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와 이슬람권 프론티어 선교의 과제
출처: 서**(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글/개척정보, 2012년 4월호, Vol. 289, pp. 1-8
I. 들어가며
한국교회는 Target 2030(10만 선교사, 100만 중보기도자)의 비전을 통해 세계 복음화의 남은 과제의 완성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교회의 성장 둔화와 청년 그리스도인의 선교사 지원율 감소 현상은 또 하나의 심각한 위기이며 논쟁거리이다. 한국 교회의 성장 동력에 문제가 있는데 10만 선교사를 감당할 능력이 그때까지 살아 있겠느냐는 회의론에서부터, 이제는 해외 선교보다 국내 전도에 교회 자원을 역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제기될 것이다. Target 2030 자체가 10만/100만이라는 양적 기준으로 비전 설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의 둔화 자체가 비전 실현의 토대를 흔들지도 모른다. 게다가 청년층의 감소로 교회가 고령화되고 있기에 선교사 지원 연령 또한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이 현장에 투입되면 대부분은 그 선교사와 연령상으로 같은 세대를 대상으로 사역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중동 이슬람 지역의 인구 50%가 15세 미만이고, 전체 이슬람 지역을 놓고 볼 때 30대 이하가 전체 인구의 대략 70%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추세로 한국인 선교사 지원자가 30대 이후에 파송된다면 선교 현장에서는 나머지 인구 30%의 영혼들을 중심으로 제자양육과 교회개척 사역하게 된다. 물론 생물학적 나이와 영적인 것이 반드시 상관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선교사들은 연령상으로 비슷한 영혼을 사역한다. 비록 30대 이상의 현지인들이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의 변화과정이 어렵고, 또 제자화 되더라도 현지 교회의 역동성 면에서 한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90년 이후부터 한국 교회의 성장 둔화와 고령화의 현실을 놓고 수많은 설명 모델과 분석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본 글에서는 그런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국내외적 조건에서 한국 교회의 성장 위기를 극복하고, 또 나아가 더욱더 역동적인 이슬람권 선교를 하기 위한 몇 가지 과제들과 방향을 점검하고자 한다. 먼저 국내 교회 현실과 해와 선교현장의 사역 전략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긴밀한 상관성을 지닌다는 차원에서 우선 교회의 이중 구조 논의를 통해 출구전략을 모색하겠다. 또한 한국의 교회 성장 둔화가 글로벌 교회의 현상인지 점검하고 세계 복음화의 과제를 완성하기 위한 글로벌 교회 네트워크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또한 글로벌 미션 파트너십을 위해 한국교회가 맡아야 할 영역에 대해서 모색하는 차원에서 본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II. 이중적 교회의 역동성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이 세상에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초한 모바일mobile 사역과 가정을 단위로 하는 로컬local 사역이 긴밀히 연결되면서 구조적인 역동성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물론 구조와 시스템이 열매를 낳거나 또 역동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제한받지 않고 반대로 그 생명력을 표출시키는 운동의 구조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도바울도 도시를 중심으로 사역했고, 그 도시에 자생적인 공동체와 지도자가 생기면 다른 도시로 이동하여 동일한 개척사역을 수행했다. 그러면서 개척된 교회 공동체를 순회하거나 방문이 어려우면 당면한 문제를 다루는 서신서를 통해 로컬 교회를 섬겼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역사는 소단위 가정 공동체들의 지역적 점조직 구조와 사도들의 순회사역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고, 현대에 와서는 이를 각각 모달리티Modality와 소달리티Sodality라는 용어로 정의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교회 구조의 역동성은 오늘날 중국 교회의 성장을 살펴보더라도 잘 나타난다. 필자는 3년 전에 중국의 지하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대학교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주일 예배가 이루어진다는 지하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교회는 지하에 있지 않았고 지상 2층에 강당을 임대해서 50-60명의 대학청년들이 모이고 있었고, 예배의 진행과 인도, 그리고 메시지 또한 대학생 리더들이 직접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순회 설교자가 방문하여 체계적인 설교를 통해 지하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유명한 설교자 중심으로 대형화된 교회가 중국에서 나타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 또한 영향력 있는 순회사역자들이 자생/자치/자립의 지하교회를 섬기면서 국가의 통제와 탄압에도 풀뿌리처럼 확산되는 것도 중국 교회의 현실이었다.
한국 교회 또한 순회 부흥사를 통해 로컬 교회들이 전도와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을 많이 받았고, 예배 갱신 운동으로서는 <두란노 경배와찬양>과 같은 초교회적 소달리티 운동을 통해 청년들이 예배의 관념성을 극복할 수 있었다. 대학생들은 초교회적으로 캠퍼스 선교단체에 참여하여, 삶의 현장에서 예배, 전도, 제자훈련, 선교운동 등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었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의 풀뿌리형 소달리티 운동을 통해 한국 교회는 다양한 은사들을 경험했고, 그러한 강화된 역량을 통해 지역교회 또한 성장 동력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교회의 집중된 역량과 훈련을 통해 소달리티의 운동도 큰 힘을 받았다는 점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이중구조의 상호협력과 균형은 교회의 건강한 생체리듬이다.
만일 두 구조간에 갈등과 긴장이 심화되면, 지역교회는 그만큼 사회로부터 거리가 멀어질 수 있고, 중앙집권화된 피라미드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거나 아니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교회주의가 강화될 것이다. 한편 소달리키는 고유의 기능을 포기하고 모달리티화의 유혹을 받게 되고 결국 경쟁과 갈등으로 공멸하고 말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을 보더라도 성경은 세속적인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화된 왕정체제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지파중심의 분권화된 로컬 공동체와 사사, 혹은 사무엘과 같은 선지자들의 순회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 초기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예표적으로 보여준다. 즉, 하나님의 공동체에서는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왕이시며, 두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공간적 한계를 초월하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성령의 은사와 열매를 통해 공동체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물리적인 방식으로 피라미드식 위계구조의 통제질서를 구축하지 않아도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자연법에 기초한 절대왕정을 모델로 하지 않는다. 특히 소품종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화된 사회질서가 다품종 소량생산의 구조로 변화된 탈근대 시대에는 더욱 더 소단위의 은사와 특수 목적을 추구하는 소달리티와 지역교회가 긴밀히 협력하고 역할 분담하는 것이 교회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한국 교회의 성장 둔화와 청년 기독교인들의 선교 헌신률 저하의 문제 또한 우리 자신의 이중적 역동성의 회복에 작은 실마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기독교 대학을 표방하는 H 대학의 몇몇 교수님들을 몇 년 전에 만났는데, 학교의 하나님 나라 비전이 학생 전체에 미치지 않고 소수 10% 정도에만 그치고 있는 현실을 크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교목실이 중앙집권적으로 모든 영적 활동을 주도하려고 하면 그만큼 그물을 좁게 펼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 드렸다. 비록 은사와 주제는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문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소달리티 활동의 무대를 열어주는 한편 교목실이 긴밀히 네트워크 구축하고 역할 분담을 잘 한다면 더욱 넓고도 촘촘하게 그물을 펼 수 있을 것이었다.
현 시대는 탈산업화와 동시에 지구촌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글로벌 시대에 소달리티들은 민족적 차원에 한정된 사고의 틀을 깨고 글로벌한 하나님의 나라, 모든 민족의 제자화라는 선교적 비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글로벌 선교비전을 공통분모로 하는 소달리티의 활성화와 이를 위한 모달리티의 이해와 협력을 통해서 한국 교회는 다시 한번 부흥의 시대를 맞고, 지상명령의 역동적 수행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이중성의 회복을 통해 또한 선교현장에서의 선교사 개인주의와 선교 주제들의 정치화와 파편화를 극복할 수 있다.
III. 글로벌 교회의 인구변화 추이
지구촌기독교연구소(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 Christianity)의 2005년 통계를 보면, 지구상에 21억의 기독교인이 존재하는데, 이 숫자는 대략 전 지구촌 인구의 1/3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단위는 아직 유럽에 사는 5억 3천 100만 명의 기독교인이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기독교인이 5억 1천 100만 명으로 유럽 기독교인의 숫자에 육박하고 있다. 또 아프리카에서 3억 8천 900만 명, 아시아에서 3억 4천 400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으며 이어서 북아메리카 2억 2천 600만 명 정도의 기독교인들이 분포하고 있다. 물론 이런 통계를 아주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이미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는 전 세계 기독교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장기적인 전망이다. 아프리카의 기독교 인구는 매년 2.35% 비율로 성장하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앞으로 30년 안에 아프리카 대륙의 기독교 인구가 현재의 2배가 되리라 예측한다. 이런 전망으로 본다면, 2025년에는 기독교 인구가 26억에 이르게 될 것이며, 그 중 아프리카는 5억 9천 500만 명, 라틴 아메리카는 6억 2천 300만 명, 아시아는 4억 9천 800만 명의 기독교 인구를 갖게 될 것이다. 비록 한국 교회가 서구의 기독 인구 하락 추세에 맞물리면서 성장이 둔화 혹은 하락하고 있지만, 글로벌 교회의 성장이 멈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선교 운동 또한 한국 교회의 담을 넘어 글로벌 교회 네트워크 차원에서 함께 일어나야 한다. 헬라의 세계관에 기초한 서구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에 나타나는 성경적인 가치와 진리를 재발견해야 하며, 가난과 고난과 핍박 속에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일어나는 제3세계 교회 운동과 글로벌 선교연대가 절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교회와도 글로벌 선교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인가?
IV. 글로벌 선교네트워크와 한국교회
글로벌 팀 사역의 개별 단위가 감당할 영역과 전체가 함께 하는 역할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의 유기적 총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함께 하는 개별 주체들이 같은 사역 조감도를 그려야 한다. 글로벌화와 로컬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 시대에는 국내선교의 완성을 통한 세계 선교의 진출이라는 2단계 발전이론이 적합하지 않다. 국내선교와 해외선교가 동시에 진행되는 동조현상이 불가피하다. 한국적 상황에서 국내 교회 성장의 둔화가 세계선교 약화로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 또한 단선적인 2단계 사고의 결과이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상호 연동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성장하는 세계교회와의 연대를 통해 한국교회가 역동성을 재발견할 수 있고, 세계교회는 한국교회의 역량을 통해 세계복음화의 완성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일제의 암울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열망하면서 부흥을 경험했고, 그 부흥의 초기에 이미 선교사를 파송했다. 현재 중국, 이란,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과 같은 기독교 제한지역에서도 통제와 박해 속에서 우리의 형제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만나고, 목숨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세계 선교를 감당할 길은 분명히 있다.
미전도종족 지역의 교회는 급속한 성장 속에서도 여전히 자국의 복음화라는 과제에 비중을 더 많이 둘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접국에로의 해외 선교에 대해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국가 단위 복음화를 넘어서 오랫동안 해외선교를 감당해 왔다. 따라서 제3세계 국가들의 교회들에게 세계선교를 위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한국인 선교사나 선교 공동체는 현지에서 교회개척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현지교회 네트워크 안에 글로벌 선교의 현황과 전략과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현지 로컬 교회와 동질 문화권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선교를 함께 감당할 수 있다. 현지 교회를 선교동력화 한다는 것은 현지교회를 통해서 국가 범위 내의 복음화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셨다. 따라서 아랍의 성도들은 자국의 사람들을 섬기는 것만 아니라, 한국 선교사와 함께 아랍권의 다른 국가의 영혼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이 훨씬 좋을 수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 H족 그리스도인들은 회교권인 자기 민족에게 전도하는 것보다, 인접한 Z족 영혼들에게 더욱 힘있게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 같은 언어권이지만 국가적, 행정적 단위가 다른 이들이 자국을 벗어나서 인접한 외국을 대상으로 사역할 때 더욱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은 언어로 같은 문화권과 환경에서 경험한 신앙고백의 동질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해외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또 하나의 한국교회의 역량은 전략적 단기선교이다. 선교지 로컬 지도자들은 믿음의 고백과 헌신, 그리고 동질 언어군의 영혼에 대한 제자훈련에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항상 그 나라에 그 나라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복음전도의 절박성이 유지되기 어렵고 사역이 삶의 일상화 되기 쉽다. 필자가 3년 전에 러시아 이슬람 지역 C도시를 방문하여 전도하던 중 우연히 20대 한 청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자 그 청년은 10대 초반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수소문하여 같이 찾아갔다.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는 사역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10년 만에 잃어버린 영혼을 우리를 통해 다시 만났는데도 그는 믿음을 확인하고나 교회로 다시 인도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단기간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전도하는 단기팀과는 많이 달랐다. 필자가 현장 선교사로 사역할 때도 단기팀이 들어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전도하는 것을 보면서 도전을 받았다. 또한, 현지인들이 장기 거주 선교사보다 그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는 놀랐다. 이처럼 역동적인 한국교회의 단기 사역을 통해 현지 교회의 전도와 영혼을 향한 적극성이 회복되며, 단기팀을 통해 더욱 많은 현지인이 지역교회에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한국교회는 현지 교회의 지도자의 리더십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현지 교회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을 교육하는 사역이다. 한국교회는 불신자 현지인들을 전도하고 제자훈련하는 것과 함께 현지 그리스도인들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훈련을 위해서 섬길 수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가는 신학지식이 필드의 역동성을 제약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앙에 기초한 신학 훈련이 필요하다. M국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신실했던 현지 형제가 신학교를 졸업해서 신앙은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배웠다는 말을 들었다. 가슴이 아팠다. 현지 지도자 양성이라는 미션을 감당하되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현지인을 한국에 초청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것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수많은 제3세계 사람들은 선진국 이민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신앙으로 한국에 왔다가 다시는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의 물질적인 풍요에 물들어 타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계선교에 확고하게 기초한 성경신학을 바탕으로 시대와 역사를 해석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명과 비전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하는 현지 지도자 리더십 훈련이 절실하다. 이런 차원에서 필자도 작게나마 섬기고 있는 한반도국제대학교대학원은 현지 교회 개척 사역만이 아니라 현지 지도자를 훈련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선교사를 양성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신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선교지에 대한 지역학적, 국제학적 분석을 통해 말씀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한반도국제대학교대학원의 실험모델이 앞으로 한국교회와 이슬람권 전방개척 선교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V. 결론
성장 둔화와 청년 선교사의 헌신 비율 감소의 문제를 안은 채 2030년까지 10만 선교사, 100만 중보기도자를 일으켜 세우는 비전을 향해 기도하며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실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한국교회 내부로만 시야를 제한하지 않고, 지구촌 전체 교회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주목하며 한국교회 선교운동이 글로벌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통해 섬길 영역을 하나씩 발견하며 겸손하고 성실하게 주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필자는 소달리티-모달리티 교회의 건강한 이중성의 회복, 글로벌 선교협력 차원에서 현지교회와의 선교훈련 사역, 단기선교를 통한 교회개척, 그리고 현지 지도자 훈련 등의 영역에서 한국교회의 참여가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Target 2030의 비전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이를 성취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앞에 두고 필자는 복음화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즉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복음의 추수가 광범위하고 대규모로 일어날 것을 예상하신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적고, 인자의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물으셨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셨지만 정작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될 사람들의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셨는지 모른다. 15년간 선교사로 살면서 필자가 느끼는 것은 앞으로 선교사는 두 가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이슬람권 프론티어에 투입이 되었을 때 수많은 추수를 고대하며 대중사역을 하기보다 소수의 제자화에 초점을 고정해야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올 사람이 적다면 선교사는 결국 두세명의 강력한 현지인 제자 양성에 목표와 역량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선교사 또한 이에 집중해야 한다. 본인은 죽도록 전도하고, 영혼을 낚는 어부로 살지 않으면서 이것을 대신해 줄 현지인 제자로 키우겠다는 태도는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선교사는 결심해야 한다. 죽도록 전도하고, 예배하고, 적은 규모의 제자들에 집중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본인만으로는 역량의 한계를 느낀다면 반드시 팀 사역의 틀 속에 움직일 것을 선택해야 한다. 만일 이 두 가지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면 선교사 파송 자체가 재검토되어야 하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구원을 얻고 좁은 문으로 들어간 자들을 통해 세계 복음화는 완성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과 Target 2030 비전에 대한 답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