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② - 기와 수맥의 실체
김광락 목사
요즘 ‘기(氣)’에 대한 관심이 많다. 기를 닦는 종파까지 생길 정도이다. 또 ‘수맥(水脈)’이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길거리를 가다보면 기(氣)나 도(道)에 대해서 관심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 그리고 수맥을 찾는 막대기나 저울추 같은 것을 파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이 유행하게 된 것은 불과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단어 정의부터 살펴보자.
기(氣)란 무엇인가? 기란 우주의 모든 것에 스며있는 생명에너지를 가리키는 말로서, 인도인들은 그것을 ‘프라나’(prana)라고 불렀다. 비슷한 현대용어로서 ‘자기유체’, ‘오드’, ‘오르곤’같은 단어들이 있다. 기 혹은 프라나는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를 생명에너지로 설명하려고 하는 일원론적 세계관의 대명사이다. 한마디로, 기(氣)는 동양철학이다. ‘기’로서 세계를 해석하는 일종의 세계관이자 철학이다. 본인은 지금 기가 성경적 세계관과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최근의 현상은 이 오래된 동양철학을 실생활에 응용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의 기와 사람의 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해진다느니 아니면 인체 내의 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치병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를 다스리거나 통제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상품화되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문제는 ‘기(氣)’를 응용한 여러가지 방법--건강법, 치유법, 학습법, 등--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라고 묻기 이전에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영혼에 유익하고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일단 “효험이 있다면” 자기 영혼에 바람직한 것인지는 묻지 않고 서슴없이 사용하려고 덤빈다. 기(氣)가 전파하는 동양철학적 세계관이 무엇인가? 세계는 하나라는 것이다. 자연도 사람도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고귀한 신분을 부정하는 세계관이다. 둘째, 말씀으로 피조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한다. 셋째, 자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 구원관이다. 넷째, 천사들과 마귀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명상, 기체조니 기수련법, 그리고 단전호흡이나 기호흡법, 기타 기를 응용한 여러 가지 기공법을 예를 들어보자.
그런 것들이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묻지 말자. 그런 것들을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비복음적 전제들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되고 동양철학에 담긴 범신론적이고 무신론적이고 비복음주의적인 전제와 가치관들이 우리 의식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 없이도 건강할 수 있고 또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영혼을 곤고하게 한다. 우리는 그것이 몸에 좋다고 실행에 옮기지만 실행에 옮기는 단계에서 암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계관이 내 영혼 속에 스며드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적인 세계관은 어떠한가? 성경은 세계를 ‘기’로 설명하지 않는다. 성경은 세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받았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되고 있으며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함으로써만 참된 건강과 축복을 보장받는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게 만든다.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말씀의 통치와 사람의 자유의지와 천사와 귀신들을 포함한 영의 세계라는, 이른바 세 가지 영적 영역을 인정하는 복합적 세계관이다. 모든 만물을 기로써 설명하는 일원론적 세계관과는 분명 다르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를 받고 있다.
따라서 기를 통제하거나 수맥을 찾는 행위는 말씀으로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기나 수맥을 더 운운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보다 그것들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은 기체조나 단전호흡하면서 ‘기’를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신론적 세계관으로 판단하고 세상의 악한 영들이 그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을 단속하라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가 무아지경에 몰입할 때 우주의 에너지가 몸 안에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마음을 조심하고 주의하고 항상 깨어있으라고 권면한다. 사이비기도원에서는 무아지경에 이르도록 손뼉을 치고 찬송을 부르고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여 무아지경에 이르면 ‘충만함’과 은사를 받는다고 가르치지만 그것은 순전히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 성경은 결코 무아에 빠져야 은혜 받는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무아에 이를 때 이상한 영이 들어가면 어쩔 셈인가? 만일 몸에 들어오는 우주적 에너지가 악령이라면 어쩔 셈인가? 성경은 삼가 네 마음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아무 생각 없이 기체조나 단전호흡을 따라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비복음적인 세계관이 내 마음에 흘러 들어오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을 지켜 간수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나 수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말씀의 통치능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더 인정하고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