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척에 목숨을 걸어라
출처: 김스데*(인터콥 본부사역디렉터) 글/개척정보 2013년 8월호, Vol. 305, pp. 1-7
목숨을 건 교회개척
선교지 현장에서 교회개척은 목숨을 걸고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선교사가 되었으니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개척이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가치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요 2:19)를 분명하게 직시하며 선교에 헌신하고 사역에 임해야 한다. 최대 교회에서는 교회와 선교는 따로 뗄 수 없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말씀에서 ‘복음선교’가 사도들에게 주신 지상과제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사례는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다.
선교헌신의 동기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에서 나오는 만큼 누구나 어떤 교회도 복음선교 즉 교회개척의 사명에서 제외될 수 없다. 교회개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의 힘이 아닌 온전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라고 말씀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머물러 기도했고 사도행전 8장 4절에서 비로소 선교가 시작된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시작된 핍박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나 초대교회가 당한 핍박과 고난은 교회부흥으로 이어졌다. 스데반집사, 야고보 및 가도들, 예루살렘의 감독인 시므온, 서머나 감독인 폴리캅의 순교가 이어졌던 핍박 속에서 교회가 부흥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순수한 복음의 열정, 순교자적 영성, 특별히 재림할 예수님에 대한 소망에 있었음이 틀림없다.
선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선교지에서 교회를 개척하려면 사도행전적인 성령운동과 함께 목숨을 건 재림예수에 대한 소망 즉 ‘마라나타’의 소망으로 사역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되어왔던 선교지에서의 교회개척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인터콥 최바울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교회개척에 관한 관심보다 NGO등 프로젝트 사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말하며 ‘선교사의 교회개척은 사역의 최우선 순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10만 선교사가 한국교회를 통해 일어나며 하나님께서 이 한국교회를 사용하시리라는 비전을 품어왔다. 그러나 많은 선교헌신자에게 교회개척에 관한 열정과 전문성이 결여된 채 추상적인 선교개념과 프로젝트에 대한 환상만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다. 영적으로 황폐한 열방을 음부의 권세가 해하지 못하게 할 가장 강력한 선교전략이 교회개척이다. 또한, 교회개척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이다. 교회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행하는 공동체이다. 최근 세계선교환경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전방개척선교 지역에서 선교사의 입국이 크게 제한받고 있다. 또한 현지 국가와 현지인들로부터 기독교 선교에 대한 저항의식도 점점 높아가고 있다. 이러한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고안된 것이 총체적 선교라고 일컬어지는 전문인 선교이며 NGO 선교이다. 이렇듯 복음사역과 사회봉사를 병행하는 총체적 선교는 단순히 선교지 입국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동시에 육체적, 사회적 필요를 채워준다는 점에서 전인격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여 한국인 선교사들은 최전방뿐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등 비교적 복음화율이 높은 지역에서도 NGO 사역이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사회봉사는 하지만 전도와 교회개척은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경우이다. 교육과 NGO 프로젝트를 만들어 사회의 외형은 그럴듯하지만 구원받은 현지인은 별로 없고 전도자나 목회자 등 영적 지도자도 양성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선교사가 많은 물질을 투입하여 프로젝트를 만들어 놓고 자기 성을 쌓고 군림하는 경우도 눈에 띤다. 어떤 사역자는 아예 떡으로 복음을 대신하며 이것이 복음사역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사탄은 떡을 강조하며 굶주린 예수님께 접근했다.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못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나 육은 무익하다. 예수님은 마지막 지상명령을 주시면서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천국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음부의 권세를 제어하는 권세를 복지단체나 학교가 아니라 교회에 주셨다. 교회가 개척되어야 한다. 교회가 개척되어야 한 민족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모든 족속에 필요한 교회를 세움으로 세례를 주고 양육하여 또 다른 교회를 재생산하라는 명령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마 28:18-20). 이 말씀 앞에서는 그 어떤 사역도 교회개척보다 우선될 수 없다. 오직 주님의 복음만이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영혼이 변화되지 않으면 전쟁과 테러의 상처로 깨어진 세상이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복음선포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이요, 더 나아가 교회개척의 근본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개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력한 개척 열정과 개척에 관한 영성이다. 선교사는 반드시 교회개척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언어와 교회개척
필자가 사역했던 U국에서 선배선교사가 후배선교사를 멘토할 때마다 잊지 않고 했던 말이 있다. “언어훈련은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야 배울 수 있다.” 남들 놀 때 다 놀고, 잘 때 다 자고 언제 공부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으로, 선교사의 사역 즉 교회개척에 있어서 언어습득의 중요성은 백 번을 강조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언어는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언어훈련에서는 언어는 학교나 학원에서만 배워야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물론 제대로 준비된 학교나 학원에서 배워야 한다. 그러나 교과서로만 배우기보다는 실제적인 생활과 사역 가운데 배워야 빠르게 적응하며 제대로 배울 수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실제로 대학에서 언어를 배우면서 완벽하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몇몇 현지 형제들과 교회개척을 시작하면서 언어의 진보가 이전 학교에서 배운 언어훈련에서보다 몇 배 빨라졌다. 실제로 상황 가운데 부딪히면서 깨지고, 깨닫게 됨으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생겨나고 언어의 진보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부족함 가운데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교회개척을 시작하다 보면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한다(행 2:4). 제자들처럼 언어의 진보가 더욱 급속하다.
대부분의 사역자가 언어가 완벽하게 되어야 교회개척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어가 완벽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영적 열정이 초기 선교사로 헌신했을 당시보다 많이 식어있음을 본다. 그 지나온 시간만큼 현실에 안주해 가기 쉽다. 교회개척에는 처음 헌신했던 열정과 열성이 중요하다. 선교사는 낯선 이를 만날 때 부끄러워하지 않고, 언어의 부족함이 있더라도 누구와도 대화하는 사역적 영성이 있어야 하며, 초기정착부터 영혼사역, 교회개척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슬람권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며 신앙을 지키고 있는 현지교회를 탐방하며 그들에게서 영성과 교회개척의 여러 모델을 연구하고 배워 실제 교회개척 사역에 접목하야 한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어떤 모양의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가의 해답이 나온다.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
교회개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척자의 영성이며, 개척자의 영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우리의 비전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즉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는 것이다. 선교 사역의 큰 문제는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 자기 신앙의 의를 쌓고자 하는 사람이 선교사가 되려고 하는 것과 한편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는데도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선교사, 특히 개척지의 선교사는 지원병이 아니라 선택된 차출병이다. 성경은 로마서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기록하면서 선교사는 하나님의 복음 즉 교회개척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개척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입어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한 열정과 헌신이 있을 때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 안에서 성공할 수 있다. 물론 누구나 하나님께서 시키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적인 동기와 목적은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개척자로 삼으셨다는 응답을 받고 그 절대 확신을 가지고 교회개척을 시작하라. 또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과 함께 중요한 것이 개척자로서의 자질이다. 개척자를 포함한 영적 지도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세 가지 확신이 있다면 소명과 은사와 훈련이다. 먼저 소명에 대해서 살펴보면 주님께서는 대체로 그 성격과 취향에 따라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둘째로 은사이다. 개척자는 개척에 적합한 은사를 받은 자다 유리하다. 개척에 적합한 은사에는 우선 믿음의 은사가 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교회개척이란 위대한 믿음의 행동이요 용감한 순종의 행위이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목격하는 기회이다.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며(히 11:1)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볼 때 우리는 그것을 비전이라고 부른다. 크게 생각할 줄 알고, 미래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현지 영혼을 세우실 것이라는 비전이 있는 비저너리visionary가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역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셨는가를 확실히 알고, 그것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마음속에 개척되고 성장한 교회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정신적 창조mental creation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현실에서 물질적 창조physical creation가 일어난다. 그리고 마치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보고, 시련과 역경 가운데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반드시 도우신다는 확신으로 나아간다. 또한 믿음의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주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좋아한다. 그는 모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항상 모험의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다가 실패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복임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사는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목숨 걸고 교회 개척에 헌신해야 한다.
믿음의 은사와 함께 중요한 것이 리더십의 은사이다. 교회개척은 결국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교회개척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다. 이 말씀은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이 되려고 하면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교인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았다. 열두 사도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았을 때, 한번 설교에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현재에도 인도 N 지역에서는 도시 인구의 95%가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아는 바와 같이 중국교회는 세계최대의 기독교 나라답게 엄청난 속도로 부흥하고 있으며 100만 선교사의 비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음으로 사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개척교회들이 세워졌다. 성령 충만과 교회 성장의 관계는 물과 나무와 같다. 성령이 없이는 결코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으며, 성령 충만 하지 않은 사역자는 교회를 개척할 수도, 성장시킬 수도, 생명의 꼴을 양떼들에게 먹일 수도 없다. 하나님의 교회를 개척하기 원한다면 먼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고 하셨다. 교회개척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드는 일이다. 방법론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만큼 좋을 수는 없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
교회개척자로 살아라
선교지는 치열한 영적 전쟁터이다. 교회개척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반면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선교지의 환경(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등)을 통해서든, 거짓 믿음의 형제를 통해서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교회개척을 방해할 것이다. 고난 없는 교회개척은 없다. 단시일에 수백, 수천 명의 성도를 모아야겠다는 사역자의 야망(?)은 영적 사역에 최대의 걸림돌이다. 선교지에서의 교회개척은 그야말로 사도바울이 고백한 ‘해산의 고통’을 떠올릴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이 따르는 작업이다. 영적 전쟁이 치열한 선교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과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바울 일행은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기도하고 찬송했다(행 16:25). 그들에게는 찬송과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인간이 가장 무기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직접 나서서 손을 쓰신다. 초자연적 기적으로 간섭하시는 것이다(행 16:26). 그러므로 특히 선교지 교회개척에서는 진리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능력전도가 복음의 접촉점이 될 것이다. 또한, 가정 전체가 교회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이슬람권에서 형제는 형제가 자매는 자매가 양육을 해야 하므로 가족 전체가 교회개척에 헌신해야 한다. 실제 필자는 이슬람권에서 교회개척을 하면서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내가 없었다면 교회개척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현지 자매를 맡아 현지 여성들에게 맞는 정서와 감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때 주님의 위로와 역사가 크게 일어났다. 더불어 아내의 영성도 사역을 통해 회복되었고 영혼을 향한 열정으로 새로워졌다. 부부가 함께 사역하라. 그리고 선교지에서 교회개척자로 끝까지 살아남아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게
선교사의 생명력은 영혼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영혼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이 풍성하게 있어야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교회개척자는 기질적으로 영혼을 좋아하고 사랑이 많은 사역자이어야 한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자의식이 강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은 개척자로서 적합하지 못하다. 개척자로는 외향적이며 낯선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가고 신뢰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자가 적합하다. 선교사는 팔방미인이 되라는 말이 있다. 즉 어떤 사역이든 해야 하고, 무엇이든 맛있게 먹고, 누굴 만나도 친근하게 이야기하며, 어디를 가든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개인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것에 시간과 마음을 기쁨으로 들여야 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고 양육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또한 선교사는 강해야 한다. 특히 기도의 훈련과 제자양육훈련에 탁월해야 한다. 좋은 영성과 영혼에 대한 열정을 가졌다 하더라도 제자양육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개인의 좋은 멘토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교회를 개척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양육에 대한 인내와 연단의 훈련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교회개척 이후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선교사는 영적으로 리더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리더십은 은사로서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역할로서의 리더십을 말하는 것이다. 선교사는 리더십의 은사가 없는 것 같아도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선교사는 ‘지도자형 관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도자는 비전과 영향력에서 뛰어나고 관리자는 계획과 조직력에서 뛰어나다. 지도자는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강하고, 관리자는 변화로 말미암은 복합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교회개척이란 결국 사람을 키우는 작업이다. 성경에서도 지도자의 은사를 받은 자, 즉 사역자의 사명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엡 4:11-12).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교회의 성장을 위해 사역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지에서는 선교사 혼자서 일하기가 쉽다. 그러나 진정 교회가 토착화되기를 원하고 성장되기를 원한다면 사역자는 현지인들이 섬길 수 있도록 양육하고 세워야 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품고 양육하고 새워나가는 것이 교회개척인 것이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멈추지 않게 하라.
강력한 교회개척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필자는 사역자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하였다. 사역자 모임에 초대되었던 인도 현지 모하드 목사(Vision India 대표)는 “지금 인도는 이전에 보지 못한 강력한 교회의 브흥이 임하고 있다. 인도의 N시, R시, B시, D시 등지와 수많은 작은 촌락과 마을에서 강력한 교회 부흥이 일어나고 있으며, 지난 해(2012년) 여름 인도 전 지역에서 모인 10,000여 명의 현지 청년들이 인도의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향해 헌신하는 Vision India를 외치며 일어났다”고 보고하였다. 실로 믿기 어려운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순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합 1:5) 하신 말씀이 생각나면서 큰 감동과 도전이 되었다. 더불어 “나는 과장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지난 7년간 가장 핍박이 심한 주에서 회심한 보즈프리족의 수는 최소 5만 5천여 명이 분명합니다”라는 한 인도 선교사의 고백은 열방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과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신하게 했다.
중극의 그리스도인들은 마오쩌뚱의 통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당시 마오쩌뚱은 외래 종교에 물들었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지식인과 도시 관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시골 골짜기로 추방하였다. 마오쩌뚱이 죽은 후에도 핍박은 계속되었고 교회지도자들은 죽가나 길거리로 끌려다니며 온갖 고초를 겪었다. 마치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 8:3)와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핍박은 중국교회의 생명력을 더하게 하였고 고난을 극복한 중국 지하교회는 1억 5천 명이라는 경이적인 교회개척을 이루었다. 우리는 중국교회의 부흥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교회개척과 그에 따른 부흥은 순교를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선교지에서의 교회개척은 그 성장속도가 믿기 어려울 만큼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복음제한지역’으로 불리는 이슬람지역에서도 믿는 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음은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선교지마다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복음화 증가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전통적인 선교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역동적이고 창의력을 가진, 열정과 헌신의 준비가 되어 있는 선교사들이 한국교회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강력한 교회개척자로 훈련하고 세워야 한다. 선교사에게 교회개척을 강조하지 않고, 가서 살아남는 방법만 가르친다면 우리는 결코 복음의 부흥을 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 열방은 강력한 교회개척의 부흥으로 일어나고 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6)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_마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