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요절: 마가복음 7:20) (예수님이)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선교사 Hudson Taylor는 설교하는 동안에 유리잔에 물을 가득 채우고는 자기 앞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말을 하면서 주먹으로 책상을 세게 쳐서 물이 책상 위로 튀겼다. 그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분은 많은 어려움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기억할 것은, 당신 안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쏟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말 아닐까요? 우리는 학대받거나 오해를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사랑의 말과, 인내와 친절로 하는가? 아니면 화가 나서 보복하려는 경향이 있는가?
에베소서 4:25-32에서 우리는 구원받기 전과 구원받은 이후의 사람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것을 본다. 성령의 지배 아래 살 때는, 삶에서 시련이나 유혹을 당할 때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에 그 성령님의 존재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갑자기 닥친 시련과 난처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은혜 안에 얼마나 자랐는지를 평가하는 좋은 시험이 된다.
좌절과 노여움을 억압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은 듯이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구세주의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예상치 않은 시련에 떠밀릴 때 진정한 인내와 친절로 반응하게 될 것이다. 유리잔에 물이 가득 찬 경우처럼, 우리 안에 있는 내용물들이 밖으로 흘러내릴 것이다.
- Richard De Haan -
주님, 모든 죄와 부끄러움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그래서 내 안에서 드러나는 구세주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 D. De Haan -
몰래카메라라는 것이 있다. 나 혼자 있을 때 남 몰래 하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난다. 마치 몰래카메라처럼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들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밖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 안에 어떤 내용물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그 중에서 특히 가치관이 중요하다. 다른 용어로 세계관.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세계관은 우리 혼자만의 생각을 통해서는 채워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예수님을 닮으면 되는데, 그러려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빨리 아는 방법은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다. 그에 대해 세 부류의 존재를 추천하고 싶다. 첫 번째는, 존재의 이유가 바로 예수님을 알리는 분인 성령님, 둘째로는 말씀으로 성도를 가르치고 삶에서 그 본을 보이는 것을 전업으로 하는 목회자, 셋째로는 주변의 헌신된 기독교인.
우리의 그릇 안에 예수님을 담되 점점 그 분량이 많아져서 결국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흘러 넘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