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
폴 히버트 저, 홍병룡 역, 복있는 사람, 2010년 4월 30일 초판발행, pp.700, 29,000원
(2014년 5월 31일 읽음)
일자무식꾼이라도 복음을 한번만 듣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는 대답 이외에 다른 대답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 회심하는 일은 (1)행위와 (2)믿음, (3)세계관, 이 세 가지 차원이라고 보았다. 물론 이 경우 구원의 조건은 믿음이지만,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세 번째,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세계관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여러 가지 역사적인 관점에서 세계관의 변화 및 학자들의 주장 등 잡다하게 나열했다. 신학생이라면 철저히 공부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겠지만, 일반 독자용으로는 좀 더 요약해서 설명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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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세계관의 개념
* 독일 역사가들은 한 민족의 깊고 영속적인 문화적 패턴을 가리키는 말로 세계관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 (여기서 여러 학자들의 세계관을 나열했는데, 간단하게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집중해서 설명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2장. 세계관의 특징
* (시간을 보는 여러 가지 관점을 설명)
* (궁극적으로 세계관은 성경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렸다. 성경을 사실의 기록으로 믿느냐, 비유로 믿느냐가 가장 큰 차이이다.)
3장. 인간이 처한 상황과 세계관
* 과학적 환원주의: 일부 과학자는 기독교가 사회를 묶어주는 유용한 허구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억압적인 사회 체계를 정당화시키는 해로운 아편으로 본다. 다수는 기독교를 진리로 주장할 수 없는 인간의 구성물로 간주한다. 많은 과학 이론의 밑바탕에는 “과학은 참이고 종교는 참이 아니다”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 이는 하나님을 우리의 일상 체계에서 배제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킨다.
* 신학적 환원주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과학 지식을 모조리 배격한다. 그들은 질병과 같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영적인 것에서 찾고, 과학이 그들을 오도할까봐 두려워서 과학에서 답을 찾기를 거부한다. - 이와 같은 신학적 환원주의는 참으로 위험하다.
* 계층화 방법: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등은 과학은 사실과 진리를 다루고, 종교는 감정을 다룬다고 한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초월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편 임마누엘 칸트 같은 사람들은 종교를 도덕의 문제로 보고, 사람들의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견해를 배격한다.
* 기독교를 정서, 가치관, 사적인 의견, 초자연적인 진리 등으로 환원하는 것은 우리 삶의 넓은 영역을 세속화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되 일상 문제에 대한 답은 세속 과학에서 찾는다면, 결국 우리는 그분을 놓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은 인간은 물론이고 하늘과 땅을 모두 창조하신 분이요, 계속해서 천지만물에 관여하시는 분임이 분명하다.
* 세계관은 문화의 일부로, 특히 문화의 기반이 되는 하부구조다. 세계관이란 동일한 문화에 속한 이들이 공유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실재관이다.
4장. 세계관을 분석하는 방법들
* 우리가 물론 피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을 문화적 개념과 가치관에 입각해서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고서, 그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식으로 자민족 중심적으로 판단하는 자세다.
*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고 애쓸 때, 외부인은 인간의 행위와 산물을 관찰할 수 있어도 그들의 신념과 세계관은 볼 수 없다. 이런 것은 단지 그들의 언행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문화의 세계관은 대체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말로 표현해 줄 제보자도 없을 것이다.
* (세계관을 발견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들을 소개)
5장. 소규모 구술사회의 세계관
* (모든 세계관은 노아의 방주 이후 후손들의 신앙의 변질과정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인간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 (저자는 천년왕국을 설로 본다.)
* 소규모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경우에는 그들의 개종이 그들의 문화와 사회의 모든 수준에 영향을 주고 또 그런 변화가 개인적 차원과 공동체적 차원을 모두 아우르게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종이 의식적인 문화의 차원에서만 일어나고 세계관의 수준에서 일어나지 않을 경우는 기독교적 이교주의를 낳게 된다. 복음의 형식은 있으나 복음의 핵심이 없는 일종의 혼합주의를 낳는다.
6장. 농경사회의 세계관
* (대홍수에 대해서 저자는 노아의 홍수를 사실로 보는가 신화로 보는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7장. 근대적 세계관
* 노만 빈센트 필: 이른바 자아복음을 신학적으로 지지했다. 많은 이들에게 복음은 이 땅에서의 건강과 부, 그리고 하늘에서의 구원을 약속하는 좋은 소식이 된 것이다. - 이런 개인주의를 강조한 결과, 교회를 신앙의 가족들로 된 가족이라는 이해를 약화시켰다. 구원이 자기와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샬롬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 진화론의 뿌리 중 하나는 그리스 세계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가장 간단한 범주에서 가장 복잡한 범주까지 등급이 매겨졌고, 후자를 가장 고등한 창조물로 본 것이다.
* 또 하나의 뿌리는 역사에서 의미를 찾는 성경적 관점이다. 이에 따르면, 역사에는 시작이 있고, 흔히 갈등이 등장하는 긴 중간기가 있으며, 환전한 종말이 있다. 그런데 근대는 이 견해를 세속화 하였다. 그래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목적을 인간의 노력을 통해 이룩할 더 나은 인간 사회, 곧 세계 속에 내지된 목표로 변형하였다. 계몽주의 이래 대부분의 역사가는 하나님을 역사의 한 요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우주는 자연적인 원인과 결과로 설명될 수 있는 닫힌 체계라고 생각한다.
* 진보의 신화: 북미 대륙의 발견은 인류에게 신세계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했다. 북미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특별한 사명이 있어서 선택된 자들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복을 받았다고 여겼다.
8장. 근대 후기 또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세계관
*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뿌리는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 하이데거, 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에게서 찾을 수 있다.
* 이 개념은 문화적 상대주의 개념을 소개했고, 합리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원하여 통제권을 잡으려 했던 부르주아 세계관의 종말을 고하는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 포스트모더니티의 출연 동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계몽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다.
* 포스트모더니티는 다른 문화를 원시적인 것으로 배척하는 입장을 배척한다. 그 대신 모든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관용과 인지적, 도덕적 상대주의를 강조한다.
* 포스트모더니티는 권위에 종말을 고하고 그것을 자기표현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한다.
* 소쉬르의 기호학은 저자가 말하고 쓰는 내용과 독자가 듣고 읽는 내용을 아주 뚜렷하게 구분한다. 의사소통의 핵심은 더 이상 저자가 의도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가 어떻게 텍스트를 해석하는가에 따라 측정된다.
* 포스트모더니티에서는 정보와 오락,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 실존주의: 유일한 현실은 지금, 현재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뉴스에 주파수를 맞춘다.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건강에 관심을 둔다. 자기중심적인 행복에만 초점을 맞춘다. - 그 결과 사람들은 격분에 찬 인생을 살게 되고, 인생에서 의미를 찾고 싶으나 찾을 수 없게 된다.
* 포스트모더니티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데카르트의 금언을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로 바꾸어 놓는다.
* 자포자기, 외로움, 소외감과 같은 정서가 포스트모던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정통파 그리스도인조차 하나님을 일상생활 송으로 모셔 오기가 어려울 정도다. 지금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시대임이 분명하다. 포스트모던 종교들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 비슷하다고, 아니 본성으로나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9장. 포스트모던 이후 또는 글로컬 세계관
* 지구화의 추세가 눈에 띄게 빨라진 것은 지난 수십년동안 일어난 현상이다.
* 지구화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계속 변하는 과정이라는 점과, 각 지역과 나라가 그것을 달리 경험하고 그에 대해 달리 반응한다는 점이다. 지구화 이론들은 학계의 엘리트들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 새로운 지구화의 핵심요소 하나는 대규모 시스템들 – 대도시, 지구적 정치기구, 지구적 기업 –의 등장이다. 또 하나의 요소는 갈수록 빠른 속도로 사람들과 정보가 세계 전역으로 퍼져가는 움직임이다.
* 피터 버거는 지구주의를 퍼뜨리는 몇 개의 수레에 대해 이야기 한다. (1) 기업과 금융, (2) 지구적인 통치기구들과 유럽 공동시장, 동남아국가연합, 북대서양조약기구 (— 세계적으로 모이면 하나님께 대항한다.) (3) 학계, (4) 세계 전역으로 뻗어가는 사람들의 빠른 이동, (5) 대중문화
* 지구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지구화가 일거리를 창출하고, 중산층을 키우고, 무역을 증대시키고, 개발을 도모하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지구적 동반자 관계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자본주의적 지구화를 하나의 재난으로 본다.
10장. 성경적 세계관의 정립을 위하여
* 우리는 성경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스스로를 점진적으로 나타내신 게시의 역사임을 유념해야 한다.
* 이런 하나님의 점진적인 자기 게시는 예수라는 인물 안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만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 하나님의 성품, 곧 그분은 전능한 힘을 가진 분인 동시에 사랑이시라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만물을 다스리신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자기 형상을 닮은 인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쓰시되, 그들의 반응을 미리 정하실 수는 없다. 사랑은 인격 상호간의 자발적인 관계다. 우리가 남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상대방의 자발적인 반응을 강요할 수는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할 자들을 미리 아실 수는 있어도, 그 반응을 미리 정하시지는 않는다. 그런즉 문제는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반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 하나님 나라의 심장에는 선교가 있다. 교회는 만민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라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공동체다.
*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또 그분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의 사명은 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일이다.
* 고난은 교회의 선교에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십자가상의 승리의 빛으로 밝히 노출된, 권세들이 서로 충돌하는 현장의 한복판에 고난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 교회와 신자들은 하나님께 에배하고, 서로 교제하고, 잃어버린 세상에서 복음을 증언하도록 부름받았다. 예배, 교제, 선교, 앞의 두 가지는 교회와 신자들이 천국에서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 땅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세 번째 것뿐이다. 우리를 선교로 이끌지 않는 예배와 교제는 참된 예배와 교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그분의 증인과 대표자가 되도록 교회와 그분의 자녀들을 이 땅에 남겨두신 것이다.
* 성경적 견해에 따르면, 죄는 비인격적인 법칙의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금이 가는 것이다.
* 우리가 영적인 실재에 대해 성경적으로 접근하려고 할 때 두 가지 극단을 피해야 한다. 첫째, 사탄의 존재와 우리가 영적 싸움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안된다. 둘째, 사탄과 그 졸개들에게 지나치게 현혹되거나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시선의 초점을 오직 그리스도께 맞추어야 한다.
11장.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 영적인 변형이란, 사람들이 거짓 신들과 부, 권력, 교만, 섹스, 인종 같은 우상들을 숭배하던 데서 돌이켜서,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와 주님으로 모시는 것을 일컫는다.
*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믿음에 의해 규정한다. 그리스도인이란 특정한 것 –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신의 게시로서의 성경 등 –을 믿는 사람이다.
* 우리는 일자무식 농부가 복음을 한번 듣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으면서 이 책을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