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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아더 저, 조계광 역, 생명의말씀사, 2014228일 초판발행, pp.389, 20,000

(2014630일 읽음)

 

100% 공감. 은사에 대해 성경적 원리를 제대로 설명했다. 요즘에 이렇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시대의 흐름에 동조하지 않고 변함없는 성경의 진리를 고수하려는 순수함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Underline>

 

서론

* 성령께서는 황홀경을 일으키는 전류나 허튼 소리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말쟁이나 건강과 부를 갈구하는 이기적인 소원을 무작정 들어주시는 우주의 요정이 아니시다.

* “은사갱신 운동은 캘리포니아주 반 누이스에 있는 성 마가 감독 교회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 교회의 목사였던 데니스 베닛은 1960년 부활절을 두 주 앞두고 자신이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 오순절 운동의 감정적 체험주의는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는 교회들에게 불꽃을 일으켰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은사 갱신 운동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 풀러신학교의 교수 두 사람이 강의실에서 은사주의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풀러신학교는 1970년대에 성경무오설을 포기했던 복음주의 주류 신학교다.)

* 이전 세대만 해도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은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1. 성령을 욕되게 하지 말라

* 조엘 오스틴과 같은 다소 온건한 번영 신학 설교자들은 온화한 낯빛으로 교묘하게 설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꿈을 실현시켜 주시기 위해 존재하신다는 근본 메시지는 여전히 동일하다.

* (번영신학) 대한민국의 조용기목사에서부터 나이지리아의 에녹 애더보이 목사에 이르기까지 은사주의 교회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빠른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교회들은 한결 같이 그런 형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오순절주의자와 은사주의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하나님이 충분한 믿음을 지닌 모든 신자에게 물질적 번영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라고 말했다. 건가오가 부와 번영의 복음은 인기가 높지만, 참된 복음과는 거리가 멀다.

* 번영신학이 참 복음과는 무관한 다른 복음이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1:6-8).

 

2. 무분별한 은사주의의 실체를 파악하라

* 1901년 아침이었다. ... 그들은 방언이 성령 세례의 표징이고, 자신들도 여전히 방언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런 식으로 가르쳤던 교사는 찰스 폭스 파헴이라는 감리고 사역자였다.

* 신화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모두 그렇듯 이 이야기도 여러 면에서 의문의 여지가 많다.

*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경험한 은사는 뜻 모를 말에 지나지 않았다.

* 아주사 스트리트의 방언들도 그것을 조사한 목격자들에 따르면, 마찬가지로 진정한 언어가 아니었다고 한다.

* 오순절주의의 신학적 설립자 찰스 파헴은 KKK단을 지지했고, 토피카에 있는 자신의 성경학교에서 학생들을 차별했으며, 인종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설교를 했고, 앵글로색슨족이 지배자 인종이라고 믿었다.

* 케년의 가르침은 믿음의 말씀이 물질 축복을 강조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복음이 미래에 있을 천국에서의 상급에 대한 소망을 제시할 뿐 아니라 이곳 세상에서의 물질 축복을 약속한다고 생각했다.

* 결국, 번영 신학은 신영지주의 이원론, 뉴에이지 신비주의, 노골적인 물질주의의 혼합물인 셈이다. 건강과 부를 강조하는 번영 신학은 희생자들을 도덕적으로 빈궁하게 만들고, 영적으로 파산시키는 멸망하게 할 이단(벧후 2:1)”이다.

* 찰스 파헴과 윌리엄 케년은 은사주의를 지탱하는 신학적인 주춧돌을 놓은 은사주의 역사의 뿌리이다.

* 참된 성령의 사역을 식별하는 표징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어 복음의 명령에 따라 살며, 참 신자의 특성과 미덕을 나타내는 데 있다.

* 참된 영적 부흥은 장기적인 열매, 곧 성령 사역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행동과 삶의 방식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이루어낸다.

* 조나단 에드워즈가 요한일서 4장을 근거로 제시한 다섯 가지 판단 기준을 살펴볼 예정이다.

 

3. 영들을 시험하라(1) 영적 분별력을 위한 성경적 기준

* 요한일서 42-8절에 제시된 다섯 가지 원리를 다섯 가지 질문 형태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1) 이 사역이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2) 세속주의를 반대하는가? 3) 사람들을 성경으로 이끄는가? 4) 진리를 앞세우는가? 5)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독려하는가?

* 은사주의자들은 성령, 즉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령을 강조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인격과 사역을 강조하기를 원하신다.

* 성령께서는 우리가 성자를 영화롭게 할 때 가장 큰 영광을 누리신다.

* 만일 영광과 관심의 초점이 성령께 돌아간다면, 그분은 그곳에 함께 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영광을 받으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 초교파적인 은사주의의 또 다른 사례가 유명한 번영 신학 설교자 조엘 오스틴을 통해 나타난다. 오스틴의 교리는 천박하고 감상적인 보편주의를 지향한다.

* “3의 물결 운동의 발상지인 풀러신학교가 최근에 몰몬교와 복음주의 기독교의 연합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은사주의가 복음을 왜곡한 또 하나의 사례가 믿음의 말씀운동이 내세우는 번영 신학, 곧 건강과 부의 약속에서 확인된다. 이것은 은사 운동의 치명적인 오류가 아닐 수 없다.

 

4. 영들을 시험하라(2) 번쩍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 성령의 참된 사역은 공허한 추구나 육신의 정욕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의 경건을 독려하고, 속된 욕망을 억제한다.

* 은사주의자들은 겸손, 인내, 화평,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희생적 헌신과 같은 성령의 참된 열매는 종종 무시한 채, 오로지 육체의 건강, 물질적인 부, 일시적인 행복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 2006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뉴 라이프 처치라는 은사주의 복음 교회를 담임했던 테드 해거드는 동성애 상대자에게 마약을 살 돈을 대 주고, 3년 동안 성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드러난 후에 사임했다.

* “3의 물결의 지도자이자 사도를 자처하는 피터 와그너는 하나님의 계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된다는 주장으로...

* 성령의 참된 사역은 성경과 모순되거나 성경을 훼손하거나 성경에 새로운 계시를 더하지 않는다(22:17-19 참조).

* 은사주의자들이 교리를 경시하는 이유는 성경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 고린도전서 144절의 바른 이해: 나는 무질서한 은사주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울의 말은 방언을 자기의 덕을 세우는데 사용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은사의 목적을 무시하고 사랑의 원리를 도외시한 채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단죄한 것이다. ... 바울의 요점은 그런 식의 자기과시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유익하게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람은 방언을 통해 단지 자신의 자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 은사는 자기 자신의 덕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졌다.

 

5. 신사도운동의 실체를 파악하라: 자칭 사도라고 부르는 사람들

* 1901년 당시 캔자스 주 토피카에서 개최된 기도회 도중에 아그네스 오즈먼이 방언을 말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은사주의 지도자들은 2001년을 두 번째 사도 시대가 시작된 해로 일컫는다. 이는 피터 와그너가 한 말이다. 피터 와그너는 오늘날의 교회 안에 여전히 사도들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고, 그때부터 현대 교회가 사도의 직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기 위한 사역에 착수했다.

* 사도직에 필요한 자격 요건: 1) 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어야 했다(1:22, 10:39-41, 고전 9:1, 15:7,8) 2)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임명하신 사람이어야 했다(3:14, 6:13, 1:2,24, 10:41, 1:1). 3) 사도는 기적과 표적으로 사도직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어야 했다(10:1,2, 1:5-8, 2:43, 4:33, 5:12, 8:14, 고후 12:12, 2:3,4).

* 만약 사도직이 중단되었다면,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모든 영적 은사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6.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을 경계하라: 선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 오늘날에도 주는 경고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선지자는 그들의 예언이 세부적으로 얼마나 정확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그릇된 예언을 했는가에 의해 판단된다(왜냐하면 심지어 귀신들린 사람들도 때로 올바른 예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16).

* 선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마이크 비클, 봅 존스

* 베니 힌도 198912월에 여러 가지 유명한 예언을 말했지만, 그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은사운동은 거의 100년 전에, 찰스 폭스 파햄을 통해 처음 시작되어 베니 힌이라는 대표자를 통해 그 세력을 널리 확대하기에 이른 은사 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 사역자들이 이끌었던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 신자들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외에 다른 새로운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성경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 역사적 개신교 신앙은 정경이 종결되었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새로운 계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만으로 완전하고 충족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하나님이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분은 모든 것이 충족한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특별한 의무나 소명을 느끼게 하시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렇게 하신다. 그런 경험은 새로운 게시가 아닌 성령의 조명에 해당한다.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영혼의 눈을 열어 진리를 보게 하신다. 우리의 경험과 주관적인 생각과 상상을 앞세워 성경의 권위와 확실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성령과 말씀을 분리해서는 안된다.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 게시는 모두 완성되었다.

* 데살로니가 520-22절에서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라고 말했다. ... 이 말은 예언이 이미 계시된 진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6:7, 3,20). ...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메시지를 전해들을 때마다 영적 분별력을 발휘해 그것을 이미 기록된 게시의 말씀과 주의 깊게 비교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그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예언을 신자들이 피해야 할 (22)”으로 일컬었다.

* 찰스 스펄전: “... 허튼 소리를 하려고 입이 근질거린다면, 그것이 성령이 아닌 마귀의 지시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이미 모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7. 거짓 방언에 현혹되지 말라: 위험한 체험

* 결국 그들은 방언을 언어가 아닌 뜻 모를 소리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 현대의 방언 은사가 성경적인 은사에 해당하는가? 현대의 방언은 참된 영성의 가면을 뒤집어 쓴 위험한 거짓이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부두교 주술사에서부터 불교의 신비주의 수도사와 몰몬교의 설립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이비 종파와 거짓 종교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 현대의 방언은 뜻 모를 중얼거림과 무의미한 음절로 이루어진 학습된 행위인데 비해, 신약 성경의 방언 은사는 화자가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이었다.

* 그러면 성경적인 방언 은사의 정확한 본질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이것은 20세기 초의 오순절주의자들까지도 사도행전 2장의 현상이 실제 언어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정도로 명백했다. ... 나중에 현대의 방언이 실제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은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비정통적인 견해를 옹호하기 위해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 대다수 은사주의자들은 의미 없는 방언을 옹호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인용한다. 그들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 기록된 방언이 사도행전의 방언과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본문은 그런 주장을 용납하지 않는다. 단순히 용어만을 살펴봐도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두 곳의 본문 모두 동일한 용어를 사용해 방언의 기적을 묘사한다.

* 바울이 고린도전서 1210절에서 각종 방언 말함을이라고 말한 것은 일부는 실제 언어이고, 일부는 뜻 모를 소리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 세상에는 다양한 어족이 존재한다. 방언의 은사는 신자에게 다양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제공한다.

* 두 사람 이상의 오순절 주의 방언 통역자들이 동일한 방언을 녹음한 내용을 듣고 해석을 시도하면 그 내용이 서로 전혀 다르다. 이런 사실 역시 현대의 방언이 통역 가능한 실제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입증한다.

<1> 방언 은사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 우선, 방언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었다. 방언은 제자들이 참 복음의 사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표적 가운데 하나였다(2:20).

* 바울은 은사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신자들을 굳건히 세우는 데 있다고 말했다(벧전 4:10,11 참조). 방언의 은사를 교회 밖에서 아용할 때는 (오순절의 경우처럼)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는 표적이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사용할 때는(바울이 고린도 신자들에게 말한 대로) 다른 신자들의 덕을 세우는 일에 기여해야 했다. 또한, 신약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의 방언 은사는 통역이 가능한 경우에는 예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리를 교회에 계시하는 역할을 했다.

<2> 모든 신자가 방언을 말해야 했는가?

* 은사주의자들은 방언이 성령 세례를 입증하는 보편적인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바울의 가르침은 오순절주의의 그런 입장을 산산이 부서뜨린다.

* 은사주의자들은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고전 14:5)”라는 바울의 말을 모든 신자가 방언을 말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바울의 말은 실제적인 가능성이 아닌 가정적인 과장법에 해당한다.

<3> 바울이 고린도 신자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명령했는가?

*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더 나은 길, 곧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한 사랑을 베푸는 길을 보여주려고 했다. (바울이 그들에게 권고하는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 오늘날의 은사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처럼 그리스-로마의 신비 종교에서 이루어졌던 뜻 모를 말을 흉내냈던 사람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4> “천사의 말은 무엇인가?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바울은 일종의 가정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2,3절에 언급된 다른 가정적 상황들도 사랑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극단적인 예와 과장법에 해당한다.)

* 은사주의자들은 바울이 진정으로 가르치고자 했던 것(곧 은사를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참된 목적에 어긋난다는 것)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천사의 말이라는 문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은사의 참된 목적은 사랑으로 다른 신자들의 덕을 세우는 것이다. 이처럼, 고린도전서 131절의 천사의 말은 뜻 모를 허튼소리를 중얼거리는 현대 방언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5> “방언도 그친다는 바울의 말은 무슨 뜻인가?

* 바울은 고린도전서 138절에서 방언도 그치고라고 말했다. 이 구절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 파우오영구적으로 중단된다를 의미한다. 교회 역사상 기적적인 은사들이 중단되었다가 1901년에 다시 회복되었다고 주장하는 고전적 오순절주의자들에게 파우오라는 동사에 담겨 있는 영구적인 의미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의 은사주의자들이 어떻게 주장하든, 그들의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은사가 아니다. 신약 성경의 은사는 사도 시대 이후 완전히 종식되었고, 지금까지 다시 나타난 적이 없었다.

* 바울은 고린도전서 139,10절에서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는것이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온전한 것은 무엇을 가리킬까? 워필드는 완성된 정경(1:25 참조)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엇갈리지만, 기적적인 계시의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결론에 있어서는 모두 의견이 동일하다.

* 본문의 목적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사랑은 본질상 이 세상에서만 일시적으로 전재하는 은사들과는 달리 지속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

* 그리고 언젠가 교회 시대가 끝나면(즉 대환란과 천년 왕국의 시대에) 하나님은 다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을 허락하실 것이다(11:9, 29:18, 23:4, 11:3 참조).

<6>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라는 바울의 말은 무슨 의미인가?

* “만일 방언이 통역되지 않으면, 오직 하나님만이 그 말을 알아들으실 수 있다는 말이다.

<7> 방언으로 기도하면 안되는가?

* 바울은 고린도전서 1413-17절에서 방언의 은사를 공중 기도에 사용해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 그리스-로마의 신비 종교는 황홀경에 빠져들어 중얼거리는 소리를 귀신과 소통하기 위해 생각을 마비시키는 수단으로 흔히 사용했다. 따라서 이 구절에 기록된 바울의 말은 풍자적인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고린도 신자들을 책망한 이유는 그들이 이교도의 생각 없는 행위를 모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이처럼, 신약 성경은 집에서 혼자서나 특히 교회에서 단체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현대 은사주의자들의 방언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8> 바울은 방언을 개인적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선교의 목적으로(사도로서의 사역을 뒷받침하는 표적으로) 사용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16:20, 고후 12:12 참조).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의 은사를 스스로의 유익을 위해 사사로이 사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고린도 신자들의 교만을 엄히 꾸짖었다.

<9> 초대 교회 안에서 방언은 어떤 역할을 차지했나?

* 바울은 고린도전서 14:26-28에서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규칙을 몇가지 제시했다. 1) 예배를 드릴 때 세 사람 이상은 방언을 말하지 말라. 2) 한 번에 한 사람씩 말하라. 3) 방언을 통역해 교회의 덕을 세우라. 4) 통역할 사람이 없을 때는 침묵하라.

* 방언의 은사는 교회에서 질서 있게 사용되어야 했다(39-40). 방언을 무질서하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용 방법에 위배된다. 그런 규칙은 방언의 은사가 여전히 존재할 때 주어졌다. 방언의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해도, 오늘날 신자들은 다른 은사를 사용해 예배를 인도할 때 여전히 질서와 예의를 지켜야 한다.

<10> 신자들이 거짓 방언의 은사를 구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가?

* 은사주의자들은 때로 39절을 근거로 오늘날의 은사주의 방언을 금지하는 사람은 바울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의 명령은 현대의 거짓 방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외국어를 말하는 참된 방언의 은사가 아직 활동 중일 때, 신자들은 그 은사의 사용을 금지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거짓 은사의 사용을 중단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 난잡하게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현대의 방언은 40절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 현대 은사주의의 방언이 모든 점에서 거짓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참된 방언은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말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의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 현대의 방언이 이교도의 종교 의식과 우사하다는 사실은 이 비성경적인 행위가 초래할 영적 위험을 강력히 경고한다.

 

8. 거짓 치유와 거짓 희망에 속지 말라: 거짓 치유 사역자

* 오럴 로버츠는 번영의 교리를 만들어내고 나서 그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이 컸던 믿음의 씨앗(Seed-Faith)”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그는 물질을 바쳐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이 만사형통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쳤다.

* 나는 텔레비전에서 그를 수없이 지켜봤지만, 그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 로보츠의 사역이 우선적으로 강조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데 필요한 술책이었다.

* 오럴 로버츠대학교 출신: 조엘 오스틴, 베니힌: 오럴 로버츠 추종자

※참된 치유사역과 현대의 거짓된 치유 사역의 차이점

<1> 신약 성경의 치유 사역은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의 믿음에 의존하지 않았다.

* 베니 힌은 혹시나 병이 나았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그 공로를 모두 자기에게 돌리면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실패 앞에서는 그 책임을 조금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 믿음에 관한 주님의 관심은 질병 치유가 아닌 영혼의 구원과 관련이 있었다.

<2> 신약 성경의 치유 사역은 돈이나 명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3> 신약 성경의 치유 사역은 완벽했다.

<4> 신약 성경의 치유 사역은 부인할 수 없었다.

<5> 신약 성경의 치유 사역은 즉각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6> 신약 성경의 치유 사역은 참된 메시지를 보증했다.

* 사도적인 병 고침의 은사는 종결되었다.

 

9.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 성령의 구원사역

* 성령의 위엄과 권위는 본질상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시다.

* 아마도 성부나 성자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모욕을 당하신다면, 복음주의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설 것이 분명하다. 성령의 영광과 명예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소극적인지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 우주 창조가 놀라운 기적이었듯, 성령께서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새 창조의 역사도 그와 똑같이 기적에 해당한다. -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참된 기적을 보는 것이다.

※성령의 구원 사역

<1> 성령께서는 불신자들에게 죄를 깨우쳐주신다.

<2> 성령께서는 부패한 마음을 거듭나게 하신다.

* 물리적인 세계에서 갓난아이는 스스로를 잉태할 수 없다. 영적 세계에서도 죄인은 자신의 재탄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에 해당한다.

<3> 성령께서는 죄인을 회개하게 하신다.

<4> 성령께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게 하신다.

*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받은 순간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가 된다(고전 12:13).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모든 신자에게 그 기쁘신 뜻에 따라 서로를 섬기는데 필요한 은사들을 나눠주신다(7). 예언, 방언, 치유와 같은 은사들은 사도 시대에만 국한되지만,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가르침의 은사와 봉사의 은사들은 지금도 여전히 성령을 통해 교회에 주어진다(12:3-8, 고전 12-14장 참조).

<5> 성령께서는 신자들 안에 거하신다.

<6> 성령께서는 구원을 영원히 보장하신다.

 

10.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 성령의 성화 사역

*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예언과 방언과 치유는 성경의 참된 은사들을 흉내낸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 모든 신자는 구원받은 순간에 성령의 세례와 인치심을 받고(고전 12:13, 3:27, 1:13),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한다(8:9). 성령 세례는 단 한 번 일어난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동안, 성령으로 계속 충만해야 한다.

* 성령 충만이 황홀한 경험이 아니라 영적 열매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성령 충만한 신자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5:22,23)”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그들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다(8:14).

* 성령의 은사 자체가 성령 충만의 증거는 아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는 성화다.

* (성령으로 행하라)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매사에 그분께 복종한다. “행한다는 말은 일상적인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주님은 자기에게 속한 신자들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탁월하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신다(2:14 참조).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으라) 하나님의 아들을 증언하시는 것이 성령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15:26).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고(16:14), 그분의 주권에 기쁘게 복종하게 하심으로써(고전 12:3) 그분을 영화롭게 하신다.

* 무질서한 은사주의는 성부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도록 이끌지 않는다(1:15). 은사주의는 성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11.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라: 성령의 영감과 조명

* 종교개혁. 유럽의 보통 사람들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성령께서는 그 초월적인 진리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깨우쳐주시고, 그들의 영혼을 회심으로 이끄셨다.

*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리로 종교개혁의 폭발적인 파급력을 발생시킨 불가항력적인 힘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루터와는 달리 자신의 영혼 안에 의심이 싹트도록 허용했고, 루터교 신자였던 부모에게서 배운 복음의 진리를 거부했다.

* 슐라이어마허는 할레대학교에 다닐 무렵, 성경을 공격하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성경의 역사적 정확성을 부인하는 회의론자들이지 인간의 이성을 하나님의 계시보다 우위에 올려놓았던 세속주의 철학자들이었다.

* 슐라이어마허는 어리석게도 성경의 객관적인 진리를 주관적인 영적 경험으로 대체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토대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 신학적 자유주의는 기독교를 자처하면서도 성경의 정확성과 권위와 초자연적인 속성을 부인하는 종교 사상을 가리킨다.

* 그 대신 사회복음을 탄생시켰다. 사회복음은 개인적인 죄와 영원한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을 강조하는 대신 성경의 참된 메시지를 도외시하고 사회를 문화적 병리 현상으로부터 구원하는데 초점을 맞춘 무기력한 도덕주의를 설파했다.

* 현대의 은사주의도 그와 똑같이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은사주의는 성경의 권위가 아닌 다른 것을 믿음의 토대로 삼아 그릇된 신앙관으로 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

* 선과 악의 싸움은 처음부터 진리를 위한 싸움이었다.

*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거짓을 말하거나 하찮기 짝이 없는 위험한 경험을 내세워 그분의 말씀을 어지럽히는 행위를 가장 엄격하게 단죄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성령 사역의 세 가지 측면

<1> 성령께서 영감을 주어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2> 성령께서는 성경을 조명하신다.

* 성령의 영감은 성경 저자들에게만 주어졌지만, 성령의 조명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다.

<3> 성령께서는 성경에 능력을 부여하신다.

* 그분은 말씀이 전파될 때 불신자들의 마음을 책망하시고, 구원받은 신자들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신다.

*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분은 우리의 눈을 열어 풍성한 진리를 이해하게 하신다. 그분은 진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능력 있게 역사하게 하시어 구원자이신 주님의 형상을 닮게 하신다.

 

12.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을 주장하는 나의 친구들에게 띄우는 서신

* 더욱이 그들은 사도의 독특한 직임이 1세기 이후로 중단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 성경 시대에 있었던 무오한 예언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동의한다.

* 이런 사실은 은사종결론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은사지속론자들은 전례들과 전혀 닮은 점이 없는 현대 은사주의의 행위들을 당연히 성경의 용어로 설명해야 할 것처럼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사로운 느낌이나 언뜻 떠오르는 공상은 예언의 은사,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것은 방언의 은사, 경이로운 듯한 섭리는 무조건 기적으로, 치유를 구하는 기도가 응답되면 모두 누군가가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증거로 간주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상황은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은 은사들을 그런 식으로 묘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에 내포된 위험

<1>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은 무분별한 은사 운동이 정당하다는 환상을 부추긴다.

* 외국어를 말하는 성경적인 기적과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현대의 방언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은 무엇이든 실패할 수밖에 없다.

<2>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은 하나님이 1세기 교회에 허락하신 참된 은사들의 기적적인 본질을 왜곡시킨다.

<3>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자들은 잘못된 은사주의에 치우친 사람들을 올바로 비판하기가 매우 어렵다.

<4>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신자들에게 새로운 계시를 허락하신다고 주장함으로써 혼란과 오류로 치우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 마귀가 거짓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는 말을 성령의 말씀으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판단착오다.

<5>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은 하나님이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새로운 계시를 허락하신다고 주장함으로써 오직 성경으로!”라는 교리를 암묵적으로 부인한다.

* 은사운동의 핵심은 성경의 유일한 권위를 저버린데 있다.

<6>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은 의미 없는 방언(대개는 개인적으로 드리는 방언 기도)을 인정함으로써 은사주의 예배가 무분별한 황홀경을 부추기는 상태로 기울도록 유도한다.

<7>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은 지유의 은사가 오늘날까지 계속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은사주의 신앙 치료사들의 사기 행각을 부추기는 기본 전제를 확증한다.

<8> 복음적인 은사지속론은 사람들을 거짓으로 유혹해 성령의 참된 사역에서 멀어지게 만듦으로써 성령을 욕되게 한다.

 

※부록: 교회사의 증언들

* 전통적으로, 은사주의자들은 초대 교회의 기적적인 은사들이 1세기를 지나면서 모두 중단되었다고 인정했다. 그들은 1901년에 아그네스 오즈먼이 방언을 말하면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요엘서 223절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근거로 이른 비는 오순절에 이루어진 성령의 강림을, 늦은 비는 20세기에 이루어진 성령의 강림을 각각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요엘서 2장의 문맥 안에서 23절이 천년왕국 시대에 내리게 될 비를 약속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 “그러나 그 후 요한 사도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해 정경이 완성되지 기적을 행하는 은사들은 교회 안에서 사라졌다. ... 그로써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폐하고 지식도 그치리라는 본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지금은 그런 성령의 은사들이 모두 종결된 것으로 보인다.”

* 찰스 스펄전(1834-1892) “죄 가운데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성령의 사역은 방언을 말하게 하는 은사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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