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의 비밀
김경태 지음 (포항공대 교수, 분자신경생리학, ktk@postech.ac.kr)
이제 우리 함께 유전자를 따라 한 번 여행해 보자. 사람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희한하게도 그 생김새가 부모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보게 된다. 어떤 경우는 아버지와 아들이 너무 닮아서 국화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와 닮은 자식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분신처럼 생각해 애지중지하며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어 하고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도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형질이 유전되는 것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한 분이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였던 멘델이었다. 그는 수도원 뜰에 완두콩을 재배하면서 실험하여 유명한 유전 법칙을 1866년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큰 각광을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그의 연구가 너무나 훌륭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유전 법칙이 발표된 지 78년 만에 폐렴을 일으키는 균의 DNA를 일으키지 못하는 균과 섞어 주면 이 박테리아가 폐렴을 유발하는 독성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DNA가 폐렴균의 독성을 갖게 하는 유전 물질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DN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생화학자 샤가프에 의해 DNA는 4개의 염기로 이루어지며, 이들 염기 가운데 티민과 아데닌의 양이 비슷하고 시토신과 구아닌의 양이 서로 비슷함이 밝혀졌다.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와 로잘린 프랭클린이 각각 DNA 구조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DNA의 결정을 만들고 X선을 조사시켜 산란되는 패턴을 보고 구조를 유추하고 있었다.
이런 실험 결과들을 종합하여 1953년 왓슨과 크릭은 DNA 염기모형을 만들어 맞추어 보다가 이중 나선 구조로 꼬여 있는 구조임을 알게 되었다. 이 구조를 이용하여 나선 구조의 사슬이 풀리면서 풀린 사슬을 틀로 하여 새로운 사슬이 합성되어 복제 되는 기작을 제안하게 되었다. DNA 구조에 대한 비밀이 풀리게 되자 유전자에 대한 연구에 가속도가 붙어 새로운 사실들이 급속도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유전자의 특정 위치에서 자르고 붙일 수 있는 효소들이 발견되고 염색체와는 독립적으로 세포 내에서 복제가 가능한 플라스미드라는 조그만 유전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대학에 있던 보이어는 항생제를 분해하는 효소의 유전자를 플라스미드 안에 삽입하고 재조합된 플라스미드 유전자를 대장균에 집어넣어 줌으로써, 전에는 항생제의 존재 하에서 살지 못하던 균이 이제는 살 수 있게 됨을 실험적으로 보여 주었다. 보이어의 실험이 기폭제가 되어 유전자 조작 실험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아주 보편화된 기술이 되었다.
한편 유전자가 4개의 염기가 이어져 사슬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정보를 가지며 전달하는지 궁금하였다. 이에 니렌버그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여 나란히 있는 염기 3개가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시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코라나 박사는 DNA를 합성할 수 있게 되어 여러 조합의 염기 서열을 합성하고 어떤 아미노산이 연결되는지 확인함으로써 유전자 내의 염기 서열에 따른 암호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4종류의 염기가 3개씩 조합을 이루면 64개의 조합이 생기는데 이 64개 염기 조합에 대한 비밀을 모두 풀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경우 23쌍의 염색체가 존재하는데, 이 염색체에 있는 DNA의 염기 서열을 T, A, C, G로 표시하여 기록해 나가면 1,0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 1,000권정도 만들어진다. 이런 일련의 연구를 통해 유전자는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며 부모로부터 자손으로 형질을 전해주는 궁극적인 물질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유전 물질인 DNA는 대단히 긴 물질인데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의 경우 109~1011개의 염기가 길게 이어져 하나의 염색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포유류의 경우는 하나의 염색체에 몇 십억 개의 염기 사슬을 가지고 있다. 가장 간단한 생명체인 마이코플라즈마라는 미생물도 백만 여 개의 염기 사슬을 가지고 있다. 동물세포가 분열할 때 세포분열 직전에 볼 수 있는 염색체는 폭이 0.5m, 길이가 10m인데 하나의 염색체에 들어있는 염기 사슬은 85㎜나 되어 염색체 길이의 10,000배나 된다.
그러면 이렇게 긴 염기 사슬이 어떻게 꼬여져 10m로 될 수 있을까? 한편 이 염색체는 세포 안에 막으로 둘러싸인 핵이라는 곳에 존재한다. 핵은 직경이 5㎛(0.000005m) 정도인데 핵 안에 들어있는 여러 염색체의 DNA를 전부 이어 보면 그 길이가 약 2m에 달한다. 그러면 도대체 이렇게 긴 실 모양의 DNA가 어떻게 염색체의 길이로 뭉쳐질 수 있고 핵의 직경보다 4천만 배나 긴 것이 핵 안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 실을 마음대로 구기고 접고 꼬아 보아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DNA는 무작위적으로 꼬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질서 정연하게 꼬여 있어 필요할 때는 언제나 정확하게 특정 부위가 풀려 유전 정보가 발현되도록 하고 있다.
DNA의 염기 사슬은 히스톤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실타래에 두 바퀴씩 감겨져 있다. 히스톤 단백질은 8개가 한 조가 되어 실타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염기가 쌍으로 결합하여 이중 나선을 이루고 있는 DNA 사슬은 폭이 약 20Å (*주 1Å = 10-10m)정도 인데 실타래에 감기면 100Å 정도 굵기의 실이 된다. 그리고 이 실은 실타래에 감긴 채 다시 꼬여져 약 300Å 굵기의 실로 된다. 이런 실이 적절히 구부러져 염색체의 모습을 이루는데, 이런 모습을 유지하도록 다양한 단백질이 결합하여 안정되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그리고 염색체는 항상 이렇게 촘촘히 구부러지고 감겨져 있지만 않다. 끊임없이 어떤 부위는 풀렸다가 다시 감기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풀렸다 감겼다 하더라도 엉키는 법 없이 자기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큰 중앙 도서관에 들어가 내가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책을 골라내어 그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 복사기로 복사하여 나오는 것과 같다.
RNA에 복사되어진 정보는 핵을 떠나 세포질로 나온다. 세포질에는 수많은 단백질 합성 공장인 리보솜이 기다리고 있다가 RNA에 있는 정보에 따라 아미노산을 하나씩 연쇄적으로 붙여 나감으로써 단백질을 합성한다. 이 때 RNA에 담겨진 유전 암호를 해독하는 기능을 가진 수송RNA가 아미노산 하나씩을 달고서 암호에 맞추어 질서 있게 단백질 합성 공장으로 들어가 아미노산끼리 서로 연결되도록 한 다음 공장을 나오게 된다. 이렇게 수송RNA가 차례로 정확하게 암호를 풀어 가기 때문에 염기 서열에 따라 특정 아미노산으로 연결된 독특한 단백질이 생산되는 것이다. 만들어진 단백질은 자신이 가진 활성에 따라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유전 정보가 최종적으로 발현되는 것이고, 각 생명체의 독특한 형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포마다 발현되는 특정 유전자가 다른데, 각자가 꼭 필요한 유전 정보를 정확히 선택하여 발현시킨다. 그래서 심장 세포에서는 혈액을 퍼내고 들이는데 꼭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도록 하고, 간세포에서는 소화효소나 여러 약물의 대사에 필요한 효소 등을 발현하여 간으로서 고유한 기능을 수행토록 하는 것이다. 뇌에서는 신체 각 부분이나 바깥세상에서 들어오는 각종 정보를 처리하고 적절히 대처하도록 만드는데 필수적인 단백질 등을 발현하도록 한다.
우리 몸에는 다양한 종류의 조직과 세포들이 있지만 이들 세포에는 모두 23쌍, 즉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세포 하나마다 한 개체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전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세포마다 46개 염색체의 모든 유전 정보가 한꺼번에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각각 세포의 독특한 기능에 맞는 특정 부위의 유전자만 발현 시키는 것이다. 이를 상상해 보라. 엄청난 정보의 바다에서 어떻게 그 세포가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서 가져 나오는가 말이다. 염색체 중에 어떤 부위는 잠잠한 반면 어떤 부위는 풀려서 정보를 베껴 가도록 허용하고 있다. 염색체나 RNA합성 효소나 모두 스스로 지혜를 가져서 상황에 따라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는 말인가? 혹은 세포마다 자기의 분수를 알아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부분만 발현되고 활동하도록 조절하는 것일까? 세포마다 독특한 기능을 부여하고 그 기능에 합당한 유전자가 발현되도록 애초부터 설계되어 있었고 설계된 대로 정확하게 각 분자들이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원래 설계된 대로 작용하지 않으면 단 한시도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호흡을 한 시간 안하고 살 수 있는가? 심장이 피를 5분간만 퍼 내지 않으면 우리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정상적으로 생활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인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생화학 반응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설계하고 공사를 한 공장이라도 작업 과정 가운데 혼선이 생길 수 있고 설치된 장비가 제대로 작동을 못해 불량품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자체가 우리 몸속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복잡한 반응들이 소리 없이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 많은 반응들 중에 하나만이라도 삐딱하게 마음먹고 자기 멋대로 작용하면 큰 낭패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난자와 정자가 합해져 하나의 수정란이 되면 단 한 개의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여 60-70조개의 세포를 만들고 사람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발생 과정 가운데 46개의 염색체 안에 내장되어 있는 정보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시간에 따라 적절히 발현됨으로써 한 개체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발생이 진행되면 독특한 기능의 조직들로 분화되고 그 조직의 세포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기능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체가 발달하면서 염색체 안에 꼬여 있던 DNA 사슬이 풀려지며 정보를 전해주고 한편으로 정보가 두 배로 복제되어 새롭게 생기는 세포로 전해지게 된다.
염색체 안에서 촘촘히 꼬여 있으며 다양한 단백질과 결합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두 가닥의 사슬이 풀려지고 상보적인 새로운 사슬이 만들어지고 다시 새롭게 만들어진 단백질과 결합하면서 꼬여지는 일련의 작업을 충실하게 반복하기 때문에 정확한 발생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DNA 복제 과정이 정확하지 않으면 세포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의 내용과 양이 달라져 한 개체 내에서 혼선을 빚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세포가 성숙한 개체로 발생하고 분화되는 것은 너무나 경이롭고 엄숙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자체가 기적이라면 하나의 사람으로 온전히 발생되는 것도 기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와 설계가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생명체에 유전자를 통해 독특한 청사진을 주셨고 그 정보 범위 안에서 오묘하고도 정확하게 발현되고 조절되게 하심으로 한 개체로서 충분히 살아가도록 하셨다. 아무리 복제 인간이 가능하다 해도 염색체의 유전 정보 발현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정확하게 모방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그저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만들어 놓은 것들을 이리 저리 바꿔 보려고 하는 것이 우리 수준이다. 유전자를 따라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신묘막측하심이 다시 한번 가슴에 절실히 와 닿는다.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 시편 139:14, 새번역
I praise you because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your works are wonderful, I know that full well. - Psalms 139:14, NIV
I will give thanks to You, for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Wonderful are Your works, And my soul knows it very well. - Psalms 139:14, NASB
(출처 : '과학으로 하나님을 만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