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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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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의 모든 글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하시는 김광락 목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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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1. 하나님을 누리는 사람

 

본문 (요 10:1-1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여러분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청년들을 섬기는 것은 제게는 큰 축복이고 도전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청년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섬긴 청년들은 이제 2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이 되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잘 섬기고 있습니다. 제가 해왔고 앞으로도 할 일은 여러분의 필요를 경청하여 진심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여러분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의 친구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3-15)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나 역시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모든 것을 다 여러분과 나누기 원합니다.

 

이번 2007년 한 해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생각하던 중에 내가 배웠고 지금도 배워가고 있는 것을 나누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듯 저는 주중에 예수전도단 대구지부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을 DTS(Disciple Training School, 예수제자훈련학교)라고 부르는데 이 사역을 통해 제가 배우게 된 것들을 이번 한 해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년 전에 제가 제주 열방대학에서 온 가족과 함께 DTS를 받았고 작년 한 해는 대구지부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DTS를 섬겼습니다. YWAM은 이 DTS 과정을 가장 기본적인 과정으로 여깁니다. 정식으로 DTS를 하려면 6개월간 공동생활을 하면서 강의를 듣고 노동도 하고 여러 과제도 제출해야 하고, 2개월간 해외와 국내에서 전도여행을 해야 합니다. 직장인들은 공동생활을 하지 않는 대신 6개월간 강의와 노동과 2주간의 전도여행을 마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자비량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개인이 부담해야 할 재정은 매우 큽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3,4개월에 걸쳐 주로 17개 이상의 주제로 강의가 이루어지는데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강의가 영향력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채워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공동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강의를 설교로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강의와 설교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강의는 전체를 다 다루어야 하지만 설교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다가 DTS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오해를 갖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의 설교를 DTS의 전부로 생각하지 말아주기 바랍니다. 다만 이번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말씀으로 여러분의 삶의 체계를 점검하는 일에 제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DTS는 삶의 체계를 돌아보고 점검하게 하는 강의입니다. 또 한 가지 저는 여러분이 저의 설교를 지식으로만 접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면서 내 삶에 무너진 영역이 무엇인지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구하기를 바랍니다. 이 DTS 강의가 공동생활과 공동묵상과 공동작업과 소그룹과 전도여행 등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배운 것을 함께 나누거나 함께 적용할 수 있는 삶의 현장이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 배우고 확신한 것을 스스로 적용해나가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제가 이 일을 하려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청년부를 하나로 묶어줄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청년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본 마인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한 해 청년부의 표어를 “하나님을 누리는 사랑 공동체”라고 정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청년부를 섬기는 동안 변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삶은 DTS의 진정한 목표이자 목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누리는 사랑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은 YWAM뿐만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의 진정한 소원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결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과 말씀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섬김에 오직 두 가지 권위만을 인정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권위요, 다른 하나는 성경의 권위입니다. 이 두 권위 외에 모든 권위들은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라 참 권위의 원천인 성경과 성령의 권위 아래 복종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전통이란 것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전통이라도 성령과 성경의 권위와 동등하거나 올라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작년까지 해 왔던 어떤 행사가 너무 은혜스러웠다고 해서 반드시 올해에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어떤 부분에서는 성령과 성경의 권위와 동일시하는 위험성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 올해도 이것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누리는 사랑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누린다는 표현은 매우 도전적입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서 히브리적 사고방식으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 보통 지식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삶은 진흙탕에서 나뒹굴고 있지만 자신은 구원받았음을 확신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교회 안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지식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표현보다 하나님을 누린다는 표현이 원래 하나님을 안다는 성경말씀의 뜻에 가깝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삶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고 이러한 공동체야말로 우리가 건설해야 할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위해서 우리 주님이 오셨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9,10절)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꼴을 먹이러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단지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만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단지 구원을 얻는데서 더 나아가 꼴을 먹이는 데까지 관심이 있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만 아니라 그 생명을 누리는데 더욱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시는 그 풍성한 꼴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만 아니라 더 나아가는 것, 다시 말해서 그 생명을 누리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우리 주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나아가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얻고 또 어떻게 풍성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어떻게 풍성하게 흘러들어온단 말입니까? 그것은 관계를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관계를 통해 흘러들어옵니다. YWAM에서 실시하는 DTS는 이 관계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관계를 통하지 않고 생명이 들어오는 경우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관계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관계는 생명과 축복의 통로입니다. 관을 통하지 않고 물을 받을 수 없듯이 만일 관계가 단절되어 있거나 깨어져 있다면 생명수는 원활하게 흐를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저와 여러분은 이 관계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관계의 동물입니다.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는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 나와 나, 나와 너, 나와 세상, 나와 원수 마귀입니다. 저는 앞으로 일 년 동안 이 다섯 관계를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이 모든 관계 중에 뿌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른 네 가지 관계에 비해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창세기 3장을 읽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단절되었는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부터 점점 다른 관계의 단절이 시작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뿌리와 열매와 같습니다. 건강한 뿌리는 반드시 건강한 열매를 맺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면 그것은 다른 모든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6)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 2:9-11).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6,27).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주님은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정립되었는지의 분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나가느냐 하는 것은 ‘행함’이요 ‘열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입술과 마음으로 단지 믿고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제로 생명을 흘려보내는 관계로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내게서 찾으시는 열매는 내가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관계를 점검하고 정립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누리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바로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풍성히 흘러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의도하셨던 바로 그 삶, 하나님을 누리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사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진정한 의도이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누렸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5장을 읽어보면 1,500년 역사에 하나님을 누렸던 사람 10명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공통적으로 ‘향수하고 죽었더라'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진정 누리면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거룩한 계보를 우리가 잇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하나님을 누리는 새롭고 거룩한 족속을 일으키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을 때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첫째가 ‘자기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즉, 그들을 불러서 전도를 시키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사역을 시키는 것이 그들을 부르신 첫째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부르신 주님의 첫 번째 소망은 그들과 단지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사역하다가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정작 중요한 주님과의 관계가 서먹해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역은 잘 하지만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의 삶을 보면 그럴 때가 되면 주님이 당신의 사역을 가로막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이 어떤 분인지 깊이 생각해봅시다. 그분은 우리의 친구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구원뿐만 아니라 꼴을 먹여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분은 단지 생명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생명을 누리기를 진정 바라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더 나아가 누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셨고,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두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첫째,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둘째, 양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누리는 삶을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목자로 인정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양의 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양의 문으로만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에 적용해봅시다. 내 삶에 꼴이 필요합니까? 내 삶에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누리는 삶,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잠잠히 응시하는 것입니다. 잠잠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잠잠히 그분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선한 목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먼저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 자신이 선한 목자이심을 입증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양이 아닙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3-5절) 앞으로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할 것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은 양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이 특권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삶의 핵심을 들라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문이요 목자로 간주하고 그분을 신뢰하면서 그분을 잠잠히 바라볼 때에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누리는 삶,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DTS의 핵심원리이기도 합니다. 마귀는 이것을 방해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저의 삶 역시 이것에 대해 훈련 중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하나님을 누리는 삶의 필수임을 확신합니다. 제가 최근 깨닫게 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 마음이 너무 분주하거나 너무 근심과 슬픔 혹은 낙심, 혹은 미움과 분노라는 감정에 눌려 있을 때 주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뜸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내 삶의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다고 여깁니다.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양의 문이신 그분을 잠잠히 바라보며 신뢰하는 것, 그리고 그분과 함께 잠잠히 앉아 있을 때 그분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리는 것,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훈련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것 없이 자신은 하나님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우리는 주님의 생명을 누린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법을 배우기 전에 다른 단계로 나아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지난 번 젊은이 예배에 참석했는데 다음 단계로 빨리 인도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꽤 많이 손을 들고 기도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들이 하나님을 누리는 법을 배우고 익혀서 자기 것으로 삼기 전에 그들을 다음 단계로 인도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분의 선한 목자이신 분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최선의 코스를 선택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좋은 꼴을 먹이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아니 더 풍성한 생명을 나눠주기를 갈망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 이런 분이 또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최선의 계획과 스케줄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누리는 법을 배우고 익히기도 전에 성급하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여러분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서 놀랍게 쓰임 받는 동안 하나님 자신과 멀어지는 것을 염려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는 결혼, 직장, 사역이 여러분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염려하지 않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주님께 견고함을 보여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곧바로 여러분을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에게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누리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누리는 법을 몸으로 익혔는가?’라고. 그리고 다시 주님께 아뢰십시오. “주님, 저는 그것을 알기 전에 다른 어떤 은혜도 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저에게 주님의 얼굴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그것을 배우기까지 다른 어떤 은혜도 저에게 주지 마십시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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