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로 알라(요한복음 17:13-18)
본문: (요 17:13-18)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사람들에게는 세상에다 자기를 알리려는 강한 욕망이 있다. 세상 신문이나 방송, 라디오에 자기 이름이 게재되거나 방송에 나가게 되면 보람을 느끼고 만족해 한다. 그러나 사람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이, 더 멀리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목사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자기 말로는 세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다고 고백하면서도 추종자들이 늘어나면 급기야 세상에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망이 발동하여 별 짓을 다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집회들을 열어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하며, 그것에 맛들리자 정당까지 만들어서 정치에 참여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회를 부여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의 개인적인 영화를 위해 써 버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는 말씀이 무척 못마땅할 뿐 아니라 왜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는지 불만스러울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다. 세상에다 자기 욕망을 펼쳐 보이려는 자들은 세상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메이슨 목사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눈에 하늘을 지녔고, 그의 마음에는 그리스도를 지녔으며, 세상을 그의 발 아래 둔 사람이다”라고 했다. 세상이 그 그리스도인의 발 아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기 발로 세상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주셨는데, 그 이름은 “나그네”요, “순례자”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자기 이름을 내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려는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이름을 반납해야 한다. 성경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그 이름을 반납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과 세상에 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며, 세상과 친구가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하셨다(약 4:4).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요 17:1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1. 우리가 세상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주님의 기도를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13절).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 기도를 하셨다.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3).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게신 33년 반 동안 줄곧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를 지속하는 기쁨을 유지하고 계셨다. 다윗도 이 점을 시편 16:11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노래했다. 주님께서는 이 기쁨을 성도 여러분 안에 충만케 하려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얼마만큼 누려 보았는가? 그리스도인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그 기쁨을 경험했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 본문의 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8절). 주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말씀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셨다. 영원하고 썩지 않는 말씀, 생명을 낳게 하고 지탱하게 하는 소망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 주님의 기쁨을 우리들 모두에게 충만케 하시고자 하신다(13절). 거듭나지 않고 성경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세상 교육, 지식, 지위, 연령, 종교, 성취 등과 무관하다. (3) 주님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같이 우리도 세상에 속하지 않게 하셨다(16절). (4) 아버지께서 주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주님께서도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라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진리를 증거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다. (5) 주님이 거룩하신 것같이 우리도 진리를 통해서 거룩하게 하신다. 다른 종교들은 진리가 없기 때문에 혼미하고 무지한 가운데 오직 굴종적인 기원과 경배, 봉사 바침만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 권의 책이 있는데, 그 책을 공부함으로써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 이 책은 종교서적일 뿐 아니라 역사책이며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절). (6)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그 영광을 여러 성도들에게도 주셔서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하나 되게 하신다고 하신다(22절). 이때 가짜 그리스도인들과는 절대로 하나 될 수 없는 것이다. 가짜들은 그리스도인 흉내를 내다가 지치면 제 발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런 자들을 쭉정이, 벨리알의 자식, 독사의 세대라고 하는 것이다. (7)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여러분 안에 있게 하심으로써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다(26절).
로마카톨릭은 그들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한 가지 방법 밖에 쓰지 않았다. 신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함으로써 무지하게 만들었고,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 죽여 버렸다. 그래서 성경은 사제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사제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했던 것이다. 성경을 읽고 깨달은 사람들은 - 루터, 칼빈, 낙스, 에라스무스, 사보나롤라 등 - 모두 카톨릭을 떠났고, 카톨릭의 위선을 질타했다.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알베르토 리베라 신부나 50년 동안 로마카톨릭에 있었던 찰스 치니키도 마찬가지이다. 이름을 다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무를 심었으면 물, 바람, 태양, 거름을 줘야 뿌리가 잘 자랄 텐데, 썩은 땅에 심고, 썩은 것들을 주기 때문에 고사해 버리는 것이다. 지금 한국 교계에는 교회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기에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서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원받았느냐는 질문에 그저 죽어봐야 안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구원은 죽기 전에 받아야 하는데, 죽은 후에는 이미 늦어 지옥에 가는 것이다.
2. 우리가 세상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기 때문이다(14절).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이야기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지만, 이 말씀을 지닌 사람들은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한 부류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이 세상 제도는 마귀가 관장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죄악의 수렁이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수록 더 죄의 유혹과 세상의 염려, 재물의 미혹이 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라고 탄식했다. 왜 선을 행하고 싶어도 선을 행할 수 없는가? 우리의 몸이 죄들의 몸이기 때문이다(골 2:11). 그것을 육신의 몸이라고 한다. 우리가 육신이 되면 죄가 우리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을 죽여야 한다.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를 이길 수 없다(막 7:21-23).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 행한다. 우리들의 양심을 규제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 즉 믿음의 법이다. 믿음의 법은 선한 양심을 지닌 거듭난 성도들만이 지킬 수 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제받게 되면 그 안에 세상 법도 다 들어 있다. 이는 도덕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법은 십계명보다 강하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새 계명을 주신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요 13:34). 우리는 새 계명을 받았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십계명이 아닌 새 계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도 세상의 눈치를 살핀다든지, 그리스도인인 것을 숨기며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살게 되면 십자가의 원수들로 살게 된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무시하고 살게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바보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불려가 복음을 전했더니 그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려고 하자 곁에 있던 마술사 엘루마가 그들을 반대하며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바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를 꾸짖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행 13:9,10).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찮게 여기는 자들, 복음을 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하지 않는 자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증거가 있다. 마술사 시몬은 믿고 침례까지 받았지만 그는 거듭나지 않았다. 구원을 받았으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초목은 뽑히게 되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세상이 그들을 핍박하기 때문에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3. 우리가 세상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보호를 받아야 죄의 노예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15절).
세상은 갯벌과 같다. 갯벌은 검고, 볼품없고, 질척거리고, 온갖 잡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생활을 위해서 갯벌에서 먹이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세상에 동화되지 않으면서 생을 유지하는 것이고,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와야 한다. 세상의 제도는 마귀가 만들었고 마귀는 세상의 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다분히 마귀적이다. 세상은 마귀의 진영이 훨씬 많다. 그리스도의 진영은 매우 적다. 그리스도의 진영이라고 흉내내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돌이키고 말씀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마귀의 진영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적 지대에는 중립이 없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진리를 거부하면 마귀의 편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육신적인 생각을 했다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갈 5:17).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육신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성령을 통해서 자기의 육신을 죽이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누구나 정복을 당하면 정복한 자의 종이 된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받은 재능, 기술, 지혜, 능력 등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들이다. 그것들을 잘 사용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것들로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해서는 안된다. 어떤 직장을 얻었는데 그 직장이 자기 믿음을 지켜낼 수 없게 한다면 기도해야 한다. 좋은 직장이거든 자기의 믿음을 내보이고 그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고 복음의 소중함을 전해서 일깨워 줘야 한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세상 사람들을 거부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전 5:9,10, 요 17:15).
이 세상은 진화론을 신봉한다. 대학을 나와서 진화론을 신봉하지 않으면 취직이 안된다.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믿어야 신문 기자도 하고, 하나운서, 대학 교수, 결찰 간부, 군 장성도 되고, 중고등학교 선생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지으셨다고 믿으면 취직이 안될 뿐더러 잘 다니던 직장에서도 쫓겨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과 정 반대 되는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독특한 사람들이다. 진리의 지식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이런 생활을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들이 그러한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세상에서 이름이나 좀 알리고, 교회에도 다니는 체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쓰레기 취급하실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마귀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들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써야 하며, 다른 사람들처럼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것도 동일하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에 매달려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복을 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모든 것을 보살펴 주신다. 마귀는 인간을 파멸시키려는 적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는 물론이려니와 된 이후에도 동일하다. 마귀를 물리치는 능력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약 4:7,8).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위해서는 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화롭게 해 드리는 데에 생의 목적과 의의가 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들은 모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생의 자랑인 것이다. 이들이 죄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속한 것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도 사라지고 정욕도 사라진다. 허무한 것이고 헛것이기 때문에 사라진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할 수 있다. 진리를 바르게 터득한 사람만이 세상을 바로 알 수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가? 그들이 진리를 터득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여러분이 진리를 터득했으면 진리를 아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