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칭의의 성경적 개념을 로마 카톨릭이 오해한 원인
그러면 로마 카톨릭이 칭의의 성경적 개념을 오해한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첫째, 로마 카톨릭은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잘못 이해했다.
힙포(Hippo)의 어거스틴(354-430)은 인간의 의지와 공로를 강조하는, 그래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효과적으로 반박했지만, 라틴어 성경의 ‘의롭게 하다’라는 단어(Justificare)를 ‘의롭게 만들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이신칭의 교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내적으로 의롭게 만드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라틴어에서 ‘facare’는 ‘만들다’는 뜻이 있다.) 이것이 로마카톨릭 교회가 어거스틴을 카톨릭 신학의 대부로 부르는 이유가 된 것이다. 어거스틴 이후로부터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신칭의는 항상 개인의 내적 변화와 관계되었다. 그래서 카톨릭은 펠라기우스를 정죄했지만 동시에 개혁자들의 이신칭의도 거부하는 바람에 스스로 ‘반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것은 어거스틴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펠라기우스를 거부하고 ‘오직 은총’만을 강조했던 어거스틴을 거부한 것이다. ‘오직 은혜’는 언제나 ‘오직 믿음’과 같이 간다. 그러나 카톨릭은 은혜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행위를 인정하려고 고집했기 때문에 어거스틴의 은총론에서 벗어난 것이다.
둘째, 로마 카톨릭은 믿음에 대해 헬레니즘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그것은 로마 카톨릭의 신조를 요약한 트렌트 칙령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로마 카톨릭의 신학은 성경적인 용어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용어를 빌려와 서술하고 있다. 헬라적 사고방식은 근본적으로 히브리적 사고방식과 틀리다. 즉, 헬레니즘적 사고방식에서 ‘믿음’은 단지 ‘사물에 대한 인식’ 차원에서 이해되어진다. 그러나 성경이 기초하고 있는 히브리적 사고방식에서 ‘믿음’이란 ‘대상에 대한 전인격적인 신뢰’를 의미한다. 철학적 언어와 범주에 묶여 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향에 사로잡힌 로마 카톨릭이 성경적인 사고방식에서 시작한 개혁자들의 ‘오직 믿음’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철학으로 성경을 보려했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참된 복음의 본질을 바로 파악할 수 없었다.
셋째, 그들은 성경본문을 피상적으로 다룸으로써 복음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있었지만 그러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했다. 그들은 성경에 ‘오직’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개혁자들의 ‘오직 믿음’을 공격했고 정죄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오직 믿음’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개혁자들의 ‘오직 믿음’을 정죄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바울의 서신서에서 ‘오직 믿음’이라는 단어는 함의되어 있다는 것을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에서도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절규했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대답함으로 ‘오직 믿음’을 말하고 있다.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것은 믿은 다음에, 그 믿음을 확증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들은 세례나 고해성사로 칭의 받은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복음서에서 행위로 의롭다함을 가르치신 적은 한 번도 없으시다는 것을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복음서에서 몇 가지만 예를 살펴보면 루터가 이신칭의 사상을 만들어냈다고 하는 카톨릭의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①“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②“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기서 분명 행위를 강조하고 계시지만 이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고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리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질문했을 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대답하신 데서 분명해진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가?
③“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여기서도 행위를 강조하고 계시지만 이 행위는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로서 개혁자들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④“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19:21) 예수님은 여기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26절에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심으로써 오직 은혜, 즉,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고 암시하신다. 카톨릭이 가르치는 것처럼 믿음과 행위로 칭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소유를 다 팔아 구제하는 것’이 칭의의 조건으로서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참된 믿음의 열매로서 가르치시는 것이다.
⑤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선언하신 말씀을 보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카톨릭이 가르치는 것처럼 죄인이 죄책을 제거하기 위해 연옥에서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⑥예수님이 행하신 치유기사를 보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계심을 분명히 보이신다. 그리고 종종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셨다.(마9:22;막5:34;10:52;눅8:48;17:19;18:42)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들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를 입증해주고 있다.
⑦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보라.(눅18:9-14) 여기서 분명히 의의 전가를 말씀하고 계신다. 또한 행위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명백히 가르치신다. 또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다”고 하심으로써 칭의가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선언임을 분명히 하셨다. 세리가 가진 의는 자신에게 내재된 그 어떤 의가 아니었다. 그 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였던 것이다.(롬4:9-11;빌3:9참조)
⑧“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더 나은 의’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은 온전함’에 도달하는 것은 행위로 가능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 구절들은 ‘행위’나 ‘선행’의 관점에서 보면 도리어 절망하게 된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산상수훈을 가르치신 예수님의 진정한 의도였다고 확신한다.
넷째, 로마 카톨릭은 교황주의라는 전통을 지키는 것을 성경의 진리를 사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만약 개혁자들이 제시한 성경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솔라 피데’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천년 넘도록 지탱해온 모든 관습(면죄부, 연옥, 미사, 고해성사, 성자숭배, 죽은 자 위한 기도, 등)이 일거에 무너질 뿐만 아니라, 교황 중심의 강력한 조직 전체가 무너질 것이다. 카톨릭은 이것을 더 두려워했던 것이다. 개혁자들의 ‘오직 믿음’은 사실상 기득권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언제나 교황과 교회 전통 아래에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인용하지만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전통과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의 권위 아래 둔다. 그들에게 성경은 교황주의를 지지하고 교회의 오랜 전통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만 자유롭게 논의되도록 허락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직 믿음”은 개혁자들이 외쳤던 “오직 성경”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루터의 이 같은 교리적 도전은 이미 기존 질서와 기득권 세력인 교황권에 대한 도전이므로 진지하게 진리를 고려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진리의 핵심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4. 칭의 교리에 대한 17, 18세기 프로테스탄트의 입장 변화
(1) 부정적 변화-알미니안주의와 백스테리안주의
그러면 칭의 교리에 대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강조가 17, 18세기에도 계속되었는가?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 17, 18세기에는 칭의 교리가 가져올 위험성, 즉, 도덕폐기론에 대한 두려움이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17세기에 이신칭의 교리를 무시한 두 가지 운동이 발생했는데, 첫째는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로서 화란 신학자 야콥 알미니우스(1560-1609)에 의해 처음 시작된 운동이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를 배격했고, 구원의 확신,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그의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 받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부인했다. 믿음은 자아의 실망 가운데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행하는 헌신으로 묘사했다. 이 운동은 18세기 초반 행위로 말미암는 칭의라는 율법주의를 만들었다. 두번째는 신도덕폐기론(Neonomianism) 혹은 백스테리안주의(Baxterianism)으로서, 유명한 청교도 목사 리쳐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의 견해로 촉발된 운동이었다. 물론 대부분 청교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확실히 백스터의 견해는 종교개혁자들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는 달랐다. 그는 이신칭의 교리는 마땅히 혐오해야 할 도덕폐기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보혈이라는 객관적 의 대신에 인간의 회개와 믿음의 주관적 의를 강조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알미니안주의와 비슷했다. 백스터는 그리스도의 형벌적 죽음을 믿었지만 제한 속죄를 부인했다. 패커는 백스터를 보면서 이신칭의 교리와 기독교 본질에 대한 청교도의 인식이 퇴보하고 있다고 했다. 백스터의 주장은 당시 대중적인 효과를 거두었지만 결국 기독교회와 복음에 치명타를 가하고 말았다. 영향력 있는 목사의 사상이 남긴 치명타는 참으로 컸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이신칭의에 대한 수정교리들은 백스터의 교훈과 비슷한 점이 많다. 즉, 개인의 심령에 내재하는 죄의 세력이 경시되고 있고, 죄가 객관화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중심적인 사안이 아니며, 인간의 반역과 죄악에 대적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맞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의 전가를 전적으로 배격한다. 백스터가 그렇게 주장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만일 하나님의 의에 기초한 칭의가 단번에 그들에게 전가됨을 믿는다면 계속되어야 하는 도덕적 노력의 필요성은 경시될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불경건하고 방종스러운 생활을 하던 크롬웰 군대에서 군목생활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의 교훈을 도덕폐기론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신칭의 교리가 도덕폐기론을 지지하는 근거로 사용되어질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칭의 교리 자체를 수정하는 것은 분명 적절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신칭의 교리가 오해될 위험성 때문에 그 교리 자체를 포기하거나 수정하거나 혹은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마치 칼이 위험하다고 칼날을 무디게 하거나 혹은 칼을 아예 멀리 치워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 그렇게 하지 않았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라고 질문했을 때 로마 카톨릭과 백스테리안주의자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왜냐면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죄에 빠져들게 한다는 가정과 위험 때문에 자신의 칭의 교리를 수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 이신칭의 교리가 오해될 위험성을 예상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신칭의 교리를 경시하는 것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이 ‘위험하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변색시켜버리면 결국 누가 좋아할 것인가? 교회는 복음을 복음 되게 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행위가 ‘어느 정도는’ 구원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하고픈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은 신자들의 삶(선한 행위들)은 칭의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선한 행위들은 칭의가 아니라 성화와 관련되어 있다.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은 그 설자리를 잃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 역시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며, 오직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2) 긍정적 변화-18세기 부흥운동
그러나 영국의 대 각성(Great Awakening) 및 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와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이신칭의 교리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했으며 당시 성공회에 만연해 있던 도덕주의와 율법주의를 비판했다. 당시에는 믿음에 행위를 포함하는 사상이 성직자뿐 아니라 일반대중들에게까지 이미 확산되어 있었다. 당시 대주교 존 틸롯슨(John Tillotson)이 “칭의의 조건은 우리 마음과 삶의 실제적인 혁명에 있다”고 했을 때 휫필드와 웨슬리는 그를 ‘모하메드보다 기독교 진리를 모르는 무식한 자’로 비난했다. 휫필드는 겨우 20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함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이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의 여왕 메리의 통치시기에 죽임 당한 순교자들이 자신이 피를 바로 이 교리에 봉인했듯이 필요하다면 나와 내 형제들도 우리의 피를 이 교리와 봉인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18세기 뉴일글랜드의 대 부흥을 주도했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이신칭의에 대한 논문을 썼으며, 거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에 충만한 사도들로 하여금 이 이신칭의 교리의 중대성과 경향의 참된 심판자가 되도록 허락해야 한다. 우리가 사도의 뒤를 좇으며 사도가 표현한 교훈들을 충실히 견지하기만 한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그 어떤 오류의 치명적이고 무자비한 위험에서도 우리는 안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