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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북아프리카 시민혁명과 천국운동

서** 글/한반도국제대학교대학원 교수, 출처: 개척정보, 20114월호, pp. 1-6

 

 

20111월에 시작된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이후 세계는 이슬람 지역에서의 민주주의 운동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튀니지 남부 인구 4만의 소도시에서 한 청년의 죽음, 분신자살로 촉발된 튀니지 사태는 결국 24년 장기 독재 부패정권 벤 알리의 축출을 가져왔다. 시민혁명은 이집트(무바라크, 30), 예멘(살레, 21), 알제리(부테 플리카, 12), 시리아(아사드, 11), 리비아(가다피, 42) 등과 같은 중동-북아프리카(MENA: Middle East and North Africa)의 장기독재 권위주의의 국가들로 퍼져갔다. 중동-북아프리카(MENA)는 이슬람문명의 중심지면서 세계 에너지원의 중심 생산지로 여기에는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시리아, 요르단, 터키, 이집트, 수단,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모리타니아가 포함되어 있다.

 

 

이슬람의 정치권력 장악 가능성

 

중동-아프리카 지역을 휩쓴 혁명의 파도와 관련하여 국내외에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친서구적인 권위주의 정권 붕괴 이후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었다. 이집트의 경우 비록 군부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1928년부터 성장해온 무슬림형제단의 위력이 대단한 나라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원유와 물자 수송로인 수에즈 운하가 있는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글로벌 이슬람원리주의의 운동의 온상이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침략 이후 이집트는 아랍 세계에서 최초로 유럽식 근대화를 추구하는 노선을 걸었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후 1952년 군부 쿠데타를 거치면서 사회주의 민족주의의 실험을 거쳤다. 무슬림형제단은 서구물질주의 문명의 침투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세속화되고 있던 이집트에서 이슬람이 해법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성장했다. 전통적인 이슬람성직자들이 종교권력으로 전락하여 이집트 사회에 밀려드는 세속화의 물결에 대해 침묵할 때 무슬림형제단은 카페, 학교, 모스크 등에서 실생활에서의 필요한 무슬림의 삶을 가르쳤고,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무슬림복지 영역을 담당하는 사회네트워크로 급성장했다. 이들은 1952년 낫세르를 도와 친영국 이집트 국왕을 몰아내는 쿠데타에 성공한 후 이슬람국가의 수립을 시도했지만 사회주의자 낫세르의 배신으로 무슬림형제단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부적으로도 노선의 분화라는 내홍을 겪는다. 즉 사회운동 단체로서 국가 밖에서 이슬람 사회 운동을 통해 점진적인 이슬람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온건파와, 테러와 같은 폭력적 수단을 통해 국가 권력을 전복하고 레닌주의처럼 위에서부터 이슬람혁명을 주장하는 과격파로 무슬림형제단은 첨예하게 양분된다.

 

결국 과격파 행동대원이 낫세르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고, 이로써 무슬림형제단은 불법화 되고, 많은 행동대원들이 이집트를 떠나 시리아, 팔레스타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지로 흩어져 다양하게 활동한다.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간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무장투쟁과 이슬람 NGO로 활동하다가 1987년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민중봉기)를 거쳐 하마스당으로 변신하였고, 현재 가자지역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1973년 오일쇼크 이후 금융과 교육영역에 침투하여 글로벌 이슬람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알카에다를 창설한 빈라덴도 중등학교 때 무슬림형제단 출신 체육교사를 만나면서 이슬람 전사로 성장했고, 결국 아프가니스탄 반소련 지하드에 뛰어들게 된다.

 

한편 국내에 남아있던 과격파들은 기존의 무슬림형제단을 탈퇴하여 보다 구체적인 국가전복시도, 요인암살 테러 등을 감행했고, 빈라덴과 함께 반소 지하드에 참전한 후 현재는 국가의 탄압을 피해 예멘 등지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물러난 무바라크는 암살당한 전임자 사다트와 같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사회주의적 경제운영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경제를 민영화하고 서구 자본을 유치하는 등 현실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무바라크 축출 후 무슬림형제단은 여전히 사회운동 단체로 있으면서 정당의 형태로 의회정치에 참여를 하겠지만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서방세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분간 적극적인 정치투쟁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 국민들 또한 시민혁명이 이슬람혁명으로 전환할 경우 이란과 같이 국제사회의 봉쇄를 자초하고 말 것을 알기에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장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튀니지와 알제리의 경우 이슬람 정파들은 일찍이 독재권력에 의해서 강제퇴출을 당했기에 정권교체 이후에도 이슬람세력이 사회를 장악해 가기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알제리의 경우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얻은 후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했지만 정상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하지 못해 이슬람주의 세력이 결국 1991년 선거에서 승리했었다. 그러나 군부의 쿠데타로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GIS(알제리이슬람기구)를 결성하고 반정부 폭력투쟁에 나서면서 2005년까지 내란에 휩싸였다. 따라서 언제든지 이슬람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지만 지나친 폭력투쟁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더 이상 지지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청년실업과 사회네트워크

 

중동아프리카의 시민혁명을 둘러싼 또 하나의 이슈는 청년실업문제와 사회네트워크(SNS)의 위력이다. 중동-아프리카 지역은 30세 미만 인구가 70퍼센트 이상의 젊은 국가들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급격한 인구성장이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교육과 고용에 있어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 이집트, 튀니지 등이 사회주의적 경제모델을 취했을 시기에 이들 주력산업은 국가중심의 공기업 형태로 성장했고, 사회적 이윤을 국민복지로 분배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가난했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물러난 무바라크와 벤 알리 정권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을 최소화하고 기간산업을 민영화시키는 정책 전환을 추진해 왔다. 민영화의 과정에서 독재정권의 친인척과 측근 인사들이 국영기업의 노른자위를 독차지했고, 사회복지정책의 축소에 따른 사회빈곤층의 문제를 정권이 경시한 것이 결국 시민 폭동으로 분출하게 된 것이다.

 

튀니지의 경우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실업이 심각했고 정부 관료에 줄을 대거나 뇌물을 바치지 않고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벤 알리 대통령 측근들의 부패가 위키리스크와 같은 채널을 통해 공개된 것이 사회적 분노를 촉발시켰다. 예전 같으면 국가안전기구의 정보망과 경찰력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고 반정부운동을 치밀하게 분쇄시킬 수 있었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사회네트워크의 대중화는 반정부운동에 국가 통제를 벗어난 정보로 가공할만한 운동과 파괴력을 가져다주었다. 정보기구에 의해서 구타와 불법체포가 무차별적으로 가해졌을 때, 이전처럼 겁에 질려 움츠려 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장면을 보고 있고 이동전화로 찍어서 웹에 올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시민들은 대범해질 수 있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의 파피루스 혁명으로 번지며, 예멘, 시리아, 알제리 등에서 산발적인 시위로 나타났고, 결국 리비아에서 유혈 충돌과 부족들 간의 내전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한국의 언론과 학계는 여전히 체계적인 인식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슬람 현상으로 시선을 축소하여 서구와는 다른 특이한 지역 현상으로 보는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민주화 정치운동에 대한 순박한 낙관론으로 지역 상황을 이해하는 시각도 팽배하다. 주로 국내 이슬람을 대표하는 논자들과 국제정치학 학자들, 그리고 일부 선교사들이 중동아프리카 시민혁명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고 있지만 보다 학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세계경제체제

 

2011, 일련의 중동아프리카 시민혁명의 원인을 청년 실업과 권위주의 정권의 부패와 무능력이라고 단순하게 진단할 수만은 없는 다른 근본적인 요인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경제체제의 문제이다.

 

한국도 요즘 일부 투자은행이 문을 닫고 대출금리의 인상으로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저금리로 돈이 시중에 풀렸을 때 은행에서 대출된 돈이 산업시설과 기술개발에 투자되기보다는 아파트와 땅 투기로 몰리더니 급기야 인플레이션을 잡는다고 은행은 금리를 높인다. 결국 이자 상환이 어렵게 될 것이고 부동산 거품이 꺼져 가격이 바닥을 치면 금융세력이 헐값으로 부실기업과 자산을 거둬들일 것이다. 이것이 금융세력이 역사에서 돈을 굴려온 전형적인 생리이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는 달러이다. 그런데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다. 미국은 1970년 자국 화폐 달러와 금을 연동하는 금태환제를 기초로 한 브레튼 우즈 체제를 포기한 후 금 보유고에 신경 쓰지 않고도 달러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74년 중동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미국은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약을 통해서 석유의 결재화폐를 달러로 해 줄 것을 약속받고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의 안전을 보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원하는 대로 달러를 찍어내어 중국의 공산품을 소비하고,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석유를 사용해 온 것이다. 미국 달러는 금 대신 석유를 기초로 하며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로서 살아남았지만 달러화의 팽창 때문에 실물 자산, 즉 식량과 에너지 가격의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석유-가스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또 미국으로서는 시중에 풀린 화폐를 소비하기 위해 2003년 이후부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금리를 낮게 유지했고, 금리인하를 통해서 민간경제에 신용 대출을 확대했는데, 급기야는 2008년 하반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었고,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메가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금융위기에 처했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 거품이 꺼지고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생산도 위축이 되고, 이런 사태들이 결국 중동아프리카에서의 석유 가격의 폭락을 가져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산유국(GCC)으로서는 기존의 고유가를 통해 비축한 자산을 가동시켜 경제의 위축을 막을 수 있었지만, 경제 침체와 실업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2009년부터 유럽 경제가 위축되면서 알제리와 리비아 같이 지중해 국가들에게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들의 경제적 손실은 현저했고, 비록 석유 자원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중동산유국에 대한 의존율이 큰 이집트와 튀니지는 보다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작금의 중동아프리카 시민혁명의 심층적인 원인은 2008년 후반기 때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 후퇴(Global recession)의 여파이다. 서계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보지 않고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과 개별 국가의 권위주의와 부패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부족간의 내전으로 치닫고 있는 리비아 사태가 지속될 경우 유가 한계선(배럴당 200달러)을 넘을 경우 글로벌 경제는 경기후퇴가 아니라 경제불황(Depression)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크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6장과 7장에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를 어린 양 예수께서 취하시고 1, 2, 3, 4번 인을 떼실 때 전쟁과 질병과 또 인플레이션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5번 인을 떼실 때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로 인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복음 증거자들이 나타나고, 6번 인과 7번 인 곧 마지막 나팔과 더불어 주의 날이 임할 때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의 허다한 무리들이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고 환란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

 

비록 인플레이션과 정치변동 등을 통한 위기가 전 세계에 확산되더라도 천국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는 것이며, 결국 큰 성 바벨론은 붕괴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 교회는 주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더욱 천국 복음 전파와 미전도 종족 교회개척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특히 중동-아프리카 지역은 이번 시민혁명에서 보였던 것처럼 청년 인구가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또 이슬람급진주의가 독재정권의 억압아래 사회세력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었다. 때문에 한국 교회로서는 이 시점에 청년선교로 중동-아프리카에 대한 선교전략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에서 사회 경제문제에 직접적인 피해자인 청년들이 사회개혁의 강력한 주체세력으로 등장했고 청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권은 이제 더 이상 존립이 힘든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 교회와 캠퍼스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8개월 내지 1, 초교파적인 공동체로 선교팀을 결성하여 현장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을 감당한다면 엄청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복음의 청년들이 믿음으로 물질문명을 이기며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회적 기업과 같은 다양한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 천국 운동을 펼쳐간다면 자칫 이슬람주의로 물들 가능성이 큰 심령이 가난해진 이 땅의 청년세대를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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