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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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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논쟁 해부

II. 이슬람과 테레리즘

 

서** 글/한반도 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처: 개척정보, 2010년 7월호, pp. 12-15

 

이슬람 운동은 문화 현상이 차원을 넘어 정치, 경제, 국제관계적 측면에서 조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지난 <1부>에서 다루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통해 세계는 이슬람을 하나의 국지적인 종교로서 제한적으로 이해하던 좁은 틀을 벗고, 비로소 이슬람이 신정국가와 세계 이슬람제국 건설이라는 아젠다를 가진 하나의 문명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막고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주의와 아랍의 무자헤딘들을 가동했던 미국이 이제는 세계 지도국 유지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서 이슬람 세계를 대상화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때문에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소수자 운동의 차원에서 이슬람 세력을 동맹 세력으로 인식하고, 다문화주의와 똘레랑스(관용) 차원에서 이슬람 문제에 접근을 하고 있다.

 

반면에 이슬람의 원리주의가 가진 타문화 배타성을 강조하면서, 이슬람을 '악의 축'으로 규명하고, 인류 문명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게 대두되었다. 특히 미전도종족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이슬람권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선교 접근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슬람 테러리즘의 원인이 선교활동 때문이라고 낙인 찍는 편견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문명적 아젠다를 현실화시키는 무기인 지하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기에 <1부>에서는 이슬람 지하드를 분석했다.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글로벌 지하드 운동이 지구촌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슬람 테러와 국내 이슬람 이주민의 증가는 한국 사회에도 이슬람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번 <2부>에서는 지하드의 내적 논리에 기초하여 한국 사회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이슬람 테러사건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이슬람권의 비극적 사태와 선교활동을 과도하게 연결짓는 사고가 얼마나 문제 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I. 2004년 이라크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라크에서 미군에 각종 물품을 제공하던 한국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의 직원 김선일씨가 2004년 5월 31일 이라크의 무장단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에 의해 납치된다. 납치 당일 김선일씨는 물건배달을 위해 바그다드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미군 리브지 캠프를 출발해 팔루자 인근 지역을 지나가다가 요르단 출신의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에 납치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납치 사실은 사건 발생 20일이 지난, 6월 21일 알 자지라 방송에서 "한국군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한 저항세력이 한국인을 피랍하고 있다"라고 방송하면서 한국 정부와 세상에 알려진다. 한국 국가안보회의 NSC는 납치 사실을 늦게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파병철회는 불가능하다고 대내외에 공표한다. 그리고 이 사실이 22일(현지 시간), 알 자지라 방송에 "한국 정부는 납치 무장단체들의 철군 요구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민사회는 알 자지라 방송 등 다양한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호소를 담아냈다"라는 내용으로 방송이 되고, 그날 밤에 김선일씨는 팔루자 인근 도로변에서 참수된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것이 2004년 이라크 김선일씨 피살사건의 개요이다.

 

한국인에 대한 이슬람 지역에서의 테러 행위가 UN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이라크 북구 아르빌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의 철수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증해준 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났던 그 해 6월에는 이미 터키인 3명이 피랍되었었고, 미군과의 거래를 중단하라는 협상요구를 터키 정부가 받아들여서 결국 터키 인질들은 풀려났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살해 위협이 임박한 그 시간에도 파병 철회를 거부했다.

 

한편 김선일씨의 죽음은 그가 기독교인이고 평소에 중동선교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과 결부되어 한국 사회 내부는 이슬람 선교 자성론으로 엉뚱하게 번져갔다.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슬람권 선교활동을 테러와 연결짓기 시작했고, 선교활동에 대해 국가적, 사회적, 종교적 압박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갑자기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는 그 해 7월 14일 홈페이지에 "이라크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이교도를 우리는 죽였다"라는 글을 남김으로 그전까지의 입장을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안티기독교 세력과 이슬람권 무장세력이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종의 암묵적 네트워크가 작동한 것이다. 그러면 왜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는 김선일씨의 살해를 그의 종교성 때문이었다고 말을 바꾸었을까? <1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무슬림들은 이슬람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기독교도를 <이교도>로 지목하고 죽일 수 없다. 그것은 바로 그 국민이 소속된 국가와의 전쟁선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가 이교도인 김선일씨를 죽인 것은 그가 <이교도>이기 이전에 이라트에 군대를 파병한 한국, 즉 전쟁 상태에 있는 국가의 한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이교도(카피르)>라는 명목으로 자국 내 외국인들을 모두 죽이지 않는다. 만일 타 종교인을 그렇게 살해한다면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무슬림들은 보복 추방이나 입국 금지, 혹은 민족주의 테러를 당할 것이다. 그러니 한국 군대를 파병하지 않은 대부분의 이슬람 지역에서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김선일씨처럼 테러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다.

 

2.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탈레반 한국인 납치사건은 2007년 7월 19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버스를 타고 칸다하르로 향하던 23명(여자 16명, 남자 7명)의 한국 사람들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되었던 사건이다. 탈레반은 피랍된 23명 중 두 명을 살해했으나,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 결과 다른 인질 21명은 8월 31일(한국 표준시간 KST)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풀려나 피랍사태는 발생 42일만에 종료되었으며, 9월 2일 생존한 피랍자 19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 피랍사건이 교회 선교활동과 관련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벌떼처럼 전방위적으로 공격적 선교 자성론을 퍼부었다.

 

그런데 한번 냉철하게 탈레반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진단해 보자. 탈레반은 납치 다음 날인 7월 20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중인 한국군을 21일 정오(KST 21일 16시 30분)까지 철수할 것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의해 수감중인 탈레반 수감자 전원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다시 말해서 탈레반이 처음 표명한 납치의 배경은 아프가니스탄 파병 한국군 철수와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의해 수감중인 탈레반 포로 석방이었다. 이들의 입국 명목이 선교냐 봉사냐 관광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기독교와 지하드는 별개 차원의 변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 피랍사태와 동일하게, 정작 한국에서 선교활동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슈가 되자 탈레반도 결국 최종 협상조건으로 1) 아프간 파견 한국군의 연내 전원 철수, 2) 아프간에서 체류중인 한국 민간인 8월 내 전원 철수, 3) 아프간에 기독교 선교단을 다시는 보내지 않을 것 등 3개항 합의로 인질을 석방했다. 그런데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의 초기 조건으로 보면, 1)항만이 처음부터 제기된 것이고, 최종 협상안에 나타난 2), 3) 항은 상황적으로 추가된 것임이 분명하다. 당시 2007년 7월에도 독일 출신 기술자들이 탈레반에 납치되었고 수감된 탈레반 포로와 맞교환 되어 풀려나기도 했다. 결국 피랍의 목적은 외국군 철수와 전쟁 포로 석방을 위한 인질이었던 것이다.

 

3. 2009년 예멘 관광객 테러

 

예멘 남동부 하드라마우트주(州)의 고대도시 시밤에서 2009년 3월 15일 폭발물이 터져 한국인 관광객 4명과 예멘인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도 한국 외대의 이 모 교수는 조선일보 투고를 통해서 이 사건을 선교단체의 봉사활동과 연결지으며 또다시 공격적 선교라는 주제로 한국교계를 비판했다. 만일 예멘 알카에다가 선교활동 때문에 테러행위를 자행했다면 비기독교인 한국 관광객이 아니라 예멘에 있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테러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다.

 

예멘은 2009년이면 석유 자원이 바닥이 나고, 수입원이 적어지므로 관광 사업 등 다른 국가적 수입을 확대하고자 했다. 그런데 만일 경제가 무너지면 정부도 정통성을 잃게 되고 결국 탈레반처럼, 이슬람 세력이 세속주의적 정치권력을 전복하며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것을 글로벌 지하드 전략에서 <근거리 적 타격>이라고 부른다. 비록 정치 권력자들이 무슬림이지만 국가 경영에 있어서 친서구적이거나 반이슬람적 행태를 보이면 그들을 <불신자(카피르)>라고 낙인찍고 처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는 이슬람 국가가 통치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는다. 오바마 정권 출범 후 파키스탄 내 탈레반 근거지에 대한 압박이 강화되자 알카에다는 오사마 빈라덴의 고향인 예멘 안에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배후 근거지를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 관광객을 테러하면 바로 국가 수입원이 봉쇄되기 때문에 그것에 1차적인 목적이 있고, 2차적으로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구의 진출에 저항하고자 하는 투쟁인 것이다. 이처럼 알카에다의 <근거리 적 타격> 전략은 한국에서 제국주의 미국을 몰아내고 미국의 압잡이인 남한의 매판 자본과 매판 정치 집단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건설하자는 북한의 주체사상과 유사한 이데올로기다.

 

나가며

 

한국교회에 의한 선교활동이 이슬람권 테러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이슬람 지하드 이데올로기를 확대 적용하는 오류이다. 현재 이슬람 세계는 방어적 입장에 처해 있고, 이런 정세에서 지하드는 외국 군대의 침략국에 대한 국가적 저항과 전쟁 전략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선교활동 자체보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적, 군사적 제재와 관련된 것이다. 한국이라는 국가와 이슬람 세계와의 충돌이 한국인 대상 이슬람 테러의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에 직접적으로 평화유지군을 파병하지 않은 지역에 대한 선교활동까지 이슬람포비아(이슬람 공포)로 묶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이것은 구한말 대원군 쇄국정책 당시 순교했던 카톨릭 사제의 비극과 관련하여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집단 무의식적 죄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당시 대원군 정권이 카톨릭 선교사를 학살한 것은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던 당시 국제적 환경에서 선교사를 서구 제국주의의 세력의 침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필리핀 파송 카톨릭 선교사였다면 그렇게 물리적으로 학살하는 정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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