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교육원리
제1원리: 구원 없는 교육은 저주다.
세상의 고등교육기관 및 자유주의 신학교들과는 반대로 성경적인 노선을 걸었고, 성경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을 양성했던 밥 존스 1세는 “구원 없는 교육은 저주다”(Education without salvation is damnation)라고 말했다. 교육의 기초와 핵심원리가 무엇인지, 이 명언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는 매우 크다.
어떤 교육이든 진리의 말씀과 무관한 교육은 저주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이는 성경과 무관한 그 어떠한 교육도 사람을 영원한 심판과 저주에서 구원할 수 없으며,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소위 “인격은 교육에 의해 향상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구원 없는 교육은 진리에 관하여 무지하고 편협한 인격의 소유자들만을 양산해 낼 뿐이다. 이들은 결국 자신이 받은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소위 “향상된” 인격인 것이다. 영원한 저주와 심판으로 끝나게 될 백보좌 심판석에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인격이 덜 “향상된” 사람들만 서는 것이 아니라 소위 엘리트 교육을 받았고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인정받았으며 선하고 종교적이었고 인격이 매우 “향상된” 사람들도 서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구원 없는 교육을 신봉했던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멸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한다(고전 1:18).
거룩하고 경건해 보이는 종교교육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구원이 없다면 그 종착점은 저주일 뿐이다. 소위 특유의 “선민사상”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인재를 배출했다고 하는 유대교 교육방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대인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면, 그들은 제일 먼저 “나는 누구다”를 배우기 이전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라는 사실을 먼저 배우게 된다(변순복, ‘유대인 교육법’, p31).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고 그들을 죄들에서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마 1:21)를 거부했다는 자신의 참 모습을 먼저 배우기 이전에 왜곡된 “선민사상”으로 그들의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특유의 선민사상이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을지는 몰라도 그 구원 없는 교육원리는 결국 그들을 저주로 몰아갔을 뿐이다. 이것이 유대교 교육방법의 본질이고 현주소다. 유대인에게서 구원이 나온 것은 분명하지만(요 4:22), “유대교 교육”에는 구원이 없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바르게 사는 것” 이것이 유대교 교육의 모토일진대, 구원 없이 사람들을 바르게 살도록 만들고 있는 그들의 교육방법은 인간의 의(또는 율법의 의)로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또 하나의 완고한 죄인들을 양산해 낼 뿐이다.
제2원리: 교육에 있어서 최종권위는 성경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남만을 섬기는 민족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유대교나 유대교 교육이 성경 중심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전된 율법해석들(장로들의 전통), 곧 미쉬나와 탈무드를 성경의 모세오경(토라)와 동일선상에 놓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성경보다도 미쉬나와 미드라쉬, 탈무드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그것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종교교육을 하고 있다.
그들의 교육방법은 결코 성경중심이 아니다. 교육에 관한 한 최종권위도 성경이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고 재해석해 주는 “랍비들”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완벽하게 계시해 주신 말씀의 의미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미쉬나와 탈무드 같은 소위 “구전 토라”가 있어야 모세오경의 완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교육철학이다. 이로 인해 성경을 재해석해 주는 인간의 전통이나 관습 같은 것들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는데 필수불가결한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교육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 믿을 때만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여 가르치고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제세해 줄 수 있을 텐데, 유대교 교육은 그 내용과 목표 및 방향이 인간의 전통이나 관습 및 해석에 따라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손을 씻고, 잔을 씻고, 단지를 씻는” 그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겼던 그들이 예수님 당대에 그분을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성경과 무관한 장로들의 전통과 탈무드의 전통을 따라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지 않는 “교육방법”의 열매다.
사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제대로 알았고, 제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4). 그러나 그들은 온전한 율법이 아닌 인간의 전통과 관습을 따랐기에 “초등교사”의 인도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이다. 유대인의 교육은 결코 성경 중심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들 교육의 중심에는 성경이 없기에 여전히 완악하고 돌같이 굳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이 없는 교육이 저주이듯이 성경이 없는 교육 역시 저주에 불과하다.
제3원리: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유대교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유대인을 유대교인답게 만드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어떠한 자긍심을 가져야 하고 또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올바른 삶을 살아 나가야 하는지 그들의 역사, 전통, 관습, 문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가르쳐 나간다. 서구의 개방과 변화의 물결에 따른 교육의 위기 속에서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종교와 관습과 의식과 예배의 교육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변화하는 사회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미 교육의 제1,2원리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어떠한 교육도 어떠한 교육방법도 무용지물이다. 이것은 비단 유대교 교육방법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표방하는 모든 신학교육 및 종교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의 제1,2원리에 충실한 상황에서만이 교육의 목표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일반교육에서 지향하는 바,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유대교 교육이나 일반 기독교 교육에서 지향하는 바 사회를 창조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진실로 ‘유대인’이었고 가말리엘 밑에서 자랐으며 그 어느 누구보다도 ‘율법의 완전한 방식에 따라’ 철저하게 유대인 ‘교육’을 받았던(행 22:3)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다가 고난에 처했을 때 했던 그의 고백을 보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이것은 유대인 교육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참된 지식에서 비롯된 교육의 열매였다. 이와 같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주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바울이 고상하게 여겼던 그 “지식”을 겸비한 사람들로 자라가게 하고 모든 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그 “지식”에 정렬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방법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 곧 한 나라가 보호받고 강성해지는 것이 누구에게 달려있는지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잠 28:2).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있다는 것은 실로 감사한 일이다.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교육원리의 핵심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