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한국과 벨기에의 월드컵 축구 중계를 보다. 처음에 전반 시작하자마자 8분만에 한골을 먹고나니 벨기에의 선수들은 자신이 있어 보이고 우리의 선수들은 열심히 만회하려 하는 것 같아 보인다. 후반 뒷부분서 우리가 한골을 넣어 비기자 벨기에는 초상집 같다. 더군다나 잠시후 멕시코가 네덜란드와 비겼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경기가 끝나자 벨기에 선수들은 침통하고, 멕시코 쪽에서는 16강에 진출했다고 난리다.
중계가 마치자마자 곧바로 집사람을 식당에 내려주고, 이**교수님을 만나러 공항에 가다. KAL의 도착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부랴부랴 터미널에 들어갔더니 비행기가 1시간 연착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서울서 누군가가 짐을 부치고 사람이 타지 않아 그 짐을 꺼내 놓느라고 1시간이 지체되었단다. 짐만 보내고 사람이 안타는 것은 혹시 폭발물일 가능성도 있어서 반드시 찾아내는가 보다. 이**교수님을 모시고 LA에 있는 OMNI Hotel로 가다. 미리 지도에서 찾아 둔 대로 한번에 찾아가다. 그 Hotel은 우리나라 한진그룹에서 소유한 것이라 한국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 호텔 옆에 KAL 사무실도 있고. 호텔 방에 들어가 잠시 커피한잔을 하고 LA 시내 구경을 하러 밖으로 나오다. 한시간 여 동안 차를 호텔에 주차했는데 주차비가 $12.50이다.
LA의 서쪽에 있는 UCLA를 가보기 위해 Wilshir Dr.를 이용하다. 가는 도중에 Beverly Hills에 들러 부자동네를 잠시 구경하다. UCLA 앞은 이곳의 UCI 앞보다 많이 번화하다. 그래도 우리나라처럼 당구장이나 술집 같은 곳은 찾아볼 수 없고, 문구점이나 화랑 같은 곳들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서 4시 15분쯤 떠나 이교수님을 호텔에 내려드리고 바로 집으로 왔는데 6시 30분에 도착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 뉴스를 들어보니 낮에 내가 지나갔던 길 근처에서 거의 폭동이 일어났다 한다. 멕시칸들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고 공장 근무를 뛰쳐 나와 한인타운 근처를 누비며 길 가에 주차된 차 위에 올라가 구르며, 지나가는 차에 돌을 던지고 멕시코 국기를 들고 거리를 누비며 다녔단다. 덕분에 그들을 근로자로 고용하고 있는 한인 봉제 공장이 문을 닫고, 대부분의 한인 마켓도 84년도의 폭동이 연상되더란다.
저녁을 먹고 성가대 연습을 위해 교회로 가다. 마침 VBS(Vacation Bible Study) 기간이라 성가대 연습실에서 아이들이 분반 공부를 하고 있다. 잠시 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연습할 의자를 놓다. VBS에 참가한 학생이 650명이라고 듣다. 기간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씩이나 하고 참가비도 $35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전체 학생이 밤에 교회에서 잔단다. 그들의 식사 뒷바라지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의 과외 때문에 여름 성경학교가 잘 안이루어지는데 여기서는 과외들이 없으니 일주일 내내 참가할 수 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그런 행사를 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어 한다.
낮에 호텔에서 이교수님이 허심탄회하게 요즘의 일들을 이야기 하다. 현재 대통령의 자문위원으로서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견에서부터,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은 두 학생들에 대한 약간의 서운함까지. 제자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개인적으로 기대를 하느냐가 요즘의 선생들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스승이 제자를 생각하는 정도가 항상 학생이 스승을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선다. 스승은 학생을 자기의 분신처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주려하는데, 학생은 선생에게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능력에 의해 그것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에게도 100% 만족은 못하셨겠지만 지금은 내게 많은 기대를 하는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오면 내가 참모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신다. 공동연구는 물론, 대통령의 자문위원으로서 필요한 정책 입안을 구상하는 일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사실 자기의 인생 가운데 자기의 인격 형성과 생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많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자기의 인생이 물들여지고 수놓아진다. 지금 나의 경우처럼 한국에서 온 *박사와 우연히 UCI에서 방을 같이 쓰고 있는데, 이것이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 중의 아주 일부가 아니라,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남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다닐 때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운명적으로 중요한 우연이다. 누구와의 만남도 그냥 흘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가치를 갖지 않는다.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와 ***가 다투고, ***는 밖에서 서성이며 우리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1시간 넘게 이야기 하다. 형제간의 우애와 가족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내일 있을 Shinozuka 교수와의 Meeting을 위해 무언가 준비를 해야 하는데 피곤해서 아무 생각도 안나다. 이번 주간에는 아무 일도 못했다고 솔직히 이야기 하기로 하다. Essay를 작성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