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자
아멘교회 김광락 목사
(고전 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영광’이란 말은 ‘아름다움’ ‘거룩함’ ‘능력있음’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그 어느 누구보다, 그 어느 무엇보다 아름다우신 분이시며,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며, 강하고 힘이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이유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목적이며, 목표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가?
잘못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절)는 말씀은 역사를 통해 크게 잘못 이해되어져 온 말씀 중의 하나이다.
①로마 카톨릭이 이슬람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깃발에 십자가를 새기고, 방패에도 십자가를 새겼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슬림을 칼과 창으로 죽였다. 무슬림을 죽이면서 그들은 “For Christ!”라고 외쳤다. 그래서 헐리웃 영화에서 “Christ!”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란 영광스러운 이름이 지금 세상에서 욕설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말을 잘못 적용했기 때문에 생겨난 폐단이다.
②오늘날 영화제에서 영화배우가 상을 받으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그라운드를 미끄러지면서 기도손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을 또한 볼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한번 물어보자. “그러한 세러머니가 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가?” “그 장면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거룩하심과 힘과 능력이 과연 드러나고 있는가?” “사람들은 그러한 장면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물어야 한다.
③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을 잘못 적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말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구호로 사용하는 경우는 대부분 잘못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말은 정치적인 구호로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정당화하는 변명이나 명분으로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
④요즈음 고 3들을 보면 수능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을 본다. 수능일이 되면 갑자기 교회가 ‘부흥’하는 진풍경을 보게 된다. 평소 기도생활을 안하던 부모들이 교회에 모여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기도한다. 부모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아이가 좋은 성적 내게 하시고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한번 제대로 물어보자. “자기 자녀가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그것을 통해 세상이 과연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거룩함과 능력을 보게 되는 것인가?”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성공과 안녕과 형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과 동일시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잘못 이해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⑤이것이 왜 잘못인가? 이것이 왜 크나큰 오해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세상에서 명예와 권세를 얻고, 부귀와 능력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삶을 사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순간에 “내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성공과 물질과 형통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세상에서 실패하고 넘어지고 핍박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일 수 있다. 어쩌면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일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나의 계획과 판이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계획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오해가 시작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 그것은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과 원칙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팔복의 말씀을 하신 직후에 주신 것이다. 팔복의 말씀을 기억하는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 팔복의 공통점은 모두 마음(성품)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임하는 것이다. 그들을 통해 어둠이 비로소 빛을 인식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자들이 세상의 빛이다. 이러한 자들의 삶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충만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세상에 행하시는 분인지 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닮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예배의 삶,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는 삶,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둘째, 그것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삶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다. 우리가 이기적인 삶을 살면서 내 뜻을 이루는 것이, 그리고 내가 잘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가증스럽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또 없다.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의 유익보다는 다른 이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할 때,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포기할 줄 알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32절과 33절에서 사도 바울은 31절에서 말한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부연설명하고 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타적인 마음을 가질 때부터 시작되는 삶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유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명히 생각해야 한다.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것은 자기의 생활을 포기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삶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다른 사람의 유익이 무엇인지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자기의 유익이 내가 생각할 때는 유익이 아닐 수 있고 도리어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달라고 할 때 우리는 주지 않는 것이 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다. 친구가 컨닝하도록 도와달라고 할 때 스스로 시험을 치도록 하는 것이 유익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그들에게 참된 유익이 되는지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셋째,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할 때 특별히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나의 태도와 결정과 행동으로 인하여 그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일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이것은 우리의 행동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다름 아니라 영혼구원에 힘쓰는 삶이다. 구원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에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으로 사는 삶이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목적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충만하신 영광이 그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을 위해 사는 것이란 그가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아!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라고 반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라!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다.
<맺는 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란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고, 하나님의 원칙들을 보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칭찬하게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칭찬하게 하라!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은 세상에 아무런 감동도 도전도 주지 못한다. 아무리 크게 칭찬하고 자랑하여도 세상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세상 앞에서 침묵하자. 대신 세상이 우리를 보고 칭찬하게 하자. 더 정확하게는 세상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게 하자. 우리는 세상의 칭찬을 목표로 살 필요는 전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상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보게 하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자.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지 알게 하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모든 삶의 태도와 결정과 행동에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자!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