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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의 모든 글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하시는 김광락 목사님의 글입니다.

2009.02.16 13:09

예배 4. 찬양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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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4. 찬양예배

본문 (히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늘은 찬양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교회마다 찬양예배가 유행처럼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형식적인 예배를 간소화시키고 보다 많은 시간을 찬양에 할애하는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청년부의 예배는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거의 대부분 찬양으로 예배드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배에 있어 찬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리고 예배 시간에 찬양을 많이 하려고 한다는 사실, 그리고 교회마다 찬양사역자를 중요한 사역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등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한 성경적인 기초나 원리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찬양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통해 많은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찬양예배를 드리기 원하는 교회들은 많지만 찬양예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찬양예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찬양예배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어떤 것을 말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찬양예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찬양예배에 대한 말씀의 기반이나 원리가 없이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으로 찬양팀을 조직하고 찬양예배를 시도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로 찬양에 대한 문화적인 편견이나 성경적인 인식부족, 찬양인도와 예배인도와 말씀선포와의 관계에 대해 혼동하기 때문에 오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일반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앞서 여러분들에게 잠시 말씀드렸듯이 예배에는 여러 가지 순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이 찬양이라는 것에 대해서 오늘날 교회는 점점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한 일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배의 본질은 설교라고 인식하였지요. 제가 자란 모(母)교회에서도 그렇게 인식하며 자랐습니다. 또 어떤 교단에서는 예배의 본질은 성찬예식을 거행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요즘은 교회들마다 점차적으로 찬양이 예배의 본질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1960년대 중반에서부터 미국에서 시작했던 예수운동을 통해 마라나타 뮤직, 빈야드뮤직 등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록 음악에 심취했던 히피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변화된 것이 교회음악에도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 한국에 예수전도단을 통해 처음으로 찬양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히 1973년 데이빗 로스 선교사님에 의해 찬양예배가 처음 시작했었습니다. 예수전도단에서 훈련을 받으신 분들이 80년대 경배와 찬양, 어노인팅과 같은 찬양운동을 일으킴으로써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라고 믿습니다. 형식에 젖어 있던 한국교회의 예배를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예배로 개혁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러한 최근 2,30년간의 변화를 통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단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고 또 너무 감정적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회 안에 찬양예배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에 대해서 또 하나의 유행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찬양예배는 유행이 아니라고 굳게 믿습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의 본질은 바로 찬양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본질이 왜 설교도 아니고, 성찬도 아니고 찬양인가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성경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설교나 성찬을 예배에서 필요 없다거나 무시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여전히 세례와 성찬이야말로 교회를 교회답게 해주는 기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예배답게 해주는 기능은 바로 찬양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찬양이 없는 예배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예배의 본질이 바로 찬양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오늘 읽은 말씀에서도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예배’란 단어가 ‘찬양’이란 뜻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왜 오늘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예배 ‘보러’ 나오셨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러 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러 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을 예배하러 왔는데 설교가 마음에 안 든다고 ‘아, 오늘은 내가 예배시간에 은혜가 없었어!’라고 생각한다면 사실 예배하러 온 것이 아닌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예배하러 오셨다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찬양으로 반응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하기 전에 ‘나는 오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배하기로, 혹은 믿음으로 반응하기로 결정한다!’고 결심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배시간이 시작할 때 기도할 때 이렇게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제 모습과 상황과 상관없이 저는 아버지 앞에서 예배하기로 결정합니다. 저를 도와주시고 저를 만나주십시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셔서 내가 결정하고 반응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를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온전한 예배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배하기로, 반응하기로, 하나님을 높이기로 인격적으로 결정했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배 ‘보러’ 오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러 오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예배의 본질이 찬양에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요한계시록 4,5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천상의 예배입니다. 계시록 4장을 읽어보십시오.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예배를 ‘천상예배’라고 부릅니다. 이 천상예배의 특징은 바로 찬양입니다. 천상예배에는 설교도 없고, 성찬식도 없고, 대표기도도 없고, 성시교독문 낭송도 없습니다. 오직 모든 천군천사들과 피조물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찬양함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천상예배는 바로 찬양예배의 모델입니다! 저는 이 천상예배를 말씀을 따라 마음에 그려보면 얼마나 가슴 벅차오르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가장 가까이 모시고 있는 탁월한 네 천사들은 밤낮 끊임없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아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8-11). 하나님 보좌를 중심으로 밤낮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는 바로 찬양만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반응하는 예배는 가장 천상적인 예배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천상예배를 항상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악기가 하나도 없어도, 찬양대가 없어도, 심지어 예배드릴 장소가 없을지라도, 심지어 탁월한 설교자가 없어도 우리는 이 하늘 위의 예배, 천상예배를 늘 지향해야 합니다. 지상에서의 예배는 언제나 이 천상의 예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교회가 드리는 예배는 언제나 부족한 점도, 제한이 많습니다. 지상에서의 예배가 언제나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하고 완벽한 천상예배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가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믿음과 성령 안에서 하늘의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노래 소리가 아름답지 못할 수 있습니다. 화음도 엉망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무런 악기도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준비된 콘서트보다 더욱 아름답고 완벽한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예배에 악기나 사람이 예배에 어떤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오직 영으로 진리로 반응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그 모든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배의 황홀함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찬양예배를 드릴 때 악기의 반주나 박자나 심지어 스크린에 띄어지는 가사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들이 예배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영으로 진리로 반응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음악적인 노래와 음악적인 요소가 없는 찬양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저의 동네에 농아교회가 있습니다. 저는 그 교회를 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상상해봅니다. 옛날 대학교 다닐 때 한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예배에는 아름다운 화음의 성가대가 화려한 악기의 반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찬양예배를 ‘음악적인 요소’에만 집중한다면 그런 교회에서는 결코 찬양예배를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찬양은 음악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하지만 영으로 진리로 찬양할 때 음악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제가 최근에 느끼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와 저의 가정은 찬양 테잎을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2년 전까지만 해도 찬송가 테잎이나 콘티넨달 싱어즈의 찬양, 경배와 찬양, 전하세 예수 찬양 테잎을 주로 들었습니다. 그때 YWAM에서 나온 캠퍼스 워십, 그리고 화요모임 같은 찬양 테잎을 들었는데 그때 제가 받은 느낌은 ‘너무 시끄럽다’ ‘적응을 못하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캠퍼스 워십이나 화요모임 찬양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발견하게 된 것은 듣기 위한 찬양이 있고, 부르기 위한 찬양이 있다는 것인데 제 귀는 듣는 데 익숙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현장을 2년 정도 매주 경험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화음과 반주로 듣기 좋은 찬양도 좋지만 실제로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찬양, 내가 참여할 수 있고, 내가 부를 수 있는 찬양이 더 좋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음악적으로는 세련되지 못했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내가 참여해서 직접 영으로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찬양이 더 좋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듣기 좋은 찬양이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부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내가 참여하는 것이 감상하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작년 연말에 우리 교회는 성탄절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아름다운 찬양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름다운 독창과 중창과 합장, 그리고 독주와 협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직접 참여하는 예배에 익숙해져 있던 저로서는 그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답 답하고 지루하다는 것을 느끼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것입니다. 1시간 반 동안 숨소리를 죽이며 듣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는지요! 아름다운 화음을 들으며 즐기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좋은 화음을 낼 수 없어도 내가 참여하면서 박수치며 뛰면서 온 몸으로 반응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반응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데 그저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만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저와 저의 가족이 매주 참석하는 화요모임에서는 고함도 지르고, 열정적으로 손뼉도 치고, 몸도 흔들고, 춤도 추고, 뛰면서, 어떨 때는 무릎 꿇어서, 어떨 때는 엎드려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시간 반 동안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니 이건 정말 고문(?)이라는 느낌이 든 것입니다. 내 귀를 즐겁게 하는 시간이 정말 예배인가? 아름다운 화음과 선율로써 내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하는 찬양시간이 정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라고 할 수 있는가? 저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배를 ‘보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예배를 화려한 콘서트나 웅장한 심포니로 정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피조물더러 예배를 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배를 관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찬양예배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예배는 내가 믿음으로 직접 참여하는 것입니다. 악기를 다룰 줄 몰라도, 심지어 ‘음치,’ ‘박치’여서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한 상처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양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천상예배가 채우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함을 느낄 때 오히려 우리는 더욱 강력한 찬양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찬양예배를 드릴 때 중요한 것은 주를 향한 나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 사랑일 수 있을까요? 내가 표현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내 사랑을 알아줄 수 있고, 받아줄 수 있을까요? 저는 찬양예배를 드리는데 있어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 백 년 동안 내려오는 유교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교주의가 오늘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특히 찬양예배를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이것입니다. 내면을 쉽게 표현하는 것은 양반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까? 내 마음을 열어서 보이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까? 찬양예배 때 손을 들고 찬양하거나 혹은 춤을 추면서 혹은 뛰면서 고함을 치면서 찬양하는 것은 점잖치 않은 행동입니까? 신사적이지 않은 모습일까요? 반대로 정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여러분이 가정을 이루어서 남편과 아내로서 함께 살아간다고 가정해보세요. 전혀 내면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평생을 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자녀가 부모가 된 여러분에게 전혀 마음을 열지 않고 내면의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마음으로만 사랑하면 됐지 굳이 말로 표현을 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까? 세상 속담에도 곰보다는 여우가 낫다고 합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표현하는 사람이 더욱 사랑스럽고 살기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다 읽으실 수 있는 분이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이것은 대인관계뿐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표현을 잘 하는 자녀가 더욱 사랑을 받는 법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십시오.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표현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을 창조하신 분도 우리 하나님이시고, 노래할 수 있는 재능을 주신 분도 우리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분명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이심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 보좌를 가장 가까이 모시면서 섬기는 최고의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노래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이심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찬양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그냥 암송하는 것보다 곡조를 붙여서 부르는 주기도문은 더욱 강력합니다. 사도신경을 그냥 암송하는 것보다 곡조를 붙여서 부르면 더욱 강력합니다. 찬양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는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찬양의 능력은 첫째, 기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기 전에 명령하신 것은 노래를 만들어서 가르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딱딱하게 가르치는 것보다 노래로 가르칠 수 있다면 더욱 더 기억이 잘 될 것입니다. 노래는 사람의 기억을 돕는 힘이 있습니다. 저의 집 아이들은 성경 66권의 제목을 노래로 외웠습니다. 노래가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찬양의 능력은 둘째로 사상을 형성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노래든지 그 노래에는 시대 상황과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응하고 있습니다. 고형원씨가 만든 부흥이란 찬양이 한국교회에 유행하게 되었을 때 한국교회에는 부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던 것을 보면 노래는 사상을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찬양이 무엇인지 알면 그 교회의 핵심 영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며 사람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라는 찬송을 즐겨 부른다면 그 교회는 세상에서 어려움 많이 당하며 가난한 성도들이 많은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찬양의 능력은 영적 전쟁의 능력이 있습니다. 노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귀신에 사로잡혔을 때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탈 때 악신이 떠나간 것을 보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혹은 여러분의 가정에 어둠의 세력이 자주 공격합니까? 그러면 찬양으로 맞서 보십시오. 찬양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고 지혜를 주고 영감을 주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을 때 거문고를 가져오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찬양해야 합니까? 먼저, 가사대로 찬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라는 찬양을 부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럴 때는 가사대로 두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두 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넣고서 그 찬양을 해보십시오. 얼마나 어색한지는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말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거룩한 상상력을 사용하여 찬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스크린에 비쳐지는 가사를 보면서 찬양합니다. 저는 되는 대로 가사를 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눈을 감고 가사를 들으면서 가사를 묵상하면서 찬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수많은 무리들 줄지어 그분을 보기 위해 따르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을 부를 때는 저는 눈을 감고서 2,000 년 전 갈릴리 바다를 마음으로 그려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 것을 마음에 그려봅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상상력을 사용하면서 찬양하게 되면 장점들이 많습니다. 우선 모르는 찬양이 나와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찬양하는 동안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찬양하면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여러분이 주도적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인도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찬양을 인도할 때에도 영으로 반응하는 존재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인도자가 침묵하면 여러분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혹은 여러분이 영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찬양하고, 또 영으로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성경대로 찬양하십시오. 시편을 보면 찬양의 원리와 방법에 대해 잘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찬양합니까? 입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곡조가 없어도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들을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과 나눌 때입니다. 또 노래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또 큰 소리를 외치는 것도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또 손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손뼉을 치는 것은 찬양입니다.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께 내 마음을 열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또 악기를 연주하면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몸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엎드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행위입니다. 자리에서 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뛰면서 춤을 추면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음성으로 찬양하는 것(입으로, 노래로, 큰 소리로), 손으로 찬양하는 것(손뼉으로, 손들고, 악기로) 그리고 몸으로(엎드려, 서서, 뛰거나 춤을 추면서)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 찬양할 때는 권위자의 인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는 찬양예배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권위가 서로 하나로 연합하여 있습니다. 예배인도자, 찬양인도자, 그리고 말씀선포자입니다. 그들이 서로 마음을 합하여 예배를 섬길 때 그들의 지시와 인도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예배 인도자가 기쁜 마음으로 헌금하자고 했는데 찬양인도자가 무거운 찬양으로 헌금시간을 인도하는 것은 예배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씀 선포자가 주님의 고난에 대해 말씀을 선포하면 찬양인도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보혈에 대한 찬양으로 콘티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요. 또 찬양인도자가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면서 내가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찬양하면서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줄로 믿고 따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것은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꼭 기억하십시오. 가사대로 반응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몸을 사용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표현하십시오! 그리고 가사를 묵상하면서 거룩한 상상력을 활용하십시오. 가사를 따라 주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임재를 풍성히 느끼는 찬양예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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