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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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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논쟁 해부

I. 이슬람 논쟁 해부

 

서** 글/한반도 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처: 개척정보, 2010년 6월호, pp. 12-15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선언하시고 그의 백성에게 계시하신 천국 프로젝트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진화의 과정이 아니다. 땅에 떨어진 한 알의 씨가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맞는 과정은 '자연사/自然史'가 아니라 '치열한 투쟁'이다. 그래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는 과정 또한 그것을 지연시키고 싶어하는 어둠의 세력이 거대한 힘으로 저항하는 것을 돌파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의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선점'해서 복음의 수용을 차단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등장을 경고하고 있다. 서구의 헬라 철학을 비롯하여 근대의 계몽주의, 합리주의, 낭만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과 같은 사조들은 그저 철학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 온 세계관이며 복음의 절대성을 밀쳐내는 사고의 힘이다. 그리고 또 하나 '거짓 선지자'의 체제인 이슬람이 있다. 미국의 연구기관인 <<Pew Forum>>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이슬람은 세계 인구 68억 중 23퍼센트에 해당하는 15억 7,000만명에 육박하며, 이 중에서 20퍼센트는 이슬람이 아닌 타종교권 국가에 분포하고 있다.

 

한국의 이슬람 논쟁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포교단체로는 <<타블리히 자마트>>, <<동남아시아, 태평양지역 이슬람 선교회>>, <<사우디아라비아 종교성>> 등이 확인되었고, 무슬림 이민자와 유학생들에 의해 이슬람의 실체는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별히 무슬림 이민 2세들의 교육 영역을 세계 이슬람 운동 단체가 독점하면서 어릴 때부터 이슬람 원리주의 교육을 받는 글로벌 무슬림 자녀들/Global Muslim Kids이 한국 땅에도 자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내부에 이슬람 이슈가 공론화 되는 과정이 좌파 우파의 대립으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과 상황, 220호 특집 이슬람 포비아/Phobia가 온다'에서처럼 한국에 진출하는 이슬람 세력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슬람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논객들을 보수주의와 원리주의로 매도하고 거꾸로 그들의 '위험성'을 문제시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활동층은 '1987년 체제'에서 자란 지성인들로서 대부분 반독제, 반권위주의, 개혁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고, 이들은 전통 보수주의자들의 집단 무의식인 '빨갱이 색깔론'을 뼈 속 깊이 혐오하는 세대이다. 따라서 이슬람을 소수자로 인식하고, 제국주의의 희생자인 이슬람 세계를 보호하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기존의 선교를 <기독교의 잘못된 선교방식>으로 평가절하하며 선교를 비판한다. 물론 이슬람의 호전성과 잠재적 위험성을 강조하는 이슬람 담론도 문제는 있다. 한국 사회도 9/11 사태를 통해서 이슬람 문명 전쟁의 파괴력을 보았고, 구체적으로는 <2004년 김선일씨 피랍사태>,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2009년 예멘 한국 관광객 테러> 등을 통해 이슬람을 공포/Phobia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이슬람권 선교는 피해야 하는 위험한 일인 것처럼 결론지으며 과도한 두려움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한국 선교를 위해서 국내의 이슬람 논쟁을 해부하고 실체적 접근을 통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공유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필자는 이슬람 이슈 자체가 문화 논쟁으로 치닫는 것에 대해 우선 문제를 제기한다. 이슬람은 정치현상이다. 이슬람은 국가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는 통합 체제이기 때문에 국가운동을 배제하고 이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마치 역사를 빼고 텍스트/Text를 분석하는 것처럼 공허하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슬람의 지하드 이데올로기를 국제정치적 입장에서 분석하고, 논쟁의 실체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또 이슬람권에서의 장단기 선교가 이슬람 테러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것과 또 지나치게 위험한 선택이라는 세간의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다르 알 이슬람/dar el islam과 다르 알 하르브/dar el Harb

 

이슬람을 순전히 문화적 현상으로 보면, '꾸란'의 텍스트 자체 속에서 다뤄지는 지하드를 분석하면 된다. 복음주의 진영에서 다뤄지고 있는 이슬람 세미나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미 꾸란의 이중성과 폭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꾸란이라는 텍스트/Text를 해석하는 콘텍스트/Context를 함께 분석하지 않으면 이슬람의 실체는 이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하드는 이슬람 문명과 국가의 팽창과 생존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지하드는 이슬람 국가 건설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지하드는 일종의 전쟁 동원령과 같다. 다시 말해서 지하드의 목적은 이슬람 국가 공동체의 방어와 팽창과 연관된, 전쟁과 평화를 위한 통치수단이다. 이슬람의 지하드를 정치현상으로 보며 글로벌 역학관계에서 다루지 않으면 그 실체를 오인하는 것이다. 이슬람이 세계 영토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 알 이슬람/dar el islam>과 <다르 알 하르브/dar el Harb>이다. <다르 알 이슬람>은 무슬림 정착지역으로서 이슬람 국가의 통치 권역이며 이슬람의 법적 권위가 인정받는 영토이며, 이슬람 국가가 세워지는 곳마다 평화가 보장된다고 보기 때문에 <다르 알 살람/dar el salam>이라고도 한다. 반면 <다르 알 이슬람>이 아닌 지역을 <다르 알 하르브>, 즉 전쟁의 땅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전쟁 발발 지역이라기 보다는 아직 이슬람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평화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다르 알 하르브>는 이슬람 세력이 해방시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역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이슬람은 <다르 알 하르브>를 정복하고 전 세계를 <다르 알 살람>으로 통일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는 항상 생존을 위해 전쟁과 방어라는 현실 판단 아래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지하드는 바로 <다르 알 이슬람>을 건설하고 방어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뜻한다.

 

꾸란에서 알라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에 관하여 사용되는 단어는 지하드가 아니라 '끼발/qibal, 살육'이다. 또 꾸란에는 무차별적인 살육과 재산 약탈이 금지되어 있다. 한국에 유포되고 있는 이슬람 자료 중에서 압둘라합 자히드가 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입니다"라는 글을 보면, "이슬람은 누군가 먼저 공격을 시작하지 않는 한 먼저 싸움을 시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자히드는 "우리는 무지한 사람들이 거만하게 선을 넘어서서 사람들에게 굴욕과 피해를 주는 죄를 저지르고 평화의 원칙을 위반하는 일이 없는 한 그들과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평화의 원칙을 위배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고 선을 넘어서는 행동을 할 때에는 그들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허락됩니다"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이슬람이 비록 호전적인 종교이지만 원칙에도 없이 자의적으로 누군가를 종교의 이름으로 막무간에 죽이는 폭력의 종교는 아니라는 점이다. 지하드는 어떤 원칙에 근거하여 실행되는 것이다. 반드시 먼저 공격을 받을 경우, 그것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지하드이다. 그렇다면 지하드의 조건은 무엇인가?

 

집단적 지하드의 조건

 

이슬람에 세계 영토를 한번에 <다르 알 이슬람/dar el Islam>으로 정복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전쟁과 지하드만을 수행했더라면 이슬람은 초기에 멸망했을 것이다. 이슬람 국가가 팽창이냐 방어냐를 결정하는 것이 철저하게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와 이슬람 역량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정세 분석에 바탕을 두고 유연하지 않았다면, 이슬람 국가는 결국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서 패망했을 것이다.

 

따라서 <다르 알 이슬람> 건설을 위한 집단적 지하드에는 크게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방어적 지하드이다. 이슬람 공동체(움마)가 공격당하는 물리적 위험의 시기에 국가 지도자는 종교적 가치 아래 무슬림을 전쟁으로 동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공격적 지하드이다. 이슬람의 역량이 어떤 국가를 <다르 알 이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선포하는 파타/Fatah(정복) 명령이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인 칼리프는 그 <다르 알 하르브/dar el Harb>로 진군할지 여부와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즉 지하드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1) 이슬람 학자나 권위자에 의한 파트와/fatwa(임박한 원수들에 대한 지목)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2) 국가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이슬람 세계가 공격적인 입장이 아니라 방어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면, 일차적으로 자국의 영토에 쳐들어온 이교도 세력에 대항하여 지하드 역량을 총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슬람 세계가 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1차 대전 때 패망)과 같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전 세계 무슬림에게 지하드와 파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 현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사마 빈라덴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서 마치 자기가 무함마드인 양 이슬람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무함마드처럼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채 동굴에서 인터뷰를 하며 전 세계 무슬림에게 미국을 향한 지하드 동원령을 내렸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슬람 정치 역사에서 현 시점은 파타 시기가 아니라 방어적 지하드를 수행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방어적 지하드는 이슬람의 땅에 이교도 국가가 침략할 경우 무력을 통해서 외세를 몰아내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자행되는 이슬람 폭력 사태는 국가테러에 대한 무력 방어의 성격이 강하다. 외국 군대가 침략해서 식민지 전쟁을 수행할 경우 주권국가는 당연히 군사력과 외교력에 집중하여 외세 세력을 추방해야 한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면서 반소/反蘇 지하드의 대행진에 전 세계 무슬림이 무자헤딘(무장 게릴라 조직)으로 참전하면서 이슬람 국제운동의 1세대가 형성되었다면, 미국에 대한 이슬람 지하드의 시작은 바로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이를 막아내고자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상륙하면서부터이다. 오사마 빈라덴은 신성한 이슬람의 땅, 사우디아라비아에 이교도 국가의 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보고 반미 지하드를 결심하고 알 카에다 건설에 박차를 가했고, 결국 10년 후에는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처럼 지하드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공격을 전제하지 않으면 수행되지 않는다. 한국인이 이슬람의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지하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활동하는 이교도를 죽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속한 국가 전체에 대한 전쟁 선포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술/Sulh(순간적 평화)rhk 살람/Salaam(영속적 평화)

 

이슬람 지하드는 전쟁과 평화라는 정세적 판단에 기초한 정치적 행동이다. 만일 이슬람 국가가 부흥과 팽창의 국면에 접어들었다면 파타를 통해서 <다르 알 이슬람/dar el Islam>의 지경을 넓혀 갈 것이지만, 자체 역량이 충분하지 않고 국제적 환경이 불리하다면 비이슬람 국가와는 한시적이지만 평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것을 <술/Sulh, 순간적 평화>라고 한다. 이슬람 국가가 궁극적으로 완수해야 하는 것이 세계 이슬람화를 통한 <살람/Salaam, 영속적 평화>의 실현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한다면 곧 자멸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권에서 활동하는 비무슬림들이 있지만 그들을 상대로 지하드를 무분별하게 수행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에 대한 공격은 바로 한국 정부에 대한 전쟁 선포이기 때문에 함부로 한국인 사역자를 위험하게 하거나 해를 입힐 수 없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 정부가 기독교 선교 공동체를 자국민으로 여기지 않고 문제시하며 낙인을 찍어 버린다면 이슬람 테러단체가 과연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일어난 한국인 테러의 근본 원인은 바로 이슬람의 땅에 대한 외세의 침략에 대응해 온 이슬람의 방어적 지하드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군 파병과 관련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의 본질이다. 다음 호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이슬람 지하드와 테러리즘에 대해서 실증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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