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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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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후 이슬람 세계의 사회적 변화와 위기(1)

 

서** 글/한반도 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처 : 개척정보, 2009년 4월호, pp. 13-16

 

"이처럼 이번 한국인 관광객 테러 사건의 근본 원인에는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적, 국가 내부적 문제들이 얽혀 있는데도 안티 기독교로 이 모든 시대의 책임을 전가하는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

 

들어가며

 

최근 조선일보에 3월 20일자 한국외대 이모 교수의 "한국인 이슬람 문화 이해부족, 적대감 사" 표제의 기사에서 한국인 관광객 대상 테러의 원인을 이슬람을 모르는 무분별한 선교활동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이와 같이 이슬람권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태를 인위적으로 반 기독교적으로 몰아가는 한국 사회의 시각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프론티어 선교가 확대될수록 이런 문화적 공격들이 격해질 것으로 보여지며 이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예멘은 중동에서 최빈국의 하나이며, 9/11 테러의 배후에 있는 알카에다(아랍어로 기지, 혹은 데이터베이스)의 창설자인 오사마 빈라덴의 고향이다. 2009년 올 1월에 알카에다가 배포한 동영상에는 아라비아 반도의 알카에다의 사우디 하부조직과 예멘지부를 통합시켰다고 한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자 알카에다 변방 투쟁지역인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고, 따라서 알카에다는 전선을 예멘으로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2008년 1월엔 예멘 동부 지역에 벨기에 여행자들이 피살을 당했고, 9월엔 미 대사관이 공격을 받아 19명이 사망했다. 알카에다 네트워크는 서구 물질주의와 세속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가 타락해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9/11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한 것이었다. 이것을 원거리 전략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국지적으로는 근거리 전략이라 하여 자국의 친서구적 정치권력을 이슬람에 대한 배반자로 보고 테러 행위나 국가 전복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한다. 이것은 북한과 남한의 주사파가 미국을 몰아내고 미국의 앞잡이인 남한의 매판자본과 매판 정치 집단을 타도하려 했던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래서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이 한국의 좌파와 거의 동일하다.

 

예멘은 국가 수출의 90%가 석유자원인데 그것도 2009년부터 석유 자원이 급격히 줄고, 2006년부터 비석유분야를 중심으로 하여 세계은행과 IMF의 지원 하에 경제개혁을 단행해 오고 있다. 그런데 석유 가격은 하락하고 또 수입원이 적어지므로 관광 사업 등 다른 국가적 수입을 확대하고자 시도해 왔다. 만일 경제가 무너지면 정부도 정통성을 잃게 되고 결국 탈레반처럼, 이슬람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관광객에 대한 테러는 바로 국가 수입원을 봉쇄하고자 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고, 2차적으로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구의 진출에 저항하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이다.

 

이처럼 이번 예멘 한국인 관광객 테러 사건의 근본 원인에는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적, 국가 내부적 문제들이 얽혀 있는데도, 안티 기독교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는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 만일 기독교가 문제의 핵심이었다면 예멘에 있는 선교사를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하지, 무고한 여행객을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멘이 알카에다의 새로운 기지가 되고 있는 근본 원인은 바로 예멘의 심각한 청년 실업난과 빈곤, 그리고 무분별한 서구 물질주의 문명의 병폐 때문이다. 국제 사회가 더욱 더 예멘의 빈곤, 여성문제 등 인류보편적인 박애정신을 발휘해야 이 문제가 해결되며, 아울러 한국의 기독교 단체들의 NGO 활동이 한층 더 요구되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어 예멘 사태처럼 이슬람도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한 새로운 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필자는 특히 9/11 사태 이후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의 사회 변동과 이슬람 운동의 전개 양상에 대한 시리즈를 연재하고자 한다. 이에 앞에 글로벌 이슬람 운동의 전개 양상과 특징 변화에 대한 분석을 먼저 시도하고자 한다.

 

I. 오스만제국의 해체와 이슬람주의

 

제1차 세계대전 후 이슬람 제국의 종주국인 오스만 뒤르크가 해체된 후 이슬람 세계는 민족국가들로 분열을 겪는다. 이전까지는 이슬람 문명을 중심으로 정치 공동체를 형성했다면 이제는 민족을 기본 단위로 하는 국제질서에 이슬람 세계가 흡수된 것이다. 터키처럼 세속주의 모델을 받아들인 국가들이 생겨나고,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이슬람 원리가 적용되는 국가들도 탄생했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의 서구화와 세속화에 반대하고 이슬람의 자급자족을 강조하며 서구의 이념을 비판하고 서구와 이슬람의 융화와 화해도 반대하는 사회적 운동이 지식인들 중심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 바로 이집트의 하산 알바나가 이끈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이다. 이들은 이집트의 세속화에 반대하고, 전통적인 이슬람 성직자 집단의 무능을 비판하면서 사회생활에서의 이슬람적 가치의 회복과 평신도 사회운동을 주도하며 짧은 기간 안에 거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성장한다(1929년 4개에서 1949년 2천개 지부, 백만명의 지지자). 특히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 분쟁이 발생하자 수많은 무슬림 형제단원들이 전투병으로 혹은 이슬람 NGO로 활동을 벌인다.

 

한편 이슬람 사회운동이 확산되자 무슬림형제단 내부에서는 국가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급진세력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활동을 통해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위로부터의 사회의 이슬람화를 추구하는 이슬람주의이다. 이슬람주의 전략의 주창자로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하면, 무슬림형제단의 급진인물인 싸이드 쿠틉을 들 수 있다.

 

그는 50년대 초반 이집트 교육 공무원을 대표하여 미국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그곳에서 싸이드 쿠틉은 미국에 교회가 많지만 미국의 신은 물질주의이며 이집트 사회가 그렇게 타락하지 않도록 투쟁할 것을 결심한다. 싸이드 쿠틉은 현대 사회를 이슬람 이전의 혼돈, 무지, 우상의 시대, 즉 자힐리야로 보았다. 세속적 정권과 부패한 정권, 왕정하의 이슬람 사회도 자힐리야이며, 무슬림들의 심장과 마음을 식민지화시키는 서구적 가치들(세속주의, 물질주의, 개인주의, 자본주의)도 자힐리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힐리야 사회는 Tarbiya(전인적 교육)와 da'wa(전도)로는 개혁되지 않으며, 오직 이슬람 혁명과 지하드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여 지하드의 개념이 변화를 겪는데, 기존의 배교자에 대한 심판이 이제는 서구 세속주의 모델의 정점에 있는 타락한 자국의 정권에 대한 지하드로 대상이 바뀐다. 이것을 근거리 전략(Near Enemy)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확대되면서 도시빈민 청년층의 실업이 확대되고, 사회가 빈부 격차로 양극화되고, 정치권력은 독재와 타락으로 국민들을 외면할 때, 이슬람주의자들은 선거가 아니면 폭력투쟁을 통해 정치권력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개별 국가 차원에서 혁명은 79년 이란의 호메이니를 제외하고는 성공할 수가 없었고, 급진적 이슬람 단체는 갈수록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하였다.

 

II. 세계화와 초국적 글로벌 이슬람 네트워크

 

자국 내에서 대중적 지지획득에 실패하고 정치적 탄압에 시달리던 이슬람 정치 운동 세력에게 재기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것이 바로,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전통적으로 러시아가 중심이 된 대륙세력과 영미를 주축으로 하는 해양세력이 힘의 균형을 이루던 완충지역이다. 그런데 79년 이란에 반서구적 이슬람혁명이 발생하자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과 사우디는 무기와 재정을 투입하고, 전 세계 이슬람 국가들에서 반소지하드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하면서 이슬람주의자들의 반소지하드 국제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오사마 빈라덴을 주축으로 하는 알카에다 조직이다. 92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완전히 물러나고 이슬람국가가 수립되자마자 알카에다는 공개적으로 반서구로 돌아섰고, 소련 붕괴를 자신의 위업으로 간주하며, 알카에다는 다음 대상으로 미국을 설정하였다.

 

한편 알카에다는 2-15명의 셀 조직(리더 중심의 강력한 수직 조직)으로 구성된 복잡한 세포조직 네트워크이며, 이슬람 혁명의 범위도 개별 국가에서 전 세계 비이슬람권을 대상으로 한다. 이것을 원거리타격 전략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개별 국가의 세속주의 정권을 교체하고 이슬람국가를 수립하기 위하여, 대중 동원이 불가능하자, 서구 자본주의 정신문명의 근원인 미국을 직접 원거리 타격하는 전략이다. 이것이 바로 9/11 테러의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한편 알카에다 내부에서도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데 알카에다 1세대가 직접 중동국가에서 아프간으로 지하드에 참전한 사람으로 서구를 잘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2세대 네오 테러리스트들은, 서구출신 무슬림들로서 서구 사회 속의 모스크들에서 회심한 무슬림 이민 2-3세들이다. 그들은 이슬람의 반제국주의, 반체제적 성격에 매료된 정치화된 반란자들이며, 종교시장에서 다른 종교들을 맛본 후 이슬람에서 길을 찾은 종교적인 유목민들이다. 또한 마약중독 전력자, 쁘띠 도둑 출신 등 이슬람 속에서 새로운 형제애와 공동체를 발견한 자들이며, 흑인, 라틴계, 혼혈인 등 급진 이슬람에서 인종주의에 대한 질타를 발견하고 그 체제에 저항하는 길을 본 자들이다. 그리고 종족적으로 대부분의 알카에다 전사들이 아랍인들(대다수 사우디인, 이집트인, 알제리인, 요르단-팔레스타인인)이지만 테러 격전지는 아랍지역이 아니라, 서구(뉴욕, 파리, 런던), 보스니아, 코소보, 소말리아, 체첸,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카쉬미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아프리카 등 이슬람 세계의 주변부, 프론티어라는 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어 이슬람 세계도 국경을 초월한 전 지구적 지하드 네트워크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9/11 테러 이후 이슬람 국가들에서의 지역별 정치사회 운동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연재물을 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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