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신들의 세상(Counterfeit God)
티머시 켈러 저, 이미정 역, 2012년 8월 12일 초판발행, pp.233, 13,000원
(2014년 10월 31일 읽음)
탕자의 비유를 기가 막히게 묵상한 것을 책으로 읽었던 감동 그대로, 우리 주변에 있는 각종 우상에 대해,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견지에서 쓴 책을 읽었다. 하나님이 그곳에서 나오라고 하신 영적 바벨론이 바로 이 책에서 언급한 우상(거짓 신들)이다.
<Under Line>
서론. 우상을 만드는 공장
- 문화 속에 우상이 난무한다.
- “내가 저것만 가질 수 있다면 내 인생에도 의미가 있다고 느낄 것이고, 나도 가치가 있음을 알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존심도 생기고 안전한 느낌도 가질 텐데...”라고 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바로 당신의 우상이다.
- 사람들은 우상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우상에게 순종한다.
- 성경이 우상을 설명하는 은유:
(1) 부부관계 – 하나님을 진정한 배우자로 삼아야 한다.
(2) 종교적 은유 – 개인적인 성취나 금전적인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한 구원자로 여겨야 한다.
(3) 정치적 은유 –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고 타협할 수 없는 존재로 섬긴다면 우상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Ch1. 늘 원했던 모든 것
-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최악의 벌은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했다(로마서 1:24). 우리의 마음이 그와 같은 열망들을 우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다. 아브라함에게 마침내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이제 그토록 원했던 모든 것을 가졌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것을 버리라고 말했다.
- (하나님의 첫 번째 부름: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리며 희생을 감수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아들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는가? 아니다. 아직은 아니었다.
- (하나님의 두 번째 부름: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은 숭배로 변해 있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짝퉁 하나님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하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유일한 아들의 목숨을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것이 비이성적이고 모순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삭의 텐트로 들어가 이삭을 죽이라고 하지 않았다.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고 했다. 즉, 아브라함에게 죄값을 치르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가족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다.
- “이제 네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나를 사랑함을 알겠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아보려고 하나님이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말은 아니다. 만물을 꿰뚫어보는 하나님은 모든 이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이 ‘순금같이 되어 나올’ 수 있도록 아브라함을 용광로에 집어넣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토록 혹독하게 다룬 것은 사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다.
- 이제 우리가 산으로 가야 할 때다.
Ch2. 사랑만 있으면 되는 걸까
- 성경에는 사랑에 대하 갈망 때문에 노예가 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 야곱과 레아의 이야기(야곱에게 라헬은 단순한 아내가 아니라 ‘구세주’였다.)
- 야곱에 레아에게 말한다. “내가 어둠 속에서 ‘라헬’이라고 불렀을 때 당신은 대답을 했어. 왜 그랬지?” 그러자 레아가 대답한다. “당신 아버지가 어둠 속에서 ‘에서’라고 불렀을 때 당신이 대답을 했어요. 왜 그랬죠?” 그러자 야곱의 분노가 사라졌다. 그제야 야곱은 속아서 이용당하는 느낌이 어떤지를 실감하고 순순히 라반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 성경은 인류가 어쩌다가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나타났으며 앞으로 다시 나타나 모든 일을 바로잡을 것인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이야기다.
- 야곱은 ‘종말론적 섹스’를 추구한다. 남자든 여자든 낭만적인 사랑을 우상화하는 틀에 박힌 행위는 막다른 골목이다.
Ch3.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세상
- 성경에 의하면 우상숭배자들은 자신의 우상을 세 가지 방식으로 섬긴다. 우상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우상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Ch4. 성공의 유혹
- 우리가 성공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가장 주된 징후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모습이다.
- 학생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은 뭘까?”라고 자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살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라고 묻는다는 얘기다.
- (고통 받는 보잘 것 없는 종)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받을 수 있겠지만, 그걸 베푸는 자는 항상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나아만의 이야기에서도 그가 축복을 받는 대신 다른 누군가가 인내심과 사랑으로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은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그건 바로 시리아의 약탈자들에게 잡혀와 나아만의 아내를 모시는 노예 소녀였다. 인종이 달라 소외받는 자였고 노예인데다 여자였다. 노예 소녀의 인생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나아만의 목숨은 이제 이 소녀의 손에 달려 있었다. 노예 소녀가 나아만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도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아만이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노예 소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권하는 일을 했다. 소녀는 복수를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심판해주시리라고 믿었다.
- 용서는 언제나 시련을 감내하는 종을 필요로 한다는 이 성경의 주제는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절정에 달한다. 예수님은 ‘고통받는 종’이 나타나 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예언을 실현하신 분이다(이사야 53장).
- 나아만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예 소녀의 말을 들어야 했고, 나중에는 엘리사의 종한테서, 마지막에는 자신의 종들한테서 전해들은 말을 따라야 했다. 하나님의 답은 궁전이 아니라 노예들의 숙소에서 나왔던 것이다. 이 주제를 보여준 궁극적인 예는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Ch5. 권력과 영광
-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변하면 인종주의가 된다.
- 성경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인생의 주된 문제는 죄악이며 그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쳤다.
- 권력이라는 우상은 ‘심층에 깔린 우상’이어서 여러 가지 ‘피상적인’ 우상을 통해서 표출될 수 있다.
- 다니엘 2장 35절에 따르면 돌 하나님의 왕국이 우상 전체를 ‘동시에’ 산산이 부서뜨린다. 그 왕국들이 몇 세기의 간격을 두고 나타난다면 어떻게 돌이 그들을 동시에 부서뜨릴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의 꿈에 나타난 신상은 그 나름의 힘과 방식, 권력을 지닌 이 세상의 일반적인 왕국을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특정한 왕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시대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불의와 독재가 난무해도 하나님이 주권자이며 인간의 모든 권력은 결국 심판 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의 ‘노동’이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은혜의 결과물이라는 개념이 복음의 기본적인 형태다.
Ch6. 나 안에 숨어있는 우상들
-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면서도 그 모습을 훨씬 잘 숨기는 다른 우상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 문화와 사회에 깃든 우상들이다.
-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좋은 점수 따기’ 위해 자기들 교리의 정당성에 의존할 때 그런 일이 발생한다. 인간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성취를 이루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 요나는 왜 달아난 걸까?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사역 활동을 성공적으로 하고 싶은 갈망이 훨씬 더 강했다. 요나는 또한 문화적 우상의 영향도 받았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니느웨 사람들의 영적인 선을 추구하는 일보다 이스라엘의 국익을 우선시했다. 마지막으로 요나는 단순한 도덕적 독선이라는 종교적 우상을 섬겼다. 사악한 이교도인 니느웨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꼈다. 요나는 그들이 구원받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요나에게 인생의 의미는 조국의 자유였다. 그런데 이제 요나의 분노와 절망에 파묻은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비심이었다.
- 몇 세기가 흐른 후 자신이 최후의 요나라고 말하는 이가 나타나 듣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마 12:39-41). 예수님이 최후의 요나였음을 또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보자. (마가복음 4장 폭풍 속에 배에서 잠드신 예수님)
- (차이) 요나는 그저 바람과 비를 동반한 폭풍 속으로 내던져졌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궁극적인 폭풍, 즉 우리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받아 마땅한 하나님의 모든 심판과 형벌이라는 폭풍 속에 내던져졌다.
- (요나가 회개하고 깨달음을 얻었는가?) 요나가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깊은 곳에 받아들인 남자가 아니라 사악한 멍청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누가 굳이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겠는가? 그런데 이 이야기에 요나의 대답은 왜 나오지 않는 걸까? 이는 마치 하나님이 사랑의 꾸짖음이라는 화살을 요나의 가슴에다 날렸는데, 갑자기 요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우리가 서 있는 것과 같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에게 던지는 것이다. 우리도 요나처럼 기꺼이 달라지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최후의 요나’와 그의 기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지해야 한다.
Ch7. 짝퉁 하나님들의 최후
- 인간이 마음은 우상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이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을까? 물론이다. 우상을 단순하게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해결방법이 있다. 우상은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당연히 하나님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이다.
- (하나님의 약한 모습)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야곱과 씨름할 때 야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약한 척했다. 하지만 갈보리의 어둠 속에서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 인간으로 나타나 정말로 약한 자가 되었다. 야곱이 받은 것은 바로 이 복,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복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를 물리치는 유일한 치료약이다.
에필로그. 나의 우상 찾기, 그리고 갈아치우기
- 성경을 보면 우상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항상 그 우상이 만들어낸 문화를 거부하는 일이 포함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다른 국가들의 신들을 거부해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관행을 본받지 말라’고 말한다(출 23:24).
- 어떻게 우리의 우상을 식별해 낼 수 있을까?
(1) 딱히 생각할 다른 일이 없을 때 당신 마음속엔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2) 당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찾아내는 또 다른 방법은, 당신이 돈을 어떻게 쓰느냐를 살펴보는 것이다.
(3) 진정으로 섬기는 신은 무엇인가? 당신의 기도가 답을 얻지 못하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4) 자기가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살펴보는 방법이다.
-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우상숭배인 탐욕’을 포함해서 마음속의 사악한 열망들을 ‘죽이라’고 훈계했다. 어떻게?
- 우상숭배는 단순하게 하나님께 수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에 온 마음을 두는 것이다. 우상숭배를 뉘우치거나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의지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우상을 뿌리 뽑아도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지 못하면 우상은 다시 자라난다.
-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