나이가 든 시골 아줌마입니다. 몇 시 기차로 가고있는데 역으로 마중나오라는 이야기 아니면 계모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도 현상은 비슷합니다. 저희 건물은 세 개의 학과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기 학과가 아니면 다른 학과의 교수님 얼굴을 학생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몇 년 전만 해도 다른 학과의 교수님이 지나갈 때는 학생들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학년 수업에 세 학과의 교수들이 거의 대부분 들어가게 된 이후에는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저 한 사람만이라도 수업시간에 예의를 강조합니다. 1학년 때 우리 건물에 계시는 교수님들의 얼굴을 다 익히게 될 테니까, 2학년부터 학과가 갈라져서 자기 학과 교수님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목례 정도 하는 것이 예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니까 건물에서 만나는 학생마다 인사를 잘들 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과 학생으로부터 인사를 받을 때는 우리나라의 장래가 밝아 보입니다.
한때는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불만이었습니다. 왜 중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동방이라고 하느냐고.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이나 그런 표현을 받아들인 우리 조상들의 겸손함을 배우게 됩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의 의미는, 중국 사람들은 예의가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에서, 동쪽의 산둥반도 근처에 살던 우리의 조상인 동방의 사람들은 셈족으로서, 본토에 살고 있는 야벳의 후손인 중국 사람들의 신앙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좋은 성품은 '정직'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경우에 우리 사회에서 정직한 성품을 찾기가 힘듭니다. 특히 정치판에서. 얼마전의 월드컵 기간 중에 보았듯이, 우리나라는 지도자를 잘 만나면 단숨에 굉장한 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정직'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예수'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왕에 인쇄된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것은 우리나라 예법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편집하거나 쓰는 모든 글에서 '예수'라는 표현 대신에 '예수님'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예의를 회복하여 다시 한번 하나님의 큰그릇으로 쓰임 받기를 바라면서.(200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