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가설
출처: 이재만 저, “창조주 하나님”
진화론이 보편화 되었을 때 성경보다 진화론을 더 신뢰했던 신학자들은 진화론과의 ‘타협’과 ‘회피’라는 두 가지 자세를 취했다.
한편 1920년 이후 신학자들 사이에 진화론을 언급하지 않고 회피하고자 하는 자세가 등장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구조가설’(framework hypothesis)이다. 구조가설은 한마디로 진화론과 대립되는 창세기 1장에서 11장의 사건들을 역사적 사실로 보되 그것을 구체적 시간의 흐름에서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신학적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시나 설화처럼 문학작품으로 놓고 해석하자는 태도다. 즉, 내용의 역사성보다는 그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자는 자세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각 날 별로 창조의 내용은 읽지만, 창세기의 엿새 동안 창조의 시간적 순서나 길이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인정하지도 않는다. 특별히 창세기 1장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히 문학작품으로 접근하려 한다. 구조가설은 오늘날 신학생들이 창세기에 대하여 가장 많이 배우는 해석 방법이다.
간단하게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첫째 날에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둘째 날에는 물과 궁창을 만드셨으며, 셋째 날에는 물과 식물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넷째 날에는 빛을 내는 해와 달과 별을, 다섯째 날에는 물에 사는 물고기와 공중 사는 새들, 마지막으로 여섯째 날에는 땅에 사는 육상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이 장면을 3일씩 나눠서 보게 되면 후반부의 3일이 전반부 3일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다음 설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날: 빛과 어둠을 나눔 – 넷째 날: 해, 달, 별 창조
둘째 날: 물을 궁창으로 나눔 –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의 창조
셋째 날: 물과 식물의 등장 – 여섯째 날: 육상동물과 인간의 창조
언뜻 보기에는 이 표는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을 조금만 자세히 읽어도 위와 같은 패턴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날에는 단지 빛과 어둠만이 등장하지 않는다. 시간, 하늘, 지구도 등장한다. 하지만 구조가설로 보려는 시도는 1장 1절부터 등장해서 창세기 1장에 20회나 언급되는 땅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2절을 보라. 첫째 날의 지구가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고 비어있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묘사는 지구에 초점이 있는 것이지 어두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다.
둘째 날의 궁창 위의 물에 대해 다섯째 날에서는 언급이 없다. 순서로 보자면 물고기는 둘째 날이 아닌 셋째 날 창조된 바다를 채우는 것이 더 어울리는 해석이다. 셋째 날에 바다가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섯째 날에는 바다 생물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위의 예는 여러 구조가설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여기서 구조가설에 대한 모든 예와 문제점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각 구조가설들은 늘 불완전하며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문하작품으로 게시하신 것이 아니라 시간적 순서대로 기록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장에 대한 이런 시도는 크리스천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대개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는 없는 통찰력이 자신에게만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창세기 1장이 그대로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심의 뿌리에는 진화론을 발견할 수 있다. 진화론이 옳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이미 진화론을 수용했기 때문에 창세기 1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과정은 우리의 입맛에 맞게 순서를 정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말하듯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은 사람이 짓는 시의 후렴구처럼 들어간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며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