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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의 모든 글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하시는 김광락 목사님의 글입니다.

2013.01.16 05:43

겸손과 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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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온유

  1.jpg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제가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성품은 모두 마음의 능력인데, 겸손이란 모든 사람에게서 심지어 악인에게서도 배우려는 마음의 능력이며, 온유란, 모든 사람에게서 심지어 악인에게서도 상처를 받지 않는 마음의 능력입니다.

 

선교사에게 이 두 가지 성품보다 더 중요하고 더 긴요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현지인들에게 쉽게 상처를 주거나 혹은 쉽게 상처를 받는다면 선교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는 현지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교만 때문이고, 현지인들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는 현지인들에게 나름 사랑을 베풀었다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 때문입니다.

 

 

선교사는 겸손과 온유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이러한 마음의 능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을 묵상해볼 때 그분의 비밀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독특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라고 선언하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역사 속에 많은 위인들과 지도자들이 명멸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많은 지도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비전에 대해 강조하고 전파하였을 뿐, 결코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자신이 '겸손하고 온유하니' 자신에게 오라고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깨달음'으로 초대했을 뿐 자신에게도 초대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사상과 비전이 사람들에게 ''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어도, 결코 자신이 사람들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차이는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로 사람들을 초대하시지만 우리 중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사람을 초대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니 내게로 오라"고 하시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자신이 겸손하고 온유하기 때문에 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겸손하지 못하고 또 온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자신에게 초대하시는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겸손과 온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자신에게' 초대하실 때 자신은 '겸손하고 온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와 세상 속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사람이 없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 초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겸손과 온유'라는 두 성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닮아야 하는 예수님의 성품이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지도자가 '겸손과 온유'가 결여된다면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불행의 시대'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이런 '마음의 능력'을 갖게 되셨을까요? 먼저, 예수님의 겸손을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고, 참 창조주이신 분이셨으나 그의 만드신 사람을 사랑하셔서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하나님의 모든 신성과 능력을 스스로 비우셔서 참 사람이 되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참 겸손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배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내려놓기 전에는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가르치려는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더 가진 특별한 것을 온전히 비울 때 가능합니다.

 

비우는 목적은 채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신 것은 당신이 사랑하신 영혼들로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당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을 '판사''교사'로 대하며 무엇인가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서 선한 것을 배우려는 '학생'의 태도로 대할 수 있으셨습니다.

 

선교지에서 늘 주의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가르치는 사역은 귀하고 거룩하지만 가르치려는 태도는 악하고 못된 것입니다. 가르치면서 가르치는 학생들로부터 배우려하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의 온유함을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고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셨으나 범죄하여 타락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온유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종이 되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의 종이 되신 때부터 온유는 시작되었습니다. 온유함이란 지배하고 다스리는 태도를 버리고 베풀며 주며 섬기는 자가 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온유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ransom로 주려고 결정하실 때부터 시작된 성품이요, 마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기로 결심하게 되면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비난하고 혹은 배신하고 상처를 줄 때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상처를 받을 일이 없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동안 예수님의 마음을 지배했던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러 오신 예수님,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죽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그 어떤 사람들에게서도 상처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는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로부터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살면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상처를 받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무슨 상처를 받겠습니까? 죽은 자가 무슨 아픔을 느끼겠습니까?

 

죽은 자는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주시기만을 바라며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길 뿐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거나 고민에 휩싸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내가 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나는 예수님처럼 온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죽은 자라면 모든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내가 종이 되었다면 모든 상처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죽은 자는 상처받을 일이 없습니다. 종은 상처받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은 결코 상처받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쉽게 상처를 받는다면 나는 아직도 종이 덜 되었고, '죽은 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섬김을 받으려 하고 있으며, 섬기려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처는 아직도 자신을 부인하지 못했고, 아직도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있으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인가요? 나는 어떤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내가 가진 지식을 비운 사람이라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선한 것을 배우려고 할 것이고(겸손), 만약 내가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들의 종이 되었다면, 내가 만나는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상처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온유). 겸손은 모든 사람 앞에서 '배우는 자'가 되는 것이고, 온유는 모든 사람 앞에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그 어떤 사람, 심지어 악인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며, 악인에게서도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을 찾아내는 마음의 능력이고, 그래서 온유는 죽은 것과 같은 자신을 살릴 수 있는 부는 오직 하나님 한분뿐임을 알기에, 그 어떤 사람, 심지어 악인과 배반자에게서도 상처를 받지 않지 않고, 변명하려고 애쓰지 않고, 모든 오해와 비난 가운데서도 초연하며,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신뢰하는 마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를 닮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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