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극복하는 신앙 (야고보서 묵상)
1. 세 가지 종류의 어려움
모든 인생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3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험test과 시련trial과 유혹tempt입니다. 그것은 모두 고통pain이란 공통점이 있지만(유혹의 경우 약간 다릅니다. 유혹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언제나 지름길, 쉽고 편한 길을 제시하지만 사실은 유혹에 넘어갔을 때는 반대로 더 큰 고통이 뒤따르는 경우입니다), 그 목적purpose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시험의 목적은 가르친 것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는 것이며 시험을 통과pass하면 다음 단계로 자동 업그레이드됩니다. 그리고 시련은 불순물impurities을 제거하고 부족함shortage을 채워서 온전해지며complete 성숙해지는mature 것입니다. 반면, 유혹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purpose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인데 이를 극복하면 반드시 큰 상급prize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은 위기 즉 위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했다고 슬퍼하거나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호의 기회로 만들면 되니까요...-약 1:2-4
2. 원인보다 목적에 초점을 맞추라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원인을 찾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지?" 욥을 찾아온 세 친구들은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 권면하였지요. 하지만 '원인'에 집중하는 것은 고난을 극복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지요. 반면 성경은 '목적'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면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그러나 사람들은 목적을 발견하는 데 무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시험test이라면,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제가 배워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라고 기도해야 하고, 그것이 시련trial이라면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하고, 그것이 유혹tempt이라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고난을 통해 참된 목적을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실 것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그것도 모르니?"라고 핀잔을 주시지 않으시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약 1:5-8
3. 혀를 통제하라
어려움을 당하면 감정이 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쓴소리를 많이 내뱉을수록 쓴뿌리는 더욱 깊이 내려가고 쓰라린 상황은 더욱 고착화되지요. 그러나 만일 말을 통제할 수 있다면 감정도 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상황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려움을 당할 때 필요한 역발상입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흘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말tongue을 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극복의 열쇠는 혀tongue가 쥐고 있습니다.-약 1:9,10
4. 세 가지 섭리를 알라
모든 고난에는 세 가지 섭리providence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목적'purpose이 있습니다. 둘째, '기한'period이 정해져 있습니다. 셋째, ‘상급’prize이 있습니다. 시험test은 시험지에 정답을 적어내기 전까지는 계속 되풀이 될 것입니다. 시련trial은 불순물이 제거되기 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유혹tempt 역시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이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은 그 기한period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셨고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사람은 단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그 기간에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요. 다만 확실한 것은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좋은 ‘상급'prize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급인지 받기 전에는 짐작조차 못하는 그런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약 1:12
5.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라
어려움을 만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셨는가?"라고 항변합니다. 평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허락하시는걸까?"라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삐친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교회봉사 잘 하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하나님께 서운해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혼자만 앓고 끙끙대고 있지요. 시대에 가장 경건한 욥도 그랬으니 다른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려움을 당할수록 붙잡아야 하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은 선하시다"God is Good!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착각이요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내가 겪는 어떤 어려움과 별개요, 변함없는 사실입니다.-약 1:13
6. 모든 어려움의 원인은 내 안에 있다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하신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내 돈을 갖고 도망갔다고 가정해봅시다. 분명 힘든 상황입니다. 여기서 힘들다고 할 때 그 친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믿었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가 갖고 도망간 내 돈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내 감정desire 혹은 돈에 대한 나의 감정desire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만날 때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조사할 시간입니다. 모든 어려움은 나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돕는 선생입니다. 어려움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약 1:14,15
7. 맏아들 증후군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맏아들과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앞에서 하셨기 때문에 이 비유의 주인공은 탕자가 아니라 맏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 속에서 맏아들은 아버지께 삐쳐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눅 15:28) 아버지가 함께 동생을 환영하는 잔치에 함께 들어가자고 권합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맏아들은 오래 동안 아버지를 잘 섬겼다는 것을 자기 의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맏아들은 자기 의에 대해 '염소새끼 한 마리'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염소새끼 한 마리를 주어서 자기 친구들과 즐기게 하지 않은 아버지께 분노하고 있습니다. 자기 의,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숨은 분노가 하나님 나라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삶에 잔치가 없다고 한탄하게 만드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결국 자기가 붙들고 있는 "이 정도"라는 자기 의, "염소새끼 정도"라는 자기욕심과 자기기대감입니다. 자기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자기 밖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약 1:14
8. 잔치는 항상 열려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푸신 잔치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들어가서 누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맏아들에게 다가가셔서 부드럽게 권하십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스스로 분노와 원망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둔 채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편애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사랑하셨다면 이렇게는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삶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주셨다면 '염소새끼' 정도는 주셨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죄인들이 누리는 그 엄청난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생각하면 더욱 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소박하게, 아주 소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셨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을 죄인들보다 덜 사랑하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스스로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이 사고방식의 틀은 너무나도 견고하여 스스로 깨뜨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스스로를 가두어 두고 있고 옭죄고 있는 틀을 깨뜨리고 벗어나는 것... 어쩌면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입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자신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기적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삶에 잔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만일 자신의 사고방식의 틀을 깨뜨릴 수 있다면 아버지의 잔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버지의 잔치는 항상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의 잔치는 언제나 내 곁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또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약 1:17
9. 어려움을 이기려면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어려움을 만날 때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선 소극적으로 화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사람들은 쉽게 신경질을 내고 화를 잘 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혈기를 부리기 쉬운데요 그 어떤 분노도 고난을 극복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19,20) 적극적으로 말씀을 실천하는 자세가 고난을 극복하는 열쇠가 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기만 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길 영역은 '구제'입니다. 내가 어려울수록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내가 겪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와 같이 어려운 사람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서, 그들을 돌보는 구체적인 행동이 내가 당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실제적인 열쇠입니다. -약 1:26,27
10. 어려움을 이기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능력이 필요하다면 능력을 풀어내야 합니다. 재정이 필요하다면 재정을 풀어야 합니다. 사랑이 필요하다면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흉악한 결박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결박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으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이 말씀은 고난을 극복하는 비결을 매우 실제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율법은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자유를 얻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집중하면서 자신들과 같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잊어버립니다. 자신들의 문제에 집중하는 한 자신들의 문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며 도움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도움을 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것이 도움을 받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만 바라보면 점점 그것이 커져서 나를 짓누를 것입니다. 내가 겪고 있는 그 어려움을 겪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연구해보십시오. 내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움을 주면서 나는 내 문제에서 벗어나는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약 1:25
2012년 4월 15일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