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가 선교사입니다!

by honey posted Aug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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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가 선교사입니다!

 

출처: 김***(인터콥 본부SKS) 글/개척정보 2013년 4월호, Vol. 301, pp. 1-7

 

 

들어가며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 즉 사도(보냄을 받은 자)들의 파송(눅 9:1-2)을 시작으로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와 바울의 파송과 함께 주님께서 친히 가시려는 각동각처(눅 10:1), 모든 민족을 향한 본격적인 복음의 출항을 보게 된다. 주기적이고 계획적인 로마 정권의 강력한 핍박에도 복음은 로마전역으로 누룩처럼 퍼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핍박이 멈추고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교회역사에서 부정적으로 회자하는 중세시대의 교회에서도 선교사들을 유럽과 아시아로 보내면서 복음은 지중해에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신대륙 발견과 희망봉 발견으로 새로운 선교의 시대가 막을 열게 되면서, 탐험에 나서는 배들은 항상 카톨릭의 사제나 수도사를 동선시키며 곳곳에 카톨릭 교회를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복음은 남미와 아프리카, 인도와 중국, 일본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기독교회는 할레대학 출신의 경건주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의 선교참여와 모라비안 교도의 선교활동을 통하여 기독교 선교의 문을 열게 되었다. 그 이후 근대 기독교 선교는 윌리엄 캐리, 허드슨 테일러를 비롯한 수많은 영웅적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해안에서부터 내륙 깊은 곳까지 전해졌다. 기존의 국가단위에서 벗어나서 종족단위의 선교로 시작된 현대선교. 교회는 이제 마지막 남은 프런티어의 미전도 종족을 향해 선교사들을 끊임없이 파송하고 있다.

 

변방 팔레스타인 시골 출신 소수의 무리에서 출발한 선교는 이제 마지막 남은 땅끝 미전도종족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완성을 앞두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시작된 선교사 파송은 지난 2천년간 각 시대의 교회와 선교단체를 통하여 지속하며,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역사(History)는 완성되어 가고 있다.

 

1979년 나일선(Marlin L. Nelson)선교사가 한국인 선교사의 수를 조사할 당시 불과 93명이었던 것이 1990년 말 1,645명, 2000년 말 8,103명, 2006년 말에는 14,905명으로 집계되며, 2012년 12월 말 기준으로 169개국 24,742명으로 2011년에 비해 1,411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의하여 조사 과정에서 빠진 선교사들도 다수 있으므로 실제의 수는 그보다 더 많으리라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1979년 이후 지난 33년간 260배 이상의 급성장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선교단체의 수 또한 1979년 말 21개, 2000년 말 74개, 2006년 말 136개, 2012년 252개의 교단과 선교단체가 조사에 응한 것으로 규모 면에서 약 10배 남짓 성장했다. 한국교회는 해마다 1,000명 이상의 새로운 선교사를 배출하며 21세기 초반 세계선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이고 가시적인 성장과 함께, 선교 현장의 곳곳에서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양적인 성장에 몰입해 규모를 경쟁하여 선교사 선발 및 훈련 과정이 엄밀하지 못해 예수의 선한 일꾼(사역자)으로 훈련하기가 어렵게 되고 책무도 약해지면서 선교사의 자질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선교사역은 직접 공동체의 위임을 받아서 타문화권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순간적으로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선교사를 세우실 때는 한 사람을 그의 인생 전반에서 준비시키시고, 헌신하게 하시며 훈련하신 후에 사용하신다. 선교사역에서 한 사람의 소명, 경험, 헌신, 준비, 훈련, 파송, 타문화현장에서의 사역 및 생활은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선교사의 사역과 생활 그리고 준비과정 등을 이해해야 선교를 이해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선교할 수 있으며 선교사역을 도울 수 있다. 파송 교회의 모체인 교회와 선교단체는 준비되고 훈련된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딤전 4:6)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선교사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준비와 자질들은 너무나 많다고 할 수 있다. 땅끝 프런티어에서 믿음의 공동체가 없는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사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훈련은 무엇일까?

 

 

기본으로 돌아가자 Back to the Basics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문화권에서 실용주의적이고, 합리적이고, 기능적이고, 경험적인 것이 어디서나 유용하다고 평가하지만, 타문화권에서의 사역과 생활에는 기존의 상식과 이성, 환경과는 다른 다양한 문화와 복합적 변수, 영적 환경이 있다. 그래서 자문화에서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거나, 다른 방법이나 전략을 사용해야 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하며 돌파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사역자에게 기본기가 다져있지 않으면 사역자는 처음에는 갈등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낙심하고 낙담하게 되다가 급기야 탈진하게 된다. 어떠한 난관, 돌파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이 되는 기초, 기본기가 없다면 어떻겠는가?

 

그렇다면 기본은 무엇이고,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님의 사역자로 선한 일꾼에게 필요한 기본은 무엇일까? 그것은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으로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하는 일(딤전 4:6-7)이라 할 수 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주님의 사람들에게 있어 평생의 기본은 바로 경건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경건 생활은 QT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계속된 예배와 기도, 말씀연구와 PBS, 휸 등 경건에 이르기에 필요한 모든 영적 종합비타민으로, 이를 위하여 수고하고 진력하는(딤전 4:10) 헌신이라 할 수 있다. 경건의 훈련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감은 사역자가 평생 주님의 길을 좇아가는 순례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제자의 삶을 사는 것으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지속하여야 할 반복된 훈련이며 평생의 기본이요 사역이요 감당해야 할 사명이다. 기분이 튼튼해질 때 “주님, 제가 선교사입니다”라는 고백이 말하는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본래 주님께서 부르신 사명에서 사역자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점차 성숙해 가는 선한 일꾼,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마 25:21)이 될 수 있다. 특별히 선교사는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을 달려야 하는 경주자이기에 영적 기초체력과 기본기가 훈련되어 있어야 완주할 수 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Back to the Bible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최선의 사역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지의 사역이란 전도와 양육을 통한 교회개척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하여 말할 수 있는데, 이 사역은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성경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사역이 아닌, 모든 사역 원리와 방법, 전략과 원칙, 사역 기조가 성경에 근거해야 하고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딤전 4:13)해야 말씀으로 사역할 수 있고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목숨 걸고 사역할 수 있다.

 

중세 교회가 미신과 인간의 전통 그리고 교권 남용 등 비 신앙적인 면에서 진통을 겪고 있을 때 변화를 시도한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시대의 어둠 속에서 한숨만 짓고 원망과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암울한 시대를 깨워보겠다는 밝은 소망과 희망의 개혁운동들(Reformation Movements)이 있었다. 카톨릭 자체의 정화운동으로 시작된 반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 마틴 루터와 쯔빙글리로 대변되는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 그리고 급진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이 있었다.

 

카톨릭 내에서 일어난 반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부패 원인을 진단하고 무능하거나 타락한 성직자에 대한 추방과 대사 남발의 규제, 활발한 선교와 교육 사업 등을 통하여 개혁을 시도하면서, 교회 자체 내의 교리와 전통도 새롭게 규정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거대한 카톨릭의 전통 테두리 안에 머물렀다.

 

관료적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이전에는 감히 말할 수 없었던 기치를 내걸고 개혁을 시작했다. 이 개혁운동은 천 년의 여리고성과 같았던 카톨릭의 전통과 관습과 불의에 대하여 죽음을 각오한 혁명적 개혁이었다. 종교개혁 운동의 권위는 성경에 있었는데(Sola Scriptura), 이는 ‘교회’와 그 전통을 권위로 삼았던 로마 카톨릭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영감 있고 교회의 어떤 전통보다도 권위가 있으며,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전통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외침이었다. 한편 카톨릭의 전통과 교리, 예전에 있어 어떤 영역은 그대로 수용하거나 타협했기에 불완전한 개혁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급진적 종교개혁자들은 기존의 관료적 종교개혁가들(Magisterial Reformers)이 온전히 성경에, 특히 신약성경에 충실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들의 말씀을 통한 개혁의 과격성 혹은 급진성(Radicalism)이 전통과 관습과 관행에 집착하고자 했던 주류들에게는 불편하게 보였고,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당시 카톨릭 자체의 반종교개혁자들과 관료적 종교개혁자들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고 이단시 되었다.

 

기독교의 시발점인 종교개혁도 한편에서는 이전 전통과 교리, 예전을 수용하거나 타협하여 완전한 개혁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존 개혁자들에게 광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성경의 진리대로 살아 내려 했던 이전 세대의 성도들을 보며 오늘날 이 시대를 감당하는 우리도 성경으로, 성령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성경을 가지고(with the Bible), 성경으로(to the Bible) 사는 삶으로 열매 맺으며 그 능력으로 사역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의 영적 사역을 감당할 왕의 군대는 지적이고 정적인, 이론적인 성경관이 아닌, 역동적(dynamic)이며 생명력 있는 운동성의 경향성을 가지고 철저하게 성경의 원리와 원칙, 정신을 가진, 말씀을 알고 말씀대로 살아 내려 애쓰는 훈련된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성결로 돌아가자 Back to the Holiness

 

구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중요한 많은 주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교훈은 거룩과 성결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함에 실패함으로 많은 시험과 연단, 고통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민족들과는 다르게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룩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즉 선민들의 인생과 역사에서 전쟁의 기본은 바로 성결이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수 3:5). 성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전쟁에 승리할 수 없었고,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할 수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지성소에서는 대제사장이라도 성결하고 거룩하지 않으면 죽게 되어 있었다.

 

선교사 훈련기관에 따라서 훈련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크게 영성훈련, 인성훈련, 타문화권 적응훈련, 선교 전략적 측면의 내용은 대부분 다루고 있다. 영성훈련은 선교사의 소명으로부터 헌신, 자신의 영적 부흥, 경건의 훈련, 제자훈련 등의 영역을 포함한다. 그런데 많은 선교훈련에서는 영성훈련 영역의 비중은 매우 가볍고 간단하게, 이론적으로만 가르치고 지나가는 면이 많다. 영성훈련에서 다루어야 할 많은 영역이 있지만, 특히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죄와 거룩, 성결에 대한 부분이다. 시대가 어두워가고 죄악과 불법이 관영할수록 사람들은 죄와 거룩에 대해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그 때문에 죄에 대한 무감각이 영적 문둥병처럼 선교계에도 침투하여 많은 사역자가 감염된 것이다.

 

사역자의 질적인 부실 문제라 말하는 것에는 인격적 미성숙, 팀사역의 미숙함, 선교학적 지식이나 신학 교육의 부재, 언어습득 능력의 부족, 타문화 적응능력의 실패 등으로 다양한 원인을 찾아내고 대안을 찾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과 성결의 문제라 보인다.

 

많은 사역자가 현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갈등,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어떤 경우 더 큰 죄의 길로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악한 생각(욕심)은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약 1:5)을 가져오는 것이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거룩한 군사로 준비되지 않은 소치이다. 죄에는 마음에서 나오는 죄(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 증거, 훼방),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죄(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수군수군 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한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죄(자기 사랑, 돈 사랑, 자긍하는 자, 교만, 훼방, 부모 거역, 감사치 아니함, 거룩하지 아니함, 무정한 자, 원통함을 풀지 아니함, 참소, 절제하지 못함, 사나움,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함, 배반하여 팜, 조급한 자, 자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 육체에서 나오는 죄(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가 있다.

 

주님이 쓰시고자 하는 진정한 사역자는 이미 생명 얻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맞은 자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선교가 교회에서 많이 강조되면서 나온 선교 헌신자 중에는 이러한 부분이 전혀 해결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런 의지나 결단도 없이 선교훈련에 임하는 지원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현장의 선교사들이 무엇보다 회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청빈한 삶과 순결하고 거룩한 삶이다. 거룩이 능력이요 전쟁의 가장 강력한 사역무기이다.

 

 

나가며

 

21세기 선교사들은 선교훈련을 함에 실질적인 선교전략 연구 및 선교지 연구가 필요하며,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선교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선교사들이 가장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인성 교육 및 공동체 훈련을 보강하며 영적 탁월성을 가지면서도 전문성을 가진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외 새로운 선교의 핵인 중국, 인도, 남미, 러시아, 이집트, 나이지리아, 이란 등의 선교사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국내외의 급변하는 선교동향과 전략에 관한 연구와 벤치마킹도 필요하다. 우리보다 먼저 선교를 시작한 교회들에서 이어받을 것은 받으며 한편 글로컬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과 함께 한국교회는 21세기에 선교의 공동체로서 지속 발전하며 전략적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 남아 있는 프런티어에서는 절대적으로 세례 요한의 영성을 자진 선교사들이 절실히 요청된다. 요한은 아이 때부터 사역을 시작하는 30세까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서 훈련하였다(눅 1:80). 그는 그곳에서 사역자로서의 기본으로 돌아가 철저하게 구약의 예언된 말씀 속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마 3:2)는 선지자적 메시지, 사백 년간 침묵하시고 기다리셨던 하나님의 메시지를 세상 어둠을 향해 폭발적으로 뿜어내었다. 빈들에서 약대 털옷과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평생 삶을 훈련하며(마 3:4) 경건의 훈련 가운데 있었기에 주의 초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주님의 초림을 준비한 세례 요한처럼 이제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영광 가운데 참여하기를 원하는가? 마지막 믿음의 세대, 부흥의 세대로 다시 오셔야 할 주님을 위해 마지막 남은 과업을 완성하는 영광된 세대로 서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기본으로 돌아가 경건의 훈련, 말씀의 능력, 거룩의 훈련으로 구별된 영적 나실인, 선교사로 자신을 서원하고, 훈련하고, 헌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