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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의 모든 글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하시는 김광락 목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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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극복하는 신앙 2 (야고보서 묵상)

 

 

11. 낮은 곳에 눈을 두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순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고난이 아예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서 순탄하다는 것은 고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고난을 만나더라도 쉽게 헤쳐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고생과 수고를 사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이삭의 생애와 야곱의 생애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의 경우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쉽게 극복하고 순탄하게 살았던 반면 야곱의 경우 그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험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왜 누구는 순탄한 삶을 살고 누구는 험악한 삶을 사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욕심'입니다. 나름 높은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험악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자족할 줄 알며 눈을 낮은 곳에 둘 줄 아는 사람은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갑니다. 흔히들 눈이 높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눈이 높다는 말은 나름 기준이 높다는 뜻입니다. 눈이 높다는 것이 나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눈이 높을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중에 하나가 자신의 기준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 목사님 중에 눈이 정말 높은 분이 계셨습니다. 자신의 외모와 달리 눈이 얼마나 높은지... 그분의 배우자상은 정말 영화배우였습니다. 저와 같이 신대원을 다닌 목회자입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고, 많은 고통과 상처를 남기고 이혼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최근 소식은 모릅니다만 기준이 높으면 고생도 많은 법입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 스스로의 눈을 낮은 곳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 벧전 5:6

 

12. 차별하지 말라.

 

사람을 잘 차별하는 사람은 어려움도 많이 찾아옵니다. 예전에 어떤 집사님 가정을 심방한 일이 있었는데 그렇게 간증하시더군요. 지금 재정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기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속으로 많이 무시했었다고...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가난한 이웃을 이해하게 되고 동정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는 '차별의식'을 뉘우치게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 고통을 당하고 연단을 받는 경우 이런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요. 사람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면 한번쯤 내 안에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의식이 있지 않은지, 혹시 내가 누군가를 업신여긴 일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시험test도 되고 시련trial도 됩니다.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으며 그 교훈을 온전히 깨닫기 전까지는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사람을 차별하는 불순물impurities이 있기 때문에 불순물이 제거되기 전까지 같은 종류의 시련이 계속될 것입니다. 시험과 시련을 당할 때는 힘들고 아프고 괴로워도 결국은 나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람을 죽이는 죄도 아니고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도 아니고 내면의 생각일 뿐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성경은 매우 심각한 죄로 규정합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차별하지 않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며 동시에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2:1-13

 

13. 행동하는 신앙이 되라.

 

어려움을 많이 겪을수록 사람은 실제적이 되어갑니다.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고난을 많이 겪게 되면 신앙은 실제적으로 되어갑니다. 어려움을 겪을수록 우리의 믿음이 개념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입술만의 고백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인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의 신앙이 실제적으로 되어 갑니다. 군살이 빠지는 것입니다. 불순물도 빠지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빨리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개념과 감정과 지식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해야 합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면 먼저 재정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서 섬겨야 합니다. 섬김으로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먼저 도와줌으로써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내 어려움을 벗어날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행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행동은 '순종'의 행동이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이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행동하는 믿음, 순종하는 믿음이 산을 옮기는 힘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을수록 행동하는 신앙, 순종하는 신앙,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 2:14-26

 

14. 말에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려움과 역경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말에 실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말에 실수를 잘 하게 되고, 말에 실수가 잦은 사람은 크고 작은 고난을 자신의 삶에 초청하는 사람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중에 하나가 말의 실수를 줄이는 법입니다. 말 한 마디에 내 삶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아십니까? 말 한 마디에 내 인생뿐만 아니라 남의 인생까지도 송두리째 불태워버린다는 것을 아십니까? 스스로 고난을 초청해놓고서 실제로 고난이 찾아오면 왜 왔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고난은 "네가 초청했기 때문에 온거지!"라고 대답하지요. 그러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었냐?"고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tongue은 천국과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리고 말은 축복과 저주를 가져다주는 씨앗과 같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말의 실수가 없었는지, 내가 혹시 이러한 고난을 초청한 그런 말을 씨앗처럼 뿌리고 다닌 적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tongue의 실수를 하지 않는 법을 주님께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말의 실수를 하기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겪으면, 예를 들어 사람들은 "죽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권세를 초청하는 줄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혹은 "이러다 실패할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패를 초청하는 말인 줄은 생각지 않습니다. 느끼는 대로 말하면 말하는 대로 느끼며 살게 됩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말하는 대로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어렵다고 어렵다고 계속 말하면 말하는 대로 계속 어렵게 됩니다. 어려울수록 말tongue을 사용하여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전략적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쓰라린 상황에 쓰라린 감정대로 쓰라린 말을 하면 쓰라린 감정과 상황은 더욱 견고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말을 바꾸기 시작하면 감정도 바꿀 수 있고 나아가 상황도 바꿀 수 있습니다. 고난trial을 극복하는 열쇠는 말tongue이 쥐고 있습니다. -3:1-12

 

15. 무엇을 자랑하는지 보라.

 

어려움을 겪을 때 비로소 우리는 평소 무엇을 자랑하면서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업에 실패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어렵다고 생각이 되거나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면 그가 평소에 무엇을 자랑하면서 살았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돈을 자랑했고, 물질적인 풍요를 자랑했고, 세상적인 성공을 자랑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겪는 어려움은 내가 무엇을 자랑하고 다녔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스승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말씀에 근거를 둘 때에야만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을 하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신앙은 헛된 자랑, 세상적인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신앙, 형통한 신앙은 진리를 따라 자랑하며, 진리에 맞는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어려움은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자랑이 무엇인지, 우리가 해왔던 거짓말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울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왜냐면 그런 시련을 통해 '성결' '화평' '양순' '관용' '긍휼'과 같은 성품들이 개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자신 안에 있었던 온갖 편견과 거짓이라는 불순물이 제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류의 고난을 올바르게 반응하게 될 때 반드시 우리를 성숙한 모습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3:13-18

 

16.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어려움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이다" 혹은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욕망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일종의 과시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비교하기 잘하고 경쟁하기 잘 합니다. 세상적인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망이 "잘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민감하고, 사람들에게 보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세상적인 사람들의 욕망이 남들보다 더 잘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남을 이겨야 한다는 그런 마음, 남들과 늘 비교하는 마음이 아주 강합니다.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싸우려는 의지도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욕심도 큽니다. 이런 욕망desire은 자신을 어려움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야곱을 생각해보십시오. 야곱은 형에게 지기 싫어했습니다. 형을 이기고 싶어했습니다. 형이 받을 축복을 자신이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축복을 받았지만 그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비로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게 됩니다. 내 안에 어떤 욕망이 자리잡고 있는지 보게 됩니다. 내 안에 어떤 정욕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겪는 어려움이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여 비추어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교회문화, 세상문화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야 할 성질이 아닙니다. "지고 싶지 않은 욕망" "멋지게 이기고 싶은 욕망" "멋진 내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 "자신을 멋지게 드러내보이고 싶은 그런 마음"을 의미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신앙은 내 안에 있는 '세상적인 요소들'을 찾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이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어려움을 쉽게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순탄하고 형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결코 피할 순 없겠으나 문제를 쉽게 하려면 내 안에 어떤 욕망이 자리잡고 있는지 알고 그것을 먼저 다루어야 합니다. 자신을 돋보이려는 욕망을 내려놓으십시오.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고 이기려는 욕망을 내려놓으십시오. -4:1-5

 

17. 겸손하라.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겸손해지면 극복해나갈 힘을 얻습니다. 아무리 악한 아합왕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스스로 겸비하였을 때 하나님은 재앙을 아합의 사후after death로 늦추셨습니다. 겸손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처음에 언급한 것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낮추어야 합니다. 모든 종류의 시련은 겸손케 하시려는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오히려 큰 은혜와 복을 체험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통과하면서 겸손해졌고 동시에 큰 은혜와 복을 받았음을 간증합니다. 자신을 낮추십시오. 하나님 보시기에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아합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천천히 걸을 필요가 있습니다. 먹는 것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음식을 얼마간 끊을 수도 있습니다. 금식은 일종의 자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최고의 겸손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4:6,7

 

18. 눈물의 잔을 채우라.

 

다윗은 자신의 눈물을 병에 계수하시는 주님을 노래했습니다. 고난의 때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울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눈물의 병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 마음은 시원하게 됩니다. 눈물을 흘릴 때 우리의 손이 깨끗해집니다.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이중적인 모습이 사라지게 됩니다.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진정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됩니다. 어려우십니까? 힘드십니까? 마음의 짐이 너무 무거워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멀리 도망가고 싶으십니까? 심지어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드십니까? 그렇다면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서 실컷 우십시오. 주님의 손에 들려져 있는 눈물의 병을 바라보십시오. 그 병에 자신의 눈물을 채우십시오. 어려움을 극복하는 신앙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신앙입니다. -4:8-10

 

19. 돈을 사랑하지 말라.

 

많은 고난이 재정적인 고난입니다. 재정적인 결핍은 대표적인 고난인데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성경적인 재물관을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는지, 아니면 돈을 섬기며 살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로는 돈을 사랑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고용주라면 피고용인들에게 제 때에 임금을 지불하였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재물의 문제는 재물로써 풀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원칙입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실 때 재정적인 결핍을 사용하시는 이유입니다. 재정적인 결핍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인지, 아니면 돈으로 사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5:1-6

 

20.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라.

 

어려울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은 현실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입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기로 결심하게 될 때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제적인 지혜를 얻게 됩니다.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재림의 소망, 부활의 소망에서 나옵니다. 어려움을 겪을수록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더욱 강해질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재림의 소망, 부활의 소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힘의 원천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음이 약해집니다.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다시 붙잡게 되면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이 굳건하게 됩니다. 어렵다는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의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 때 재림와 부활의 소망을 붙잡는 것은 더욱 현실적인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5:7,8

 

21. 사람 탓을 하지 말라.

 

어려움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지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는 것이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 사람들은 원망하기 잘 하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신앙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탓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탓하면서 침울해하지도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실수가 있다면 인정하되 지나치게 실수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원인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서로 원망하기 쉬운데 이것은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가 아닙니다. 성경은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고 말합니다. 서로 원망하는 교회는 오래 가지 않아 분열될 것입니다. 서로 원망하는 단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붕괴될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원망하는 것은 멸망과 붕괴의 조짐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보라! 심판주가 문밖에 서계시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사람에게 두지 말고, 심판주로 문밖에 서계시는 주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불꽃같으신 눈으로 서계시는 주님, 빛난 주석과 같은 발로 죄악을 짓밟기 위해 가까이 다가와 계신 주님을 응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도 서로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서로 참아주게 됩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납니까? 사람 탓을 하지 마십시오. 또는 자책하며 스스로 우울해질 필요도 없습니다. 심판주로 가까이 와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그것이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주는 지혜입니다. - 5:7-9

 

22. 본을 찾으라

 

고난의 시기를 현명하게 헤쳐나가는 비결 중에 하나는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선배들을 본을 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이라면 재정적인 문제를 믿음의 선배들은 어떻게 헤쳐나갔는지에 대해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묵상해나갈 수 있습니다. 혹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했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다면 그것을 읽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만약 관계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관계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한 방법입니다. 혹은 내가 겪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경건서적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길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내게는 그 길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문제는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찾을 수 있고, 기독교 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본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본을 바라보십시오. 어떻게 나와 같은 문제를 헤쳐나갔는지 관찰하십시오. 그리고 본을 따르십시오. 선배들의 이야기는 어려움 속에서 방황하는 나에게 분명 길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터널에 들어갈 때는 캄캄하겠지만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어려움은 막다른 길이 없는 동굴이 아닙니다. 반드시 반대편 세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간 후에는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었어! 나의 하나님은 가장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많은 분이셔!" -5:10,11

 

23. 거짓맹세에 빠지지 말라.

 

어려움을 겪으면 사람은 쉽게 거짓맹세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돌을 빌려주었다가 떼였을 때 쓰라린 마음을 가지고 "다시는 아무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결심을 하기 쉽습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사람들은 속으로든 겉으로든 "다시는 ... 하지 않겠다"라는 식의 말을 잘 합니다. 이런 것들이 일종의 '거짓맹세'입니다. 그러한 거짓 맹세는 거짓 신념에 기초하고 있는 일종의 가치기준입니다. 이러한 거짓맹세는 또 자신을 옭아매는 고통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거짓 맹세는 사람들과 관계에도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더욱 거짓말을 믿는 쪽으로 고착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다시는...' 혹은 "앞으로 절대로...." "...하나 않하나 두고봐라." 이런 거짓 맹세를 주의해야 합니다. -5:12

 

24. 중보기도를 요청하라.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기도할 힘조차 없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교회에 심방을 요청해야 합니다. 기도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내어놓고 기도를 받으십시오. 교회에도 요청하고, 친구들도 초청하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는 기도를 하거나 혹은 기도를 받거나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래 동안 불임으로 자녀를 낳지 못하여 고통을 겪을 경우 교회에 심방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를 많이 낳고 기르는 다른 믿음의 가정을 초청하여 기도를 받으십시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5:13-18

 

25. 어려움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34:19)"

 

어려운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적당히 타협한다면 어려운 일을 피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경건하게 살려고 할수록 역경은 거세어집니다. 사실은 믿음이 큰 사람일수록 시련도 큽니다. 비전이 고귀할수록 고난도 큽니다. 꿈과 목표가 원대할수록 지불해야 할 대가는 엄청난 법입니다. 의인이기에 고난이 많은 것입니다. 지혜롭다고 고난을 잘 피해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고난을 헤쳐나가는 능력이지 회피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어려움 많은 사람보다 더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없이, 문제 없이, 고민도 없이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거나 더 성공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공은 어려움이란 터널의 반대편에 있는 상급입니다. 행복은 어려움이란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자신이 온전해지고 성숙해졌을 때 찾아오는 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어려움을 겪는다고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을 직시하는 것이고 헤쳐나가는 것입니다. 바다에는 큰 파도가 있고 위험하기 때문에 배를 띄우지 않는 사람은 어떤 고기도 잡을 수 없습니다. 사나운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고 깊은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우는 사람이 오히려 더 큰 것을 얻고 많은 것을 성취합니다. 신앙은 어려움을 피하게 해주는 능력이 아니라 극복하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감추어져 있는 그 능력은 간절히 찾는 자들의 것입니다. 선교지에 오기까지, 그리고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말 못할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헤쳐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저는 저 깊은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나를 불시에 찾아올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여전히 의지할 것입니다. 어려운 일 만나도 걱정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의지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환난 당한 자들의 의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모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견고한 산성과 방패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2012415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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