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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논쟁 해부

IV. 이슬람 지역동향과 전망 2 -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주의 운동

 

서** 글/한반도 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처: 개척정보, 2010년 10월호, pp. 12-15

 

오스만제국이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로를 장악하면서 동서 교역은 급격히 위축되고, 대신 서구세계는 신항로 개척을 통하여 식민지 시대를 열어간다. 따라서 이슬람 네트워크의 허브였던 중앙아시아는 점차 동서교역의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결국 19세기 중반에 러시아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한다. 전통적으로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은 알라와의 직접 소통을 가르치는 이슬람 신비주의 운동인 수피즘이 민간의 주류였지만, 타타르 민족에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발원한 이슬람 근대화 운동인 자디디즘의 영향을 받은 판투르키즘(터키를 중심으로 전 세계 모든 투르크 민족이 통일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일종의 투르크 민족주의)이 또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는 급격히 세계체제 속에 편입되어 갔고, 이슬람 영역 또한 국제조직과 연계되는 양상으로 변모해 갔다.

 

본 글에서는 <이슬람 부흥당>, <히즈붓 타히르//Hizb ut-Tahrir>, <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과 같은 단체들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서의 이슬람 정치운동의 양상과 의미를 진단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1. 이슬람부흥당(Islamic Renaissance Party)

 

소련 붕괴 후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타지키스탄은 공산당 기득권 세력과 이슬람운동이 충돌하는 내전(1992-1997)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타지키스탄의 경우 우즈베키스탄과는 달리 민족주의 발달이 약했기 때문에 흩어져 있던 타직인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통합 국가로서 발달할 수 있는 공통 요소는 이슬람부흥 외에는 없었다. 타지키스탄은 소련 시절부터 다른 지역보다 이슬람 지하운동이 활발했는데, 그 중에서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데오반드(이슬람 원전 암기를 중심으로 하는 원리주의 운동)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힌두스타니와 그의 제자들이 시작한 이슬람부흥당(Islamic Renaissance Party)이 1992년부터 중앙아시아에서의 이슬람국가의 비전을 갖고 정치 운동의 전면에 나선다.

 

그러나 199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자 아프간 북부 지역의 타직계 비탈레반 세력은 힘에 밀려 타지키스탄으로 운동 본부를 이전하는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이슬람부흥당은 서둘러 전쟁을 중단하고 아프간 북부반군에게 베이스를 제공하고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반탈레반 연대에 합류한다. 종전 후 이슬람부흥당이 집권하자 탈레반을 지지하는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제공되던 마드라사 펀드가 중단되었고, 이슬람부흥당은 부족주의와 내부분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점차 대중들의 지지를 잃고 세력이 약화되었다.

 

 

2. 히즈붓 타히르(Hizb ut-Tahrir)

 

이슬람부흥당과는 달리 처음부터 지하대중 운동으로 파고들어갔던 대표적인 이슬람조직으로서 히즈붓 타히르(Hizb ut-Tahrir(HT))는 1995년에 요르단 사람 살라후딘(Salahuddin)이 처음 타슈켄트에 셀을 개척하면서 중앙아시아에 진출했는데, 당시 우즈벡 당국은 이를 거의 무시했었다. 그렇지만 HT는 타슈켄트, 페르가나,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으로 급속 확산되어 갔고, 타슈켄트에서만 해도 2년만에 조직원이 6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현대기술(컴퓨터 CD, Video, Disk, 야간편지//shabnama-밤에 프린트되어 신문과 같이 집문 앞에 밀어 넣는 것)을 활용한 대중 지하운동은 극심한 정부의 탄압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갔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만 해도 2001년 통계로 정치범 총 7,600명 중에 5,150명이 HT와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HT 조직은 1953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대중 조직을 이끌었던 필라스티니(Taqiuddin an-Nabhani Filastyni)가 창설한 것으로, 중동 국가에서 금지되자 유럽으로 이동하여 캠퍼스에서 무슬림 학생들 사이에 대중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HT의 목적은 전체 무슬림 세계를 총괄하는 하나의 국가(칼리프)를 수립하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 3단계 방법론을 사용하는데, 우선은 이슬람으로의 초청(다와)하고, 다음 단계는 통일된 이슬람 사회와 국가를 건설하고, 마지막으로 지하드를 통해 세계를 이슬람화 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테러는 피하고, 우선은 대중 지지를 얻은 다음에 이런 지지자들이 평화적인 시위들에 참여하고 최종적으로 중앙아시아의 세속정권들을 타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HT는 탈중심화된 5-7명으로 구성된 비밀 셀(다이라//daira)을 개척하고 있으며, 이러한 셀은 이슬람전파와 HT 메시지 전파에 헌신된 학습진단(Study group)을 비밀리에 확산시키고 있다. 필라스티니가 쓴 <이슬람국가 헌법 초안//Draft Constitution of the Islamic State>에 따르면, 미래의 이슬람국가는 이슬람 슈라(council)에서 선출된 칼리프가 강하게 중앙화된 시스템을 독재적인 권력으로 통치하는 정치구조로서, 칼리프는 군대, 정치체계, 경제, 외교정책을 지배하고, 아랍어가 국가의 언어가 되며, 국방장관은 비무슬림세계를 향한 '성전(聖戰, 지하드)'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군사모집과 지하드를 위한 훈련이 모든 무슬림 남성들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3.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slamic Movement of Uzbekistan)

 

IMU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과격한 지하드 운동 조직으로서, 창시자는 1987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낙하산 부대로 참전했던 나망가니와 율데쉐브이다. 이들은 소련군의 적으로 지하드에 앞장섰던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성스러운 회교전사'라는 뜻으로 종교를 지키기 위해 지하드에 뛰어든 이슬람 전사)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그곳에서 근본주의 무슬림이 된 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교육을 받고 소련 제국에 재침투한 인물들이다.

 

특히 율데세브는 타지키스탄에서 내전이 시작되자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을 방문하여 이슬람 운동을 배우고, 1995년부터 3년간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빈라덴과 함께 있었고, 제1차 체첸 전쟁(1994-1996년) 중이던 체첸 전사들도 지원한다. 또 이 기간 중에 나망가니는 타지키스탄 남부로 들어와 소련식 군사기술자와 무기 전문가를 모으고,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자금을 제공받아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출신들을 결집한다.

 

1997년 이후 우즈베키스탄 세속정부 대통령인 카리모프에 의해 수천 명이 체포되는 등 탄압이 강화되자, 이들은 1998년에 아프가니스탄의 카불로 옮겨와 본격적으로 IMU를 창설한다. 이들은 1999년 2월에,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카리모프를 폭탄으로 암살하려고 했고, 그 해 8월에는 키르키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에서 상하이 5개국 정상회담이 진행 중이었는데, IMU 테러리스트들은 인질의 몸값과 5만명의 우즈벡 감옥 투옥중인 IMU 조직원의 석방을 조건으로 요구했다. 그렇지만 키르키즈 정부는 협상을 거부하고 러시아 군의 개입을 요청했고, 우즈베키스탄의 전투기가 바트켄을 폭격하는 등 비타협적인 적극적 공세를 벌이는 바람에, IMU 인질범들은 타지키스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탈주한다.

 

그 후 IMU는 탈레반과 공동으로 우즈벡 북부의 반탈레반 세력과 싸웠고, 빈라덴의 알카에다 조직과 연계하고 있다. 미국 의회 보고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60%는 중앙아시아를 통해 서방 세계로 유입되고 있는데, 그 중 70%는 IMU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9/11 테러 이후, 나망가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편에 서서 연합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고, 남은 세력은 율데세브를 중심으로 파키스탄의 파쉬툰 지역(Federally Administered Tribal Areas)으로 들어왔고, 와지르스탄 등에서의 이슬람 테러행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에 대중조직으로 부상했던 세 조직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슬람민족주의 성격을 지녔던 이슬람부흥당은 이슬람 국가의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고, 보다 급진적이면서도 타직계가 아닌 파쉬툰 민족 중심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급부상에 위축되면서 대중성을 상실했다.

 

반면에 HT는 정치운동이나 테러리즘을 철저히 배격한 채, 사회영역에서의 이슬람 가치 확산을 통해 셀 조직을 구축하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이슬람 국가를 수립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을 띠고 단기간에 급속한 지하대중 조직으로 성장했다. 특히 HT는 영국 등 유럽 국가의 대학 캠퍼스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준 합법적인 이슬람 국제네트워크로서 IT 기술 등 현대적 기법을 사용하여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을 재이슬람화 시키고 있다.

 

HT와 같은 점진적 이슬람주의 운동 단체와는 달리,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급진주의 이슬람주의로서 IMU는 테러리즘을 통한 국가전복을 추구하면서 여전히 중앙아시아의 세속정부를 위협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거점을 둔 급진적 이슬람운동이 중앙아시아로 확산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비록 중앙아시아가 러시아와 서구세력, 그리고 중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이슬람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했던 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슬람주의 변수가 세계사 흐름에서 쉽게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자본주의 모델을 주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사회 계층적 갈증의 양상이 민족에서 종교로 이동할 경우, 중앙아시아는 또 다른 이슬람 혁명의 화약고로 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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