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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나오 첫째날 - The Beauty of Mindanao

2007년 3월 3일(토) - Davao로 - Church Planting - The Beauty of Mindanao

 

Davao로

 

Land of Peaceful People을 뜻하는 Mandanawi 가 원래의 이름인 Mindanao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안내는 Mr. Bat-og 부부가 맡았습니다.

 

 

Davao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그곳에서 약 150km 떨어진 Cotabato Province의 Kidapawan City까지 승용차로 2시간 반 이상을 달렸습니다. 도중에 간식을 먹는 시간까지 합쳐서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Mr. Bat-og 부부가 살고 있는 'PAG-ASA printing house'에 도착했더니 그곳의 사장과 그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 전에 입구에 앉아서 한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PAG-ASA 는 현지어로서 영어로는 Hope를 의미합니다.

 

 

Church Planting

 

Mr. Bat-og은 본인이 하는 일을 Church Planting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선교사인데, 선교사가 직접 개인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헌신된 목회자가 복음을 잘 전하고 자립하여 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필리핀으로 오는 우리나라 선교사도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he Beauty of Mindanao

 

Mr. Bat-og 부부는 자기 소유의 집이 없이, 'PAG-ASA printing press'라는 인쇄소의 공장 건물 뒤편에 합판과 커튼으로 방을 막아서 살고 있습니다. 인쇄소 주인 Mario B. Panaligan(wife Nimia Cabacungan)은 카톨릭 교인으로서, 14년 전부터 이들에게 살림집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으며, 그들 부부의 Church planting 사역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 지역의 국회의원과 시장이 인쇄소 주인의 친구이며, 근처의 모슬렘 자치구역의 왕인 술탄의 아들과도 친분이 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정부가 부패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민다나오 사람들이 보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쌀로 필리핀 대부분 지역의 사람들을 먹이는데 정부가 쌀을 싼 가격에 가져가고, 민다나오에 대한 지원으로 비료를 보내주는데 그것도 서류상으로만 몇 만 톤을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고 실제로 민다나오에 도착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단 모슬렘 반군뿐만이 아니라 얼마 전에 민다나오 섬으로 이사를 온 사람들까지도 그들이 필리핀 정부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반군의 대표적인 단체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MILF(Moslem International Liberation Front)이고 다른 하나는 MNLF(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인데 그 두 단체가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Moro는 필리핀 남부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필리핀에 모슬렘이 전파된 것은 인도네시아에서부터 민다나오로 오는 상인들을 통해서 였는데, 요즘의 이란이나 이라크의 모슬렘과는 차이가 납니다. 말하자면 모슬렘이 필리핀화 되어서, 그들은 기독교와 마찰을 일으키지도 않고, 일부다처제도 아니고 서로 조화를 잘 이루고 살아갑니다. 아마도 고대의 필리핀 사람들이 다신을 섬기던 전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슬렘의 행사에 기독교 목사를 초청하여 연설을 듣고 기도 부탁을 하기도 하고, 기독교 행사에 모슬렘이 참여하기도 하고, 카톨릭이 기독교 전도를 돕기도 하며 서로 잘 어우러져 지내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종교 다원주의로 흐를지 모르겠지만, 분쟁의 면에서 본다면 그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정부가 민다나오 사람들을 위험한 부류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교가 어떻든 같은 필리핀 사람들끼리 잘 어울려 사는 것을 Beauty of Mindanao라고 합니다. Mindanao 섬의 원래 이름은 Mandanawi인데, 그 뜻은 Land of Peaceful People로써 원래는 평화로운 땅이었는데 정부의 부패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테러의 땅으로 알려진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민다나오 둘째날 - 교회들

2007년 3월 4일(일) - 주일예배 - 지역 교회 방문

 

 

예배전

 

주일 예배를 위해 집에서 8시 10분쯤 출발하여 8시 50분쯤 도착했습니다. 오늘부터 차는 인쇄소의 작업 차를 이용했습니다. 교회는 Kidapawan 시내를 거의 중간쯤 가다가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가서 Kidama Barangay에 있습니다. 컴퓨터와 빔 프로젝터를 셋팅해 놓고 주변을 둘러보고 일찍 온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 날의 예배에는 Aleosan 교회의 pastor도 참석을 했습니다.

 

  

 

강대상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 나무 숲 너머는 모슬렘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왕래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동네에 정치적인 목적이 없이 평화적으로 방문한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슬렘 지역이 공존합니다. 강대상에서 바라볼 때 왼쪽으로는 보건소(Rural Health Unit) 건물이 보입니다. Cotabato Province의 22개 Barangay에 공중보건의가 한명, 간호사가 한명 있다고 합니다. 이곳 보건소에는 일주일에 한번쯤 온다고 합니다.

 

  

 

이 교회의 Pastor Ricky에게는 한 주일에 사례비를 100페소(2,000원)씩 준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데 그것 가지고 생활이 안되니까, 그 사모가 홍콩에서 Domestic Helper로 일하면서 번 돈을 송금해 준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아내가 tutor 또는 helper로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버는 가정이 은근히 많습니다. 그 부근 지역은 덥고 물이 없어서 1년에 1모작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주변이 가난할 수밖에 없고, 다른 지역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오면 이들은 종이에 자기 이름을 적은 명찰을 달고 있습니다. 매주일 그렇게 하는지 아니면 손님이 방문할 때만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여자아이가 아내 옆에 자주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버려진 아이인데 교인 중의 한 명이 데려다가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우리보고 입양하라고 하는데, 이들은 입양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합니다.

 

  

 

 

주일예배

 

10시가 되어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한 남자 집사가 나와서 우리를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고, 기타 순서가 있은 후에 성경봉독 때는 갑자기 저보고 본문을 읽으라고 합니다. 앞에 나가서 본문을 읽고, 찬양에 이어서 공룡에 대해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고 예배의 분위기는 정숙했습니다.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끝까지 움직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Bulwang교회 아이들보다 영어를 더 잘 알아듣는 것 같고, 앞자리에 앉은 어른들은 고개를 자주 끄덕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전교인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점심을 차리는 동안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고, 그 찍은 사진을 액정화면을 통해 보여주니까 아이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이어서 점심 식사를 같이 했는데, 매주 이러냐고 물었더니 가끔씩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같이 식사를 하고 평상시에는 각자 점심을 싸와서 같이 먹는다고 합니다.

 

  

 

 

지역 교회 방문

 

Aleosan교회의 pastor도 이곳 예배에 같이 참석했는데, Mr. Bat-og이 그곳에 가 보겠냐고 묻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보니 1시간 걸린다고 하여 한번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한시간이 아니라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가는 도중에 정부군 검문소를 아주 많이 만났습니다. 곳곳마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가끔씩 검색을 하는데 마치 전쟁터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시골 쪽으로 갈수록 모슬렘 사원인 Mosque와 머리에 수건을 두른 모슬렘 여자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면 한 대에 4명 이상 탄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 옆으로는 짐을 매달고.

 

  

 

12시에 출발하여 1시 20분에 도착했는데 정식 교회 건물이 아니라 가정집을 개조해서 의자만 몇 개 갔다 놓은 것입니다. 그것도 인근의 모슬렘 그룹에서 그 땅과 집을 기증했는데 현재 14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지금 교회가 비좁아지니까 그 옆의 넓은 땅을 교회 부지로 주겠다고 한답니다. 이 사람들은 이것을 The Beauty of Midanao라고 말합니다.

 

  

 

이 지역은 Cotabato Province의 맨 끝에 있는데 지역 이름이 Aleosan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Mandurriao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인 Alimodian과 Leon과 San Miguel의 Ilonggo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모여 사는 곳이라서 지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교회 주소는 Convention Baptist Church, Manuangan(brgy), Pigcauayan(town), Cotabato이고, 목회자의 이름은 Edwin Lorenzo입니다. Negros에 있는 Convention Baptist 신학교를 졸업하고, Iloilo에 있는 University of Iloilo에서 학부를 하나 졸업하고 다시 법학을 공부하다가 아내를 따라서 이곳으로 왔다고 합니다.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냐고 물었더니, 전에는 University of Iloilo에서 학장을 하는 형이 후원을 해 주었는데, 지금은 그 형이 런던으로 가고 난 이후에 후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가 했더니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20km, 15분 떨어진 Midsayap에 있는 Southern Christian College(UCCP 재단)에서 Mr. Bat-og의 첫째 딸인 D를 만났습니다. 그 대학의 영상 매체실장으로 있는데, 지금 미술 특강중이라고 합니다. 지난주 토요일부터 토일토일토, 즉 다음주 토요일까지 5회,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경비는 대학에서 대고 이번 기에 15명을 가르치는 중이며 주제는 평화입니다. 그런데 붓을 보니까 중국제인데 너무나 조잡합니다. 빠렛트도 장난감 같고, 물자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유치원생들이 집에서 장난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녀는 지역사회를 위해 Peace and Development Community Service를 하고 있습니다. 몇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종교간의 Conflict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를 교육해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약 40일 전에도 인근 지역에서 동시에 몇 군데 폭탄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인근 마을에서 사소한 시비로 fire trouble이 있었다고 합니다.

모두 같이 인근 시내로 나가서 D가 할로할로를 사주고 우리는 다시 차를 탔습니다. 이번에는 집으로 바로 가는가 했더니 또 어디론가 갑니다. 좀 더 멀리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는 것입니다.

한참을 가서 다른 Convention Baptist Church를 방문했습니다. Pigcawayan Town의 North Manuangan Barangay에 있는데 규모가 아주 조그맣습니다. 작은 교회인데도 교실이 하나 있다고 Preschool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교실만 있으면 학교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Cotabato Province에 9개의 town이 있는데 그 중 3개의 town에만 Convention 교회가 있습니다. North Manuangan에는 Roman Catholic 말고 기독교회가 전부 통털어 한 개 있습니다. 전체 주민이 500가구인데 이 조그만 교회 하나밖에 없습니다. 민다나오에 선교사가 일부 있겠지만 대부분 다바오 도시에 있고, 시골 지역으로는 잘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단 선교사 뿐 아니라 현지인 목회자도 사명감이 없으면 시골로 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골 지역에서는 한달에 5만원이면 생활도 하고 목회활동도 할 수 있고, Kidapawan 같은 도시에서는 10만원은 있어야 한답니다.

민다나오에 기독교단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들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누가 도와주는가 혹시 선교사가 있는가 물으니까 Convention Church는 필리핀에서 자생한 교파로서, 이곳에는 일로일로 지역의 현지인들이 민다나오로 많이 이주하여 그들이 주 후원자라고 합니다. 민다나오 전체에 40여개의 교회가 있는데 모두가 시골지역이고 도시에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교파에 따라 도심 선교를 위주로 하는 교파가 있고, 시골로 들어가는 교파가 있습니다.

 

 

Lake Agco로

 

시골에 가까울수록 모슬렘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5시 30분. 우리나라 현대 트럭을 개조한 형식인데 앞자리 가운데 앉으니까 쿠션이 없어서 엉덩이가 많이 배깁니다. 오늘이 주인집 아들 생일이라고 손님들이 많고 분주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생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교회의 광고 시간에 이번 주의 생일자 광고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거기서 저녁을 먹고 Lake Agco로 가는데, 7시쯤 출발하여 8시가 넘어서 Resort에 도착했습니다. 도중에 로만카톨릭 성당을 지나가는데 마치 종합운동장에서 Big Game을 마치고 인파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시간이 지나고 얼마나 전도를 해야 교회에 그 정도의 사람이 모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Apo 산을 차로 힘들게 올라갔는데 Resort 출입구를 못찾아서 헤매다가 주인하고 연락이 되어서 주인의 인도로 입구를 찾았습니다. 주인은 IP(원주민, Indegeous People)로서 이 지역에 있는 PNOC(Philippine National Oil Company)에서 대규모의 땅을 주었고 인근 IP의 자치회장입니다. 그 사람이 온천이 딸린 Resort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직 건설중이고 손님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샤워는 할 수 있는데 해발 1200m 지역이라 물이 너무 차가웠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머리만 감고 자기로 하고, 아내가 먼저 씻는 것을 기다리느라 밖에 한참 서 있었고, 머리를 감고 나서 수건으로 말리지 않고 바로 발을 닦는데 갑자기 한기를 느꼈습니다. 너무 추워서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고 잠자는 내내 추워서 몸을 움츠리고 잤습니다. 물론 옷을 모두 껴 입고 자고.

 

 

부근 지역 스케치

 

지도를 따라 그린 것이 아니라, 감각에 따라 그린 지역의 스케치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민다나오 셋째날 - 못 볼 것을 보다

2007년 3월 5일(월) - 못 볼 것을 보다

 

 

Agco 호수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Resort를 둘러보았습니다. Mr. & Mrs. Bat-og과 Resort 주인을 만나서 같이 숙소 가까이에 있는 Agco 호수에 구경 갔습니다. 그 Resort는 ANGI Farmers Association이라고 하는데 주인은 IP(토착인, Indegeous People)의 Chieftain(족장)으로서 이름은 Datu Lucio Serrano(President of ILAI<Idsopokaday na Linubbaran ni Apao, Inc.> meaning Descendants of Apao Association)입니다.

 

  

 

이들 Apo 산에 사는 원주민들은 자기들만의 고유한 culture가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의 다른 섬에 있는 원주민들은 스페인 침략 때 그들에 의해 문헌이 전부 불태워졌고 고유 문화가 말살되었는데, 이곳 민다나오에는 침략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서 IP들의 문화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 Apo산이 유황이 많아서 그런지 이곳 IP들은 Sandawa(=sulfur)라는 신(Native god)을 섬깁니다. 그에 대한 숭배 의식과 병들었을 때 병을 쫓는 의식 등이 남아 있는데 다음 기회에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Agco호수는 마치 용암이 끓듯이 호수 밑에서 뜨거운 물이 보글보글 솟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냥 신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일어나면서 인간의 눈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보여지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호수 주변 군데군데서 뜨거운 김이 솟아나오고, 유황과 진흙이 섞여서 마치 달걀 썩는 듯한 냄새가 오히려 내게는 향기롭게까지 느껴지며, 뜨거운 열기로 인하여 앞을 잘 볼 수 없는 듯한 속에서 하나님의 안내만이 우리가 따를 길이라는 암시는 주는 듯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뜨거운 물이 마치 조그만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손가락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Lake Agco 위로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오며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호수를 감상했습니다. 주변의 많은 꽃들과 원숭이까지.

 

  

  

     

 

 

지열발전소

 

숙소에 와서 샤워를 하고 산을 좀 더 올라가서 지열발전소인 PNOC를 견학했습니다. 발전소 전반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해 줄 매니저가 회의를 마칠 동안 젊은 직원이 우리를 접대했습니다. 매점에서 커피와 다과를 대접해 주는 동안 잠시 Mr. Bat-og이 민다나오에 대한 홍보를 합니다. 이 인근에 3000ha의 땅에 IP들이(indigenous People; 자기들 말로 원주민을 그렇게 부릅니다. Native People이라는 말을 싫어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사는데 그 중에 100ha가 바나나 경작지라고 한다. 이것을 한국에서 수입할 업자를 물색해서 이들의 경제를 돕자고 합니다. 현재는 바나나 1kg에 16페소를 받고 판다고 합니다.

발전소의 터빈과 Genrator는 일본의 한 회사와(Marubini) BOT(Build, Operation, Transformation) 계약을 맺어서 그 회사가 10년간 운영할 권리를 가져서, 2009년에 계약기간이 끝나면 지기들이 인수한다고 합니다. 발전기는 50MW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가 두 대가 있습니다. 필리핀에 원자력 발전소는 없냐고 물어보니까 북쪽 어디에 70-80년대에 하나 건설해 놓았는데 그곳이 단층지대라고 하면서 국민들이 반대해서 사용을 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 현재 그 발전소 건설에 대한 이자만 상당히 지불하고 있다고 합니다.

11시 20분쯤 되어 매니저가 회의를 마치고 나왔다고 연락이 와서 설명을 들으러 갔습니다. 일로일로에서 왔다고 하니까 '빨라빨라'라는 식당에 가 보았느냐고 합니다. 아직 못 가보았다고 하니까 일로일로에서 '빨라빨라'를 모르면 간첩이라며 씨푸드 전문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와 함께 기다리던 젊은 직원도 그렇고 이 매니저도 그렇고 유머가 풍부하고 우스개 소리를 잘 합니다. 일로일로에서는 보통 필리핀 사람들에게서 웃기는 얘기하는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 사람들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지 농담을 잘 합니다. 전반적으로 일로일로에서 만난 사람들보다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훨씬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드디어 PNOC라는 회사와 이곳 Apo 산에 있는 발전소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듣습니다. 전반적으로 내게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고, 마치 이곳에 온 목적이 이 발전소를 견학하기 위한 것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설명을 관심 있게 들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 용 파워포인트 파일도 얻었습니다.

 

  

 

비단 발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보존을 위해 전체 701ha에 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을 먼저 강조를 하며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합니다. 첫 장면에 Lake Maag(=yellow place)를 보여줍니다. Apo 산의 정상은 해발 약 3000미터인데 발전소가 있는 부분은 해발 1400m 가량 됩니다. 정상까지는 전문가가 가면 약 3시간 걸리고 보통 사람은 6시간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이어서 PNOC(Philippine National Oil Company)의 역사와 지열발전소의 역사, 지열발전소의 원리 등을 듣습니다. 이어서 판구조론과 필리핀 단층대, 시추 방법 및 케이싱 등에 관해 설명을 듣는데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설명을 잘 해주어서 그런지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요약하면 지하 약 3000m 정도까지 파이프를 묻어서 거기서 나오는 증기를 이용합니다. 그 증기를 이용해서 어떻게 발전기를 돌리는지, 증기와 물의 흐름에 대해, 그리고 생산하는 전기의 용량 및 민다나오 섬 전체에 관한 전기 사용 현황과, 지열발전소를 이용해서 일년에 얼만큼의 외화를 절약하는지 등을 듣습니다. 민다나오의 경우 가정용 대 산업용이 48대 52 정도라고 합니다. 기타 자연보호 및 대민 활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합니다.

 

  설명을 다 듣고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받았습니다. 반찬도 잘 나오고 모든 것이 여유로운 느낌입니다. 식사 후에 현장을 돌면서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처음 시추한 구멍부터 발전소와 Nursery Place 등을 보는데 저는 특히 파이프라인 등을 지지하는 구조에 관심이 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발전소 자체도 그렇지만 주변 지역에 대한 Community Activity 분야에 홍보를 더 강조합니다. 아마 시위에 능한 필리핀 사람들을 달래느라고 오랜 세월동안 그런 쪽에 대한 mind가 몸에 밴 결과인 것 같습니다. 젊은 직원이 자기들 차로 온 주변을 같이 돌아다니며 설명을 잘 해 주었습니다.

 

 

시내로

 

Resort에서 차를 한 잔 하고 내려와서 Kidapawan 시내에 숙소를 정하는데 AJD라는 곳으로 먼저 갔습니다. 최근에 숙소 주인을 알았는데 요금이 싸다면서 추천했는데 욕실이 없어서, Spottswood Methodist Center로 왔습니다. 옛날 감리교 학교 부지를 숙소로 이용하고 있는데, 샤워꼭지가 없는 것만 빼고 환경은 좋습니다. 마치 미국의 어느 시골의 Inn에 와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5시 30분부터 1시간 정도 샤워하고 쉬다가 6시 30분쯤 Bat-og부부를 만나서 AJD 여관으로 갔습니다. 주인집 딸이 허리를 못쓰고 화장실도 혼자 가기 힘들었는데 이들 부부가 지압을 해 주어서 20분만에 걸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 집 온 식구와 우리 부부의 지압을 해주고, 그 집에서 차린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아들은 이 달 19일에 미국 South Carolina에 주방일을 하러 갑니다. 이 집 아버지와 아들, 딸은 모슬렘이고 어머니는 카톨릭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집 주인에게 자기 딸을 둘째 부인으로 주겠다고 했는데 그 남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9시 넘어서 숙소로 돌아와서 편하게 쉬었습니다.

 

 

 

민다나오 넷째날 - 고무공장, 바나나공장

2007년 3월 6일(화) - 바나나농장 - 환경친화농업 - 고무공장 - 바나나공장 - 만찬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소유한 우리의 정원을 느긋하게 산책하려는데 그놈의 개들이 너무 많고 또 우리에게 다가와 짖는 바람에 얼마 못 가서 돌아왔습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조금 쉬었다가 Mr. Bat-og을 만나서 숙소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인근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원래는 Cotabato 한 Province였던 것을 지역이 너무 넓어서 네 개의 Province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모슬렘 자치지역 ARMM(Autonomous Region Moslem Mindanao) 그곳을 다스리는 왕이 술탄입니다.

 

 

바나나 농장

 

이어서 오늘의 견학을 시작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바나나를 싣고 가는 트럭이 고장나 있어서 기왕 내린 김에 부근의 농장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바나나를 재배하는 방법(Banana Plantation)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1) Runner인데 한 줄기를 자르면 다른 줄기가 자라납니다. 여러 개의 다른 줄기 중 가장 강한 하나가 Runner인데 그 줄기만 남기고 나머지는 잘라냅니다. 다른 하나는 2) 기존의 나무를 모두 없애고 새로 심는 방법입니다. 두 가지 중 2)번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Dole회사에 납품하는 바나나 농장입니다. 위의 오른쪽 사진은 기존의 줄기를 자르고 Runner가 하나 자라난 모습입니다.

수익성은 1 ha에서 750,000페소의 수입이 생기는데 경작 비용 250,000페소를 제외하면 1년에 500,000페소(10,000,000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까 부가가치가 높은 셈입니다. 그러나 나무를 가꾸는 데 공이 많이 들고 잘못 가꾸면 죽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열매를 많이 거두어도 판로가 있어야 합니다. 필리핀 내수용으로 하면 이익이 얼마 없고 한국에서 직수입 해 가면 서로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현지에서는 바나나 1kg을 16페소(320원)에 팝니다.

 

 

환경친화농업(Rural Life Center)

 

다음에는 환경 친화 농업으로 소득을 올리는 방법을 교육하는 Rural Life Center에 갔습니다.

Route를 따라가다가 먼저 보이는 것이 Australian Peanut입니다. 열매는 땅 속에 있고 줄기는 땅 위를 기어다니기 때문에 1) 땅의 침식을 방지하고, 2) 거름이 되기도 하며, 3) 생산성도 좋습니다. 이런 농사법을 Sustainable Agriculture(자연환경 파괴 없이 무한정 유지되는)라고 부릅니다.

 

  

 

이어서 커피나무 등의 종자를 개량한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기존의 방식대로 경작한 것과 나란히 비교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것이 염소 우유인데, 먼저 살균하는 곳을 보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젖을 짜면 먼저 파스퇴라이제이션(저온살균)을 하고, 숯을 사용해서 65도에서 15분간 살균한 후 식힙니다. 포장을 해서 오후에 출하합니다.

염소 먹이 풀은 한 달에 한번 자릅니다. 그러니까 자르고 나서 한 달이 지나면 도로 그만큼 자란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축사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축사에 매달린 대나무 통은 염소들에게 소금을 공급하기 위한 통입니다.

 

  

 

다음 우리는 bottle feeding을 하는 염소들을 위한 것입니다. 염소 한 마리에 젖이 두 개 있는데 보통 한 마리당 3-4마리의 새끼를 낳으니까 두 마리 이외의 염소(excessive kids)는 젖병을 물려서 키웁니다. 염소똥은 비료로 사용합니다. 1달에 3주 정도 수놈을 암놈과 같이 둡니다. 그러면 암놈이 수놈 뒷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냄새를 맡음으로써 우유를 잘 생산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젖을 짰으니까 오후에는 수놈을 격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방목하지 않고 우리에서만 키우는 것을 zero grazing이라고 합니다. 여기 있는 수놈은 종자용(breeding)입니다.

염소를 처음 기르기 6-12개월 전에 먹이용 식물을 심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6개월 내지는 1년만에 풀을 먹일 수 있고, 그 다음에는 매 월마다 풀을 벨 수 있습니다.

이곳의 전체 부지는 19ha이며 1971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양어장에는 Tilatia라는 물고기를 기르고 있는데 산에서 물이 내려오는데 가뭄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육식용 염소 우리에 가는 길에 유실수들(두리안, 코코넛)이 있습니다.

고기용 염소는 Boer Goat(아프리카 출신)로서 2년 된 것을 먹습니다. 흰 것은 암놈이고 수놈은 머리에 흰색과 검은 색의 무늬가 있습니다. 6개월에 60kg 자라며 3개월 지나면 20kg은 자랍니다. 이렇게 유실수를 심고 염소를 키우는 것을 Combination이라고 합니다. 즉, 풀을 염소에게 먹여서 나오는 똥을 가지고 코코넛에 비료로 사용하며, 자원을 순환시키는 것.

 

  

 

사무실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정문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염소 고기가 질기지도 않고 아주 맛있었습니다.

 

     

 

 

고무공장

 

 PAG-ASA(=peace) Printing Press의 사장 부인의 친정 아버지가 고무농장 뿐 아니라 고무공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집으로 갔는데 아직 모임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조금 기다렸습니다. 그의 집 문 앞에는 외부의 고무농장에서 가져온 고무 원자재들이 있고, 직원들이 무게를 달아서 사고 있었습니다. 고무 농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무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들의 수확을 팔아서 돈을 만들고, 고무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들 제품을 어디엔가 팔아야 합니다. 이 공장의 주인은 GoodYear라는 타이어 회사에 고무제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조금 기다리니까 사장이 모임에서 돌아와서 같이 공장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공장의 작업 순서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고무 제품을 만드는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물에 담가서 불순물을 가라앉힌다. (2) 씻는다. (3) 자른다(grind). (4) 씻는다(removing the dirt). (5) 불순물을 골라낸다. (6) 뒤집어서 반대편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한다. (7) 다시 씻는다. (8) 찢는다(mill). 7번. (9) 롤러에 말아서 (10) seasoning(자연건조 7-11일) 장소로 옮긴다.

 

 

그곳에서 컨베어를 통해 다른 장소로 옮긴다. 여기서는 (11) shredding(잘게 쪼갠다). (12) 건조시킨다. (13) 건조기에서 나오는 고무 제품을 일정 무게로 단다. (14) 틀 속에 넣어서 압축시킴과 동시에 회사 로고를 새긴다. (15) 제품들을 컨테이너에 담아서 출하한다. 실험실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고무원료로부터 고무제품을 만들기 이전까지의 작업과정을 보았고, 다음에는 고무나무에서 고무를 추출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 나무는 1972년에 심었는데 처음 심고부터는 약 5년 내지 7년이 지나면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묘목을 심으면 5년 지나서부터 수확을 하고 씨를 심으면 7년이 지나서부터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나무는 1978년부터 수확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전 5시부터 9시까지 한 사람이 하루에 600그루 정도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Topping Panel을 약 30도 경사로 새기는데 티눈 같은 것을 건드리지 않고 잘 해야 나무가 오래 간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약 5 feet 되는 높이에서부터 시작하는데 한번에 1/16in씩 아래로 내려오면 한 나무당 하루 걸러씩 Topping을 하니까 한달이면 15/16in, 즉 거의 1feet가 내려옵니다. 그렇게 해서 5개월이 걸려 아래까지 다 내려오면 그 다음에는 뒤편으로 가서 8 feet 정도의 높이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8개월만에 아래까지 내려오고, 그 다음에는 또 반대편에 가서 시작을 합니다. 그때는 나무가 또 자라 있고 지난번에 Topping한 부분이 다 아물어 있습니다. 지금은 고무나무 사이사이에 마호가니를 심었습니다.

 

   

 

이어서 식탁에서 차를 마시며 한국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에 묻는 말이 North Korea에서 왔느냐 South Korea에서 왔느냐는 것입니다. 필리핀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한국서 왔다고 하면 북한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를 물어봅니다. 올림픽을 하고 아시안 게임을 하고 국위를 선양한다고 그렇게 외쳐댔는데, 밖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필리핀 사람들의 민도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고무공장 사장 정도면 필리핀 사회에서는 이미 상류층에 속하는데 이 사람이 그 정도면 일반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공장의 모든 설비를 막내아들이 다 설계했는데 그가 대단하다고 하니까, 그 막내아들을 만든 사람이 바로 공장의 주인 할아버지라고 하면서 그가 더 대단하다고 합니다.

 

 

바나나공장

 

  떠난다고 인사를 하고 한참을 현관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드디어 그 집을 나왔습니다. 숙소 근처로 조금 오다가 PAG-ASA Printing Press 사장인 Mario의 친구가 운영하는 바나나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보통 바나나 농장이라고 하면 그냥 바나나 나무를 기르는 곳인데 이곳은 복제 과정을 통하여 바나나 묘목을 만드는 곳이라서 바나나공장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곳 사장은 이 지역 Banana Federation의 Chairman입니다.

농장에 들어서니까 주인은 없고 그의 아내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곧바로 바나나 묘목을 Rooting시키는 곳으로 가서 구경을 하고, 그 묘목을 복제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들어선 곳은 발아된 tissue(조직)를 배양하는데 필요한 medium(배양액)을 만들고 있는 압력솥을 보았습니다. 그 배양액은 Agar이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해초(seaweed)인 Carageenan을 가지고 만든다고 합니다. 이어서 실험실에서 바나나 tissue를 cloning하는 과정을 설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나나 뿌리 근처에서 땅밑줄기를 가져오면 그것을 S0 Stage라고 하며 그것을 잘게 쪼갠 것을 S1 Stage, 거기서 21일 혹은 18일 지나서 조금 자란 것을 또 쪼개고, 그런 과정으로 한 단계씩 지날 때마다 Stage 번호가 올라가서 최종적으로 S6 Stage까지 있습니다.

 

     

 

각 Stage의 중간 과정마다 배양(culture)을 하는데 실내를 따뜻하게 하고, 매 단계마다 배양액을 갈아줍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오염이 되면 그 묘목은 죽게됩니다. 그 다음에는 뿌리가 정착되는 Rooting Stage인데 밀폐된 병 안에서 어떻게 산소 공급을 받느냐고 하니까 불빛과 에어콘의 찬 공기로부터 산소를 공급받는다고 합니다. 그 Rooting Stage를 Hardening이라고 부릅니다. 실험실 내의 조건에서 벗어나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단련과정입니다.

그렇게 해서 Rooting Stage를 거친 묘목은 밖에 옮겨져 Nursery(모판)를 지나서 정식 묘목이 됩니다. 그 묘목은 하나에 2페소에 팝니다. 그것을 심고 10개월이면 수확을 하고.

 

  

 

 

만찬

 

이제 Kidapawan에서 마지막 저녁이니까 그동안 신세진 사람들을 모두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Kidapawan 시내의 그럴듯한 Restaurant인 Lady M이라는 곳에 모두 모였습니다. 참석자 : Mr. & Mrs. Bat-og, 그의 딸 Q, Q의 딸 Rebekahh Kassey D. Bat-og, 사위와 사위의 아들 Marcelo Khristiane D. Bat-og, PAG-ASA Printing Press의 여주인, 그의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 모슬렘 술탄의 아들인 P. Faisal Kiram (a.k.a. Marinius Kelley Austria)와 그의 아내 Myrna, 그리고 그의 손녀딸. 우리 부부까지 총 14명이 넉넉하게 먹었는데 음식값은 4만원이 안되게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그 술탄의 아들은 이름이 Marinius Austria Kiram이라고 하고 그의 아버지는 Sultan Omar Kiram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술탄의 아들은 자기 별칭을 News라고 불리기를 원합니다. 그에게 물어보면 웬만한 뉴스가 다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술탄은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서 버려졌는데, 미국인 선교사가 데려다 길렀답니다. 마닐라 근교에서 기독교인으로 살며 공부를 잘 해서 필리핀 정부군이 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그가 민다나오 출신이니까 자기 고향에 가서 근무하면서 모슬렘 사람들과 화해의 길을 모색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모슬렘 측에서는 그가 정부군이라고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그의 옷을 벗겼는데, 등에서 자기들과 같은 혈통이 가지는 반점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어린애들 엉덩이에 나타나는 몽고반점 같은 것이, 자기들 술탄의 가정에는 등에 표시가 나타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왕족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자기들의 왕인 술탄으로 세웠고 그는 그때부터 기독교인이 아닌 모슬렘의 왕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의 장남인 News는 왕위를 승계 받으면 그 지역을 다스리며 살 수 있을 텐데 모슬렘이 싫어서 고향을 떠나 Kidapawan 근처에서 살고 있고, 자기 스스로를 모슬렘이 아니라 모로(Moros)라고 부릅니다. 모로란 남부 민다나오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의 아내 Myrna는 처음에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 한때 죽을 정도로 등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때 Mr. & Mrs. Bat-og을 만나 Siatu(일종의 지압 마사지) 시술을 세 번 받고 살아났답니다. 그 이후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남편인 술탄의 아들은 자기를 Moristian(Moslem + Christian)이라고 합니다.

  민다나오에서 전도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뭔가 그런 기술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전도의 무기가 됩니다. 다음날 만난 한인 선교사도 환경친화농업이라는 것을 가지고 모슬렘에게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민다나오 다섯째날 - 진정한 선교란?

2007년 3월 7일(수) - 진정한 선교란?

 

 

Kidapawan에서의 작별을 고하며 숙소에서 잠깐 PGA-ASA Printing Press에 들렀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Davao에 있는 고무공장 사장의 막내아들 집에서 지낼 것이라고 하며 인쇄소의 여주인이(막내 아들의 바로 위 누나) 오후에 그곳으로 가 있겠다고 합니다. 아마 인쇄소 사장이 자기의 처남에게 제의를 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왔는데 그 집에서 하루 묵게 할 수 없냐고.

Good Soil Foundation에 가기 위해 Davao로 가는데 민다나오에는 곳곳에 정부군 검문소들이 많습니다. 그곳 길바닥에는 코코넛 나무 껍질로 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 큰 나무에서도 꽃을 볼 수 있는 것이 이곳 필리핀 거리의 특징입니다.

 시간도 많고 해서 도중에 간식을 먹고, 해변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Davao 시내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손선교사님과 전화통화를 몇 번 했는데, Good Soil Foundation은 이미 지나온 방향에 있고 요즘 어떤 보안상의 문제로 그곳에 안가는 것이 좋다고 하여 이곳 가이사노 백화점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진정한 선교란?

 

  Good Soil Foundation은 오래 전에 이곳으로 온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NGO로서, 한국의 조한구 회장이 세운 자연농업협회의 자연농업 방식을 이곳 필리핀 현지의 농부들에게 가르쳐주면서, 그것을 매개로 하여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모슬렘들에게 접근하느라고 보안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쌀과 옥수수 등은 이미 성공을 했고 돼지와 닭은 시험 단계인데 거의 성공을 해서 토종닭을 보통의 토종닭보다 두 배의 가격에 팔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선교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도 처음에 와서는 의료 서비스 제공도 하고, 물질도 퍼주어 봤는데 그 효과는 일시적이고, 결국은 그들 스스로 자립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그들을 물질로만 후원하는 것은 결국 자기 왕국을 만드는 욕심이라고 하며, 그것이 현지인들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현실은 선교사가 보고를 잘 해주기 원하므로 결국 보고를 위해서는 뭔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런 선교사에게 선교비가 많이 지원되는 것이 한국 교회의 실정이라고 합니다.

  선교지의 현지인들에게는 고기만을 제공해 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물질로만 지원해 주는 것은 실적을 위주로 한 타성일 뿐이라고 합니다. 한국서 선교를 지원하는 교회도 지금보다 성숙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결국은 그런 방향에 맞추어서 활동하고 그 실적을 보고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선교지에 와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깨달은 것을 저보고는 빠른 시일 안에 깨달았다고 칭찬하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반갑다고 하며 노트북을 꺼내서 친절하게 그러나 서두르며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토양의 성분을 알아야 하는데, 표토의 5cm 안에 거의 모든 Micro Organism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치의 원리인데 표토에 있는 토착 미생물을 잘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한 예로, 밥을 대나무 밑에 놓으면 그 속에서 미생물이 번식하고, 이틀 후에 거기에 필리핀 흑설탕과 믹스해서 항아리 속에 넣고 1주일이 지나면, 토착 미생물이 발효가 됩니다. 그것을 바로 사용하면 너무 강해서 안되고 1:500 내지는 1:10000 정도로 희석을 해서 비료 대신 사용합니다. 요즘은 쌀 대신 코코넛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방식을 레몬 농장에 적용해 보았더니 평상시 1ha의 땅에서 1주일에 2 Sack을 수확하던 것이 40 Sack으로 되었답니다. 포도송이가 75cm가 되기도 하고, 두리안이나 옥수수, 가지 등 여러 과일에 적용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양계장 등에 대해 적용한 사례도 자세히 설명을 들었습니다.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 사람은 진정으로 필리핀 현지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리핀 경제의 치명적인 문제는 토지개혁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6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강제로 누구든 예외 없이 대지주의 땅을 빼앗아서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면 되었는데, 98년도에 토지개혁을 하면서 현 아로요 대통령의 친인척들의 땅(자신의 땅을 포함하여)을 제외시키기 위해 100개 이상의 예외 조항을 둔 것이 헛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60 내지 200개의 가문이 필리핀 전체 땅의 90% 이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땅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자동으로 부자가 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무농장의 경우 1ha의 땅에 고무나무가 이미 심어져 있다면 고무 수확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주인은 가만히 앉아서 1년에 100만원의 세를 받습니다. 1ha를 약 500만원이면 살 수 있는데 2억원을 주고 40ha의 고무농장을 사놓으면 한 달에 세만 400만원 정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고무나무는 저절로 자라고 바나나 나무처럼 잘 죽지도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나무 값이 제외되어 있는데 묘목을 값싸게 사다가 5년만 경과하면 그때부터 수확을 할 수 있으니까 땅만 있으면 저절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선교의 목적으로 투자를 하는 경우, 현지인 목회자들에게 다달이 지원을 할 것을 모았다가 1ha씩 땅을 사 놓으면 영원히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민다나오의 시골의 경우 한 달에 5만원이면 생활비와 활동비가 되니까, 1ha의 땅만 사더라도 현지인 목회자 두 명을 영원히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땅을 1ha씩 팔지 않는다는 것이고, 처음부터 바로 지원하려면 고무나무가 이미 심겨진 것을 사야 하니까 나무값이 더 필요합니다.

 

 

민박을 하러

 

  서로 생각이 통하면서 시원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고무공장 사장의 막내아들 집으로 갔습니다. 인쇄소 사장 부인은 벌써부터 와 있었습니다. 조금 늦게 갔더니 집주인은 Kidapawan에 다녀와서 배가 고파서 먼저 저녁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데리고 SM City로 가서 저녁을 사주었습니다.

  일로일로에서는 모두 없이 사는 사람만 보다가 다바오에서는 부자들 집에 다니니까 많은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집이 굉장히 크고, 거실이 아마 25평쯤 되는 것 같습니다. Helper도 여자 둘 남자 둘이 있고. 우리를 위해서 대형 침대가 두 개 있고 목욕탕도 호텔 수준인 방을 내 주었습니다. 필리핀에 와서 처음으로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꼭지 밑에서 샤워를 했습니다.

 

 

 

민다나오 마지막날 - 결론

2007년 3월 8일(목) - 필리핀의 언어 - Philippine Eagle - Samal Island - 최후의 만찬 - 종합 결론

 

 

  우리에게 집을 제공해준 사람은 Kidapawan에 있는 고무공장 사장의 막내아들로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부친의 공장에 있는 모든 기계를 직접 설계하고 만든 사람입니다. 같은 공학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말이 잘 통하고, 순수해 보였습니다. 역시 친절한 아내와의 사이에 큰 딸이 건축학을 전공하고 지금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으며(82년생) 둘째와 셋째가 아들인데 셋째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 역시도 Rebekahh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Mano Po 인사(악수를 하면 같이 손을 잡은 채로 어른의 손을 자기 이마에 갖다 대는 인사로써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인사)를 하는데 귀엽습니다.

 

 

필리핀의 언어

 

오늘은 필리핀 이글(Eagle)을 보러 가야 하는데 그곳에 볼 것이 많고, 오후에는 Samal Island에 가야 하니까 일찍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식구들이다 나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하며, 더욱 친근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지금 그들은 어떤 언어로 대화를 하냐고 물어보니까 Cebuano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필리핀의 국어는 따갈로그어인데, 민다나오는 시부아노가 우세하다고 합니다. 현재 필리핀 전체에 언어의 점유율이 시부아노가 60% 정도 된다고 합니다. 민다나오는 미지의 땅이었는데(사실은 원주민<IP>이 살고 있었고, 엄격히 말하자면 그 땅은 원주민의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마치 Gold Rush처럼 사람들이 이주해 왔습니다. 민다나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던 토착인이 있었는데 그 언어는 그리 우세하지 않고, 일로일로(Iloilo)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그들의 일롱고(Ilonggo)어를 사용하고, 시부(Cebu) 쪽에서 온 사람들은 시부아노를 사용하고, 마닐라가 있는 루손쪽에서 온 사람들은 따갈로그어를 사용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차로 시부아노가 유력해져서 민다나오의 어디를 가더라도 웬만한 곳에서는 시부아노가 통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롱고 사람들도 그들과 대화하려면 시부아노를 배워야 하고, 따갈로그 사람들도 시부아노를 배워야 합니다. 민다나오에서는 보통 자기 원래의 언어와 시부아노와 영어 이 세가지는 능통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따갈로그를 사용하는 사람이 민다나오에 오면 시부아노를 배우는데, 시부 사람이 루손에 가면 그냥 시부아노를 사용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언어로 동화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필리핀 전체에서 시부아노를 사용하는 사람이 따갈로그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많다고 합니다.

참고로, 필리핀에는 섬이 7,000여개 있는데 언어가 1,000개가 넘습니다.

이집 사람들은 뭔가 끈끈한 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일정을 위해 출발하려고 밖으로 나와서 정원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가 Kidapawan에서 타고 다니던 차는 낡은 차인데 집주인이 자기 집에 있는 차를 빌려주었습니다. 자기 친척 중에 수녀가 된 사람이 있는데 그 수녀가 자기 차를 이 집 차고에 맡겨 놓았다고 합니다.

 

  

 

 

필리핀 이글

 

  그 차를 타고 필리핀 이글 Foundation을 찾아갔습니다. 그 재단은 수도국 안에 있었습니다. 일단 수도국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Philippine Eagle Center로 갔습니다. 안내원을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필리핀 이글은 암놈이 수놈보다 커서 암놈이 우리를 지키고 음식을 장만하며 숫놈은 자손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필리핀 이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기가 큰데, 필리핀 사람들이 사냥을 좋아해서 지금은 멸종 위기에 있어서, 개인이 기르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을 해 놓았습니다. 수놈은 7-8살이 되어야 섹스가 가능하고 암놈은 5살이 되면 가능합니다.

  접붙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자연수정(Natural Insemination)과 인공수정(Artificial Insemination)이 있습니다. 인공수정을 하는 경우에는 surrogate mate(대리 상대)가 한명씩 있습니다. 독수리 한 마리당으로 보면 일부일처제인데, 사람으로서는 한 사람이 여러 독수리의 surrogate mate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놈이 발정을 할 때는 머리에 독수리 가면을 쓰고 손에는 플라스틱 장갑을 끼고, 그 손을 머리에 쓴 가면 위에 놓습니다. 그러면 그 손 위에 사정을 하면 암놈 독수리에게 가서 주입을 합니다.

  대표적인 독수리가 PAG-ASA(=Hope)라는 이름의 독수리인데 이곳에서 기르는 독수리의 생활에 대해 인터넷에서 중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총 36마리의 독수리를 보호하고 있는데, 일단 우리에 내 놓고 전시를 하면 구경하는 사람들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동시에 18마리만 밖에 내 놓고 나머지 18마리는 사람들이 안보이는 곳에서 생활하게 한다고 합니다. 필리핀 이글은 필리핀 전체에 약 400마리 내지 500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날개를 다 폈을 때의 길이는 약 2m이며, 몸무게는 8kg. 수명은 보통 40년 내지 60년입니다.

  악어도 기르고 있었는데 그 악어는 1주일에 세 번, 한번에 14마리의 닭을 씹지 않고 먹습니다. 악어와 마찬가지로 올빼미는 야행성인데 고개를 360도 돌립니다. 독수리들이 볏을 세우는 것은 겁을 먹었거나 아플 때라고 합니다. 독수리 중에서 오직 필리핀 이글만 눈알이 푸른 색이고, 다른 모든 종류는 검정이나 갈색입니다. 그 안에 있는 꽃들도 색깔이 선명하고 보기에 좋습니다.

  지나가다가 사람들이나 회사의 명패가 붙은 것을 보았는데, surrogate mate로 후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매우 많은 돈을 기부해야 그 명패가 붙을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 그 재단을 후원하려면 200페소를 내면 바닥의 콘크리트에 이름을 새겨줍니다.

 

 

Samal Island

 

  이어서 차를 두시간 넘게 타고 항구로 가서 Samal Island에 갔습니다. 그 섬에 가는 배를 타는 터미널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고, 섬의 각 부분마다 소유자가 있고 목적지에 따라 터미널 위치가 다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Paradise에 가는 터미널을 찾는데 애를 먹고 겨우 찾았습니다. 해안으로 조금 걸어가서 배를 타고 섬으로 갔습니다. 누군가 다바오에 가면 그 섬에 꼭 가보라고 해서 가봤는데 보라카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래도 다른 곳에서 사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상 Activity도 너무나 비쌉니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최후의 만찬

 

  민박을 하던 집에 돌아왔더니 식구들이 반갑게 맞이합니다. 주인집 남편과 부인과 딸이 우리의 음식을 준비합니다. 보통 필리핀 가정에서 음식 준비는 Helper가 하는데 손님상을 준비하는 경우는 주인이 직접 하는지는 몰라도 필리핀 남자가 부엌에서 아내를 돕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한다고 Kidapawan에서 집주인의 매형과 술탄의 아들이 왔습니다. 그것은 단지 식사를 같이 하는 의미를 넘어 선 것 같은 특별한 배려 같습니다. 왜냐하면 식사 한끼를 같이 하자고 차를 몰고 왕복 5시간을 온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녁이 준비되어 들어가서 식사를 나누었는데, 참치를 가지고 회도 뜨고 굽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오는 냉동 참치도 여기서 잡히는 것인지 몰라도, 필리핀 지역에서 참치가 잡히는 곳이 이 부근의 연안이라고 합니다. 와사비를 주는데 한글로 '연와사비'라고 적혀있습니다. 인근의 SM 슈퍼에서 샀다고 합니다. 술탄의 아들은 우리와 식성이 비슷합니다. 젓가락질도 잘 하고(꼬지용 대나무 두 개를 가지고 시범을 보입니다) 마늘도 잘 먹고 회도 좋아합니다. 조만간 자기 땅에서 인삼을 재배할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 힘들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어서 과일과 바나나큐 같은 디저트를 먹었는데 너무나 많이 먹어서 한참동안 배가 거북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Kidapawan에서 온 두 사람은 바로 돌아가고,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12사 넘도록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또 나온 이야기가 남북한의 차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연설을 하듯이 한반도에 대해 한참 동안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주인과 대화가 잘 통하고, 이 집 가족 모두가 순수해 보였습니다.

  특히 딸이 건축과를 나와서 졸업작품을 보자고 했더니 최근에 치른 기사시험  통과 작품을 가지고 나와서 그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조언을 해 주었더니 특히 부모가 더 좋아하고, 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때로는 각자에게 때로는 서로에게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깊어갔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공항에 5시 30분까지 가는데 모든 식구들이 같이 일어났고, 집주인이 자기 차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일주일간 같이 생활하던 Mr. & Mrs. Bat-og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했습니다.

 

 

종합 결론

 

1. 민다나오는 결코 위험한 지역이 아니다. - 불특정 목표에 대한 폭탄 테러는 자주 일어나지만 누군가 개인을 겨냥한 테러는 없다.

2. 민다나오에는 태풍이 없다. 그리고 땅이 기름져서 농작물이 잘 된다. - 민다나오를 본 첫 인상은 풍요의 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여유가 있다. 어린이들도 다른 지역보다 영어에 훨씬 더 능통하다.

3. 기독교 보급률이 3%라고 말하는 이 지역에 선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하지만 카톨릭과 함께 모슬렘이 우세한 이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과 다른 선교 방식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이 필요하다.

4. 선교는 절대로 돈만 지원하는 형태여서는 안된다. - 몸으로 본을 보여야 한다.

5. 앞으로 선교적 차원에서 일할 여지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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