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교
크리스토퍼 라이트 저, 정옥배, 한화룡 역, IVP, 2010년 7월 13일 초판발행, pp.732, 33,000원
(2014년 5월 17일 읽음)
하나님의 선교를 주제로 성경 전체를 꿰뚫었다. 과연 그런 시각으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요약본도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적은 분량만 읽어도 전체의 대요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성경의 각 책들을 선교 관점으로 자세히 분석했다.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명을 심어주는 좋은 책이다. (밑줄을 치고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부분을 발췌해서 정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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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나의 주 관심사는 하나님의 선교 및 그 선교에 대한 백성의 참여를 성경 전체의 해석 틀로 보는 성경해석학을 개발하는 것이다.
* 신학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 행하셨는지의 문제를 다루었다.
* 그러나, 선교는 살아있는 사람들인 우리에 대한 문제, 그리고 우리가 해 오던 일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이야기다.
*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확고한 신학이 성경 전체를 읽는 효과적인 해석학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1부 성경과 선교
* 누가복음 24장에 기록된 구약의 선교적 취지.
- (눅 24:44-47)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는 방법은 메시아적으로, 그리고 선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 바울의 해석학은 이중적 초점을 지닌다. (행 26:22-23)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 이스라엘의 선교는 무엇이었는가? 바로 ‘열방에 빛’이 되는 것, 하나님의 구속적 복을 세상의 모든 열방에게 가져다주는 수단이 되는 것이었다.
* 구약에 대한 메시아적 해석은 선교적 해석으로 이어져야 한다.
1. 선교적 해석학을 찾아서
* 해석학적 일관성의 초점인 선교 – 여전히 문법적, 역사적 도구들을 주의깊게 적용하여 그 저자나 편집자가 말하거나 글을 쓴 맥락에서 의미한 바를 가능한 한 잘 찾아내는 것이다.
2. 선교적 해석학의 형성
* 성경의 선교적 해석학은 성경의 존재와 함께 시작된다. -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의 글들 자체가 하나님의 궁극적 선교의 산물이며 증거다.
* 본문 자체가 선교활동의 산물이다.
* 신약 신학은 본질적으로 선교 신학이다. 첫째는 예수님의 선교다. 다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선교다. - 성경은 이러한 선교적 취지로 인해 신학적 일관성을 갖게 된다. 그런 일관성에는 신구약의 관계도 포함된다. 구약과 신약을 하나로 통합해 주고 그 다양한 주제들을 하나의 주제로 조화시키는 것은 바로 이 선교적 측면이다.
* 아브라함의 부르심에는 그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열방을 위해 존재했다. 여기 한 가지 사명을 갖고 계신 하나님과 한 가지 사명을 갖고 있는 백성이 있다. 이스라엘의 사명은 열방의 빛이 되어 궁극적으로 “모든 육체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도록”(사 40:5) 하는 것이었다.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또한 아브라함 안에 있으며 약속에 따라 후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예수님이 성취하셨으며,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구속받은 인류 전체가 누리게 될 미래다(계 7:9-10).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이 백성의 일부가 되어, 그들과 같은 포괄적 정체성과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선교는 무엇인가?
* 여기에 대단히 분명한 명령이 나온다. 그것은 우리 온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는 말은 선교 명령에 권한을 부여하는 근거다.
*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라는 노래는 ‘선교가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는 말도 똑같이 타당하다. 선교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의 모든 선교보다 앞서며, 우리의 선교의 기원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그분의 교회를 위해 선교를 두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선교를 위해 교회를 두셨다.
* 이스라엘이 선택된 것은 다른 나라들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모든 나라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보편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특정한 수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 선교하는 예수님은 그냥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자신이 보냄 받았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계셨다.
2부 선교의 하나님
3.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서 자신을 알리신다.
*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분이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 자신을 알리신다. - 출애굽과 베벨론 포로귀환 사건.
* 출애굽은 자기 계시를 위한 하나님의 중대한 행동이었으며, 이스라엘 편에서는 엄청나게 강력한 학습 경험이기도 했다.
* 바벨론 포로들은 적국의 성읍 한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의 과업(선교)을 갖고 있었다.
4. 살아 계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알리신다.
* 예수님은 야웨와 같은 정체성을 갖고 계신다.
* 예수님은 구약에서 오직 야웨만의 특권으로 나오는 기능들을 수행하신다. 특히 창조자와 우주의 소유자, 역사의 통치자, 모든 민족의 심판자, 그분에게 의지하는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역할이 포함된다.
*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알려지기를 원하신다 – 즉, 야웨는 땅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기를 열렬히 원하신다는 것이다.
* 예수님은 일반적인 사신들이 그러하듯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하는 단순한 대행자가 아니다. 그분 자신이 바로 전달되는 내용이시다. 예수님이 전파되는 곳에,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빛난다.
* 바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해 열방에 선교하기로 택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열방에 대한 선교를 위해 바울을 택하신 것이었다.
* (행 26:17-18)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하나님은 알려지기를 원하셨으며 그 어느 것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바울은 그 과정의 종일 뿐이었다.
* 존 파이퍼, (열방을 향해 가라)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예배가 목표다. 선교는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많은 선교모델 가운데 열방들이 새 노래를 노래한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사랑의 선교로 인해 이스라엘을 탁하셨고 교회를 보내셨다.
5.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대결하신다.
*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 인간들이 이제 신들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치 신이 된 것처럼 행동하기로 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무엇을 선과 악으로 간주할 것인지 스스로 규정하고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선교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피조물 전제를 원래의 의도된 대로, 곧 구속받은 인류의 지배를 받으며, 창조주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선교는 그러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여, 그것의 최종적 완성을 예상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을 흐리게 하는 우상들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 계속 일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을 그 우상들이 조장하는 파괴적 망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증거하고 싸우고 저항하고 고난을 받기 위해 부름받는다. 하지만 최종 승리가 주님의 것인 것처럼 전투도 주님의 것이다.
* 우리의 전투는 승리주의가 아니라 사랑으로 싸우는 것이다. 우리의 선교가 영적 전투인 것을 분명히 해야 하지만, 주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흥미로운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를 후원하는 여신들인 아데미/디아나를 구체적으로 비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선교사적 삶) 하나님의 선교는 또한 하나님 자신의 백성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며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순결함과 순수성을 유지하고, 그들을 오염시키는 혼합주의에 저항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하면 열방은 순종하며 언약에 충성을 다하는 이스라엘을 보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야웨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신 4:6-8; 28:9-10).
3부 선교의 백성
* 기독교 선교를 이해할 때 그 연결이 구약까지 이어져야 한다. 누구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또한 아브라함 안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부르셨고, 그분의 선교 대행자로 창조하신 백성에 대해 생각할 때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야 한다.
6.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 – 복 주기 위해 선택받음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최초로 선택하시고, 말씀하시고,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모두 무조건적인 것이었다.
* 그렇지만 다른 한편, 창세기 12:1-3에 나오는 말에 암시된 조건이 있다. 모든 것은 “너는 일어나 [여기로부터]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처음의 명령에 달려 있다 – 아브라함의 순종을 조건으로 신적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종이 신적 약속에 통합되었다.
* “가라 ... 복이 되라.” 사실상 이것은 하나님의 선교를 시작하는 명령이다.
* 마태는 이처럼 교회 역시 아브라함의 선교의 권위 아래 있는 것으로 본다. 마태복음 28:18-20에서 소위 대위임령은 원래 아브라함의 위임령이었던 것을 기독론적으로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7. 하나님의 특정한 백성 –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선택받음
*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선교가 성경 전체를 얼마나 촘촘하게 누비고 있는지 밝혀내고자 한다.
* 신약 첫머리에서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메시아 예수의 계보”(마 1:1)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또한 그분은 마태복음 끝에 가서 선교 과업을 아브라함의 영적 후사, 곧 메시아의 제자들에게 위임하시는 분이시다.
* (구약 전체에 걸쳐, 그리고 신약도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관통해 가며 선교를 연결시킨다.)
* 이스라엘의 독특성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성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8. 하나님의 구속 모델 - 출애굽
* 선교는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우리가 그 사역을 알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구속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출애굽 이야기를 찾아봐야 한다. 신약에서 출애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는 열쇠의 하나로 사용된다.
* 우리는 진짜 영적 해방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안다. 그것은 십자가다.
9. 하나님의 회복 모델 - 희년
* 초대교회는 서로 경제적으로 도움으로써 희년의 이상을 실천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라고 간단하게 진술한 사도행전 4:34은 사실상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신명기 15:4을 인용한 것이다.
10. 하나님의 선교적 언약의 범위
*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언약들을 선교학적으로 접근하게 해 준다.)
* 비록 우리는 저주받은 땅에 살지만 또한 언약을 맞은 땅에 산다.
11.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의 삶
*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이야기다. 성경의 요구는 인간의 적절한 반응을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의 선교는 분명 그 반응의 윤리적 차원을 포함한다.
* (윤리적 명령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그 일은 이미 일어났다), 그들의 정체성이 부과하는 사명을 성취하는 조건이다. 정체성과 순종은 은혜에서 나온다.
* 거룩하라는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온 세상을 등지고 살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그들 가운데 살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4부 선교의 무대
12. 선교와 하나님의 세상
* 온 땅, 창조세계
13. 선교와 하나님의 형상
14. 구약 환상에 나타난 하나님과 열방
* 열방은 이스라엘과 같은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 열방은 이스라엘 자신과 똑같은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종과 지리의 경계들을 무너뜨릴 것이다.
15. 신약 선교에 나타난 하나님과 열방
*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예수님 자신은 열방을 새로운 하나님의 메시아 백성으로 모으는 운동을 시작하셨다. 예수님 사역의 첫 추진력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예수님 사역의 후속적 영향은 열방을 향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치는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 예수님을 통해 도래한 하나님 나라가 이방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 새 창조 심판 후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환상에서 노아를 볼 수 있다(계 21:1). 모든 방언과 언약에서 나오는 모든 나라의 모임과 축복 속에서 아브라함을 볼 수 있다(계 7:9).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라는 언약적 주장에서 모세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유다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라고 밝히는 것에서(계 5:5) 다윗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피에 의해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에서 새 언약을 볼 수 있다(계 5:12).
* 하나님의 선교는 그렇게 위대한 승리를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