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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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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 대공황과 중동 - 북아프리카 시민혁명 2

 

서** 글/한반도국제대학교대학원 교수, 출처: 개척정보, 20118월호, pp. 17-20

 

 

II. 중동-북아프리카 사태의 배경

 

1. 사회 경제적 거시구조 분석

 

MENA 지역은 세계에서 식량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가장 높은 곳이며, 앞으로 식량 수입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2002년 사이 MENA 국가들의 식량 총수입 규모는 전체 국가수입의 25-5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높은 식량 의존성은 수요와 공급 차원에서 그 요인이 있는데, 수요 차원에서는 높은 인구성장률, 경제성장에 따른 소비 패턴의 변화를 들 수 있고, 공급 차원에서는 토지와 수자원의 부족에 원인이 있다. MENA의 인구는 19601억에서 20063억으로 증가했으며 매년 1.7%의 규모로 늘고 있다. 따라서 <2>에 나타난 바대로 식품 수입의 규모는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국가의 식량 안보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긴요한 것이 수출 총량 대비 식량 수입량 규모인데, 이는 식량 수입에 필요한 재정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재화와 용역의 수출이 많다면 그만큼 식량 안보의 수준이 높다는 의미이다.







이런 총수출/식량수입 지표는 한 국가의 식량 수입량 수요와 수출 역량을 포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수가 높을수록 식량 안보의 수준이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178개국의 평균 지수를 산정해 보면 평균이 11.3으로 수출 수입의 8.5%를 식량 수입에 식량 수입에 할당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MENA 지역은 식량 수입에 11.5%의 재정 수입을 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에서 나타난 바대로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 리비아, 알제리를 제외하고는 세계 평균 이하로써 식량 안보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7-2009년의 식품 및 석유 가격의 급등은 식량 안정의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시켰고, 이것이 반정부 시위를 촉발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더욱이 이 지역의 수출 수익의 70%는 석유에서 온다는 것을 감안할 경우 식량 안보는 유가의 출렁임에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리비아와 알제리는 산유국이기 때문에 수출량 자체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식량 안보에 치명적인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에너지, 천연자원 수출을 중심으로 한 경제모델이 지닌 네덜란드병의 구조를 고려해 볼 때 리비아와 알제리 등은 과도하게 세계 유가의 향방에 종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병은 국가 소득의 대부분을 천연자원의 수출로 충당하는 나라가 지고 있는 모델이다. 이런 나라의 경제사회 구조를 보면, 자원 채굴사업은 자본집약적이므로 고질적인 실업문제를 겪게 되고, 대부분의 소비물자를 값싼 외국 수입품에 의존하므로 수입대체화를 이룰 수 없어 더욱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 또한 외화의 유입으로 인플레이션에 쉽게 노출되고, 자원을 독점한 정치와 경제 엘리트들에 의한 부패가 심각하다. 국제 유가가 상승국면일 땐 국가의 의한 소득 배분의 규모가 늘어나지만 유가가 떨어지면 국가 소득의 극심한 수축으로 시스템이 마비될 공산이 큰 모델이 네덜란드병이다.

 

걸프 연안의 산유국(GCC) 국가들은 자국의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기존에 축적된 석유자본 소득을 사회에 환원하는 미봉책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지 않고 관광사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튀니지, 이집트, 예멘 같은 나라들은 국민들의 저항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없었기 때문에 더욱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MENA 지역은 식량 안보의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세계 에너지 자원의 변수에 따라 사회 전체적인 조건들이 직접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이슬람 세계의 정치 모델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고 냉전에 접어들었을 땐 전 이슬람 국가들은 크게 3가지의 사회 모델을 선택하게 된다. 과거 그리스-로마 제국의 침략에 대응했던 유대고의 분파가 다양했듯이 힘의 조우가 빚어내는 대응 유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사두개파적인 대응전략은 철저히 현실주의적 입장으로서 제국에 상대하기보다 타협을 통해 무너진 내부를 재건하자는 실리우선형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터키와 같은 경우, 공화파인 앙카라의 케말 장군이 이끄는 세속주의 세력에 의해 터키공화국으로 출발했고, 군부를 중심으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통한 철저한 서구화의 길을 걸었다. 이란의 경우도 카자르 왕조를 뒤엎고 들어선 팔레비 왕조는 1979년 호메이니 이슬람혁명이 일어나기 전 케말 파샤의 세속적 공화국의 모델을 추구했지만, 이맘 시아 이슬람 세력의 반대 앞에 입헌 군주제의 모델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런 국가들 중에는 일찍이 서구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알고 이에 맞서 사회주의적 길로 선회하는 국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2년 친영국 성향의 왕정을 타파하고 권력을 장악한 이집트의 낫세르는 아랍 민족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사회주의적 경제 모델을 취하며 파죽지세로 중동정치를 이끌어 갔다. 시리아도 1970년에 아사드 정권이 들어서서 바트당 사회주의를 추구, 급기야 이집트와 시리아는 3년간에 걸쳐 1961년까지 아랍연합공화국(UAR)이라는 국가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경우도 1963년 이후로 바트당 사회주의 정권이 왕정을 대체했으며 사담 후세인이 1인자로 등장한 1980년부터 이란-이라크 전쟁을 통해 아랍 민족주의의 리더십을 잡고자 노력했다.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패배에 대한 국민들의 좌절과 분노를 등에 업고 반 이스라엘, 반서구 제국주의의 슬로건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했으며,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적 모델을 추구하며 국가 계획과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리비아의 카다피의 경우는 1969년 역시 왕정을 몰아내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결합하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차원에서 부족사회를 규합하며 권좌를 유지해 왔다. 그렇지만 계획경제의 한계가 심각해지고, 서구 자본주의 세력에 견줄만한 힘을 소련이 제공할 수 없자 이들 국가들은 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며 다시금 현실주의로 돌아오게 된다. 특히 이집트는 제3차 중동전쟁(1973)을 통해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에게서 되찾으면서 아랍 민족주의 보다는 자국의 실리를 더 중시하며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미국과 우호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두개적 모델 안에서 좌파와 우파의 정치 모델의 혼선이 일어나는 동안 이들 국가들 안에는 세속주의 모델을 탈피하고 초대 이슬람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살라피즘 운동이 서서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제리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세력이 1990년 선거를 통해서 집권 사회주의 세력을 눌렀지만 군부의 쿠데타로 뒤집어졌고 사회는 극심한 내전상태에 빠져 테러와 독재의 암흑 속에 빠져들었다. 이집트는 무슬림형제단이 탄압을 받았지만 온건파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 꾸준히 영향력을 넓혀왔고, 과격 세력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반소 지하드로 투입되고 후에는 예멘을 거점으로 알카에다 세력의 주요 분파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사두개적 모델과 전혀 다른 대응형태는 바리새파 모델로서 이슬람 세계에 적응하자면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을 들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키운 중요한 이슬람 신학운동인 와하비즘과 데오반디즘의 뿌리가 각각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다. 이들 국가는 민족과 세속적 가치가 아닌 이슬람적 규범에 의해 국가를 건설하되 외교적 관계에서만큼은 국제사회와 친근한 관계를 형성해 온 특이성을 지닌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석유의 무기화를 통해서 정치적으로는 친서구주의이지만 종교적으로는 철저한 근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세계를 향한 이슬람 전파를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는 국가들이다.

 

마지막 세 번째의 모델은 젤롯당파적 반응으로서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비타협적이면서도 전투적인 이슬람적 가치에 근거한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이들 세 가지의 이슬람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 이슬람 세계는 이슬람 자체의 대안적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미시적으로는 자체 역량 강화와 사회의 이슬람화에 주력하며 장기적으로 세계 칼리프 국가 건설이라는 이젠다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중동-아프리카 사태를 지켜보는 이슬람 세계의 심장 속에는 변화에 대한 강한 열정과 더불어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의 질서에 대해서 모색하는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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