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47:7-12
(창 47:7)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창 47: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 47: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창 47:11)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고
(창 47:12)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
(요절 : 창세기 47: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는 야곱의 형 에서가 둘 중에서 더 위대한 것으로 보인다. 수년동안 그는 막대한 재산과 능력을 축적해 왔다. 그는 에돔 땅의 통치자였으며 그가 요청해서 파라오를 만났을 수 있다. 그러나 에서는 자기 땅에서 모든 권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파라오를 축복했을 리가 없다. 오직 야곱만이 그런 능력을 가졌다(창세기 47:10).
영적인 사람이 자연적인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굉장한 도덕적인 힘을 갖게 하실 수 있다. 성결은 그 자체 안에 다른 모든 능력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능력 혹은 권위에 대한 그리스어(exousia)는 "밖으로" 또는 "으로부터"를 뜻하는 접두사 ex를 포함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능력은 내부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위대해 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존재로부터 시작하라." 위대함은 다른 무엇보다도 성결로부터 나온다.
워싱턴 DC에 있는 권력자들을 자주 만나는 한 친구를 아는데, 그는 세상에서 가장 저명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는 한두 마디 말을 하고, 기도하고는 계속 걷는다. 그러나 그는 자기 뒤로 그리스도의 영향을 강하게 남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을 반영하는 삶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둘려있는 위대함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것은 경건의 위대함이다.
- David Roper -
내 마음이 그분의 보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분의 초상이 내 안에서 비쳐 나오게.
예수님 닮기를 원합니다.
- Chisholm -
나이가 들면 그 사람의 삶이 얼굴에 배어 나옵니다. 관상쟁이는 아니지만 나이든 사람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풍기는 인상이 있으니까.
나에게서도 그런 경건의 위대함이 발산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이기 원합니다. 아니 그 이전에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볼 때는 까마득히 멉니다. 날마다 하나님으로 채우기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부족합니다. 왜 모든 순간을 하나님만을 위해 살지 못할까? 왜 가끔 혼자만 지내는 시간을 갖고 싶을까? 그렇지만 하나님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님을 자위하며, 좀더 가까이 나아가려고 다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