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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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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인가 이데올로기인가

 

출처: 서**(한반도국제대학원교수) /개척정보 20133월호, Vol. 300, pp. 1-7

 

 

I. 들어가며

 

성장이 정체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부정적인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나 당분간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를 향한 기도와 헌신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 체제하에서 물가상승과 경기침체, 그리고 청년 실업률 증가와 사회 양극화의 문제는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고, 이것은 미전도종족의 환경에도 영향을 미쳐 계층과 세대 간의 갈등과 충돌이 나타나고, 종족 간, 종교 간의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세상을 등지는 근본주의와 세상에 철저히 영합하는 현실주의가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세상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사회가 되면 될수록 더욱 치열하게 세상에서 살아남는 사람들과 거꾸로 세상을 탈피하고 세상 밖의 꿈을 좇는 사람들로 크게 나뉠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당시의 로마제국을 통찰하면서 문명사적 꽃이 아닌 짐승으로 진단한 것처럼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갈수록 짐승의 논리가 가정을 파괴하고 학교를 정글로 만들고, 공동체를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무한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결국, 인간의 삶의 모습은 철저히 현실에 영합하여 살아가는 1차원적 유형과 반대로 현실을 초월하는 종교적 유형으로 양극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슬람권에도 세속주의가 대세인 듯하나 갈수록 이슬람원리주의(살라피즘)가 종교적인 슬로건 차원에서 지지를 얻어갈 것이다. 선교자원의 차원에서 볼 때에도 짐승처럼 덮쳐오는 세상 앞에서 두려움을 품고 생존하고자 발버둥치는 청년들이 대세를 이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세상과 타협하는 자라고 비아냥거리며 종말의 슬로건을 마치 운동권의 구호처럼 외치는 종교형 인간들이 득세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두셨다. 세상 밖의 신비주의도 아니고 세상과 하나되는 세속주의도 아닌, 3의 자리에 제자들을 세우셨다. 바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다. 선교는 운동권처럼 슬로건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상황에서 세계선교 운동의 지속 가능한 길을 찾고 문제점들을 극복해 갈 것인가? 본 소고에서 필자는 위에서 말한 제3의 자리에 어떻게 선교를 바라보며 어떻게 복음으로 무장하며 대안적인 선교모델을 구축해 갈 것인지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II. 복음인가, 이데올로기인가?

 

해방 후 한국의 근대사에서 한 번도 좌파 운동권이 국가를 책임지고 경영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비판은 풍부하나 대안을 정립하지 못했고, 그와 같은 사실을 그들만 몰랐을 뿐 대중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과 미래를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했지만, 자본주의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를 비판할 능력만 있었을 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아젠다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에 대중은 현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현실의 변혁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운동은 사람들에게 헛바람만 일으키고 결국은 극도의 환멸로 몰아넣을 뿐 세상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운동권이 진정 민중을 사랑했던가? 아니면 거대한 권력에 대한 분노와 머리에서 나온 아젠다로 구성된 이데올로기로 거리에 나선 것인가? 그들이 진정 민중을 사랑했다면 혁명보다는 어려운 민중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대안적 사회를 끊임없이 모색해 갔을 것이다. 남은 것은 운동에 대한 환멸이며, 운동권들에게 돌아간 것은 계급장과 죽은 명예였다.

 

서론에서 필자는 세상이 물질적 양극화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세속주의와 근본주의의 양극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속주의와 근본주의 모두 대안이 되지 못하며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철저히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근본주의가 종교적인 현상이라서 현실 초월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보기 쉽지만,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세속주의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소위 말하는 테러의 중심세력들이 추종하는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슬람적 레닌주의라 할 수 있다. 레닌은 제정 러시아 말기에 충분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전위 조직을 통해서 사회와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 위에서부터 사회주의 건설을 추구했다. 이처럼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도 이와 같은 전략전술을 펼치고 있다. 과연 그들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함부로 테러를 자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쿠란에 자비로운 알라에 대한 찬미가 많이 있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는 적에 대한 복수의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이슬람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다는 그들의 마음이 진정 무슬림을 사랑하는지 의문이다.

 

과거 1968년 프랑스에서 5월 혁명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갔을 때 프랑스 공산당은 대중의 아우성에 극도로 냉소적이었고, 자본가 계급이 타파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절대 도래하지 않으니 까불지 말라는 투의 입장을 견지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병원에서 등등 작은 사회의 영역에서(이를 미시권력이라고도 한다) 사람을 옭아매고 있던 지배의 사슬을 더는 견딜 수 없다며 길거리에 나왔던 수많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스탈린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젖어 외면했던 것이 바로 프랑스 공산당이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는 유럽에서 사망선고를 당했다.

 

선교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고, 이는 현지인 제자 공동체가 복음의 빛을 증거하도록 돕는 사역이다. 그런데 자칫 하다가는 세속주의에 대한 반대운동 차원에서 선교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민족과 영혼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운동의 슬로건으로 전락하여 마치 운동권처럼 선교에 헌신하는 날파리와 같은 이들에 의해서 선교운동이 주도될 수 있다. 워낙 세상에 눌려서 살거나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왔기에 슬로건이 이들에게 심적인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충격만으로는 대안을 만들 수 없다. 이런 경우 무엇이 문제인가? 선교는 복음운동이나 결국 그 답은 복음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필자가 성경에서 발견한 복음에 대한 맥락적인 출처는 천국 복음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 속에 처음 등장하고 있고, 이는 세례 요한의 선포를 이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으로서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는 세상이 임박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반역과 죄의 주체들은 불로 심판을 받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고, 우주의 환경 또한 새 창조된다는 메시지이다. 이러한 천국복음의 메시지에는 능력이 강하게 전제되어 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영생의 선물이라는 은혜가 보다 강조되고 있다. 성경을 통해서 시대와 역사를 분별하고 소명을 가지게 된다 할지라도, 보다 근본적으로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선교는 운동권의 슬로건에 불과할 것이다.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그 은혜의 복음, 탕자의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의 인내와 기다림의 사랑, 죽음까지도 대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정신이 전제되지 않은 천국운동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종말운동, 능력운동, 성령운동, 축사사역 등등 선교 패러다임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슬로건들은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과 부활이라는 은혜의 메시지와 삶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는 마치 삶은 감자에 싹이 돋길 바라는 허망한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을 가슴 깊이 경험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바로 서도록 가르치고 실천해야 한다. 세상은 영적으로 양극화 되면서 근본주의가 강화될텐데 선교운동이 근본주의자들의 도피처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III. 지속 가능한 선교

 

대학생 사역은 신입생 입학 면접 때에 승패가 갈린다는 설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 성인 사회의 사회화 과정에 편입하지 않은 신입생들이 새로운 사조에 접하기 쉽고 그렇게 선교를 알게 되었어도 대학 사회에서 훈련받고 단기선교사(: 인터콥의 SM 선교사나 CCC의 단기선교사)로 나가려면 대학교 3,4학년이 되어서는 이미 늦은 감이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필자를 괴롭혀 온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입생 때에 선교에 뜨겁게 열광했던 청년들이 4학년에 접어들면서 슬금슬금 현실을 찾아 떠나며 장기적인 선교네트워크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장기적인 선교네트워크란 꼭 장단기 선교사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선교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수많은 지원 네트워크와 함께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민족을 품었던 이들이 여러 교회에 속하고, 여러 지역에 살고, 다양한 직업현장 속에 있다 할지라도 선교의 단위인 종족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활발한 정보공유와 기도합주회를 통해 현장 파송 선교사와 한 공동체가 되어 사역하는 것이 선교이다.

 

그런데 왜 대학교 4학년이 되면 사라지는 것일까? 필자는 최근에 한동대 출신 한 형제자매의 결혼식에 참석한 바 있다. 그런데 결혼식 마지막 즈음에 인터콥 동아리의 특송이 있었는데 예전에 그토록 헌신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활발한 동원을 통해 선교의 대중화라는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교회 개척을 통해 열매로 나타나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신입생 시절 뜨겁게 선교운동을 부르짖던 청년들이 대학교 4학년이 되면 선교의 열정을 내려놓고 현실을 찾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에게 선교가 새로운 삶의 대안이 아니라 현실 도피적 슬로건 차원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교자의 심정으로 어린 양을 따라가자는 극단적인 메시지에 신입생들이 감동하고 헌신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메시지만을 자꾸 들어서는 공허하여 현실을 살아갈 힘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동원성 메시지로 청년 선교운동이 전개된다 하더라도 그들이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평생 선교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는다면 지금의 이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IV. 세상 속의 선교사

 

따라서 다양한 선교 메시지와 훈련이 나와야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던 예수께서는 물고기를 낚는 어부 이상의 <어부되심>의 치밀함을 보이셨다. 선포하심과 삶, 기다림과 실천을 통해 예수께서는 상당한 기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일꾼으로 가르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대학교 3-4학년생들을 위한 차별화된 선교훈련이 필요하다. 대학 신입생들이 선교에 입문하는 것은 인터콥의 선교캠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다양한 캠퍼스 선교단체들이 인터콥의 선교캠프와 비전스쿨을 적극적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도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의 소프트웨어를 위해서는 한국 교회와 선교단체가 제혜를 모아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현장에 선교사가 투입되면 5년 정도 지나면 교회개척의 윤곽이 드러난다. 만일 이 5년의 첫 기간에 교회개척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면 그 선교사는 특별한 변화의 계기가 없는 한 교회 개척의 소명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교회개척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 단계는 현지 교회의 제자들을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제2기 사역이 따라온다. ‘자연농업을 도입한다거나 다양한 직업훈련과 비즈니스를 통해, 직업적 전문성을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개척된 교회의 제자들이 전도와 양육 등의 교회개척 사역을 적극 수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직업적 전문성 때문에 사역적 전문성을 도외시 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두 가지를 병행하는 현지 제자 공동체가 세워지도록 선교사는 노력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재정적인 지원을 받더라도 현지 교회는 자치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결국 선교사들도 재정적인 지원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텐트메이커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년 선교사들이 초기 5년의 사역 동안은 전적으로 언어를 익히며 복음 증거와 교회 개척에 집중하고 그 이후에는 직업적 전문성을 갖고 제2기 사역을 열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의 때부터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는데 세상이 다 뭐냐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청년들을 가르치다가는 결국 이들은 4학년이 되면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사회에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학자금의 부담을 가진 이들에게 왜 세상을 아직 버리지 못했느냐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들은 선교에 대한 환멸감이나 정죄감, 죄책감 등을 가슴에 안고 떠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교공동체에는 결국 세상을 책임감 없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대책 없는 한량들만 남을 것이다. 따라서 청년들을 위한 선교훈련은 더 총체적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필자는 분명 선교지가 새로운 돌파구라고 확신한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땅으로 나아가서 믿음의 제2의 인생을 살고,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충분히 인생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족을 함께 품고 달려왔던 청년들이 졸업 후에도 혼자 외길의 홀로 투쟁의 길을 걷지 않고 팀이 되어서 선교현장에서 주님과 함께 창의적이고 신나는 삶을 펼쳐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데 만일 청년들에게 모조리 버리고 현실을 던져버리고 떠나라고 한다면 과연 그들이 그렇게 떠날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따라서 대안을 찾아가는 선교운동, 그것을 위한 신학적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평생 이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종족 선교 네트워크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종족을 사랑하고 신앙으로 입양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기도를 나누면서 언제든지 현장 선교사와 교류하면서 함께 선교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V. 결론

 

이상에서 필자는 선교는 결코 운동권 논리로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중을 사랑하는 운동권은 많지 않다고 확신한다. 세상을 혁신해야 한다는 순진하고 무지한 감상주의와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의 결말을 우리는 안다. 철저한 현실타협주의자가 되든지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공상적 정치인이 되어 나타난다. 핵심은 복음에 대한 이해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며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아가 회복되고 세상에 물든 영혼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인도할 수 있는 훈련이 뒤따라야 하고 지속적인 공동체 네트워크로 평생을 선교할 수 있도록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훈련도 생활화되지 못하고 신학교라는 상아탑에 한정되다 보니 신학에 대한 거부감이 평신도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마지막으로 신학의 대중화를 주장하고 싶다. 필자도 대학원에서 신교목회과정을 섬기면서 처음으로 신학의 필요성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 신학에는 크게 5개 분야가 있다. 성경 66권을 역사적 맥락과 문학적 맥락에서 조명하고 이해하는 성경신학, 성경시대 이후 나타난 다양한 신학적 질문과 이단의 도전 때문에 성경을 기초로 교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신학, 역사 속에 등장했던 교회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신학, 선교의 신학적 전략적 분야를 다루는 선교신학, 그리고 예배학, 목회 등 구체적인 사역 분야를 다루는 실천신학이 그것이다. 학문적으로 이러한 신학에 접근해 가는 것은 신학자들로만 충분하지만, 일반 성도들과 선교사들도 기본적으로 성경, 교리, 역사, 선교전략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정리하고 배워가야 한다. 그래서 필자가 섬기는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www.kuis.ac.kr) 선교목회과정에서 아시아신학연맹ATA에서 정한 기준에 충족하는 최소한의 과목들만 개설하고 있고, 국제학 석사과정에는 선교현장의 지역학과 종교 그리고 사회문화를 배우는 과목들을 갖추고 있다. 아무쪼록 갈수록 첨예한 위기 속에서 질고가 가중되더라도 우리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은혜와 감사로 영혼과 민족을 섬기는 선교를 지속해서 감당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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