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19:1-10
(눅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눅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눅 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눅 19: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눅 19: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눅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요절 : 누가복음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Craig Nelson의 책 The First Heros에서 Doolittle Raiders에 관한 글을 읽게 되는데, 그는 2차세계대전 동안에 태평양 전선에 최초로 중요한 역습으로 갔었다. 모든 "특별 돌격기"들이 폭탄투하 임무에서 다 돌아온 것은 아니다. Jacob DeShazer는 그때 포로로 잡혀서 힘들고 고통스런 환경에 있는 전쟁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DeShazer는 나중에 전쟁 후에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복수를 하러 간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의 구세주로 영접했고,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가지고 일본 땅으로 돌아갔다. 한때 전쟁터에 있었던 예전의 전사가 이제는 화해의 전쟁을 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DeShazer의 임무는 구세주의 마음을 반영하는데, 그분은 자신이 사랑과 화해의 임무를 가지고 오셨다. 누가는,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 단순히 도덕적 표본이나 강요하는 선생이 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고 상기시킨다. 그분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다(19:10).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표시를 십자가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분이 무덤에서 당당히 일어나셔서 부활하신 것을 실감함으로써 그분이 우리를 구출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발견하며, 그 용서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영원을 변화시킨다.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이 화해의 전쟁터로 오셨기 때문이다.
- Bill Crowder -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악마와 마귀들은 웃었네.
제자들은 사망을 보고 슬피 울었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되었네.
- Sper -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복수의 전쟁으로가 아니라 화해의 전쟁으로 다가갑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에 아픔을 주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들고 찾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