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 아랍창
출처: 인터콥편집부 글/개척정보, 2012년, 2월호, Vol. 287, pp. 8-11
아랍의 기원
아랍은 우리가 알고 있는 창세기 16장에서의 아브람과 사래의 연약함으로 태어난 이스마엘의 후손이다. 아브람이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 약속의 말씀을 받은지 10년이 지나자, 그의 아내 사래는 여종 하갈에게서 자녀 얻기를 아브람에게 권하였고, 그 결과 이스마엘이 잉태되었다.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창 17:19)며 하나님께서 다시금 아브람에게 믿음을 가질 것을 말씀하셨지만, 이미 이스마엘은 태어났고 이삭과 이스마엘 후손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스마엘을 잉태한 후 자신을 핍박하던 사래에게서 도망한 하갈은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네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돌아가지만, 이삭의 젖떼는 날 축하잔치에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는 이유로 하갈과 이스마엘은 결국 쫓겨나게 된다.
애굽 여인과 결혼한 이스마엘은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라는(창 17:10,20)는 말씀처럼 열두 방백(통치자)의 큰 민족(창 25:12)을 이루었고, 그 민족들은 지금의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북부에 퍼져 살면서 ‘아랍 민족의 조상’(창 25:12-18)이 되었다.
아랍의 이슬람화
이후 아랍민족은 이사야 선지자가 게달(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의 양무리와 느바욧(이스마엘의 첫째 아들)의 수양들이 주께로 드려질 것을 예언한 말씀과 같이 구약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아랍민족에서 이슬람이 발원하여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632년 무하마드가 한여름에 식중독으로 죽은 이후, 4대의 칼리프(후계자)를 거치면서 아랍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무서운 속도로 중동 전역을 점령해 나간다. ‘정복과 회심’이라는 전략,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하마드는 그의 최후의 선지자이다’라고 두세 증인 앞에서 고백하면 이슬람교도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교리와 여러 세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아랍 이슬람은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결국, 당시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 인구의 절대다수였으나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채 교리와 신학논쟁, 마녀사냥 등으로 변질한 기독교인들을 다른 지역으로 쫓아내며, 순식간에 북부 아프리카를 지나 유럽의 스페인까지 진출하게 된다.
주 후 732년 프랑크 왕국과의 투르 전쟁에서 패함으로 아랍 이슬람의 확정은 멈추었지만, 당시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에 있었던 수천 개의 교회를 불태우며 불과 무하마드 사후 100년 만에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동으로는 중앙아시아, 서로는 유럽의 스페인, 북으로는 예루살렘을 지나 카스피해까지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아랍의 견고한 진, 이슬람
아랍 이슬람은 다마스커스의 우마이야 왕조(주후 661-750)과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주후 750-1258)를 거치면서 아랍 이슬람은 최대의 영토와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이때에 발생한 7차례에 걸친 ‘십자군전쟁’(주후 1095-1272)은 아랍인들에게 자신들이 무함마드 출현 이전 수천 년의 시간을 이슬람 없이 지냈음에도 ‘아랍은 이슬람이다’라는 깊은 역사의 골을 남겼다. 1099년 당시 서로마제국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명으로 예루살렘을 포위한 십자군은 항복하면 생존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거기고, 예루살렘 수비대와 함께 7만명 가량의 무슬림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량 학살한다. 그리고 이들의 시신 앞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후 예루살렘을 놓고 뺏고 빼앗기며 죽고 죽이는 정쟁은 200년 동안 계속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아랍 민족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생명과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민족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반십자가, 반기독교의 ‘한’이 아랍민족에 뿌리내리며 아랍민족은 이슬람에 더욱 고착하게 된다.

초대교회적 사역의 토대, 아랍 언어와 문화
현재 아랍 민족은 아라비아반도, 중동, 마그렙(북부아프리카지역)에 걸쳐 3억에 이르며, 마그렙 지역을 제외하면 2억6천만 정도이다. 아랍지역은 이슬람의 진원지이자 복음 전파의 마지막 견고한 진으로 여겨지나, 아랍 22개국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아랍어를 익혀 전파한다면 아랍권 전역을 누비며 초대교회와 같은 복음전파가 가능한 곳이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제국하의 같은 언어와 문화가 바울사도의 강력한 교회개척 순회사역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역사가 아랍창에서 다시 일어나 세계 복음화의 마지막 땅끝 아랍에서 큰 부흥과 대추수를 볼 시간이 머지않았다.
믿음의 그루터기 아랍 교회
아랍 국가에서는 어려서부터 공교육기관을 통해 꾸란과 이슬람 교리와 역사를 가르치기 때문에 비록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선지자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예수님에 대해서는 듣고 자란다. 이것은 복음을 전할 좋은 접촉점이 된다. 특히 현지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거의 없다시피한 남은 미전도 종족들과는 달리, 중동 아랍에는 1,600년 전부터 이어진 아랍민족으로 구성된 아랍 전통교회가 있다. 이들 전통교회는 카톨릭, 정교회, 아르메니안교회, 콥틱교회 등과 소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교회 대부분이 복음의 생명력이 미약하고 경직되어 있지만, 이슬람의 통치하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켜온 귀한 공동체이다.
또한, 아랍인 교회가 있다는 것은 아랍인들에게 기독교, 기독교인들이 존재하는 것이 정서상으로 자연스럽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 아랍교회에 과거 1,000년 이상 받은 이슬람으로부터의 핍박의 상처가 치유되고 복음의 능력으로, 생명을 살리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회복되어 자신들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부담이 부어질 때, 아랍 영혼들의 대추수에 있어서 ‘남겨진 그루터기(사 6:13)’와 같은 분명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눈물 아랍창
아랍창 안에 있는 이집트, 팔레스타인, 요르단 땅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자라고, 생활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던 곳이다. 현재 이집트는 아랍 무슬림들을 정신적으로 키워내는 나라로, 많은 인근 국가에서 이집트로 유학을 오며, 이집트에서 생산된 문화가 아랍국가들에 퍼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지리상 이슬람의 중심지라고 한다면 이집트는 이슬람에 대한 학문과 신학에서 모든 이슬람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심부이다. 카이로의 알아자하르 대학은 이슬람 최초의 대학인 동시에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서 AD970년부터 AD972년 사이에 세워졌으며 지금까지 이슬람 세계 최대의 대학이고 종교, 정치, 사회의 중심이 되는 이슬람의 신학교이기도 하다. 또한, 1957년에는 급속히 몰려드는 서구 문명 가운데 세속화되고 냉전체제 속에 무력해져 뿌리가 흔들리는 이슬람 부흥운동을 꿈꾸며 아시우트 대학이 세워지고 이 작은 학교는 알카에다의 모체가 된다. 지금은 이슬람 지도자와 전사들을 키워내는 이집트는 신약과 구약에 하나님의 사람들의 피난처였다. 요단강 동편의 요르단은 세례요한이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며 세례를 주던 요단강 및 무수한 성경의 지역들이 있는 곳이다.
예멘. 구약시대에 솔로몬을 찾아와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던 스바의 여왕이 있었는데, 스바는 아라비아 반도의 남단에서 홍해를 건너 에디오피아 땅까지 이르는 왕국이었고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수많은 향품과 금과 보석을 싣고 찾아왔지만, 지금 아라비아 남단에는 중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예멘이 있다. 성전을 지은 백향목의 나라 레바논은 1975년 이후 내전, 이스라엘의 남부 점령, 시리아군의 주둔과 통치, 2006년 이스라엘의 침공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48년과 1976년 사이 팔레스타인 난민 30여명이 이주했다. 아랍 국가 중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앗수르가 있었던 시리아, 이라크, 6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과 180만 이라크 난민을 품고 있는 나라 시리아에서는 그나마 기독교 공동체가 가장 자유를 누리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바벨 문명, 아브람이 떠난 갈대아 우르, 요나가 회개를 외쳤던 큰 성 니느웨의 땅 이라크는 지난 20-30년간 이란, 이라크 전쟁, 걸프전,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장기 독재,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등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을 겪었다.
산유국으로 대표적인 나라, 이슬람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권 중에서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이슬람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복음 전파에 가장 폐쇄적인 국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쪽으로는 신드바드의 고향으로 여겨지는 오만과 예멘이, 서쪽으로는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이 있다. 이들 중 예멘을 제외하고는 석유 판매로 부유한 나라들이지만, 이슬람의 거짓과 세속주의 속에서 누구보다도 가난한 땅이다.
진정한 아랍의 봄 Back to Jesus
현재 아랍권은 1,400년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큰 격변 속에 있다. 자유를 구하는 외침 속에 오히려 많은 이들이 심한 아픔과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이들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간의 고통을 진정으로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해결자, 이들에게 참 평안과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예수님의 복음으로만 이 땅의 영혼들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19장에서 여호와께서 친히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앗수르는 현재 시리아 및 이라크 북쪽 지역에 속해 있었다. 시편 72편에 메시야의 시대에 예물을 드릴 것이라 선포된 스바의 땅, 예멘. 이뿐 아니라 오랜 기간 이슬람 안에서 한결같은 심한 복음의 기근을 겪고 있던 모든 아랍의 땅의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닌 소망이요, 이들이 주님께 돌아와 부르짖고 찾을 수 있도록 회복하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혼간의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또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이를 위해 아랍은 당연히 이슬람의 백성, 이슬람의 땅으로 여기는 제한하는 마음, 하나님과는 다른 마음을 내려놓고 아랍의 영혼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한국교회의 중보기도와 복음으로 헌신해 나가 영혼들을 섬기는 사랑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진정한 아랍의 봄은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변화가 아닌 오직 구원의 주이신 예수님께로 향한 돌이킴, Back to Jesus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