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5)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요절: 골로새서 1:24)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 내 육체에 채우노라
세익스피어의 위대한 연극 중 Henry V는 가장 영웅적인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감동을 주는 한 장면에서, 영국 군인들이 자기들보다 월등한 프랑스 군대 앞에 겁을 먹고 서 있다. Henry 왕은 그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요구한다. "Crispian의 축제일"에 전쟁을 할 것이므로, 그들이 승리하면 매년 기념일마다 사람들이 그들의 승리를 기억할 것이다. 왕은 그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날은 Crispian의 축제일이다. … 그 날이 올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숫적으로 적었다. 우리는 덜 행복했다. 그러나 우리는 형제단이었다."
오늘날 미국 해병대는 자기들이 "형제단"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전쟁을 하는 동안 삶을 위해 사람들을 서로 결속시켜주는, 상호의존적인 그리고 개인이 희생하는 무언가가 있다.
반대에 직면하는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결속을 가질 수 있다. 바울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로새서 1:24)고 기록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고난이 부족했다고 믿고 있는가? 아니다. 그분의 보상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 완전히 적절했다. 바울이 말하는 의미는, 우리가 고통스런 반대 가운데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일을 완성할 때 우리가 그분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느라고 고통 당했으므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우리도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그리고 우리의 형제와 자매단에 가까이 나아갈 때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 Dennis Fisher -
오, 우리가 고통 달할 때 그리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그것은 우리를 이해하고 돌봐 주는
하나님의 성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 D. De Haan -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우리가 어떤 고통을 당할 때 가장 먼저 알려야 할 곳이 교회가 아닐까? 인간의 물리적인 피를 같이 나누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피를 함께 나눈 영적인 형제들이다. 진정으로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교회 밖에 있을까?
반대로 우리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평소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할 때 최소한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보다도 시간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시집가고 장가가고 밭을 사고 부친의 장례를 치르느라고 바쁘겠지만, 그것은 핑계가 될 수 없다. 노아 시대의 죄악이 그렇다고 했다. 시집가고 장가가느라고 그들이 바빴다. 그 자체만으로는 죄될 것이 없지만, 방주에 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시집가지 말고 장가가지 말고 방주에 탔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형제가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 곁에 있어 주어야 한다. 그 도움에는 내게 찾아와 말로 표현하는 요청에 대한 응답 외에도, 내가 먼저 그들의 필요를 찾아가는 도움도 필요하다. 선교지에는 그런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 것이다. 비록 헌데가 있고 가까이 하기에 불편하더라도 우리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구원 이후에 우리의 몸은 점점 하나님의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바꾸어 주시도록 그분께 우리 몸을 맡겨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무엇을 행함으로써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나의 자아를, 나의 자존심을, 내 몸의 모든 부분을, 그리고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드려서 그 안에 하나님이 채우시게 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삶이 남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