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22장
◆사랑하는 자의 제물
-사라는 127세에 죽었고, 이삭이 젖을 뗄 때 그녀는 92세 혹은 93세였다.
-21장 후반부와 22장의 모든 사건들은 그 사이의 약 35년 동안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모친이 죽을 때 이삭은 37세였다.
-이삭이 바쳐질 때 그는 청년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아이라고 불려졌으나(5, 12절) 그 히브리 단어 “나알”은 의미가 매우 유동적이다. “종” 또는 “청년”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흔하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1-2절) And it came to pass after these things,(이 일들 후에) that God did tempt Abraham,(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and said unto him,(그에게 말씀하시기를) Abraham:(아브라함아 하니) and he said,(그가 말하기를) Behold,(보소서) {here} I {am}.(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2 And he said,(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Take now thy son, thine only {son} Isaac, whom thou lovest,(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and get thee into the land of Moriah;(모리아 땅으로 가서) and offer him there for a burnt offering upon one of the mountains which I will tell thee of.(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더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분은 침묵을 지키시는 듯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한결같이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뜨리고 입을 여셨는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뜬금없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다.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행하던 풍습인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신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그는 아무 질문 없이 하나님께 순종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여야 한다는 의도를 품으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이삭을 “드리라”는 것뿐이었다. 그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세상일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의 일에 대해서는 살아있고, 전적으로 헌신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롬 12:1).
◆시험하시려고 - 처음 등장
-“시험하다”(히, 나사) → 처음 등장
-악을 행하려고 시험(유혹)하는 의미가 아니다(약 1:13). 그것은 “실험” 혹은 “시련”을 의미하며, 대부분의 경우 “증명하다”로 옮겨진다. → 야고보서 1:2에 나오는 시험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죄를 범하실 수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에 대해 시험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전혀 시험받은 것이 아니다.
◆사랑 - 처음 등장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사랑은 은사 가운데 가장 큰 것이며(고전 13:13), 사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다(요일 4:8).
◎첫 언급의 원리 : 어떤 중요한 단어나 개념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나올 때는 그 문맥이 그 우선적인 용례와 나머지 성경 전체를 통한 의미의 발전에 대한 모형을 제시해 준다.
-첫 번째 언급된 사랑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다. 더군다나 그것은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어 있다. →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삭은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겪은 경험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산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일의 상징이다. (히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구약성경에 나타난 “사랑”에 대한 첫 언급 : 지상의 아버지가 그의 독자에 대해서 가지는 사랑, 즉, 그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 하므로 극심한 영혼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이는 삼위 하나님 가운데 존재하는 사랑, 특히, 성부의 성자에 대한 사랑의 축소판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첫 언급(구약이 상징을 보여준다면 신약은 그 실체를 보여준다.)
-성부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극히 선명하게 보여준다.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가복음에서 “사랑”에 대한 첫 언급 : (막 1: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에서 “사랑”에 대한 첫 언급 : (눅 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사랑했을진대, 그분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더 크겠는가? 그러나 그분 자신은 “우리를” 몹시 사랑하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을 기꺼이 희생시키셨다.
-요한복음에서 “사랑”에 대한 첫 언급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우리의 이해를 훨씬 초월한다. (요일 4:9-11)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get thee into the land of Moriah
-모리아 = “하나님은 나의 지도자”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 이 지역의 어느 산에서 이삭이 바쳐졌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거의 갈보리(골고다)였을 것이다.(모리아 산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모리아 딸이라고 되어 있다.)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창 22: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3-8절) 3 And Abraham rose up early in the morning,(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and saddled his ass,(그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and took two of his young men with him,(그와 함께 있는 청년들 중 두 명과) and Isaac his son,(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and clave the wood for the burnt offering,(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and rose up,(일어나서) and went unto the place of which God had told him.(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갔더라) 4 Then on the third day Abraham lifted up his eyes, and saw the place afar off.(삼일 째 되던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멀리 있는 그곳을 보고) 5 And Abraham said unto his young men,(아브라함이 그의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Abide ye here with the ass;(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머물라) and I and the lad will go yonder and worship,(나와 아이는 저기로 가서 경배드리고) and come again to you.(다시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And Abraham took the wood of the burnt offering,(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나무를 들어서) and laid {it} upon Isaac his son;(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and he took the fire in his hand, and a knife;(그는 자기 손에 불과 칼을 들고) and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7 And Isaac spake unto Abraham his father, and said, My father:(이삭이 그의 아비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여 하니) and he said, Here {am} I, my son.(그가 말하기를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니) And he said,(그가 말하기를) Behold the fire and the wood:(불과 나무를 보소서) but where {is} the lamb for a burnt offering?(그런데 번제에 쓸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자) 8 And Abraham said,(아브라함이 말하기를) My son,(내 아들아)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a burnt offering:(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 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하고) so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아브라함은 그 마음에 어떤 의문과 저항감이 있었을지 모르나,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성경은 그가 지체조차 하지 않았음을 강조해 준다.
-그는 이삭에게 목적을 알리지 않았으며, 아마 사라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이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 : 사라에게 말했을 수도 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말에 잘 따랐으며 부부는 신앙에 있어서 항상 동행했을 수도 있다.)
⇒그는 또한 목적지에 아무 나무도 없을지 모르기에, 자신이 행해야 할 의무로부터 조금도 피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노쇠하여 나귀를 탔다.
-모리아는 (장래의) 예루살렘 가까이 있었고, 아브라함의 집은 브엘세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방에 있었다. 따라서 총 거리는 약 30마일 정도였다.
⇒(멀리 가라고 하신 이유)아마, 후에 그분의 성전이 지어질 곳이 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일은 후에 그곳에서 드려질 모든 제물들, 곧 성부께서 성자를 세상의 구조로 드리실 근에 드려질 그 위대한 제물의 상징과 그림자들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다시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 (복수 동사)
-아브라함의 약속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자신과 이삭이 돌아올 것을 정말 믿었다.(부활신앙)
-비록 그의 생각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삭을 죽이라고 명하신 것이었고, 또 그 자신도 그 명령에 온전히 순종할 마음이었지만, 그는 두 사람 모두 돌아올 것을 알았다. →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고 그분의 약속은 확실하다는 것을 확실히 배워왔다. 이삭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며 그를 통해서 다른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이삭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분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수도 있다고 믿을 정도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배워왔다. (히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 하나의 상징으로서 아브라함의 독생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다. 그 실체는 물론 예수님이다.
*경배하고//worship//경배드리고
-그의 아들을 죽이는 행위가 예배드리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그렇다. 이것이 최고의 예배 행위이다.
-찬송을 부르거나 간증을 나누거나 설교를 듣거나 성도의 교제를 즐기는 것은 예배의식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예배는 아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뜻이 최선임을 알고 인정하는 가운데 그 뜻에 부복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을 예배하신 기록은 일절 없다.
-(마 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 여기서 “머리를 두다”는 말은 헬라어로 “머리를 숙이다”는 말과 같다. 즉, 그분은 예배할 장소가 없으셨던 것이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마침내 그분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둘 곳, 즉, 자신의 머리를 숙일 곳을 가지신 것이다. 온전히 복종하셨으며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다.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강제로 가게 한 것이 아니라 이삭이 기꺼이 그의 아버지를 따라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강제로 십자가에 죽게 하지 않으셨다. (요 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었으며, 이에 아들은 기꺼이 순종했다.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9-14절) 9 And they came to the place which God had told him of;(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곳에 와서) and Abraham built an altar there,(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and laid the wood in order,(나무를 가지런히 놓고) and bound Isaac his son,(그의 아들 이삭을 묶어) and laid him on the altar upon the wood.(제단의 나무 위에 올려놓고) 10 And Abraham stretched forth his hand,(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and took the knife to slay his son.(칼을 잡고 이삭을 죽이려 하는데) 11 And the angel of the Lord called unto him out of heaven,(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and said,(말하기를) Abraham, Abraham:(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and he said, Here {am} I.(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12 And he said,(그가 말하기를) Lay not thine hand upon the lad,(네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neither do thou any thing unto him:(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for now I know that thou fearest God, seeing thou hast not withheld thy son, thine only {son} from me.(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하더라) 13 And Abraham lifted up his eyes, and looked,(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았더니) and behold behind {him} a ram caught in a thicket by his horns:(보라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그 뒤에 있는지라) and Abraham went and took the ram,(아브라함이 가서 숫양을 잡아 와서) and offered him up for a burnt offering in the stead of his son.(그의 아들 대신에 번제로 드렸더라) 14 And Abraham called the name of that place Jehovahjireh:(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불렀더니) as it is said {to} this day, In the mount of the Lord it shall be seen.(오늘까지도 말하여지기를 주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하더라)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마침내 그들은 그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사흘간 길을 왔으며 그 사흘은 그들에게 분명히 큰 고통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출발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할 준비가 온전히 되어 있었다. 사실상 이삭은 이미 사흘간 죽은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적인 죽음의 사흘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으신 사흘과 명백히 일치된다.
-나무가 이삭의 등에 지워졌듯이 그리스도의 등에 십자가가 지워졌다.
*(7절)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그는 전에도 단을 쌓았으나 - 세겜, 벧엘, 헤브론, 브엘세바 등에서 - 그 중 어느 것도 유효하지 못했다.
-짐승이 아닌 자신의 독자를 드리는 참 제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단이 모리아 산에 있어야 했다.
-갈보리를 대체할 곳은 없으며, 거기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잃어진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제물로 드려져야 했다.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이제는 이삭의 모든 의심이 제거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묶어 나무 위 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의문의 여지없이 눈물 가득한 눈으로 그의 아버지의 눈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며, 그의 손에 높이 들린 칼을 보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를 얻었으나 그 믿음은 행함으로 입증이 되었다. (약 2:21-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주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지리라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정확히 그 일을 행하셨다. 다만 어린양이 아니라 수양인 점만 제외하고. 이에 대한 완전한 성취는 참 어린양이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기다려야 했다.
⇒여호와이레 : 이것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혹은 “여호와께서 나타나신다”는 뜻이다. 둘 중 어떤 번역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모음의 불분명한 표기로 인해 학자들간에 견해차가 있는데, 아마 둘 다 적절할 것이다.
(창 22: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창 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
●(15-19절) 15 And the angel of the Lord called unto Abraham out of heaven the second time,(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And said,(말하기를) By myself have I sworn, saith the Lord,(주가 말하노라 내가 스스로 맹세하노라) for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ing,(이는 네가 이같이 행하여) and hast not withheld thy son, thine only {son}:(네 아들 곧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기에) 17 That in blessing I will bless thee,(복으로 내가 네게 복을 주고) and in multiplying I will multiply thy seed as the stars of the heaven,(번성으로 내가 너의 씨를 하늘의 별들처럼) and as the sand which {is} upon the sea shore;(또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케 하리니) and thy seed shall possess the gate of his enemies;(네 씨가 그의 원수들의 문을 차지하리라) 18 And in thy seed shall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be blessed;(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because thou hast obeyed my voice.(이는 네가 나의 음성에 복종하였음이라 하더라) 19 So Abraham returned unto his young men,(그리하여 아브라함이 그의 청년들에게로 돌아와서) and they rose up and went together to Beersheba;(그들이 일어나 함께 브엘세바로 떠났으니) and Abraham dwelt at Beersheba.(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거하였더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이 성취될 것임을 가능한한 강하게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아브라함에게 맹세를 하셨다. (히 6:13-18)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 : 모래와 별
①아브라함 자신에게 풍성히 복을 주시리라
②그의 자손으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 같이 무수하게 하리라
③그의 자손으로 그 대적들을 이기게 하리라
④천하 만민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복을 받게 하리라
-이 모든 복들이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다.//because thou hast obeyed my voice
-성경에 나오는 “준행”(혹은 “순종”//obey)에 대한 첫 번째 언급으로, 순종이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풍성한 복을 가져온다는 것을 강조해 준다.
-이 약속 가운데 하나님은 세 번씩이나 “씨”(seed)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그때에 아브라함은 오직 한 씨, 이삭밖에 없었으나 그 씨는 번성하여 모든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줄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복수가 아닌 단수로 그 단어를 강조하셨다는 사실은 아브라함에 속한 민족을 통하여 장차 세상에 구주가 오실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매우 의미심장하다.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그분은 전에(창 14:4)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으시다.
-그러나 우리의 육안으로는 기껏해야 3천개 정도만 헤아릴 수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처음에는 그다지 인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3천의 자손으로는 큰 민족을 이루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결과적으로 하늘에는 바닷가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전에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창 13:16).
-과거에는 비과학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비교가 매우 적절하다. → 별의 정확한 수효는 아무도 모르나 관찰 가능한 수효만 대략 추산해 보아도 10의 25승이나 된다. 지구 표면의 면적은 약 10의 15승 평방 피트이고, 1 입방 피트에 약 1천만 개의 모래알이 있으므로, 만일 지구 표면에 평균 1천 피트 깊이의 응결되지 않은 퇴적층이 있다면(해저에는 이보다 깊을 것이고 육지에는 이보다 옅을 것이다) 모래 크기의 입자의 수효는 10의 25승으로 계산될 것이다. → 비록 이런 계산이 크게 잘못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적어도 별들과 모래가 거의 같은 규모의 수효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그 “산 위에서의 경험” 후 아브라함과 이삭은 약속대로 사환에게로 돌아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은 브엘세바에 이르렀으며, 아브라함은 줄곧 그곳에 거했으며,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삭이 돌아왔다는 말은 없다.)
(창 22:20) 이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창 22:21)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무엘과 (창 22: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창 22: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창 22: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
●(20-24절) 20 And it came to pass after these things,(이 일들 후에) that it was told Abraham, saying,(누군가가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Behold, Milcah, she hath also born children unto thy brother Nahor;(보라 밀카 역시 당신 형제 나홀에게 자식을 낳았다 하니) 21 Huz his firstborn,(그의 첫아들은 후스요) and Buz his brother,(그의 아우인 부스와) and Kemuel the father of Aram,(아람의 아비인 크무엘과) 22 And Chesed, and Hazo, and Pildash, and Jidlaph, and Bethuel.(케셋과, 하소와, 필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 And Bethuel begat Rebekah:(브두엘은 리브카를 낳았더라) these eight Milcah did bear to Nahor, Abraham's brother.(밀카가 이 여덟 사람을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에게 낳았더라) 24 And his concubine, whose name {was} Reumah,(또 나홀의 첩의 이름은 르우마인데) she bare also Tebah, and Gaham, and Thahash, and Maachah.(그녀가 테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카를 낳았더라)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이 부분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들의 고향집과 모든 유대관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내용상의 삽입부이다.
-아브라함은 종종 어디서 그의 아들의 아내를 구할 수 있는지 고심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삭이 약속된 대로 큰 민족의 선조가 될진대, 아내를 선택하는 문제는 극히 중요했다. 이에 아브라함은 이삭이 그의 백성 가운데서 신부를 취하기를 원했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향의 소식을 듣기 위해 사람을 그리로 보냈을지 모른다. 보다 가능성 있는 추측은 여행 중인 대상이 섭리적으로 그들에게 고향소식을 전해주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노년에 태어났으므로 자신의 사촌들보다는 나홀의 손자들과 나이가 비슷했다. 나홀의 손자들은 매우 수가 많을 것이나 여기에는 둘만 언급되어 있다. 그무엘의 아들 아람과 나홀의 막내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